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百濟)의 패망(敗亡)기록은 반도에는 없는데 지나(支那;中國)에는 왜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사람들은 일제(日帝)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가 왜곡한 역사에 익숙해져 있어서 말이 아니게 훼손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고사(上古史)는 아예 거론조차 않고 있고, 고조선의 역사사와 삼국시대의 백제 역사뿐만 아니라 고구려, 가야, 신라는 물론 왜(倭)의 역사도 조작된 것인데 지금은 이들도 알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사람들은 잘못된 역사인 것을 모르고 있다.
또한 우리는 3000년 전의 구국(舊國)이라는 예맥조선(銳麥;濊貊)조선과 고구려 칸(干)의 최숭(崔崇), 최리(崔理)의 낙랑국(樂浪國)이 만주(滿洲)와 한반도영역(韓半島領域)에 있었는데 낙랑국(樂浪國)이 지워져 있는 것도 모르고 있는데 그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한편 당서(唐書)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있는 일본국호(日本國號)가 670년 타이완(臺灣)에서 시작한 것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없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이것은 우리 역사를 반도(半島)에 몰아넣기 위해서 당시 만주(滿洲)와 반도에 낙랑국(樂浪國)이 있었음을 숨김으로써, 처음부터 우리 역사가 반도(半島)에 있었다고 왜곡한 것으로 본다. 최숭(崔崇), 최리(崔理)의 낙랑국(樂浪國)의 위치(位置)는 고구려(高句麗)와 예(濊)의 동쪽 옥저(沃沮)가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낙랑국(樂浪國)은 서기전 239년~서기 32년까지 존재했는데 해모수 때 왕이 최숭(崔崇)이고 대무신왕15년(서기32년)때는 최리(崔理)였다. 최리(崔理)는 서기32년 고구려에 항복한다.
그 이유는 호동왕자(好童王子)와 사랑에 빠진 낙랑공주(樂浪公主)가 나라보다 사랑을 택하여 외적이 침입해 오면 북이 자동으로 울리는 자명고(自鳴鼓)를 찢음으로 미처 고구려침공을 알지 못하게 된 최리왕(崔理王)은 나라를 배신한 낙랑공주(樂浪公主)를 눈물을 머금고 처형한 후 고구려(高句麗)에 항복(降服)한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이유와 [삼국사(三國史)] 편찬과정(編纂過程)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에 백제(百濟)패망기록이 있는데 반도(半島)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너무 왜곡역사에 익숙해져 역사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日帝)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나 역사 무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 한 실례를 든다면, 다른 알반 사람도 아닌 제1공화국(第一共和國)당시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安浩相)박사의 경우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안호상 박사와 임어당(林語堂)박사가 만나 대화 중, 안 박사가 임어당에게 “한자(漢字)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하자 임어당은 “한자는 당신네들이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안 박사는 이를 모르고 있었다.
또 안 박사가 임어당에게 지나(支那;中國)는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져서 식민지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임어당은 “아니다. 청(淸)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당신들의 나라이다” 고 답했으나 안 박사가 이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근래 우리나라 대통령이 2017년 12월, 지나(支那;中國)에 가서 북경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한국은 중국문화 많이 받아들였다. 초한지(楚漢志)를 많이 읽는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지나(支那;中國)의 시진핑(習近平)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은 지난날 지나(支那;中國)의 후국(侯國)이라’고 무지한 말들을 했다. 모두 역사 무지를 드러낸 발언이다.
위에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는 지나(支那;中國)의 임어당 박사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우리 역사가 5000년 역사라고 단군을 시조(始祖)로 모시는데 참으로 한심함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역사는 5000년이 아니다. 단군조선 위에 배달국과 환국이 있음은 세계학자들도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가 왜곡(歪曲)한 수준에서 세계 조롱거리가 되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환국(桓國)은 53대 3301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최초의 시원국(始源國)으로 12의 제후국(諸侯國)이 이었음을 세계석학들도 말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들만이 아직도 이를 모르고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우리 역사 중원의 사로신라(斯盧新羅, 西新羅)와 김유신(金庾信)을 반도로 가져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데 ‘사로신라(斯盧新羅)는 반도에서 건너간 신라방(新羅坊)’이라고 왜곡 조작된 말을 서기 1883년 한마디 던져준 것을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지 않고서 일본이 던져준 미끼를 따랐기 때문이다.
