고구려를 이은 대진국과 그 이후
백제는 나중에 신라에 병합되었고(CE 660),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후(CE 668) 유장遺將 대중상과 그 아들 대조영이 세운 대진국으로 이어졌다.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의 유장 대중상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성을 쌓고 새 나라를 열어‘ 고구려를 회복하여 부흥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다. 대진국(발해)은 고구려의 후신인 것이다. 대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6천 리의 강역을 개척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였다. 진震은 동방을 뜻하므로 대진국은‘ 강대한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대진국은 신라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여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당당한 면모를 드러내었다. 대진국은 마침내 주변의 당, 왜, 신라 등이 조공을 바치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를 정도로 동북아의 강국이 되었다.
대진국의 멸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나 일단 표면적으로는 거란족의 공격으로 망한 것이 분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거란은 926년 대진국을 공격하여 거의 싸우지도 않고 이겼다고 한다.“ 거란 태조가 그 갈린 마음을 틈타 움직이니 싸우지 않고 이겼다”『( 요사遼史』「 야율우지전耶律羽之傳」)는 기록으로 보아 거란은 아마 대진국의 내부 분란을 이용하여 무너뜨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거란은 어떤 족속인가? 거란은 흉노의 한 갈래로서 북위 시대부터 거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일정한 정착지를 갖지 않고 유목과 수렵생활을 영위한 거란은 고구려, 돌궐 같은 주변 강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10세기 초 당이 혼란에 빠지고 돌궐도 쇠약해지자, 거란 부족들은 일세의 영웅 야율아보기 밑에서 강력한 국가로 통합되었다(907). 아보기는 부족장들을 모두 처단하고 자신을 황제라 선포한 후, 먼저 먼 곳에 위치한 돌궐, 토혼, 당항 등을 쳐 배후를 안전하게 한 다음 대진국을 공격하였다. 주목할 점은 한 달 만에 대진국의 수도 상경용천부(홀한성이라고도 함)까지 함락시킨 것이다.
주변 나라들이 하나같이 두려워하던 강국이 외적의 침입에 어찌 그리 쉽게 무너졌을까? 대진국의 멸망에는 자연재앙이 또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장답사에서, 약 천 년 전 상경용천부 일대에 화산 대폭발이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나라의 중심지에서 발생한 재난으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 거란이 침입하자 국가가 통째로 느닷없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패망 이후 대진국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거란에게 저항하였으며, 왕족을 비롯한 지도층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고구려의 후예라는 의식이 확고한 고려에 합류하였다. 대진국은 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민족이 동북아 대륙을 누볐던 마지막 나라였다. 대진국이 멸망함으로써 배달 이래 5천 년간 계속되던 대륙시대가 끝나고, 고려와 조선이 민족사를 이으면서 반도시대로 접어들었다.
고조선 시대 사관史官 발리가 지은『 신지비사』에 따르면, 한민족의 역사는 아홉 번을 바뀌며 전개된다고 한다. 발리의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환국 → 배달 → 고조선 → 북부여(열국시대) → 고구려(사국시대) → 대진국·신라 → 고려 →조선 → 대한민국으로, 아홉 번 나라 이름을 바꾸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 아홉 번의 개국開國 과정이 바로 동북아 역사의 주역이자 인류 시원 문화 종족인 한민족의 국통 맥이다.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