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15년 온조왕 8년 2월 말갈군 3000명이 침입해 위례성을 포위했다. 이 위례성이 서울 잠실에 있는 풍납토성이라고 하는 강단학파의 원로교수의 주장을 필자가 반박한 적이 있다.
S대학 석좌교수가 ‘풍납토성은 백제왕 31명 중 온조왕(溫祚王)에서 개로왕(蓋鹵王)까지 21명이 이 풍납토성에 살았다’고 하며 ‘서울600년사는 백제의 역사를 포함해 2000년사로 바뀌어야 한다’는 글을 보고 너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이들은 언제까지 한성백제(漢城百濟)를 주장할 것인지! 백제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이 웃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평생 역사를 어떻게 연구했기에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쳐 온 교수가 이런 수준인가?! 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지금도 자학반도식민사관(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의 역사 무지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백제는 대륙에서 건국했고 서기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도 대륙에서다. 백제가 나라를 세운 백제초기(百濟初期)의 위치는 기원전 5년 이전에는 낙랑군지역(樂浪郡地域)의 서쪽에 있는 대방(帶方)지역에 있었다.
풍납토성 위례성에는 말갈족(靺鞨族)이 침입해 온 적도 없었으며 이 풍납토성은 성(城)도 아니다. 그것은 고구려와 백제는 성(城)을 돌로 쌓았지 흙으로 성을 쌓은 기록을 필자는 찾지 못 했다.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이 가장 역사왜곡을 많이 한 것이 백제역사이다.
위례성의 백제는 대륙의 백제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역사연구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한반도의 백제는 대륙백제의 분국(分國;諸侯國)과 다름없는 지위의 수준의 칸(干) 또는 오늘날의 총통(總統)과 같은 지위인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은 아직도 백제가 전라도 충청지역에 있었다고 믿는데 백제는 초기 이 지역에 없었다. 백제는 서기 32년 이전에는 고구려, 예(濊)의 동쪽에 옥저(沃沮)가 가까운 곳에 있었고 낙랑국(樂浪國)과 다르게 있었다. 또한 한강(漢江)도 확인할 수 없음에 비하여 백제지명(百濟地名)이 많이 있는 황하(黃河)는 한수(漢水), 한강(漢江), 하수(河水)로 불렀다.
백제의 웅진(熊津)은 태산의 서쪽에 있고, 한성(漢城)은 하북성(河北省)에 있었다. 우리는 웅진(熊津)을 충청도 공주지역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다 역사왜곡(歷史歪曲)에 기인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자왕(義慈王)이 건재(健在)했을 때 그 전쟁터의 명칭을 볼 수 있는데, 그 지명들이 대륙에 있다. 의자왕 2년의 하미후(下獼猴), 대야성(大耶城), 의자왕 3년의 항성(項城)을 당항성(唐項城-黨項城-常項城)으로 고치고 17년간 44개 전투지역의 지명이 한반도가 아닌 지나에 있었음이 다 입증이 된다.
이에 반해 한반도에는 황산(黃山)이 하나 있을 뿐이고 공주(公州)의 백마강(白馬江)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백제가 망하기 전 의자왕(義慈王)의 행적(行蹟)이 모두 대륙에 있기에 백제가 한반도(韓半島)의 전라도 충청도에 있었다는 것은 잘못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은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백제가 반도에 있었다는데 백제는 대륙에서 건국하고 대륙에서 패망한 것과 반도의 백제는 대륙백제의 분국(分國)의 지위(地位)인 방(邦;干)나라임을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역사 모르고서 우리역사 바로 알 수 없다
일연(一然)부터 시작된 역사왜곡은 신채호(申采浩)와 현재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아직도 연구를 통해 이를 규명(糾明)은 하지 않고 앵무새같이 왜곡역사만을 말하는데 삼국시대(三國時代) 고구려, 백제, 가라, 신라, 왜(倭)등의 1000년 전의 역사지명들이 왜 지나(支那;中國) 있는지? 우리역사가 반도역사라면 이에 반론 제기해야 하는데 왜 않는 것인가!
