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은 우리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가둬 놓으려 한 것은 고대부터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륙에서 지나와 왜(倭;日本)를 지배한 것을 숨기고 자국의 역사정립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역사를 없는 것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지나와 일본의 역사를 조작하면서 우리의 영역(領域)을 동으로, 동으로, 반도까지 옮기고 진(秦), 한(漢), 당(唐)은 물론 송(宋), 명(明), 청(淸)때에도 계속 지도(地圖)와 지명(地名)을 반도로 옮기며 왜곡이 가해져서 우리역사는 말 할 수없이 조작되고 날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작태는 우리의 사서(史書)뿐만 아니라 자기나라에서 편찬된 서적마저 감추거나 불을 태워서 없애는 분서(焚書)는 물론 지도와 지명을 현재 한반도로 거침없이 옮기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해 온 것을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살아남은 사서(史書)는 우리나라 사서로는 [삼국사(三國史)]가 남아 있는데 이마저도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연구를 소홀히 해왔다. 필자가 보기에는 [삼국사(三國史)]를 연구한 학자로는 오재성 우리역사연구원 원장만한 학자가 없고, 그의 제자들 만인 것 같이 느낄 정도로 극히 소수로 알고 있다.
이 지구상에 천년이 넘는 역사책은 우리 [삼국사(三國史)]밖에 없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함에도 국내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조선조시대 이규보(李奎報)와 19세기 단재(丹齋)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까지도 연구가 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삼국사(三國史)]의 가치는 인류역사의 역사연구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국보제322-1, 2로 지정되고 있는데 [삼국사(三國史)]보다도 <삼국사기(三國史記)>로 더 알려지고 있는 것은 잘못으로 서명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삼국사(三國史)]의 중요성과 어찌해서 지나와 일본이 우리의 대륙의 역사를 한반도(韓半島)의 역사로 왜곡하려는지? 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사(三國史)]를 왜 <삼국사기(三國史記)>라 하는가?
국보(國寶) 제322호로 지정된 [삼국사(三國史)]는 50권으로 되어있는데 일본의 샥크오 슌죠(釋尾春芿;Shakuo Shunjo)가 1909년 서명(書名)을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해 출판하고, 같은 일본인인 쓰보이 구마소(坪井九馬三)가 ‘삼국사기’라는 서명으로 출판된 후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한국사학계의 수치로 잘못된 것이다.
이제는 [고려사(高麗史)] 권17에 나와 있는 국보(國寶)의 표지명이 일치함으로 [삼국사(三國史)]로 복원해야 한다. 혹자(或者)는 왕응린(王應麟)의 <옥해>라는 책에 ‘삼국사기’라는 책이 있다고 하였으나 연속된 행간에 서로 다른 서명인 순희삼국사기(淳熙三國史記), 해동삼국사기(海東三國史記)라는 3가지가 존재한데 문제가 된다.
이 [삼국사(三國史)]는 천년을 기록한 유일한 사서(史書)이고, 편찬일자가 분명한 사서, 유라시아 천년의 자연현상을 기록한 사서, 고려 이전을 기록한 유일한 사서인데 그 서명을 바로 하지 못한다면 우리역사를 바로 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나라 원로이시고 [민족사 바로 찾기 국민회의] 의장이신 박oo 교수는 우리역사연구원의 오재성선생과의 대화에서 왜(倭;卑彌國;狗奴國)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난 후 일본학회참석차 갔다가 일본학자에게 말을 하니 일본학자는 책까지 보여주며 이를 밝혀줘서 그제서야 왜(倭;倭人;倭國)가 대륙에 있었다고 인정했다.
지금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허구투성의 삼류소설 같은 것을 보며 역사라 하는 것은 너무나 한심한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학자들은 삼국사를 한반도에 맞추려는 전근대적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냉정한 자세로 [삼국사(三國史)]50권을 지나의 남제서(南齊書)권58과 대조해보면 우리역사가 대륙의 역사임을 바로 알 수 있는데도 연구를 하지 않고 학자라 하면서도 지나와 일본의 일반 사람들이 아는 기록을 외면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도 일본의 침략의 잔재를 벗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는데 이것은 일제의 영향에서 지금은 벗어나야 한다. 김부식 찬(撰)[삼국사(三國史)]는 영조(英祖)이전에는 [삼국사(三國史)]라 하고 1909년 이후는 <삼국사기(三國史記)>라 하여 2종류의 역사서가 있어서 김부식찬(撰)[삼국사(三國史)]라는 표지를 잃었다. 이를 복원해야 한다.
샥크오 슌죠(釋尾春芿;Shakuo Shunjo)가 1909년 서명을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해 신활자로 출판했는데 또 1913년 쓰보이 구마소(坪井九馬三)가 표지를 역시 [삼국사기]로 발행했고 1914년 최남선도 [삼국사기]로 출판하는 우(愚)를 범했다.
