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일본이 왜곡한 역사, 역사라 할 수 없다

입력 2020-06-14 12: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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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50년 간 지배하던 타이완(臺灣)은 왜곡한 역사를 우리와 같이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일제암흑기에 왜곡한 역사를 배제하고 역사교사들을 재교육시켜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의 왜곡한 역사를 바로 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와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음은 말이 아니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는 물론, 삼국시대도 대륙사이고 고려시대도 장성(長城) 이남이 고려영토이다. 조선조 이전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요양과 심양을 평정한 기록을 남기고 있고 요동반도가 본래 고려 땅으로 고려가 통치했다. 
 
고려(高麗)의 수도 황성(皇城)이 압록강 북쪽에 있는데, 철령(鐵嶺)의 남쪽 30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철령으로부터 북으로 가면서 문(文), 고(高), 화(和), 정(定), 함(咸)등 여러 고을을 지나 공혐진(公嶮鎭)까지는 자래(自來)로 고려의 땅이다.
 
철령(鐵嶺) 북쪽으로 공혐진(公嶮鎭)까지 여러 마을을 기록하고 있는데 화주(和州)는 쌍성에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철령(鐵嶺)북쪽에 지금도 쌍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려(高麗)땅에서 일어난 고려(高麗)와 요(遼)를 다른 민족역사로 가르치고 있다. 
 
1035년 9월 구축한 송령(松嶺)은 금복개해(金復盖海;요동반도)의 서북쪽에 있다. “서북지방 송령(松嶺) 이동에 장성을 구축하여 변방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는 요충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를 가르치지 않으며 왜곡역사만을 신주(神主)모시듯, 버려야 할 쓰레기 역사를 우리역사라며 가르치고 있다.  
 
역사기록은 요(遼)나 고려(高麗)가 모두 옛 고구려(高句麗)땅에서 건국한 것이다.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언제까지 지나와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려는 것인지! 제대로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 
 
오늘은 지나가 우리역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조작한 것과 우리나라 사대주의자들이 지나와 일본의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제대로 역사 연구하지 않고 지나와 일본의 조작 날조 역사를 가르침은 역적과 진배없음을 말하려 한다.  
 
역사말살에 동참한 자, 매국노와 같다
 
지나와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우리역사는 대륙의 역사이지 반도역사가 아님을 말하고 구미(歐美)의 학자들도 우리나라 역사는 12000년~15000년 전부터 유라시아는 물론 러시아와 유럽까지도 우리나라가 지배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유별나게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국가관이나 민족의 정체성(正體性)과 우리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열등의식(劣等意識)과 패배의식(敗北意識)을 조장한 왜곡 날조한 역사만을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백제가 잠실의 위례성이 건국의 수도(首都)였다고 하는가 하면, 고려(高麗)와 조선조(朝鮮朝)가 압록강 두만강 이남이라는 자들을 보노라면 이들이 과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였는지 의문이 가고 그 온전한 정신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와 일본이 수십만 권의 사서(史書)를 없앴으나 남아 있는 사서(史書)만으로도 우리역사가 대륙사임은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음에도 이를 연구하지 않고 지나와 일본이 왜곡한 역사만을 선호하는 자의 그 의중(意中)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역사는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역사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위서(魏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당서(唐書)에서 한족(漢族)과 동이(東夷)의 경계는 요서(遼西)와 요동(遼東;遼之東)으로 기록하고 있다. 
 
6~7세기의 경계를 보면 반도가 아닌 대륙의 은산(銀山), 고대인성(古代人城), 신성(新城), 석문(石門), 석성(石城), 항성(項城), 덕안(德安)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은 산서성 요(遼)중심의 동쪽과 남북으로 있는 지명(地名)들이다. 
 
지나는 고대부터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에 있었던 동이(東夷) 역사를 밀어내기 위하여 위(魏), 촉(蜀), 오(吳) 삼국시대가 70년도 아니 되는 것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중국대륙 전체의 사건으로 볼 수 있게 소설화(小說化) 시켰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배한 대륙을 9세기 이전, 서기전 11세기까지 한족(漢族) 그 어느 국가(國家)도 지나의 전체를 통일하고 지배한 국가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지나의 25사(史)는 모두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지나25사를 인정하는 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동이(東夷)역사를 대륙에서 삭제시키려는 명조정(明朝廷)의 의도에 의해 지원되고 창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반도식민사관 역사는 버려야 할 쓰레기역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4세기말 나관중(羅貫中)이 허구(虛構)투성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극구찬양하면서 재미있다고 보고 있으나 지나의 의도도 모르면서 우리역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인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하는 말하고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서기전 2세기~서기 9세기 사이에 동이(東夷)의 일부인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왜(倭)가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에 있었을 때 서기 220년~265년 사이에 하남성 서화(西華), 항성(項城)의 서쪽에 있었던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을 토대로 해 나관중(羅貫中)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소설일 뿐이다. 
 