한·중·일 사서를 연구해보면 우리역사가 한반도로 왜곡한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백제가 대륙에서 지나를 다물(多勿)한 것도 안 나오고 고구려가 고조선강역과 구리(九黎)강역을 통일한 것도 나오지 않고 빼버렸다.
일연(一然)은 삼한(三韓)을 한반도로 가져온 자로 그는 고구려가 아시아 지역을 다물 하고 터키 마리칸(馬利干)을 비롯해서 카자흐스탄 등 7개의 스탄(나라)을 거느린 것들을 빼어버리고 우리역사를 한반도로 가져 와서, 이 시대는 고구려의 가한(可汗) 시대임을 숨기고 있다.
지나는 우리를 동이(東夷)라 하는데, 평생을 역사연구에 바친 유우찬 선생은 [한국사의 쟁점]에서 동이(東夷)가 “큰 활을 사용하는 민족, 철을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고 동이(東夷)는 동쪽 발해(渤海)땅에 사는 민족으로서 한문으로 표현하면 “동일민족(東日民族;한민족(韓民族)”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지나 사람들은 ‘일(日, 一)’을 이(夷)로 발음하여 “이(夷)”자로 쓴 것이 후세에는 동이(東夷)로 굳어진 것이라 했다. 선생도 오랜 기간 우리역사를 연구한 결과,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가라, 신라 등의 무대는 유라시아의 역사를 동북아시아(東北亞細亞)에 맞게 윤색한 것이라 보며 우리역사가 유라시아의 역사라고 하고 계셨다.
또한 조선조의 역사도 한반도의 역사가 아니라고 하시며 세종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3944페이지를 자세히 읽고 연구해 보면 한반도 지리지가 아니라 대륙임을 말하고, 3000년 이상 된 한반도의 유물들은 지나(支那;中國)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만주와 한반도는 우리의 대륙사(大陸史)임을 밝히며 우리나라 사학계에 주문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지식들을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시각, 새로운 각도로 우리역사를 새롭게 전개할 것을 주문하며 지나는 고대뿐만 아니라 손문(孫文)의 중화민국정부에서도 모든 역사를 수정, 개작 하였고 일본 역시 치밀하게 역사를 조작하고 나머지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정리차원으로 한 것임도 지적하고 있었다.
지나의 사서(史書)들이 나온 순서를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한서(漢書)-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순서로 나왔는데 후한서부터 동이(東夷)라는 것이 나온다. 당시 삼국시대의 나라들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 백제, 가라, 신라, 왜(倭)가 대륙에 나와 있고 송서(宋書)에도 왜(倭)가 있고 한서(漢書;南越卷7)에는 진번군(眞番郡)도 대륙에 나와 있다.
그런데 지나(支那;中國)는 진번의 위치도 옮겼기 때문에 진번(眞番)과 임둔(臨屯)은 잘 등장 시키지 않는데 등장 시키고 있으며 또 남월(南越)을 진성현으로 고쳤다.
우리는 강감찬(姜邯贊) 장군이 반도에서 출정(出征)한 것을 가르치고 있으나 강감찬 장군은 만주의 장춘(長春)에서 출발했고 싸운 곳은 귀주성, 장춘(長春)에서 40km인 곳에서 싸운 것이다. 그런데 지나는 귀주도 구대(仇臺)로 바꾼다.
또한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출정한 곳도 만주의 장춘(長春)이고 요양, 심양을 정벌한 것이지, 조선조(朝鮮朝)도 반도국가가 아니다. 대륙의 강족(羌族)과 장족도 여진족도 거란도 카자흐스탄도 키르키스, 러시아, 위그르, 티베트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옛날은 하나였다. 9개의민족이 12개 연방국을 만들어 공유한 것을 제대로 봐야 한다.