지금까지도 표지제목을 ‘삼국사기’라고 표기한 이후 지금까지 회복 못하고 있으나 바로 [삼국사(三國史)]로 복본(複本)과 함께 [삼국사(三國史)]연구를 제대로 해 왜곡 되고 있는 잘못역사를 일소해야 선조에 대한 도리를 다 하는 것이다.
역사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자는 지나의 왕응린(王應麟)지었다는 송(宋)나라 때, 백과사전(百科事典)형태의 <옥해>에 나오는 ‘삼국사(三國史)’라는 서명(書名) 때문에 일부 학자가 주장하는 자가 있으나 송(宋)나라 명종4(1174~1189)때인 이때는 [삼국사(三國史)]가 편찬 된지 이미 29년 후인데 혼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삼국사(三國史)]는 아시아 역사의 기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사(三國史)]가 한반도안의 역사로 알고들 있으나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삼국사(三國史)]는 아시아 역사인데, 만주의 삼국시대 기록으로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이는 이미 살펴본 대로 [삼국사]권(卷)46에서 구체적으로 남(南)으로 오월(吳越), 북(北)으로 유연제로(幽然齊魯)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위치는 낙양(洛陽)동쪽의 남북에 있었던 것인데도 김일연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하면서 지나(支那;中國) 동이전을 인용해 만주와 반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이를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 덮고 한사군(漢四郡)으로 덮고 삼한(三韓)으로 덮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나(支那;中國)의 사기(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지나 동이전(東夷傳)은 남제서(南齊書)권58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대륙의 역사임에도 낙랑국(樂浪國)을 덮기 위해 고조선(古朝鮮) 이전을 잘라내고, 김유신 조상인, 소호금천씨를 잘라냈다. 참으로 한심하고 비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三國史)] 권46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가 남으로 오월, 북으로 유연제로를 다물(多勿)한 곳에서 마립간(麻立干)지역까지로 즉, 오월-유연제로와 만주, 한반도까지 [삼국사]의 범위이다.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이를 외면 한다.
또한 고구려 평양성과 동황성, 백제의 거발성과 웅진, 신라의 금성을 낙랑국(樂浪國) 지역에 맞추기 위해 낙랑국(樂浪國)을 지우고 있다. 또한 위의 삼국의 수도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는 [삼국사(三國史)]와 동이전(東夷傳)에서 말하고 있으나 수도에 필요충분조건이 가능한 지역은 오월(吳越)과 유연제로(幽然齊魯)지역인 것이다.
또한 만주와 한반도를 500년간 고구려가 통치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삼국사(三國史)] 98%가 한반도 기록이 없고 95%가 오월(吳越)과 유연제로(幽然齊魯)지역이었다.
이곳이 19세기에 와서 손문(孫文)이 중화민국을 세우면서 지나(支那;中國) 땅이 되었는데 명(明)과 청(淸)나라가 다스렸으나 원래는 고구려, 백제가 통치한 땅인 것이다.
지금도 고구려 평양성 동쪽에 있던 돈황산과 대산(泰山)사이에 있으며 신라의 금성은 팔공산(八空山)이 있는 지역으로 동명(東明)과 덕안(德安)의 동쪽에 있다. 이를 모두 한반도에 맞춘 것이 삼국유사(三國遺事)부터임을 제대로 바로 알아야 한다.
일연과 신채호는 우리역사를 반도사로 했다
우리는 지나와 일본의 왜곡을 말하기 이전에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음으로 오늘의 역사가 뒤엎어지는 비극을 낳게 했다. 그것은 일연부터 단재(丹齋)신채호까지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맞추어 왔다.
즉, 일연(一)然)은 [삼국사] 권46의 내용을 외면하고 신채호(申采浩)는 아(我)와 비아(非我)를 구별하며 조선민족과 여진족(女眞族)이 갈라진 것을 모른다고 했으나, 현재 만주인(滿洲人)을 여진족(女眞族)으로 가르치며 발해(渤海)를 우리역사라고 하고 있다.
이는 환국시대(桓國時代)부터 우리의 12부족(部族)중의 하나인데 이를 부인하면 발해(渤海)를 우리나라 역사라 한다고 여진족이 한민족(韓民族)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그 말이 생기기 이전의 역사는 버리는 것이다.
고구려, 발해가 우리역사라 하면, 그들도 같은 민족이 되어야 함에도 다른 민족이 돼버린 것이 바로 새로운 용어에 오랜 역사를 담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역사의 시작에서 우리를 나타내는 우리를 한데 묶는 명칭을 찾고 그 후예(後裔)가 하나 되는 방법을 찾아야 우리는 하나가 된다.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삼국시대(三國時代)의 후예들은 하나가 되어야 역사가 바로 된다. 한·중의 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와 지나의 남제서(南齊書)권58에 엄연히 우리의 강역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한반도로 하려는 시도는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날 만주(滿洲)에 있는 거란(契丹)과 고려와의 27년간 전쟁에서 소손녕(蕭遜寧)과 서희(徐熙)와 담판에서 보듯 고구려 국토를 많이 가진 거란보다 국호를 취한 고려가 명분에 의해 거란이 물러간 것과 같이 명분은 대단히 중요함을 말해준다.
