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지금 한국은 세계 선박 건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4세기부터 선박 건조 술이 뛰어났던 민족이다. 그 당시 한국에서 건조한 배가 일본에 갈 때는 대한해협을 건너 대마도에 기착했다가 규슈(九州)로 향했다고 한다. 369년경에는 절정을 이루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당시 대담한 모험가이던 부여와 가야인들은 이 배를 타고 후진국이던 일본 서부의 절반이상을 정복하고 이후 130여 년간 일본왕의 대를 이었다. 이 장정(長征)에 대해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은 모두 다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 말에 대한 지식과 부여사람의 체력조건 등을 보면 석기시대에 머물고 있었던 일본의 원시 족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증거한다고 하겠다. 한민족의 당시 골격은 건장하고 일본인보다 장대했다. 나아가 일본 원주민들은 이들을 당해 낼 수 없는 강력한 철제 무기를 갖고 있었다. 항해술 또한 서양의 바이킹보다 500년이나 앞선 데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서양의 바이킹은 대담하고 강인 한 뱃사람이었지만 그들이 활동하던 10세기에도 부여·가야족의 말을 대동한 것과 같은 항해의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기마민족인 한민족(韓民族)은 우수한 항해술과 말을 탄 기동력으로 일본 정복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유형의 기마민족 정복역사는 처음으로 사료된다.
일본인 마쓰시다(松下見林)가 저술한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에 ‘일본은 본래 왜노국(倭奴國)이다. 함형중(咸亨中)에 왜(倭)라는 악명(惡名)을 꺼려 비로소 일본이라고 칭했다. 일본인은 흉악해 살생을 좋아 한다’는 기록(異稱日本傳-券中二1면, 卷中三35면)이 있다. 서양인의 식민정책은 형식상 정치적 자유를 용허하고 경제적으로 침략했다. 그런데 일본은 가증스럽게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국에 대해 동화정책(同化政策)이라는 이름하에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말살을 기도했다. 심지어는 무궁화의 뿌리를 뽑으며 초목의 말살까지 자행하는 치졸한 만행을 저질렀다. 더욱더 가증스러운 것은 왕릉과 성현(聖賢)의 무덤위에 대못을 박고 파헤치기까지 했다. 또 풍수지리설에 따른 명당의 후손들이 그 맥을 잇지 못하게 하는 미신의 말까지 왜곡하는 등 우리 역사와 전통의 말살을 시도한 한 자들이다. 총독부는 우리나라 모든 역사자료를 약탈 아니면 분서(焚書)하고 대마도 종가에 전래되는 사서도 몰수해 일본 궁내성(宮內省) 문고(文庫)에 감추었다. 이후 일본은 어용학자들을 내세워 거짓역사를 만들기 위한 비뚤어진 학설을 주장해 왔고, 그것이 지금의 강단파가 믿는 역사인 것이다.
날로 더해가는 파렴치 일본의 역사 왜곡
일본이 어느 정도 어디까지 역사 왜곡을 한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면 가관이다. 일본문화사(日本文化史) 임진란 편에 보면 가도기요마사(加藤淸正)에 포로가 된 조선 왕자를 우대했는데, 그 왕자가 기요마사(淸正)의 우대에 감격해 ‘임짐란이 끝난 후 남대문 밖에 기요마사(淸正)의 묘(廟)를 세우고 기요마사(淸正)의 초상을 모시고 제사했다’(日本文化史 三卷第30章 武家社會の道德163面)는 기록이 있다. 참으로 상상조차 안 되는 역사조작이다. 왕자는 임해군(臨海君)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은 주지하다시피 임진란에 극악무도한 수많은 악행을 자행했다. 치를 떨었던 조선왕자가 이런 일을 자행 한 기요마사(淸正)의 묘를 짓고 제사했겠는가. 당시 일본군은 피난민을 유혹해 극악무비의 악행을 저질렀다. 그 한 예를 든다면 계사년정월(癸巳正月) 24일의 일이었다. 피난민을 서울 성중에 가두고 모조리 학살, 한명도 남기지 않았다. 이 같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한 일본 장수의 묘를 짓고 제사를 하겠는가. 이후에 매년 정월 24일이 오면 일기가 음침했을 정도라고 한다.(芝峯類說卷之三) 이처럼 비탄(悲嘆)의 원성(怨聲)이 일어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국의 왕자가 임진란의 선봉인 기요마사(淸正)의 묘를 세우고 추모를 했겠는가. 일본인은 역사를 짓이기는 망동을 하고도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있다.