우리나라역사는 반도가 아니다. 대륙이다. 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도 하남성 서화(西華), 항성(項城)에서 한반도까지 우리민족의 영역으로 기록하고 있고, 지나(支那)의 임혜상(林惠祥) 박사는 유라시아의 80%가 동이의 영역(領域)이라 말했다. 
 
필자는 지나와 우리의 사서(史書)를 뒤져 봐도 우리나라 역사가 반도역사라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보지 못했다. 우리역사를 이같이 잘 유도한 것은 김일연(金一然)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동이전을 이용해서 삼한을 조선8도로 한 것을 시작이고, 신채호(申采浩)의 ‘한국사연구초(韓國史硏究秒)’에서 동서양자상환고(東西兩字者償還考證) 즉, 글자를 바꿔서라도 우리역사를 반도로 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다.
 
여기에 동조(同調)한 자가 사대주의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이다. 그는 우리가 유연재 노오월을 정벌하고 지배한 것을 따져봐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오늘날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이 지나의 25사(史)나 18사(史)를 연구검토하지 않고, 왜곡한 위서(僞書)만 보며 고집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지나와 일본이 서로 손발을 맞추며 대륙의 지명을 몇 번이나 동과 북으로 이동했는데 이 사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연구는 뒷전으로 조작하고 왜곡한 지명과 지도를 가지고 우리역사가 반도역사라니 살아있다고 해도 죽은 것과 다를 게 없다.
 
9세기 이전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는 반도가 아니다. 유라시아 거의를 우리가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것은 세계학자, 지나, 일본학자도 인정하고 말을 하는데 진작 우리나라 학자라는 자가 제나라 역사를 이렇게 모르고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역사는 7세기 이전 지명도 정립 안 되고 있다
 
아직도 지나와 일본이 조작된 왜곡역사를 말하며 학자연하는 것을 보노라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통상 사람들은 역사기록은 ‘전쟁사’라고 하는데 삼국시대 우리는 주로 대륙에서 전쟁을 했다. 그 기록들이 다 남아 있다. 
 
그런데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조작된 왜곡사를 말하며 우리역사를 다 망쳐놓고 말았고, 지금도 역사를 뒤엎고 있다. 우리가 세계시원국(始源國)임에도 고조선단군(檀君)을 시조라고 주장하는 역사이론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환국(桓國)을 비롯해서 배달국시대의 환웅(桓雄)도 사장하며 단군(檀君)을 국조(國祖)로 하는 등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지나는 우리의 선조를 자기들 조상이라고 하며 삼황오조(三皇五祖)로 모시고 가는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지나는 상고사가 없는데 우리 조상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16년도 우리역사의 탐방여행으로 김세환 선생 일행과 지나에 가서 이를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삼황오제는 지나 조상이 아님에도 그들은 자기 조상으로 모시고 있으니 우리는 조상을 지나에 뺏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뺏기고 있는 것은 조상뿐 아니라 요(遼), 원(元), 청(淸), 금(金), 왜(倭) 역사까지도 모두 우리역사이어야 하는데 지나에 편입되고 있음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이는 우리나라 학자가 연구도 않고 가르치며 역사를 정립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으로 역사도 나라도 지나에 뺏긴 것이다. 우리들의 역사무지가 하늘에 닿아 있다. 
 
반도사관자 중에는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사서(史書)들을 제대로 읽지도, 연구도 않으면서 학자연하는 자들을 많이 보는데 이들은 지나와 일본이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날조(捏造)한 왜곡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는 자로 매국노와 무엇이 다른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지금 강단학파라는 연구자 중 일부는 연구는 뒷전이고 지위와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서 국가와 민족의 역사와 그 정체성마저 팽개친 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조차 망각하고 있다. 역사를 잃으면 우리는 주체성 상실로 전진하지 못하고 정체(停滯)하고 만다.  
  
그것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지나와 일본이 왜곡한 지명(地名) 중에서 우리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명(地名)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행세하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최소한 10여개만이라도 거론하는 것을 볼 수가 없고 고구려가 망할 때의 평양(平壤)도 이북 평양이라는가 하면 최치원이 고구려 사람인데 신라사람이라 하고, 목화가 삼국시대 우리가 지나에 줬는데 문익점이 필통 속에 넣고 왔다 하고 있다. 
 
김유신과 계백장군의 싸움터도 대륙의 황산인데 한반도라 하고 있다. 김유신과 계백장군의 싸움터는 대륙의 황산(黃山)이지 일본이 왜곡한 한반도가 아니기에 버려야 할 쓰레기로 왜곡한 역사를 지금도 지겹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 둬야 한다. 
                              
평생을 삼국사(三國史)를 연구해 오신 우리역사연구원의 오재성(吳在成) 선생은 우리역사가 대륙사임을 알기 위해서 대륙에 있는 중요한 지명(地名)을 최소한 아래의 16개만이라도 알면 우리역사가 반도 아닌 대륙임을 바로 알 수 있고, 역사를 바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그 지명(地名)은 아래와 같은 지역이다. 
 
