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우리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지나(支那)와 일본이 역사 왜곡한 것을 그대로 무지몽매(無知蒙昧)하게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본다. 과연 이들이 역사를 연구한 자인가? 이들 중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야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등 지나의 사서(史書)를 보고 이를 맹신(盲信)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후에 말을 해야 한다. 지나와 일본(日本)의 사서(史書)들은 너무 조작(造作)되고 왜곡되어 있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인용하고 있음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나와 일본은 우리를 보잘 것 없는 민족으로 축소시키며 단군조선도 신화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단군은 영국의 옥스퍼드사전에도 509면에 실려 있는 실존인물임은 물론 고조선이 수많은 제후국(諸侯國)을 거느린 강대한 나라였음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이 고조선 이전에 배달국이 있고 그 이전에는 인류의 시원국(始源國)인 환국(桓國)이 있어서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유라시아의 80%이상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역사를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모르 고 있다. 이를 가르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나의 거의 모든 왕들도 동이인(東夷人)인 것도 사실이고 한족(漢族)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워 한족(漢族)을 말하나 유방(劉邦) 자신도 동이인(東夷人)이고 지나를 처음 통일한 진시황도 동이인(東夷人)이다.
또한 석가모니도 우리민족이다. [동이원류사(東夷源流史)]의 410면에는 분명히 단군이 석가모니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석가모니가 인도 가비라성 정반왕의 아들이라고들 알고 있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순(舜)임금도 모두 동이인(東夷人)이다.
오늘은 지나의 황제제도와 모든 문물제도도 모두 우리에게서 배우고 수입해서 이뤄진 것을 이미 부분적으로 살펴봤지만 미흡한 점을 보완하려 한다.
지나(支那) 군주제도(황제제도) 우리 것 수입해서 썼다
지나의 역사는 대체로 요순(堯舜)시대, 춘추시대(春秋時代), 전국시대(戰國時代), 전한(前漢)시대, 후한(後漢)시대, 삼국시대(三國時代),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 수(隨)시대, 당(唐)시대, 오대십국(五代十國), 남송(南宋) 금(金)시대, 원(元)시대, 명(明)시대, 청(淸)시대, 중화민국시대, 중공시대로 나눠서 다루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지나의 역사를 말할 때 3개의 기이한 것이 황제(黃帝), 황하(黃河), 황토(黃土)를 말하는데 이들이 존경받는 조상을 황제(黃帝)라고 했다. 그런데 지나의 서경(書經), 시경(詩經)등의 고 문헌(文獻)에 그 황제(黃帝)라는 이름은 없다.
그러나 지나는 황제(黃帝)를 도용하면서 1911년 청(淸)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558명의 제왕(帝王)이 있었다고 하며 그 중 396명은 왕을 황제라 불렀다고 하고 162명은 왕이라 불렀다고 하며 진시황(秦始皇)부터 부의(溥儀)까지 2100년 동안 335명의 황제(黃帝)가 있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황제라고 하는 것은 전설상의 제왕(帝王)으로서 여러가지 도구(道具)를 만들고 제도(制度)를 정해서 지나의 문화적 생활을 향수(享受)시킨 최초의 제왕(帝王)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한초(漢初)의 조작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지나가 1911년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난 당초는 연호(年號)를 황제기원(黃帝紀元) 4609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황제의 기원이 서기전 2698년이 된다는데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조작인 것이 판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에서는 오래전부터 황제(黃帝)의 존재가 믿어져서 역대 왕조의 황제(皇帝)는 새로 취임하면 반드시 황포(黃布)를 입어서 황제묘(黃帝墓)에 참배하고 왕조의 발전을 기원해 왔다. 이 황제능(黃帝陵)은 협서성(陜西省) 황능현성(黃陵縣城) 기숙의 교산(橋山)에 있데 이 황제는 한족(漢族)이 아니다.
지나는 이 황제가 지나(支那) 56민족의 공통의 조선(祖先)이라고 해서 여진족(女眞族), 금조(金朝), 몽골족의 원조(元朝), 명조(明朝), 만주족(滿洲族)의 청조(淸朝) 어느 족도 이를 자랑으로 연년(年年) 제전(祭典)을 집행하고 보호해 왔다.
