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역사 바로 알아야 바른 역사 세울 수 있다.

입력 2020-04-11 21: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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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역사의 기사를 쓸 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종합적인 검토 하에 가감(加減) 없이 정립해야 하고 허구의 사실을 현대인의 기준으로 취사선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허구 역사는 역사라 말할 수 없다.
 
역사를 배우는 경우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현재의 입장으로부터 미래를 간파(看破)하기 위해서 현재에 투영(投影)된 과거를 면밀히 조사하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역사는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서 이 요청에 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이나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의 수득(修得)과 역사사상(歷史事象) 상호간의 관련성을 언제나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환언(換言)하면 기본적 사항이나 중요사항을 늘 관련성과 발전과정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생각하여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도 이해해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관련과는 상관없이 왜곡역사를 견지하는 분들에게 일본역사를 논하는데도 최소한 제대로 쓰려면 지나(支那;中國)의 25사(史), 18사(史)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집필해주시기를 바랬는데 아직도 편협적인 변함없는 글을 보며 붓을 들게 된다. 
 
그것은 4세기의 기록을 8세기에 와서 쓰여진 일본의 역사서(歷史書)라고 하는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토대로 왜곡역사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내용이기에 참으로 그대로 볼 수 없는 내용이기에 이미 쓴 것을 다시 반추하게 된다.
 
필자도 한때 이런 조작된 거짓역사의 내용을 아무런 부담 없이 받아들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는 왜곡된 허구역사라는 것을 알기에 반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은 일본이 왜곡한 역사에 익숙해서인지 모르나 이런 글이 옳다고 보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국민도 역사를 제대로 바로 보고 찾아 가기를 바라진다. 
 
일본은 일반 국민들도 고대사를 100만명 가까운 90만명 이상이 연구하며 일본 역사서(歷史書)라고 하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허구성을 알고 있다. 
 
더구나 일본학자들은 명치시대는 군부에 할 수 없이 따랐으나 전후 사학계는 큰 변화를 했다. 그것은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일본에 관한 지나(支那;中國)의 기록은 연대를 바꿔 5세기의 기록이라고 하고, 당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숨긴다.
 
오늘은 동이(東夷)의 역사와 그 영역의 경계가 어디이며 당시 상황은 어떠한지 살피고 <일본서기>는 거의가 허구(虛構)라는 것과 그 허구의 왜곡사(歪曲史)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동이 역사 속의 왜국(倭國)이 대륙인 것 숨길 수 없다 
 
지나(支那;中國)의 25사(史)에 쓰여진 동이(東夷)의 영역은 서화(西華)중심으로 북으로 은산(銀山), 고대인성(古大人城), 신성(新城), 태원(太原), 진성(晉城), 고평(考平), 남으로 항성(項城), 덕안(德安), 남월(南越)에서 별도한성(현재 평양)과 과부(寡婦)의 아들인 무강왕(武康王;益山)까지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밝히고자 한다.)
 
또한 지나(支那;中國) 25사(史)는 고구려, 백제, 가라(加羅), 서신라;(斯盧新羅), 왜(倭)는 항성(項城) 동쪽에 있었다고 하고, 한성(漢城;現平壤)과 무강왕(武康王) 기록이 있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서신라(斯盧新羅), 가라(加羅;伽倻), 왜(倭)는 항성(項城) 동쪽에 있으며 고구려는 섭라(涉羅), 태원(太原)에서 반도까지라 하고 있다. 
 
당시 반도에는 칸(干)에서 신라로 이름을 변경시킨 또 하나의 신라가 있었다고 하고 있다. 302년~503년 사이의 반도는 고구려칸(干)(高句麗干)이었는데 경주에서는 거서간(居西干) 또는 마립간(麻立干)으로 불렀다.
 
그리고 가라(加羅;伽倻)는 왜(倭)와 함께 양자강 유역의 국가였다. 사서에서는 왜(倭) 항목에서 시작하고 있다. 송서동이왜(宋書東夷倭) 항목의 내용에 백제, 신라, 임나(任那) 진한(秦韓), 모한(慕韓) 속에 있으며 남제서(南齊書)에만 가라 항목이 있을 뿐이다.
 
왜(倭)에 가라(加羅;伽倻)가 포함된 것은 송서왜(宋書倭), 남제서왜(南齊書倭), 양서왜(梁書倭), 남사왜(南史倭)에 있으니 왜(倭)와 가라(加羅;伽倻)는 같은 유역에 있었다. 
 