일연(一)然)과 신채호(申采浩)의 ‘반도산관’은 우리의 상고사(上古史), 고대사(古代史)를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는 데서 우리가 기마민족(騎馬民族)으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를 대륙을 지배한 민족이지 반도에 갇혀 있는 민족도 나라도 아니었다.
자학반도식민사관(自虐半島植民史觀者)의 역사관은 매우 잘못된 것인데 일제가 더 역사를 왜곡했으나 우리는 유라시아를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찬란하고 위대한 민족으로 앞으로도 세계에 우뚝 설 민족이다.
동이민족의 동질성부터 찾고 가야 한다
동이민족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및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지나(支那;中國)<25사(史)>에서도 우리의 영역이 서화(西華)에서 한반도까지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즉 9세기 이전 역사의 기록에는 황해(黃海) 서쪽의 서화(西華)에서의 한반도까지 하나의 민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기록인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도 이 내용은 같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자(箕子)이다. 기자(箕子)는 반도사관자들은 한반도에서 43대 실존 했다고 하는데 이는 허구(虛構)이다. 그래서 ‘실체가 없는 기자조선이라고’ 필자도 이미 다룬 적이 있다. 기자(箕子)는 반도에 산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묘가 안휘성(安徽省)의 몽성(夢城)에 있다는 것은 사기(史記)와 수경주(水經注)에 기록 되어 있다.
[삼국유사]가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衛滿)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三國志30-38), 기자(箕子)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아 [삼국유사]를 반도로 풀이하고 있음은 매우 바람직하지도 않고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도 [삼국유사]의 영역기록과 일치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否定)하고 있다. 반도의 기록으로는 무강왕(武康王)의 기록이 [삼국유사]에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9세기이후의 동이후예(東夷後裔)국가들은 그 어느 국가도 진정한 ‘동이민족사’를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이민족동질성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9세기 이후의 동이(東夷)의 후예국(後裔國)들은 서신라(斯盧新羅)와 진국(振國)의 뒤를 이은 요(遼), 원(元), 청(淸) 중 기록만이라도 전통을 이어온 국가는 고려와 조선밖에 없고, 9세기 이후 건국된 송(宋)은 주(周), 진(秦), 한(漢), 당(唐),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족(漢族)으로써 남기를 원했다. 그리고 원(元)과, 청(淸)은 동이(東夷)로서 한족(漢族)을 중화(中化)시키는 중화사상 표방하여 한족(漢族)으로서 역사를 정립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동쪽에 있는 구이(九黎)인 조선, 고구려, 백제, 가라,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와 서라벌(徐羅伐新羅;東新羅)의 후예들인 백성들은 동이라 할 수 있으나 지나에서는 한족(漢族)의 계승국가로 역사를 가르친다. 한족의 역사는 동이민족사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한족(漢族)으로 떨어져 나갔다. 어쩔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지나의 25사에서 9세기 이전 동이민족의 영역인 서화(西華;河南省)에서 반도까지의 동이민족사(東夷民族史)를 정립해 민족(民族)의 동질성(同質性)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광개토태왕비를 중심으로 치우능(蚩尤陵), 기비묘, 헌원능, 부여융(夫餘隆), 의자(義慈王陵)이 서화(西華;河南省) 지역에 있음과, 창녕(昌寧) 진흥왕비(眞興王碑), 평양성벽각자(平壤城壁刻字)가 반도지역에 있기에 보충하면서 동이민족사(東夷民族史)를 정립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자(漢字)를 사용하던 한글을 사용하던 구이(九黎), 조선(朝鮮),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가라(加羅), 서신라(西新羅), 서라벌(徐羅伐;東新羅)의 영역(領域)에 있는 한, 모두 우리민족이다.