김부식찬(金富軾撰)의 [삼국사(三國史)] 권46과 지나(支那;中國) 남제서(南齊書) 권58 등에 우리 역사가 반도(半島)가 아니고 대륙사(大陸史)로 기술하고 있으며 지나(支那;中國)의 십팔사(十八史)어디에도 우리 역사가 없는데도 반도사라 하고 있다.
삼국사는 반도사가 아닌 아시아사다
우리 역사는 최치원(崔致遠)의 상대상시중상(上大師侍中狀) 이후 800년간 숨겨져 왔다. 이 역사왜곡의 원조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으로 그는 김유신(金庾信)을 한반도로 가져 오기 위해 김유신의 조상(祖上) 소호(少昊) 금천씨도 잘라버렸다.
삼국사(三國史)는 아시아 대륙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후학을 위해 삼국사(三國史)의 내용 구성 등을 잠시 살펴보면 1146년 2월 4일 편찬한 삼국사(三國史)는 국내 및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편찬(編纂)기록이 적혀 있는 유일한 우리민족 정사(正史)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보아온 책을 보면, 천년의 역사서는 삼국사(三國史) 밖에 없다. 또한 편찬한 날자가 있는 것 역시 삼국사 외에 본 적이 없다. 이 김부식찬 삼국사는 1135년에 시작하여 1145년 편찬을 마치고 1146년 2월 4일 왕에게 진상한 날짜가 나오는 유일한 사서로 세계적 귀서(貴書)임에도 그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
삼국사는 고려중기 인종(17대)의 명(命)에 따라 김부식(金富軾)의 주도 하에 최산보(崔山甫), 이온문(李溫文), 허홍재(許洪材), 서안정(徐安貞), 박동계(朴東桂), 이황중(李黃中), 최우보(崔祐甫), 김영온(金永溫)등 8인의 참고와 김충효(金忠孝), 정습명(鄭襲明) 2인이 관구(管句;관리)등 11인이 편사관에 의해서 편찬된 정사서(正史書)이다.
[삼국사(三國史)]의 구성을 보면, 해모수(서기전 239년)부터 경순왕(서기936년)까지 기전체(紀傳體)로 우리 역사를 나타낸 김부식편찬(金富軾撰)인데 본기(本紀) 28권, 고구려(高句麗) 10권, 백제(百濟) 6권, 사로신라(斯盧新羅)와, 통일신라(統一新羅) 12권, 지(志) 9권, 표(表) 3권, 열전(列傳) 10권, 등 총5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독단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고기(古記)], [삼한고기(三韓古記)], [신라고사(新羅古史)], [구삼국사(舊三國史)]와 김대문(金大問)의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계림잡전(鷄林雜傳)] 및 최치원(崔致遠)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등의 우리나라 문헌과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진서(晉書)], [위서(魏書)], [송서(宋書)], [남북사(南北史)], [신당서(新唐書)], [구당서(舊唐書)] 및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지나(支那;中國)의 문헌도 참고해서 재구성한 역사서이다.
이 때 책임 편찬자인 김부식은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 각 부분의 머리말 부분, 논찬(論贊), 사료(史料)의 취사선택, 편목(編目)의 작성, 인물의 평가 등을 직접 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은 우리역사연구원자료 인용)
왜곡배경, 지명이동, 지도변조는 역사가 될 수 없다.
두 개의 신라도 심하게 왜곡돼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신라가 2개 있어서 자장법사가 당시 두개의 신라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과 정신대왕(淨神大王)의 두 신라를 다녀왔다. 서신라(斯盧新羅)는 제노(齊魯)와 오월(吳越)사이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신라가 지금의 안휘성(安徽省)에 위치해 있고, 서라벌(徐羅伐) 신라는 경주에 있었음도 모르고 있다.