일본은 고대부터 한국을 지배했다고 날조
일본의 역사는 어디를 봐도 고대사·근대사 모두 파렴치한 위조를 자행했다. 4세기에 이르기 까지 원시석기시대를 산 일본이 감히 선진국인 가야·백제·신라를 예속시키고 동양은 물론 세계초강국인 패자(覇者) 고구려까지 지배했다는 대담한 위조의 감행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러한 역사만을 배운 일본인들은 우리 역사를 모르고 우리가 고대부터 일본에 뒤진 나라인양 하면서 우월감을 갖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필자는 최근 일본의 지도급 인사와 3일간 회의와 회식을 하면서 차를 타고 옮기며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인들은 왜곡한 역사만을 배워왔기에 너무나 무지함을 볼 수 있었다. 이중 한분은 일본 가서 역사공부를 더해가지고 다시 이야기 하자고 까지 하기도 했다. 역사 왜곡사실을 일본인들은 들은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필자와의 역사에 관한 대화에서 많은 사례를 소개하니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일본은 고대부터 미나마(任那府)를 두고 한국을 정복하고 있었다고 파렴치한 위조 왜곡을 감행했으나 우리민족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가 우수한 문화선진국으로서 일본을 지도하고 무력으로 일본을 지배한 사실은 천지가 무너져도 변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떻게 가야유민이 일본을 정복 할 수 있었을까. 부여족은 말을 싣고 바다를 건너 칼과 창 등 철기무기로 무장한 기마병으로 일본의 원주민을 손쉽게 제압하고 규슈에서 나라 야마도 평원으로 동진해 갔다. 기마민족인 가야 족이 왜를 정복하기 이전,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 일본으로 온 유민들은 ‘문화적 침입자’로 볼 수 있으나 369년 일본에 온 부여족들은 이전 유민과 달리 군사집단이었으며 새로이 정착할 신천지를 찾아 일본에 온 점이 달랐다. 일본은 우리역사를 왜곡하는 과정에서 ‘한민족은 외국을 침략 한 적이 없다’고 왜곡했으나 우리는 이미 대륙에서 또 일본에 고대부터 일본을 정복했다.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서 말을 가지고 갔기에 ‘기마민족’으로 불리는 것이다. 일본학자도 이를 숨길 수 없어서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1948년 ‘기마민족설’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기마민족이 통치한 시기는 앞서 언급한대로 서기 369년~506년까지로 일본이 말하는 오진덴노(應神天皇)~26대 케이타이덴노(繼体天皇) 이전에 이르는 137년간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399년에 가야를 치고 바다를 건너가서 왜를 함락했다. 일본을 건국한 가야가 5세기 초 망해 그 유민이 일본에 왜를 세운 것이다. 그 처음 왕이 오진덴노(應神天皇)라는 단군의 73대손이다.
7세기부터 천황칭호 그 천황은 한민족(韓民族)
5세기 초 고구려가 일본을 정벌하니 일본이 저항치 못해 송나라에 청했다. 이후 고구려의 세력은 팽창해 동북아의 맹주가 된다. 일본은 5세기 말~6세기 초에 야마토(大和)를 중심으로 부족연합이 형성되고 6세기말~7세기 초에 호족이 분립해 자기세력을 부식한다. 호족 중 대표는 한국 유민인 소아씨(蘇我氏)이고 소아씨가 소위 32대 일본 왕이라고 하는 스슝천황(崇竣天皇)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33대 일본 왕이라는 스이코 덴노(推古天皇)가 등극하고 세이독크 타이시(聖德太子)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를 대행하고 대화개신(大化改新)을 시도했다. 이 때에 고구려가 혜자법사(惠慈法師)를 일본에 보내 대화개신(大和改新)을 지도했다. 이때까지 천황(天皇)의 권위가 서지 못하고 7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비로소 천황(天皇)의 권위를 확립한다. 7세기 이전은 대왕이라 칭하고 7세기부터 천황(天皇)이라고 칭했다. 일본역사의 왜곡은 세이도크 타이시(聖德太子) 시대부터 수집해 둔 역사초안이 소아씨(蘇我氏)의 난에 전부 분실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체를 모르는 패전아례 (稗田阿禮)라는 개인의 구전(口傳)에 의해 일본 역사를 엮어 놓았다. 정체를 모르는 개인의 구전(口傳)은 전설이지 역사가 아니다. 일본의 역사가 이렇듯 다 허황되다.
일본은 1~2세기에 많은 부족이 분립하고 3~4세기에 이르기 까지 국가다운 국가가 없었다. 이때 우리 한민족은 일본에 진출해 가야는 임나를, 신라는 웅습(熊襲)을 내세워 일본을 정복했다. 이후 소위 신공후(神功后)의 신화가 나왔다. 중국사서 ‘삼국지(三國志)’와 ‘위지(魏志)’에 의하면 왜(倭)에는 이때 100여개 부족사회(部族社會)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부족들은 너무 미개한 석기시대의 수준이었다. 일본은 우리민족인 부여,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모두 한국에서 건너간 한민족 유민(流民)이 세운 나라임이 판명됐다.
일본이 내세우는 허황된 역사는 발붙일 곳이 없다. 왜곡된 역사만을 배운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우수하다고 여기며 거짓과 기만으로 변조한 그 열등한 역사사실을 망언(妄言)으로 메우려 하나 이는 착각이다. 역사는 진실을 외면해서는 역사가 아니다. 진실 위에 역사를 적립(積立)해 가는 것이 역사다. 일본이 스스로 훌륭한 역사라고 여긴다면 일본의 왕릉(王陵)과 고분(古墳)들을 발굴하고 세계학자에게 물어보면 어느 역사가 진짜 역사인 것인지 분명해질 것이 아닌가. 말하고 싶다. 중국역시 발굴(發掘)을 숨기며 도둑질하는 역사는 얼마가지 않아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증스러운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우리역사를 훼손시키는 행위도 이제 그만 둬야 한다.
지금 중국이나 일본 극우파나 무지한 이들은 무지하기에 용감하다는 ‘막가파식’으로 나오고 있으나 진실은 밝혀져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우(愚)는 이제 그만 두기를 권하고 싶다. 교과서에 써놓는다고, 유물을 변조한다고 해서 역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진실의 기록만이 역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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