왜 이리하는가? 그것은 이렇게 함으로 지나의 현재 56민족은 모두 동일선조(同一先朝)를 가진 형제와 같은 것이라 하여 결속(結束)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허나 지나 56민족 중 소위 한족(漢族)이외의 55민족은 이를 믿는 민족은 거의 없다.
그런데 지나인들은 이 황제를 한민족(漢民族)의 조선(祖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로 이는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인데 이들 조선(祖先)들은 모두가 동이족(東夷族)으로 한족(漢族)이 아니다. 한족의 황제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지나(支那)는 황제제도(黃帝制度), 문물제도가 없었다
지나의 역사는 위에서 잠시 본 바와 같이 요순(堯舜)시대, 은(殷)시대(서기전 1600년~1100년경), 주(서주(西周)시대)(서기전1100경~서기전770년경), 춘추시대(서기전770~서기전403년), 전국시대(서기전403~서기전221년), 전한시대(서기전202~서기8년), 후한시대(서기25년~220년), 삼국시대(서기220~280년), 오호십육국시대(304~439년), 수(隨)시대(581년~618년), 당(唐)시대(서기618년~907년),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907~960년), 송(宋;북송시대 960~1127년), 남송시대 1127년~1279년), 금(金)시대, 원(元)시대1271~1368년), 명(明)시대(1368~1644년), 청(淸)시대(1636~1910년), 중화민국시대(1911~), 중화인민공화국시대(1949~)로 나눠서 다룰 수 있으나 조작이 많다.
지나의 고대역사를 알 수 있는 제1의 사료(史料)는 역(易), 시(詩), 서(書), 춘추(春秋),예(禮)등의 오경(五經)밖에 없다. 서기전 6~5세기 주(周)의 말기에 나온 오경(五經)을 교과서로 하고 있으나, 논어(論語)에 의하면 하(夏), 은(殷) 양왕조(兩王朝)의 제도(制度), 예(禮)는 구전(口傳)으로 전해온 전설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데 논어에 [夷狄地有君 不如諸夏之無也]라 했다.(論語 卷之三, 八佾第三). 이적(夷狄)은 군주(君主)가 있고 지나(支那)는 군주가 없다고 했다. 이미 기술한바 있는데 공자(孔子) 당시에 군주가 있었다고 하는데 왜 군주가 없다고 한 것인가
공자는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文物制度)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즉, 이적(夷狄)은 군주(君主)를 섬기는 제도가 있으나 지나는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음을 개탄(慨嘆)한 것이다. 여기서 이적(夷狄)은 우리 한민족(韓民族)을 가리킨 것이다.
고대(古代) 지나인들은 남방민족을 만(蠻)이라하고 서방민족을 융(戎)이라 칭하고 동방민족을 이(夷) 라 칭하고 북방민족을 적(狄)이라 칭했다. 고대 동의 반도와 북의 대륙에 우리민족이 거주하여 한민족(韓民族)을 이적(夷狄)이라 칭했다.
통감(通鑑)에 고구려를 동이(東夷)라 칭하고 태평환우기(太平환宇記)에 예맥(銳麥;濊貊)을 북적(北狄)이라 칭했다. 고대 동서남북 사방민족 중 높은 문화를 가진 민족은 오직 한민족(韓民族)뿐이요, 기타 민족은 문물제도가 없는 야만 민족이라는 것이다.
군주(君主)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지나보다 발전한 민족 또한 한민족(韓民族)뿐이라는 것이다. 삼국지(三國志)에 ‘부여, 고구려, 등 이적(夷狄)의 나라에 조두(俎豆)의 문화가 있음으로 지나가 예(禮)를 잃으면 부여 고구려에 배우라 한 것이다.
여기서 예(禮)는 하(下)가 상(上)을 섬기는 문물제도이다. 그러므로 예(禮)를 잃으면 부여, 고구려에 배운다는 것은 군주를 섬기는 등 예의를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서 배운다고 언명한 것이다. 이는 지나의 무도(無道)를 개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자(孔子)는 지나의 무도(無道)를 개탄하면서 우리나라를 군자국이라 찬양하며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공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28세 때 담자(郯子)선생을 방견(訪見)해 천자(天子)의 관제(官制)를 배웠다.
