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東夷)·왜(倭)는 일본열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다

입력 2020-03-14 16: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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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일본은 1853~54년에 미국의 동인도함대사령관 페리(Perry)의 내항(來航)으로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에 이어 통상조약(通商條約)이 체결(締結)됨으로 200년 이상 이어온 막부체제(幕府體制)의 쇄국(鎖國)은 끝난다. 그러나 미·일통상조약(通商條約)은 일본에 불리한 통상조약이었고 이후 일본은 1968년 명치유신으로 새 원년이 된다.
 
당시 일본이 쇄국(鎖國)을 하고 있는 동안 영국은 1668년 명예혁명(名譽革命)이 성공하고, 미국은 1776에 독립을 달성했다. 이어 1789년에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시민혁명의 성공으로 구미(歐美)의 민주주의는 현저하게 성장하여 근대국가(近代國家)의 형태가 정비되는 시기였다.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구미는 봉건사회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로 나아갔다. 이러한 여러 나라들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서 해외시장 확대를 위해 점차 아시아로 진출해 가는 격동기(激動期)였다.
 
그런데 일본은 1853년 미·일화친조약과 통상조약 체결 후 1871년에는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려고 전권대사를 구미(歐美)에 파견하여 그 개정을 미국과 교섭을 하였으나 미국이 응하지 않아 조약개정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유신정부(維新政府)내에는 쇄국(鎖國)을 하고 있는 조선(朝鮮)을 쳐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사잉오 다카모리(西鄕隆盛)는 강경한 정한논자(征韓論者)이었다. 이 기류는 1875년에는 운양호(雲養號)사건을 일으킨다.
 
일본군함인 운양호가 조선의 영해인 강화도에 침입하여 강화도부근서 측량(測量)과 실전연습(實戰練習)을 실행하였다. 이에 대해서 조선으로부터 포격을 받자 영국의 신식대포를 장착한 운양호는 응사(應射)하여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한다.
 
이 조약은 일본에 치외법권(治外法權)을 인정하여 조선의 관세자주권(關稅自主權)을 인정않는 불평등조약이었다. 이 조약체결당시 우리대표는 국제적 시각과 국제법 무지가 드러나자 일본은 본격적인 조선침략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은 조선침략을 위해 역사날조도 준비하고 1883년에는 일본이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가 한반도에서 대륙에 진출한 신라방(新羅坊)’이었다고 했다. 오늘은 이것이 날조(捏造)된 허구임을 밝히려 한다.
 
·(中日)의 역사서(歷史書)에서 보는 왜()
 
지나(支那;中國)의 사기(史記)에서 삼국지(三國志)까지 왜(;)는 서화(西華)동쪽의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하였다(史記4, 漢書7, 28, 三國志 30). 또 구당서(舊唐書)도 왜()와 일본(日本)기록이 있고 우리 기마민족은 대륙을 지배한 기록도 많다.
 
또 남사(南史)까지 왜(;)의 위치는 양자강 이남에 있던 기록은 후한서(後漢書)뿐만 아니라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진서(晉書)등 지나(支那;中國) 18사와 25사에서도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에서도 우리가 서화(西華) 동쪽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음은 물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삼국시대 대륙을 지배한 기록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대륙의 중원(中原)을 정벌(征伐)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사실들을 너무 모르고 있다. 이것은 역사 무지로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동질성연구에 소홀했던 학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때부터 우리역사를 반도로 밀어내기 위한 것이 송(), ()등 한족(漢族)이 서화(西華)동쪽의 동이(東夷)기록을 숨기며 우리역사를 한반도로 밀어내는데 전력을 경주(傾注)한 당()을 막지 못한 것이다. 당시 강대(强大)한 국가인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660년과 680년에 멸망(滅亡)함으로 힘이 못 미친 것이 원인이었다.
 