우리 역사가 대륙사인 것을 숨기기 위해 일본은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도 반도에서 건너간 ‘신라방(新羅坊)’이라고 1883년 한마디 던져준 것을 이를 그대로 믿는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 역사연구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문제인 것이다.
‘신라방(新羅坊)’이 나온 배경을 보면, 일본은 구미제국의 개국요구가 1792년 러시아의 통산요구를 시작으로 영국이 1808년, 미국이 1837년 하였으나, 막부(幕府)는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답습하였는데 1854년 미국의 폐리제독(提督)이 내항하여 일미화친조약(가나가와조약(神奈川條約)과 1858년 일미수호조약(日美修好條約)을 체결한다.
이후 영국, 화란(네덜란드), 러시아, 프랑스와도 체결한다. 이를 안정5개국조약(安政五個國條約)이라 한다. 이후 일본은 개항하고 1868년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유럽에 유학시켜 군주권의 강대한 프로시아헌법을 모범으로 하는 것을 확신하고 귀국 후, 1882년 이노우에 고와시(井上 穀), 이도 미요지(伊東巳代治),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 등 4인이 헌법을 기초했는데 그 이전에 역사왜곡을 시작했다.
그것은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의 변조에 관해서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태평양전쟁사령부에 속한 사코이 가게노부(酒勾景信) 육군중위가 1882년부터 대륙에 첩자로 파견되어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碑)의 변조한 사실에서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광개토태왕비는 장수왕(長壽王)이 비(碑)를 세울 때보다 글자가 늘어나고 또 석회를 바르며 일본의 입맛에 맞게 글자를 심어 놓은 것은 이미 모두 밝혔다. 또 일본의 국립대학인 도쿄(東京)대학에서만도 42자를 변조한 것을 다 아는 사실이다.
이후 일본의 역사왜곡은 상상을 초월하여 지명(地名). 지도(地圖), 역사사실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고쳤는데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일본이 심어준 왜곡역사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황폐화시킨 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 왜곡의 몇개만 살펴보면, 기자(箕子)는 한반도에 와 본적도 없는데 기자(箕子)가 반도에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고 하고 있다. 기자(箕子)는 지나(支那;中國)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서 살았고 그의 묘는 몽성(夢城)에 있다. 한반도와 관련이 없다.
최치원(崔致遠)은 고구려인이라고 당서 권60(唐書卷60), 예문지(禮文誌)에 나와 있는데 신라사람으로 둔갑시키고 면화(棉花)는 신라가 당(唐)에 예물로 줬는데도 고려 때 문익점(文益漸)이 붓 속에 씨앗을 숨겨왔다 하고, 비단이 신라실크라는 것도 모르고 모두 왜곡했다.
글을 맺으며
우리의 위대함은 찬란한 역사가 있음에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 당(唐)나라는 고구려를 “해동삼국(海東三國)”이라 했고, 고구려가 존속하는 동안 지나(支那;中國)는 40개 이상 나라가 바뀌었다. 또 송(宋)나라는 고려(高麗)를“천자(天子)의 나라”라 하였는데도 이와 달리 우리 민족에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조성하는 우리역사는 뒤엎어놓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으면서 670년에야 일본(日本)이라는 국호가 타이완(臺灣)에서 출발한 것을 감추려 원래부터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는 양 꾸미고 있으나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상가야(上伽倻)역사를 심도 있게 연구하며 일본 역사의 상반부가 우리의 역사인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연구를 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학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만이 반도역사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연구를 제대로 아니하면서 우리역사를 폄하하는가! 세계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찬란한 우리 역사임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를 모르는 것은 한심하기 그지 없다.
이상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撰)「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윤진영 編集 「三國史」. 「우리역사(東夷傳」. (金東洛),‘천부경(天符經)과 문디 거시기’. 津田秀夫外 3人 ‘ひとりで學べる 日本史’.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外 많은 서적을 참조하고 본문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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