이미 다루어서 아는 바와 같이 대륙에서의 왜인(倭人), 왜국(倭國)에서 타이완(臺灣)의 일본(日本)과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일본은 그 지역이 각기 다른데 일본열도에서 자생(自生)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 역사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대륙에서 왜(倭), 타이완(臺灣)에서 일본이라는 국호를 당(唐)으로부터 인정받은 고일본(古日本)은 670년 왜(倭)가 국호를 변경하였고 9세기(882년)까지 사로신라(斯盧新羅)와 교류해 왔는데 고일본(古日本)은 현 일본열도와 다른 타이완(臺灣)인 것이다.
 
신일본(新日本)의 역사는 1403년부터이고, 그 이전은 야마토(大和)→가마쿠라(鎌倉) 전국대를 거쳐 왔다고 하는데 고일본(古日本)의 역사를 정립하려면 300년 이전 왜(倭)의 위치를 확인시켜줄 수밖에 없기에 다시 그 사실을 쓰게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삼국지(三國志)에서는 왜(倭)의 위치는 대방(帶方)의 동남쪽에 있으며 (在會稽東治之東), 여담이두애(與儋耳朱崖)의 기록이 있다. 또 (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文身以避蛟龍之害今倭水人), 왜(倭)여왕 히미코(卑彌呼)와 구노국(狗奴國)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명으로 대방(帶方), 회계(會稽), 담이(儋耳), 주애(朱崖)가 있는데 현재 회계(會稽)는 절강성에 담이(儋耳)는 해남도(海南島)에 있다. 4개의 지명 중 2개가 양자강 이남에 있다. 삼국지 이전의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도 양자강 이남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서(漢書) 28에서 나랑해중유위인(樂浪海中有倭人)의 가록이 있고, 한서(漢書)7에 ‘罷儋耳眞番郡, 儋耳本南越地, 眞番本朝鮮地’라는 기록이 있으니 담이(儋耳)는 남월(南越)에 있어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왜(倭)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3세기~639년 사이의 왜(倭;衛)의 위치는 양자강 이남의 국가이지 현재의 일본열도지역의 국가로는 볼 수 없는 국가였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4세기의 일을 400년 후인 8세기에 연표도 없이 쓴 것이어서 주의해서 검토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일본에서도 이 책이 얼마나 조작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이것이 실체가 없는 사실을 쓰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야마토(大和) 조정(朝廷)의 출발은 5세기부터이며 지나(支那;中國)의 서적들에는 3세기~5세기 기록이 없다. 당시 이러한 기록이 없음을 기화로 허구의 거짓역사가 <일본서기(日本書紀)>인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허구(虛構)투성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일본학자들은 고고학(考古學), 민족학(民族學), 민속학(民俗學), 종교학(宗敎學), 문헌사학(文獻史學)으로 연구한 결과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잘못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결론(結論)을 내고 있다.
 
그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상의 기년(紀年)은 270~310년이고 일본학자들의 주장과 다른 오진(應神)의 기년(紀年)은 363~394년인데 야마토국가(大和國家)가 397년 건국했다고 하는 이가 있는데 이때는 오진(應神)이 이 세상 사람도 아닐텐데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허구 역사를 가지고 말할 것인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한·일 양국의 학자라면 이런 허구 역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납득 할 수 없는 신삼국사(新三國史)를 말하는 것은 조작역사를 다시 만드는 일이다. 동이전(東夷傳)에 관한 기록 잘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지나(支那;中國) 25사(史)는 고구려, 백제, 가라(加羅), 서신라;(斯盧新羅), 왜(倭)는 항성(項城) 동쪽에 있었다고 하고 한성(漢城;현 평양(平壤))과 무강왕(武康王) 기록이 있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백제, 서신라;(斯盧新羅), 가라, 왜(倭)는 항성(項城) 동쪽에 있으며 고구려는 섭라(涉羅), 태원(太原)에서 반도까지라 하고 있다. 
 
타이완(臺灣)에서 일본이라는 국호를 당(唐)으로부터 인정받은 고일본(古日本)은 670년 왜(倭)가 국호를 변경하였는데 9세기(882년)까지 사로신라(斯盧新羅)와 교류를 해왔다. 고일본(古日本)은 현재의 위치와 다른 타이완(臺灣)인 것이다.
 
