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야마토정권(太和政權)은 어디에 있었나

입력 2020-03-07 11:24:33

원문 링크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일본왕조의 발생이 일본열도에서 발생한 것처럼 말하며, 역사(歷史)를 꾸미고 일본의 조선(祖先)은 다카마가 하라(高天)로 부터 강림한 신()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양심적 학자들은 일본의 역사가 왜곡된 역사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조선과 대륙을 침략을 할 때도 일본사학자들은 굽히지 않고 이를 주장했다.
 
그 최초의 주목할 사실은 1916년경, 기다 사다기지(喜田貞吉)박사가 일본왕실(日本王室)의 조상이 부여(夫餘), 백제계(百濟系)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었다. 그러나 기다 사다기지(喜田貞吉)박사의 귀중한 문제제기는 당시 군국주의(軍國主義)의 대세는 깨뜨리지 못했다고, 교토대학(京都大學) 우에다 마사기(上田正昭)교수는 평하고 있다.
 
또한 제2차 대전 후 군국주의(軍國主義)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진 일본사학계(日本史學系)에서는 일본의 농경(農耕), 그 외의 모든 산업과 종교, 학문, 예술, 국가구성, 사회발전,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대변화가 조선인의 일본에 건너간 후라고 말하고 있다.
 
1948년 도쿄대(東京大)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교수는 일본국가의 기원(起源)과 정복왕조에서 부여, 고구려계의 도래인(渡來人) 진왕(辰王)등이 일본을 정복하고 일본왕실의 조상이 되었다는 기마민족국가설(騎馬民族國家說)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가 말하기를 기다 사다기지설(喜田貞吉說)의 현대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전기(前期) 고분문화시대(古墳文化時代) 일본인이 자주적인 입장에서 기마민족적 대륙북방계문화(大陸北方系文化)를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왜()에 침입해서 왜인(倭人)을 정복(征服), 지배(支配)한 어떤 유력한 기마민족이 있어 그들이 대륙북방계 문화복합체(文化複合體)를 이루고 와서 왜국(倭國)에 보급시켰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에가미(江上波夫)교수가 말하는 기마민족(騎馬民族)이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부여(夫餘), 고구려계통(高句麗系統), 즉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대륙의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가야(伽倻)를 거쳐 일본으로 가서 정복(征服)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부여는 예맥조선족으로서 지나(支那;中國)의 지배권에 들지 않고 독립해 있으면서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하면서 후에 고구려와 백제에 합쳐져 주로 고구려, 백제의 시원이 되고 일부는 가야를 거쳐 왜국으로 가서 일본국의 조상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에가미(江上波夫)교수는 자신의 학설이 기다 사다기지설(喜田貞吉說)의 재판이라 설명하면서도 일본이 가야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일본에 도래한 것처럼 어물거렸다.
 
오늘은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 얼마나 허구(虛構)인지, 그리고 <고사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온 야마토조정은 대륙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허구역사(虛構歷史) 바로 봐야
 
현재 일본은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는 외래의 천신이 일본에 내려와서 그곳에 원주(原住)하던 국신(國神)을 정복(征服), 지배(支配)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천신(天神)이 내려온 지방은 이즈모(出雲)와 츠쿠시(筑紫) 두 곳이며, 이즈모(出雲)에 내려온 것은 스사노 오미코토(素戔鳴尊)와 그 추종자들, 츠쿠시(筑紫)에 내려온 것은 니니기노 미코토(瓊瓊杵尊)와 그 추종자(追從者)들이었다고 하고 있다.
 
일본왕가계보(日本王家系譜)의 첫 조상은 니니기노 미코토(瓊瓊杵尊)170만년 전 하늘에서 왔다고 쓰여 있다. 니니기노 미코토(瓊瓊杵尊)는 거울, 곡옥(曲玉), 검의 삼종, 신기(神器)등을 가지고 다카마가하라(高天原)로 부터 히므가(日向)의 다카치오(高天穗) ()에 내려 왔다는 강림신화(降臨神話)를 지니고 있다. 필자도 70년대 초, 대학원 학우들과 다카마가하라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 곳이 신화에 나오는 곳이었다.
 
이 신화(神話)는 왜()가 양자강 이남에서 시작한 것을 숨기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천손(天孫), 니니기노 미코토(瓊瓊杵尊)가 하늘로 부터 내려온 규수(九州)의 다카치오(高天穗) 봉우리를 성지로 하나 고대에는 이 곳을 아라다(神田)라고 불렀다.
 