서기전 30세기 치우천자(蚩尤天子)의 능(陵)이 산동(山東省) 동평(東平)에 있고, 서기전 11세기 주(周)와 조선(朝鮮)의 경계는 하남성 서화(西華)이며, 서기전 5세기 연(燕)과 조선(朝鮮)의 경계는 요동(遼東;太行山脈)이라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서기전 3세기 진(秦)과 고리(櫜離;북부여)의 경계는 음산(陰山)서쪽 진장성(秦長城)이고, 진(秦)과 마한(馬韓)의 경계도 요동(遼東;太行山脈)이며, 서기전 142~87년 한(漢)과 마한(馬韓)의 경계(境界)는 요지동(遼之東;太行山脈)이며, 서기 4~5세기 북위(北魏)와 백제(百濟)의 경계는 요지서(遼之西;진평이군(晉平二郡)인 것이다.
그리고 6~7세기 당(唐)과 백제의 경계는 광양(廣陽;良鄕), 항성(項城;西華南), 덕안(德安;江西省)이었다. 그리고 6~7세기 당(唐)과 서신라(西新羅)의 경계는 석문(石門;672;義福), 춘장(春長), 석성(石城671;竹旨), 항성(項城643), 덕안(德安663;), 흠둔(欽鈍과 천존(天存)이었다.(여기서 수자(數字)는 연도(年度)를 의미함을 유의(留意) 하시기 바랍니다.) (以上은 吳在成,「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102面~118面 參照, 本文을 引用하다.)
글을 맺으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역사는 대륙사이다. 그 행적을 찾아서 올라가면 환국시대부터 고대의 유물과 고적(古蹟)은 대륙에 남아 있다. 4000개 이상의 피라미드, 만주에만도 12000여개의 무덤, 요하문명을 비롯해서 세계 5대문명이 우리와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있는 우리민족에 의해서 이뤄진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상고시대 환국(桓國)때부터 12부족(部族)은 모두 우리와 혈연관계(血緣關係)가 있다. 9개 민족이 구리족(九黎族)이다. 이 시대에는 하나의 나라였다. 부디 말을 한다면 유라시아의 연방국(聯邦國)이라 할 수 있으며 12부족(部族)은 우리와 같은 범주(範疇)에 속하는 민족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나, 인류학적(人類學的)으로나 고찰해 보면 자랑스러운 천손민족(天孫民族)으로서 뒤질 데가 없는 민족이다. 지나는 한족(漢族)이라 하나, 한(漢)나라의 유방(劉邦)도 동이족이요 진(秦)나라의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해서 수(隨),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요(遼), 금(金), 청(淸)이 한족(漢族)인가?
그 근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역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조작은 역사가 아니다. 왜곡된 역사로 부질없는 시간 낭비는 이제 그만 둬야 한다. 필자는 역사를 구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며 대륙역사를 반도역사라 하는 학자들에게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로 호칭하고 있다.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우리역사를 너무 연구를 하고 있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만을 유지하고 자신의 안일에만 묻혀 있는 것 같이 비쳐지고 있다. 이는 국가와 민족에게 실망과 좌절감만을 줄 뿐이다.
조국이 광복된 지도 70여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반도사관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은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지식기반사회로 자연현상과 일식(日蝕), 월식(月蝕) 등 그 기록이 모두 재현시켜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 아무리 왜곡되고 날조된 조작한 역사로 역사무지를 말하는 시대는 끝났음을 알았으면 한다.
( 以上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撰)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三國史 冊名’. 유우찬, ‘한국사의 결론 ’한국사의 쟁점‘.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황순종, ‘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더 알씨랑 고대사’. 윤진영 編集 「우리역사(東夷傳」. (金東洛),‘천부경(天符經)과 문디 거시기.’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津田秀夫外 3人, ‘ひとりで學べる 日本史’.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 編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田正昭. 外 5人 編著, ‘謎の五世紀’.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貝塚茂樹, ‘中國の歷史’ 上, 中, 下’ 外 多數의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