지나(支那;中國)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가 대륙 중원(中原)을 정벌(征伐)하고 정복한 역사와 우리가 유라시아를 지배(支配)한 것을 숨기어 왔다. 그들의 휘치필법(諱恥筆法)은 세계가 다 아는 것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
 
춘추좌전을 보면(春秋左傳, 卷之三十九, 昭公六) 공자(孔子)28세의 청년으로 담자(郯子) 선생을 찾아가 관제(官制)를 배우고 갔고 공자(孔子) 당시에 우리는 군주제도와 군주(君主)를 섬기는 문물(文物)이 있었으나 지나(支那;中國)에는 군주가 없었다.
 
지나(支那;中國)의 역사 첫 머리에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라 기록했다. 이것은 한족(韓族)에게서 배운 것을 수입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베낀 것이라 하였다. 천자(天子), 천황(天皇), 황제(黃帝)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비롯한 모든 문물제도를 창조한 자()가 한민족이라는 것이 충분히 입증(立證)된다.
 
또한 역사를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이 위조하며 한무제가 우리민족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설치하였다는 지나(支那;中國)역사의 위조로 우리를 지배하였다고 그대로 번역하여 한무제가 우리민족을 지배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무제가 우리민족을 지배한 일이 없음은 지나(支那;中國) 역사에 명기(明記)되어 있어 역사왜곡은 통하지 않는다.
 
삼국시대 왜(;日本)는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없었다. 양자강 이남에서 타이완(臺灣)을 거쳐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건너간 사실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없는 것이다.
 
(;日本)는 대륙에서 일본열도로 갔다
 
이는 상고(上古)시대와, 고대(古代)의 조선국호(朝鮮國號)를 없애고 우리민족이 대륙에 있었던 은산(銀山), 석문(石門), 서화(西華), 덕안(德安)동쪽이 동이(東夷)의 무대(舞臺)이였기에 그들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조선, 배달국, 환국은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의 서화(西華)동쪽 동이역사를 대륙에서 밀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족(漢族)의 의도는 중원(中原)에서 자기들을 지배한 대륙사를 왜곡하여 대륙역사를 한반도역사라 하여 조선조(朝鮮朝) 500년간 조선 학자들이 왜곡 역사를 배우게 하는데 성공(?) 하였다고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이를 조선역사라 하여 보급했다.
 
이 역시 자아반성 없이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조작되고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연구를 하지 않음으로 일제의 의도가 성공하게 한 것이다. 그러자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은 날조역사에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가 9세기 이전의 동이민족사(東夷民族史)를 뒤엎어지게 했다. 참으로 한심하다. ·(中日)의 역사왜곡을 우리 학자가 제대로 밝혔다면 오늘과 같은 역사말살(歷史抹殺)의 왜곡은 피할 수 있었다. (), (), (), ()으로 계승된 한족(漢族)들의 우리 동이민족사(東夷民族史)에 대한 왜곡의 극치(極致)는 왜()역사였던 것이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왜, , 위로 불리러지는 왜(;)9세기 이전의 왜(;古日本)의 국호였는데 당()나라가 670년에 국호를 일본으로 인정한 곳이 타이완(臺灣)이다. ()나라 때인 1403년에 일본열도에 내려준 국호(國號)가 오늘의 일본(日本)이다.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는 대륙을 지배한 우리민족의 역사를 한반도(韓半島)에 가져다 놓고 우리민족이 반도에 있었던 것처럼 축소지향(縮小指向)의 역사로 만들었으나 일본제국주의 학자들은 자기들 역사는 고무줄 같이 1천년이나 늘렸다고 한다.
 
그러나 자학식민사관자들은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한국사를 신주(神主)같이 모시고 역사를 제대로 연구도 하지 않으며 왜곡역사만을 가르치고 있는데 지나(支那;中國)와 일본학자는 이미14~15세기 이전에 우리역사가 왜곡되어 있음을 간파(看破)하고 있다.
 
한편 왜()는 서기전 57~1279년의 역사는 대륙의 역사로 일본(日本)의 국호(國號)도 서기670년 타이완(臺灣)에 있을 때 당()나라로 부터 인정받은 후부터였고, 일본열도(東日本)의 일본호칭(日本呼稱)은 이미 살펴본 대로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명()과 국교(國交)를 맺으며 1403년 일본국왕의 책봉(冊封)을 받은 후 부터이다.
 