신일본(新日本)의 역사는 1403년부터이고 그 이전은 야마토(大和)→가마쿠라(鎌倉) 전국시대를 거쳐 왔다고 하는데 고일본(古日本)의 역사를 정립(定立)하려면 300년 이전 왜(倭)의 위치를 확인시켜줄 수밖에 없다. 
 
이는 삼국지(三國志)에서는 왜(倭)의 위치는 대방(帶方)의 동남쪽에 있으며 (在會稽東治之東), 여담이두애(與儋耳朱崖)의 기록이 있다. 또 하후소강지자봉어회계계단발문신이피교룡지해금위수인(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文身以避蛟龍之害今倭水)人), 왜여왕비미미호여구노국(倭女王卑彌呼狗奴國) 등이 기록 되어 있다. 
 
지명으로 대방(帶方), 회계(會稽), 담이(儋耳), 주애(朱崖)가 있는데 현재 회계(會稽)는 절강성에 담이(儋耳)는 해남도(海南島)에 있다. 4개의 지명 중 2개가 양자강 이남에 있다. 삼국지 이전의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도 양자강 이남에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한서(漢書) 28에서 나랑해중유위인(樂浪海中有倭人)의 가록이 있고, 한서(漢書)7 에서 파담이진번군, 담이본남월지, 진번본조선지(罷儋耳眞番郡, 儋耳本南越地, 진번眞番本朝鮮地)라는 기록이 있으니 담이(儋耳)는 남월(南越)에 있음을 분명히 있어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왜(倭)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3세기~639년 사이의 왜(倭;衛)의 위치는 양자강 이남의 국가(國家)이지, 현재 일본열도지역의 국가로는 볼 수 없는 국가였다는 것이 입증(立證)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숨기기 위해 삼국지 한서(漢書) 이외에도 송(宋;420~479) (宋;420~479)때 쓰여진 후한서(後漢書), 당(唐;627~649)때 쓰여진 남사(南史)도 모두 왜(倭) 위치가 양자강 이남임을 말한다. 
 
그것은 야마토(大和) 조정(朝廷)의 시대는 5세기 즉 왜(倭)의 5왕(讚;仁德, 珍, 濟, 興, 武;雄略)의 야마토(大和) 조정(朝廷)의 시대다. 이때 3~5세기의 기록은 지나(支那;中國)의 사서(史書)에도 지워 없으니 역사를 조작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가장 오랜 기사(記事)는 신화(神話)이고, 다음이 진무(神武) 동정설화(東征說話)로, 이것도 쇼독크 다이시(聖德太子) 시대도 이미 지난 7세기에 만들어진 설화(說話)로 사실(史實)이라 생각 할 수 없는 것들로 거의 허구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또 진무(神武)의 뒤로 2대에서 9대까지 가공의 왕이기에 전해오는 이야기도 없어서 2대 수이제이(綏靖)~9대의 카이카(開化)까지의 이야기는 전혀 쓰여 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천황(天皇)이라고 하는 이름 또는 묘(墓)가 어디에 있다고만 하고왕 으로서의 사적(事蹟)이라는 것은 거의 쓰여 있지 않기 때문에 옛부터 이를 가공(架空)의 천황이라 생각해서 결사8대(缺史8代)라 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전에는 진무(神武)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전후(戰後) 결사8대(缺史8代)도 허구라 하고 있다.
 
그리고 진무(神武), 수이제이(綏靖)라는 왕의 이름은 한자이기에 한풍시호(漢風諡號)라 한다. 결사8대(缺史8代)의 시호(諡號)도 ‘일본서기(日本書紀)’ 편집과정에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8대천황이 있다면 이러한 조작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진무(神武)로부터 31대 성무왕(聖武王;724~749)까지는 지나(支那;中國)의 한풍시호(漢風諡號)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시호(諡號)의 시(諡)는 사후(死後)에 만든 이름이다. 즉, 나중에 증호(贈號)라 하기도 하고 추호(追號)라고도 말하고 있다.
 
사실은 진무왕(神武)로부터 31대 성무왕(聖武王)까지는 한풍시호(漢風諡號)도 없었다. 천평보자년(天平寶字年)이라고도 하는데 나라시대(奈羅時代;710~784)의 중엽(中葉), 32대 코우켄(孝謙王;749~758)의 시대에 오우미노미후네(淡海三船)라는 사람이 이때까지의 왕의 이름을 만들었다고 일본의 천리대학(天理大學)의 ‘고대사교실(古代史敎室)’의 책자에서도 연구결과를 내고 있음도 본다.(古代史敎室 22面 參考).
 