여기의 신()은 가야(伽倻)를 말하는 아라(安羅)이다. 혹은 구시후루타게(久士布流氣)라고도 불렀다. 이 구시후루타게(久士布流氣)는 가야(伽倻)의 시조(始祖), 김수로왕(金首露王)이 처음 내려온 구지봉(龜旨峰)이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후루는 한국어(韓國語)()’이란 뜻이 있으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구시후루(久志布流)소호리()’라고 되어 있다. ‘소호리는 백제의 수도(首都)를 소부리(所夫里)라 한 것 같이 왕도(王都)를 의미하는 한국어이기 때문에 일본어로는 통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당시 일본열도(日本列島)에는 왜()는 없고 대륙에 있었다.
 
최태영 선생은 가야(伽倻)의 후손으로 1928년 후쿠오카(福岡)지금의 기타큐슈(北九州)에서 출생한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가 쓴 <가락국(駕洛國)과 임나국(任那國)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의 책을 1992년 접하고 그를 초빙하여 19934월 서울, 부산, 인천에서 강연을 했는데 강영훈 총리도 들으러 왔을 정도로 대 성황을 이뤘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다른 관광은 하지 않고 자기 조상의 고향이라며 친구와 동행해서 아라가야 함안(咸安)을 세밀히 조사하고 갔다고 했다. 그는 선인(先人)의 대륙의 족적(足跡)을 걷는 회’, ‘일본기행 문학회장’,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연구회원이나 가야가 대륙에서의 왜국(倭國)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모르고 있었다.
 
진무(神武) 동정설(東征說) 대륙 거쳐서 갔다.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1996) 박사는 한국문화에 대한 심도(深度)있는 연구를 해온 미국의 학자이나 그는 진무(神武)의 동정설(東征說)과 일본의 건국설화(建國說話)에 대하여 일본 학자의 연구가 우리보다 진행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천신(天神)인 외래민족(外來民族), 특히 그 천손계(天孫系)가 일본에 건너간 행로와 그 주역(主役)을 만주(滿洲)와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에서 가야(伽倻), 임나(任那)를 거쳐서 일본열도의 기타큐슈(北九州), 츠쿠시(筑紫)를 지나 나라(奈良), 오사카(大阪), 교토(京都)로 온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일본의 학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가 기타큐슈(北九州)에서 기내(畿內)로 동정(東征) 할 때는 진무(神武)가 아니라 숭신(崇神)때라는 것이나 모두 잘못된 기록이다. 진무(神武)는 가공(架空)의 인물이다일본은 조선을 침략을 하면서 단군조선보다 먼저 일본이 있었다고 조작한 것이다.
 
일본은 우리 상고사를 없애면서 가증스럽게도 서기전660년 진무(神武)가 일본을 세웠다 하며 1000년이나 연대를 늘려놓는데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일본 와세다대학(早稻大學) 미스노 유(水野 祐)교수는 일본역사는978년을 조작(造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유령의 진무(神武)를 일본의 1대 왕이라고 하며 왜()의 영역(領域)이 대륙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왜()를 놔두고, 지명(地名)을 그대로 일본열도에 옮긴 것이다.
 
그리고 가야(伽倻)의 지명도 그대로 다 옮겨놓았다. 지금 일본열도(日本列島)에는 가야의 지명이 많은데 가야후손인 다카모토 마사토시(高本政俊)는 그의 저서<가락국(駕洛國)과 임나국(任那國)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일본인 성씨(姓氏)와 지명 및 일반명사(一般)名士)들이 가야와 관련된 것을 400개 이상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임나(任那)는 가야와 백제의 유민(流民)이 왜인(倭人)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 왜국(倭國)을 세우고 임나(任那)라는 일본식민지를 두었던 것인데 임나(任那)는 반도에 있었다고 왜곡하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는 허구란 것을 다 알고 있다.
 
전전(戰前)의 일본은 한 때 369, 혹은 568년에 멸망하였다는 약198년간 이라는 이 시기에 임나(任那)가 반도에 있었다고 역사를 왜곡했는데, 당시 백제와 고구려는 대륙에서 건국하고 반도까지도 지배하는 시기에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신진학자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살던 중원이 일본민족(日本民族)의 핵심(核心) 발상지(發祥地)이고 일본인의 조상 중에는 많은 도래인(渡來人)이 있으며 일본국왕가(王家)도 이주한 망명가와 이주한인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가시마 노부루(鹿島 昇)는 일본왕실 계보(系譜)는 가락국(駕洛國;伽倻)과 백제(百濟)의 두 왕통(王統)을 합하여 이룬 것임을 밝히고 있다. 즉 일본의 덴지왕(天智王)왕은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장(扶餘豊)이라고 주장하고 우리와 같은 동족임을 말하고 있다
 
일본왕가혈통, 숨길 수 없는 한국인이다
 
일본왕가(日本王家)의 혈통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을 바로 알려면 엔기시키(延喜式)라는 10세기 일본법령집에서 일본대궐 안에 모셔진 조상신 가운데 백제인을 뜻하는 한신(韓神) 2()와 신라인을 뜻하는 원신(圓神) 1()가 있다.
 