여기서 보듯 우리 한민족이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지나는 우리가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해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관제를 잃으면 사이(四夷)에서 배운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나는 이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 황제(黃帝), 천황(天皇)제도의 실증(實證)
지나의 저명한 사가(史家) 범엽(范曄)은 공자(孔子)가 ‘옛날 지나가 사이(四夷)에서 천자(天子)의 관제(官制)를 배웠다고 한 것’을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기입하고 태평환우기(太平환宇記)에도 공자의 말을 조선조(朝鮮條)에 기입했다.
이는 공자를 가르친 담자(郯子)가 한민족(韓民族)이요, 공자가 말한 사이(四夷)가 한민족(韓民族)이라 입증한 것이다. 여기서 사이(四夷)는 사방민족(四方民族)을 말하나 사이(四夷) 중 우리가 대표적이라서, 한민족(韓民族)을 사이(四夷)라 칭한 것이다.
또한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獨斷)’ 권상(卷上)에 [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라 했다. 즉, 천자(天子)라는 칭호(稱號)는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지신(天神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함으로 천자(天子)라는 칭호를 창조(創造)했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채옹(蔡邕)의 글은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천자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창조하고 지나는 한민족이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또한 지나의 고서(古書)인 [산해경(山海經;(海內經)]에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하고 역문(譯文)에 ‘독(毒)은 육(育)’이라 했다. 즉, 독(毒)은 양육(養育)한다는 뜻이다. 즉, 조선족은 천신(天神)의 양육(養育)을 받는 자식(子息)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포박자(抱朴子)에 지나 민족의 시조라 칭하는 신화적 제왕(帝王)인 황제(黃帝)가 동으로 청구(靑丘)에 와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얻었다고 했다. 청구(靑丘)는 조선이요 삼황(三皇)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가리킨 것이다.
지나 역사에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라 기록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베낀 것이다. 이 신화(神話)도 천자(天子), 천황(天皇) 등 황제(黃帝)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최초에 창조한 자가 우리 한민족이요, 지나는 우리가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듯 지나인의 모든 문헌(文獻)은 천자(天子), 천황(天皇)등 황제(黃帝)의 문물제도를 창조한 자가 우리의 한민족(韓民族)이라는 주장이 입증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 살펴본 것도 지나의 어처구니없는 억지주장에 재론하게 된다.
우리가 천자(天子), 천황(天皇)등 황제(黃帝)의 문물제도뿐만 아니라 주역철학(周易哲學)과 홍범구도(洪範九圖)가 동이족(東夷族)에 의해 창조되고 동이(東夷)에 의해 창조된 것이 실증(實證)되고 있는 것이다. (尙書今古文注䟽 卷二十五).
그 예(例)로서 서전(書傳) 홍범장(洪範章)에 기자(箕子)가 은(殷)의 시조 성탕(成湯)의 16세손(世孫)으로 동이족(東夷族)에 속하는데 주무왕(周武王)에게 전도(傳道)하였다 하고, 그 주(注)에 기자(箕子)가 주무왕(周武王)의 신하(臣下)되는 것은 불가(不可)하나 천도(天道)를 전하는 것은 가(可)하다고 했다는 기록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군사학도 ‘지나 병가(兵家)의 시조는 강태공(姜太公)이다. 강태공의 군사철학이 후세에 전파되었다’(史記 三十二, 齊太公 世家第二) 했고, 춘추전국시대 철의 사용과 고대 지나인이 2000년 동안 고시(楛矢)와 석족(石鏃)을 수입하고 당(唐)고종이 신라의 쇠뇌기술을 배우기 위해 구진천(仇珍川)에게 궁술을 배우려 했다.
이와 같이 지나 문화의 중핵(中核)인 황제(皇帝)제도가 한민족(韓民族)에 의해서 창조되고 모든 만 가지 문물제도가 동방의 우리 한민족에게서 창조되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지나 문헌에 문화사상, 물질문명에 대해 지나는 한국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周易 卷之二十四, 北史卷九十四 末尾).
(以上은 崔仁, ‘韓國學講義’44面~54面,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 71面~103面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더 알씨사랑’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백지원, ‘고려왕조실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 ‘中國の歷史’.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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