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일본의 전 수상이며 현 부 총리 겸 재무상인 아소타로(麻生太郞)는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은 (나치정권에 의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는 발언을 해 마치 공황장애자 같은 행동을 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시대착오적인 히틀러를 들먹거리는 것인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의 역사서라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두 사서(史書)는 그 당시 정치권력을 잡은 측에 좋도록 만들어진 것임이 오늘날 모두 밝혀지고 있다. 이 두 사서(史書)에서 조선을 부인함으로서 일본 왕실 혈통의 뿌리를 감추고 진실을 숨겼음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조선을 부인하기 위해 조선을 애써 무시하려는 그릇된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에 와서는 노골적으로 교육에 반영되었고 일본의 체제를 유지할 대의명분과 권위를 과시할 필요 때문에 끝내는 대한침략사관으로 변질돼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는 오늘날 한일문제의 큰 장애로 남게 됐다. 명치헌법체제가 가고 일본헌법시대를 열면서도 일본은 그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더욱 역사왜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인식으로는 한일관계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이 요원하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다른 수진전(秀眞傳), 상기(上記), 신황기(神皇紀=미야시다 분쇼·宮下文書) 후지분쇼(富士高天原朝史), 다케우치 분쇼(竹內文書=北陸飛彈朝史), 구카미분쇼(九鬼文書=出雲高天原朝史) 등이 일본 왕실의 뿌리가 한국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일본을 건국한 고대왕조의 주역은 누구인가. 모두 한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본의 고대사 상반(上半)은 한국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이르기를 일본은 삼한(三韓)의 분치지역(分治地域)이었으며, 일본 황실은 고구려·백제·신라의 흥망에 따라 일본의 왕권도 고구려·백제·신라의 왕족들에 의해 교체되었음이 여러 문헌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일본고대사는 바로 한국 고대사의 연장이라고 여러 문헌과 고고학적 고증에 의해 밝혀지고 잇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 삼성비밀기, 조대기(朝代記), 고조선비사(古朝鮮秘史), 단기고사(檀奇古史),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扶餘記), 규원사화(揆園史話), 태백일사(太白逸史) 등의 기록은 우리 한민족의 정통사관으로서 고대 동양사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역사문헌이다. 이러한 고서들이 일본인에 의해 많이 태워 없어졌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환국(桓國),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환인은 BC7199년 환국을 세워 53세 왕들이 3301년을 전하였고, 환웅은 BC3898년 신시에 배달국을 세워 33세 왕들이 계승해 1565년간을 다스렸고, 단군은 BC2333년에 아사달(阿斯達) 밝은 땅에 조선국을 건국하고 47세 왕들이 계승해 2096년간을 통치했다고 기록돼 있다.
한민족의 역사는 가감 없는 실사(實史)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과거와 과정이 다르듯이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와 민족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이에 우리가 국사를 연구하는 목적은 사실그대로의 우리역사를 밝히고 그 뿌리를 찾아 이를 통해 현실을 보다 더 이해함으로서 자아반성(自我反省)과 함께 새로운 자아를 창조함에 있다 할 것이다. 어느 민족도 역사의 기초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밝은 미래를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죽은 과거로의 역사가 아닌 생동하는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찾는 과정이다. 유사 이래로 각 민족은 자기발전과 자기완성을 위해 자체 내의 상극과 협조도 하지만 다른 민족과 다양하게 교섭을 하기 도 한다. 과거에 우리민족과 가장 관계가 깊고 교섭이 잦았던 민족은 대륙방면의 여러 민족, 특히 중국 한족(漢族)과 해양방면의 일본민족이었다. 대륙민족이 우리 한국에 대해 문화적 욕구보다 위압적 도전과 함께 정치적·경제적 욕구를 갖고 있었는데 반해 우리 민족은 그러한 침략적 행위보다는 우리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또는 기존의 영토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우리민족을 향상시키려는 문화적 욕구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민족에 대해 정상적으로는 문화적·경제적 욕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노략질적인 행위가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일본을 예나지금이나 은혜와 위엄으로 대해 주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처음에는 우리가 그 땅에 먼저 거주한 강대 민족이었으나 얼마 안가서 그들이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우리 민족보다 우월한 문화를 갖게 됐다. 일본은 이와 달리 국가성립 이전부터 수백 년 전까지 계속해서 우리 민족보다 저급한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이를 융합·발전시켜 일방적으로 일본에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우리 민족의 교린책(交隣策)은 대개가 수동적인 편이었다. 우리민족은 무엇보다도 지리적 위치와 환경 때문에 주위의 여러 민족과의 끊임없는 교섭, 격렬한 투쟁을 면치 못했으며 또한 그러한 가운데서 성장발전 시켜왔고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이다. 아울러 우리 민족이 지리적 조건에 잘 적용해 일찍부터 주로 농업을 정착 시켰으며 자급자족 경제에 비교적 안주해 평화를 사랑하는 반면에 적극적인 활동보다는 보수적이고 침체된 생활이 더 많았음도 동시에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는 일찍이 외적의 강압, 내부의 사대주의자들, 그리고 폭력으로 정권을 쟁취한 자들이 자기비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책으로 인해 위조되고 빼앗긴 적이 많았다. 게다가 근대에 와서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민족 말살정책으로 인한 한국역사 위조의 효과로 유구한 역사의 상반과 넓은 영토의 대부분의 절단이라는 세상에 유례없는 결과를 가져 왔다.