여기 기록된 한신(韓神) 2()와 원신(圓神) 1()는 일본서 가장높이 모시는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 뒤이어 궁내성에 모셔진 36() 일본조상신 가운데 앞자리에 위치한다. 원신(圓神)은 소노카미라고 부르고, 한신(韓神)은 가라카미라고 읽는다. 712년 일본가요를 선집(選集)한 고사기(古事記)에도 <고전신악가(古傳神樂歌)>에 한신(韓神)과 원신(圓神)을 제사지내며 부르는 축가(祝歌)가 실려 있다.
 
또한 제사를 지낼 때 제문(祭文)역시 우리말이다. 이들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인데 이를 숨기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지나(支那;中國)의 양자강 이남에 있을 때와 타이완(臺灣)때의 역사를 숨기려는 목적에서 인데 제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역사이다.
 
사사(佐佐克明)는 신라인 김다수(金多遂)가 텐무(天武)라고 하고 다니가와(谷川健一)는 왕가의 1대부터 14대 츄우아이(仲哀)까지는 모두 가공인물이고 15대 오진(應神)이 실존의 일왕(日王) 1()이며 오진(應神)의 혈통은 한국태생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일본왕가(日本王家)가 조선혈통에서 나온 것임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왕가의 첫 조상을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170만년전사람이라고 연대를 속였는데 이는 역사왜곡을 하는 나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을 역사라 하는 그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임에도 이를 역사라고 하고 있다.
 
그들은 왜곡할 것을 찾는 중 태평양전쟁의 사령부인 대본영(大本營)’의 밀정으로 지나(支那;中國)에 파견한 사코이 가게노부(酒勾景信)1884년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 탁본(拓本)을 가지고 돌아온 이래 제멋대로 조작하고 왜곡한 것을 알 수 있다.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는 서기 414년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이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위해서 건립한 것인데 일본은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신묘년(辛卯年)120년이나 끌어 올려 신공황후(神功皇后)의 허구 역사기록으로 꿰어 맞추었다.
 
신공황후(神功皇后)<일본서기(日本書紀)> 중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신비의 인물이고 수수께끼의 인물이며 환상의 여인으로 각색하고 있는데 그가 있지도 않고 시대도 맞지 않은 신라를 정벌에 관한 무용담에서 기인되는데 모두가 허구인 것이다.
 
신라(新羅)는 신공황후(神功皇后)에 의해 일본에 속국(屬國)이 된 적도 없거니와 신공황후(神功皇后)는 일본열도에 없었는데 일본은 기년(紀年)조작을 제멋대로 하며 음모론적(陰謀論的)인 시각으로 역사조작을 한 것에서도 일본의 역사왜곡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때 칠지도(七支刀)에서도 똑 같이 들어나고 있다. 일본 나라현(奈良縣) 천리시(天理市)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소장되어 있는 칠지도(七支刀)를 그들은 유지모(六支鉾)라고 ‘6개의 가지를 가진 칼이라는 이름의 신체(神體)였다. 그러나 칼에 새겨진 명문은 칠지도(七支刀)라고 되어있다.
 
이 칠지도(七支刀)는 근초고왕(近肖古王)이 왜에 하사(下賜)한 것인데 일본의 좀비 사학자들은 이를 헌납하였다고 하고 있으나, 당시 왜는 막강한 백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글을 맺으며
 
위에서 보듯 일본(日本)은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와 근초고왕(近肖古王)이 하사(下賜)한 칠지도(七支刀)와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있지도 않은 신라를 침공(侵攻)하여 속국(屬國)으로 삼았다는 기록이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다고 믿는 학자는 없다. 있다면 그는 역사를 연구하지 않은 좀비일 것이다.
 
일본은 법륭사(法隆寺)를 지운 신라사람 진하승(秦河勝)도 진시황(秦始皇)과 같은 진씨(秦氏)의 성씨(姓氏)라고 조작하나 진하승(秦河勝)의 성()은 진시황(秦始皇)과 같은 진씨(秦氏)라고 하나 진시황(秦始皇)의 성()은 영씨(嬴氏)이지 진씨(秦氏)가 아니다.
 
이같이 그들의 날조(捏造)와 역사왜곡(歷史歪曲)은 지나(支那;中國)와 함께 세계에 알려지고 있을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임에서 우리는 역사연구도 더 철저히 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의 분발이 요구되고 있는 오늘이다.
 
( 以上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황순종, ‘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윤진영 編集 우리역사(東夷傳. (金東洛),‘천부경(天符經)과 문디 거시기.’ 津田秀夫外 3ひとりでべる 日本史’.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 天皇家 七千年歷史’. 많은 書冊參照하고 本文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3
감동이에요
0
화나요
2
슬퍼요
3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