요동(遼東), 서안평(西安平), 대방(帶方), 한수(漢水)와 한성(漢城), 웅진(熊津), 평양성(平壤城)과 장안성(長安城), 담이(儋耳), 창해(滄海), 섭라(涉羅), 용도(甬道), 해주(海州), 비리성(碑利城), 역성(力城), 대산(大山), 금성(金城), 나지성(奈祗城)인데 이 곳에서 벌어진 당시 전쟁의 상황을 추적해보면 우리역사를 바로 알 수 있다. 
 
글을 맺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곡역사에 익숙해져서 왜곡역사로 만든 영화나 역사스페셜을 보면 너무나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다. 아직도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가 한반도에서 건국하고 망한 것같이 말하는데, 이는 왜곡한 역사일 뿐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왜(倭)의 나라들이 대륙에서 건국해서 대륙에서 멸망하고 반도로 온 역사를 구분해서 알아야 한다. 이미 살펴 본대로 지나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 없자 우리역사를 가져다가 제멋대로 왜곡한 역사가 너무 많다.
 
지나의 사서(史書)는 고구려 제11대 동천왕(東川王)18년, 당시 위(魏)나라의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의 서책(書冊)을 노리고 불시에 침입해 와서 수도인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는 위급한 상황이 되자 임금이 황초령을 넘어 피난을 갔다.  
 
관구검(毌丘儉)이 침입목적은 서토인(西土人)들이 오래전부터 조선 문적(文籍)에 대하여 사서(史書)를 탐한 나머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자기들의 역사를 정립할 수가 없음에서 영토가 아닌 서적들을 전리품으로 잔뜩 싣고 물러갔던 것이다. 
 
일본의 사학자인 아고기요 히코(吾鄕淸彦)는 사마천(司馬遷)의 사서(史書)도 ‘고대 고조선(古朝鮮)의 역사를 교묘하게 거꾸로 꾸며서 편찬된 것’이라 했다.
 
그 외의 지나의 몇 사서도 보면, 한서(漢書)는 전한(前漢;서기전202~서기8년) 역사를 1세기 후 반고(班固)가 편찬한 것이고, 후한서(後漢書)는 후한(後漢;서기25년~220년)의 역사를 범엽(范曄)이 쓴 것이다. 위지(魏志)는 고구려의 도서를 훔쳐가서 위(魏;220년~265년)의 역사를 3세기말 진수(陳壽)가 편찬한 것이다.
 
그리고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14세기말 나관중(羅貫中)이 6000여명의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창작한 것이다. 그리고 수호전(水滸傳)은 시내암(施耐庵)이 쓰고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 집성한 것이다. 열국지(列國志)도 명대의 작품이다. 
 
명(明)은 1368~1662년까지 존재했는데 위의 서책(書冊)들은 명(明)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알아야 할 것은 위(魏), 촉(蜀), 오(吳) 삼국시대가 패망한 후 약 1100년이 지났을 때 쓰여진 작품인데 9세기 이전 장안중심(長安中心)의 한족(漢族)과 서화(西華), 항성(項城)의 동쪽에 동이(東夷)가 있는 영역이다.
 
지나는 고대, 특히 당(唐)때부터 역사왜곡이 적극적으로 자행되고, 나관중 시대에는 명(明)의 영역이 되어 동이(東夷;高句麗, 遼東, 百濟, 江淮, 倭) 역사를 반도역사로 축소시키는 작품으로 된 것을 우리의 사가들은 간과하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면 이성계(李成桂) 장군과 강감찬(姜邯贊) 장군의 출정한 곳도 장춘(長春)에서 출발했는데 이곳이 반도인가? 당시 우리 고려와 조선의 영토가 남만주와 한반도다. 지금의 지나 동북삼성이 우리 영역인 것이다.
 
조선조 초기 태종은 명(明)의 주원장(朱元璋)이 이곳도 자기들의 영토라 한데 대해 태종은 모든 자료를 제시하고 우리영토인 것을 명명백백하게 인정하게 했던 것이다. 이에 주원장(朱元璋)도 이곳은 조선 땅이라 했다. 우리영토는 압록강 두만강 이남이 아니고, 조선조 때도 남만주와 한반도 전체이다.
 
우리영토는 대륙과 한반도 전체인 것이 모두 입증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통일이 되는 날 다시 되찾을 영토이다. 국제법적으로도 간도는 우리영토임이 확인될 것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 「우리역사(東夷傳」.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백지원. ‘고려왕조실록’. 정성희 ‘고려왕조사 이야기’.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지승, ‘우리 上古史 기행’-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編 ‘詳解.世界史史料集’.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山海經’.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 2, 3.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編著,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書冊 參照,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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