우리역사 제대로 복원해야
이제 잃어버린 수천 년의 연대사(年代史)와 반도로 축소된 민족의 활동지역을 실제 원상태로 복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금도 진행 중인 천인공노할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고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무능한 종족이라고 역사를 거꾸로 매기고 선전되었던 모욕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이것은 시급한 과제며,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책임이다. 이러한 역사 왜곡은 과거에 우리나라를 강탈 했었던 나라가 자신들의 폭력을 합리화 하고 마땅히 다시 강탈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2세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에 우리는 결코 이를 그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과서는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중국본토에 먼저 거주한 민족이며 선진문화민족으로서 대륙에서 활동했었다. 아울러 민족특유의 문화를 갖고 일본의 문화전반 및 국가사회 구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우리는 19세기 들어 일시의 폐쇄주의로 물질문명을 늦게 이뤘으나 한민족은 거만한 중국인들로부터 공자(孔子)의 경서(經書)와 중국역사서를 통해 “예의를 지키며 겸손하고 양보하기를 좋아하며 굳세고 부지런히 생산하며 무용과 노래를 즐기는 죽지 않은 군자의 나라”라는 예찬을 받았다.
우리는 전쟁을 좋아하는 침략주의가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드넓은 지역을 그 활동무대로 하고 이웃나라에는 은혜와 덕으로 대해주었다. 또한 몽골, 일제 등 외적의 침략을 받아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자유 자주독립을 위한 끈질긴 항쟁의 과정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우리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역사회복의 사명을 절실하게 해준다. 1921년 일본에서 발간된 신황기(神皇紀)에는 한민족이 일본으로 이주하기 이전의 통치자들(神皇) 이름이 기재돼 있다. 신황(神皇)이 일본 땅에 온 후의 역사는 신황(神皇)과 그 황후(皇后)며 친족의 이름까지 기록돼 있다. 그 때 다스린 내용과 지명, 일람도, 지도까지 첨부돼 있다. 지금까지 신비적으로 전해진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한 것이 사실(史實)로 밝혀지면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가공의 신화에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황기(神皇紀)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보다 약 100년이나 먼저 씌어졌고 야마다이국(邪馬臺國) 논쟁을 일으킨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보다도 50년 일찍 쓰여졌다. 이로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허구의 잘못 기록한 일본역사로 들통이 났다. 따라서 일본역사도 진실에 입각해 이제 바로 써야 한다.
막부는 조선통신사 상국의 사신으로 우대
조선조시대 일본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는 당시 일본 60여 번(藩)의 힘을 동원해 조선통신사를 천사(天使)와 같이 최대의 성의를 다해 우대하고 그 접대비가 당시 동경의 예산에 맞먹는 10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때문에 아라이(新井白石)같은 자는 그 대우가 너무 지나치다고 일본이 발간한 조선학보(朝鮮學報 43輯51面)에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천사(天使)는 조선이 상국의 사신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는 근대일본이 조선을 상국(上國)과 같이 우대한 것을 말 하는 것이다. 조선조 선조왕대에는 국력이 극히 미약하여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침략을 받았다. 그런데 조선사신을 상국의 사신을 우대한 것은 국력을 두려워서 우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조선을 상국으로 받들고 조선사신을 천사로 우대하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신라가 정사(正史) 김필덕(金弼德), 부사(副使) 김임상(金任想)을 일본에 보내니 일본이 육해 양로에 고관을 보내 신라사신을 축자(築紫)에서 영접했다(續日本書紀卷一 文武天皇條)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고대에도 일본이 한국사신을 천사로 우대한 것을 뒷받침 하는 내용이다. 일본이 고대로부터 한국을 상국으로 받들고 그 사신을 우대하던 전통을 조선에 와서도 계속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고구려 시대도 일본에 보내는 국서(國書)에 일본 왕을 교(敎)한다고 했듯이 우리는 일본을 제후국(諸侯國), 아니면 속국(屬國)취급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유민이 일본을 다스린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7세기의 일본의 대표적 호족인 소아씨(蘇我氏)가 일본 18대 스슝 왕(崇峻天皇=일본에서는 32대 천황이라 함)을 암살하는 대란을 일으킴으로 일본은 극도로 혼란에 빠졌는데 고구려가 이를 수습해 대화개신(大化改新)했다는 것은 이미 기술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소아씨(蘇我氏)는 일본 역사상 처음 대호족(大豪族)으로 등장해 사실상 야마토정부(大和政府)의 통치권을 장악했다. 이 소아씨(蘇我氏) 역시 한국 가야계의 인물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고대 한민족이 일본을 지배하고 통치한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드러난 역사마저 부정하고 제멋대로 역사를 구성해 아무 거리낌 없이 교제(敎材)에 올려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천지가 개벽해도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일본은 고대 중세 근대까지 한국의 지배와 지도를 받은 것을 숨길 수 없다. 일본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한국이며 모든 면에 위대한 한국의 사상과 철학이 스며 있어 이를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순리를 저버리고 정도를 외면하고 부도덕한 만행을 하려는 것과 진배없다. 그 잘못된 피해는 일본의 자손만대에 까지 그 해악이 미치는 것을 제대로 자각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선생과 최인 선생을 비롯한 ‘부여 기마 족과 왜(倭) 및 신황기(神皇紀)’(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역사서 외 다수 서책을 참조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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