그런데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 할 분이 ‘오진(應神)이 397년에 야마토국가(大和國家)국가가 건국하였다고 하며 신삼국사(新三國史)를 연구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야마토국가(大和國家)는 혈연집단(血緣集團)을 중핵(中核)으로 한 호족(豪族)의 정치집단(政治集團)인데 이 시대는 일본열도가 아니고 대륙에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지나(支那;中國)는 남북조(南北朝)라 해서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는데 주로 남조의 송(宋)이나 양(梁)에 사신을 파견했다고 하는 왜(倭)의 기사(記事)도 나온다.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일본은 1403년부터로 봐야한다.
 
글을 맺으며
 
한·중·일의 사서를 연구해온 양심적인 학자들 중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천황은 진무(神武)로부터 시작해서 개화천황(開化天皇)까지 실재했다고 말하는 사학자는 일본에서도 거의 없다.
 
그 한 예를 들면, 강원신궁(橿原神宮) 가까운 곳에 있는 진무덴노능(神武天皇陵)은 공적기관(公的機關)인 나라현교육위원회(奈良縣敎育委員會)가 발행한 [나라현유적지도(奈良縣遺跡地圖)] 제2분책개정(第2分冊改訂;1984年)에도 고적(古跡)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가공의 역사인 것을 일본사학자와 국민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명치시대(明治時代)는 진무덴노능(神武天皇陵) 주변에 집락(集落)이 있어 대정시대(大正時代)에 강제적으로 퇴거시킨 역사적 사실이 있어 진무덴노능(神武天皇陵)과 강원신궁(橿原神宮)의 조영(造營)은 극히 밀접한 관계 하에 진행되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일본이 왜곡한 우리역사를 일제강점기 때와 다름없이 사학자도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국민도 관심도 연구도 하지 않음으로 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역사를 그대로 여전히 답습하고 있으면서도 그 수치스러움을 모르고 있다.
 
우리 역사는 대륙사임에도 반도역사라 하며 우리가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대륙을 호령하며 대륙을 지배한 것을 아니라면서 반도역사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비웃음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르는 국민이 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은 우리 고대사(古代史)를 기본으로 지나(支那;中國) 역사와 일본사(日本史)를 정립해가며 우리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했다. 그들이 엮어놓은 이 허구의 역사를 사실인 양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일본이 우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왕권의 구체적인 양상(樣相), 내용(內容), 구조(構造), 형식(形式)을 문물(文物)이나 신화전승(神話傳承)과 문헌(文獻)을 우리에게서 배우며 없는 역사(歷史)도 있었던 것 같이 조작(造作), 날조(捏造), 왜곡(歪曲)을 하는데도 이에 동조한다는 것은 문제이다. 
 
대륙에서 지나(支那;中國)는 우리를 동이(東夷)라고 하는데 우리는 동이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그 영역이 어디이며 경계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에 의해 역사가 뒤엎어진 배경도 모르고 있다.
 
지나(支那;中國) 동이전(東夷傳)의 동이(東夷) 위치는 요(遼)의 동쪽을 중심으로 요(遼)의 서쪽 진출로 인한 장안세력(長安勢力)과 분쟁의 기록들인 것이고, 왜(倭)와 왜인(倭人)의 기록은 4~7세기 양자강 이남과 타이완(臺灣) 기록인 것을 구별해서 봐야 한다.
 
일본은 지나(支那;中國) 25사 동이전에 있는 왜(倭)가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모든 교과서에서 야마토국가(大和國家)의 성립도 4~7세기로 보고 있으나, 이 당시 왜(倭)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이는 오늘의 일본역사가 조작된 역사임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의 분별없는 행태는 국가민족의 비전도 없는 굴욕적인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심는 결과를 낳아서 가치관의 변질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상은 吳在成, ’九黎系 倭-日本史‘.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撰)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황순종, ‘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윤진영 編集 「우리역사(東夷傳」. (金東洛),‘천부경(天符經)과 문디 거시기.’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津田秀夫外 3人, ‘ひとりで學べる 日本史’.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 編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田正昭. 外 5人 編著, ‘謎の五世紀’.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上, 中, 下’外 多數의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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