우리나라는 외침에 의해 많은 역사자료를 거의 다 잃어버렸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없앤 것도 있다. 가라, 고구려, 백제에서 광복하는 사로신라(斯盧新羅)지역에서 삼국기록이 없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독립한 신라지역기록인 거칠부(居柒夫)의 국사부분이 없고, 고구려가 옥저(沃沮)동쪽을 다스린 것은 최리(崔理) 낙랑왕이 항복한 이후이다.
서기 32년 자명고(自鳴鼓)의 파괴로 고구리가 다물(多勿) 하고 간(干)지역이 되었으며 간(干)이 신라왕이라 칭한 503년이 고구려에서 독립한 것인데 사로신라(斯盧新羅)지역에서 삼국기록이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독립한 것인데 거칠부(居柒夫)가 살아 생전에 기록한 것이 국사(國史)이고, 지증왕(智證王)~진지왕(眞智王)까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립간(麻立干)지역의 기록도 없으니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마립간(麻立干)으로 불리는 명칭이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한(韓)의 78국 중 사로국이 발전한 신라는 최치원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에 의해 두 모왕(某王)으로 표현했다고 했으니 거서간(居西干), 마립간(麻立干)을 사용한 기록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엄연히 있었던 나라의 역사기록을 없는 것으로 해서는 아니되고 없는 역사를 있다고 조작해도 아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고증을 통해 이를 규명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는 연구는 뒷전으로 하는 자가 많지 않다.
글을 맺으며
우리나라는 조선조에 와서 500년간 명(明)나라를 사대(事大)했다. 국호도 명(明)의 화녕(和寧)과 조선(朝鮮)에서 조선 선택한 것이고 또한 조선선비(朝鮮鮮卑)들이 명(明)나라를 천(天)으로 받들며 사대(事大) 또는 모화(慕華)했던 것이다.
이 사대(事大)가 몸에 베인 우리나라 학자들은 퇴계(退溪) 선생이나 율곡(栗谷) 선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모두 명(明)을 상국(上國)으로 받드는 사대(事大)의 유학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최태영 선생의 뒤를 이어 글을 쓰면서 김부식을 비롯해서 11명의 편찬자들은 송(宋)나라에 사대를 하였는가? 염두에 두고 삼국사의 문맥을 살펴보는데 고조선에 대한 것은 다루지 않은 것은 불만이나 [삼국사]에 관한 것만은 제대로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남제서>권58 내용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또한 <후한서>권85에서 ‘辰韓者老自言秦之亡人避苦役適韓國馬韓割東界地’라 하여 진한인(辰韓人)은 태피망인(秦避亡人)임으로 진(秦)나라 사람과 진한인辰韓人)은 같은 족속이다. 그런데 <삼국지>권30, <후한서>권85, <삼국사>권46에서 삼한은 오월(吳越)과 유연제로(幽然齊魯)사이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지>와 <후한서>에서 왜인(倭人)의 북쪽에 한(韓) 즉 삼한이 있다고 했다. 왜인(倭人)이 會稽東冶縣 夷洲 澶洲 朱崖 담이(儋耳(南越)에 있다고 했는데 송(宋)나라 때 만든 우적도(禹跡圖)에서 양자강 이남에 있으니 그 북쪽이라면 당연히 오월(吳越)과 제로(齊魯)사이에 삼한이 있었고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왜인이 있다고 했다.
동이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동이나라다. 순(舜)이 동이인(東夷人)이며 선조가 소전이라는 제후의 아들 헌원이고 그 아들에 소호금천씨가 있고 증손이 고신씨 이다.
따라서 신라가 동이인 소호금천씨를 조상이라 하고, 고구려가 고신씨를 조상으로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들은 모두가 동이인(東夷人)이기 때문이다. 고대대륙은 우리의 영역(領域)이고 한민족(韓民族)의 활동무대가 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까지임을 바로 알 때,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위대한 민족임과 긍지도 갖게 된다고 본다.
(이상은 吳在成, ’九黎系 倭-日本史‘.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撰)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三國史 冊名 바로잡기’와 김부식등이 편찬한 (유인물)’. 유우찬, ‘한국사의 결론 ’한국사의 쟁점‘.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황순종, ‘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윤진영 編集 「우리역사(東夷傳」. (金東洛),‘천부경(天符經)과 문디 거시기.’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津田秀夫外 3人, ‘ひとりで學べる 日本史’.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 編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田正昭. 外 5人 編著, ‘謎の五世紀’.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上, 中, 下’外 多數의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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