지나(支那) 정사(正史)기록의 왜(;日本)도 대륙이다
 
일본과 우리나라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단군 이전역사를 삭제해 환국과 신시시대 배달나라를 전설화하며 단군을 시조로 하는 왜곡역사에 익숙해져서 삼국시대 역사가 대륙사인 것을 믿지 않으려하지만 우리 대륙사를 반도로 옮길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에 의해 이런 왜곡사를 교과서에서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까지 밑바닥에서 헤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이 과연 한국인인지 이방인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무제(漢武帝·서기전142~86)때부터 당태종(唐太宗)때까지 발행된 한족(漢族)의 모든 정사(正史)에서 500년 이전의 왜(;)는 양자강 이남인 회계(會稽), 회계야현(會稽冶縣;台州), 이주(夷洲;臺灣), 담이(儋耳;南越), 주애(朱崖) 등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왜 이를 숨기는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혀야 만이 바른 역사가 아닌가!
 
일본역사는 서기전 660년에 시작되어 2600년이 넘는다고 허구의 역사를 말한다. 그 조작된 역사를 보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자는 모두 속아 넘아갈 정도이다.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왜사(倭史)는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역사가 아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요크셔 역사가 뉴욕사()가 될 수 없다. 물론 요크셔인들이 뉴요크셔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나, 요크셔 역사와 뉴요크셔 역사는 달리 기록된다.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왜인(倭人)들의 후예(後裔)가 새로운 개척지에서 역사를 시작한다고 대륙에 있었던 동이전(東夷傳), 왜사(倭史)를 숨기고 일본열도(日本列島)에만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것은 기만(欺瞞)이지, 역사라 부를 수 없다.
 
글을 맺으며
 
신라방(新羅坊)은 조선을 침략하고 총독부를 두어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작한 것이 아니고 조선 침략 이전부터 원대한 조선침략 기획하에 이순신(李舜臣)장군에 관한 연구도 200년간 연구했고 신라방도 1883년 이전부터 준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타민족에게 패배를 삭제하고 승리로 위조했던 수법이 후대 중국사는 공자(孔子)수법을 본받아 위조를 기본으로 중국인 중심의 역사기술을 정립하는데 이는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틀은 한족(漢族)과 중원 나라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긴다(爲漢中國諱恥) 한족과 중원의 나라는 높이고 외국은 깎아내린다(矜炒而陋夷狄) 한족에 관한 국내사는 과대하게 하고 남의 역사는 작게 쓴다(祥內略外)는 원칙으로 우리역사를 철두철미하게 깎아내렸다.
 
이런 허구와 사기, 기만으로 꾸며진 사실을 조작하고, 날조하여 왜곡시킨 것을 역사라고 하는 것은 사기꾼과 기만자만이 할 수 있는 작태이다. ·일이 나서서 역사왜곡을 하는 것을 보면 중일의 역사가 날조역사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 같다.
여기서 일본이 조작한 제1대에서 14대의 조작한 일왕들은 아래에 열거된 유령(幽靈)들이다.
 
1대 진무(神武)를 비롯해서 2대 스이제이(綏靖), 3대 안네이(安寧), 4대 이토쿠(懿德), 5대 코우쇼우(孝昭), 6대 코우안(孝安), 7대 코우레이(孝靈), 8대 코우겐(孝元), 9대 카이카(開化), 10대 스진(崇神), 11대 스이닌(垂仁), 12대 케이코우(景行), 13대 세이무(成務), 14대 츄우아이(仲哀)라고 조작을 하고 있으나, 일본학자도 우리나라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는 이에 따르지 않는다. 자학식민사관자만이 이를 따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뒤엎어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지금까지 중·(中日)이 조작한 
역사를 따랐던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나 온 국민이 다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 以上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황순종, ‘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윤진영 編集 우리역사(東夷傳. (金東洛),‘천부경(天符經)과 문디 거시기.’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津田秀夫外 3, ‘ひとりでべる 日本史’.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田邊昭三, ‘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大王から天皇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成立’. 貝塚茂樹, ‘中國歷史 上, , 다수의 書冊參照하고 本文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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