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적 사고의 정치는 선진 저해 한다

입력 2020-09-26 15: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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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필자는 23년 전 프레스센터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한국의 정신상황과 역사인식’에 대하여 강의를 준비했는데 이 특강을 주재한 분은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전 건설부장관과 교통부장관을 지내고 서울시장까지 역임한 이해원(李海元) 장관이다. 
 
당시 장관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양재동 다방에서 만나 이 장관으로부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제안 받았다.
 
그렇게 하게 된 특강의 내용인즉, “지금 세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고, 1905년 20세기 초에는 대학을 나오면 그 지식은 35년간 수명을 유지했으나, 30년대 20년, 60년대 10년이고 지금은 하루의 변화도 엄청나고 80년대 초부터 IMF같은 국제기구의 규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은 “달러($)가 남아돌아가니 돈을 쓰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무지한 말만을 하고 있었음을 대학의 강의를 통해서도 말했다. 사실 97년 12월 IMF의 통제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당시 중요한 환경조건 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아 비롯된 결과였다.
 
당시에 국제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환경조건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나라의 정치를 맡은 대통령은 국제 흐름을 전혀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기술혁신의 변화로 로봇이 두뇌노동을 감당하고 △정보화의 진전 △국제화의 진전과 산업구조의 변화 △가치관의 다양화 △고령화의 진전 △지역주의 중요성 증대 등 급속한 변화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대통령이나 국민 모두가 19세기 사고에 안주하고 있었다. 
 
정보화 시대에 따르지 못하면 도태하는데도 옛날 방식대로 정부를 이끌어 갔던 것이었다. 여기서 정보화 사회란 ‘투명한 능력의 사회’인데 우리나라는 ILO와 유네스코(Unesco)의 권고를 23개나 받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처 않고 있다가 IMF금융제재를 받아 국민에 고통을 주었다. 
 
또한 국제화의 진전으로 국내의 사고만으로는 새 시대에 적응 못하기에 국제연휴(國際連携)를 필수적으로 요(要)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등한시하고 제멋대로 말만 하다가 국제규제를 받은 것이었다.  
 
세상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소프트 경제 등의 진전은 지식집약화한 사회로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90년대 그 시기는 가치관의 다양화로 이에 맞는 정책을 해야 함에도 정리해고 등 사회에 심각한 문제만을 야기시키는 등 국제적 시각에서 문제해결은 뒷전이었다. 
 
지금도 고령화에 맞는 정책은 전무하다시피 하여 연령차별로 평생일터가 사라지고 노인들이 일터에서 내몰렸다. 구실은 젊은이에 직업을 준다는 명목이나 이는 미국에 103세 노동자가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 것으로 연령제한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도 재고를 요하는 일이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19세기적 정책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으므로 정보지식화 사회에 걸맞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과 우리도 환경조건이 변화한 국제사회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정책을 만들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려 한다. 
 
시대변화의 물결을 타고 선진화가 우선이다
 
미래학자인 앨런 토플러 박사의 말을 빌지 않아도 90년대 당시 우리는 역사적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20세기말 시대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와 고도산업사회를 거쳐 탈산업사회로 상징되는 제3의물결의 사회를 지나 제4차 산업혁명사회로 불렸다. 
 
그래서 창의력이 경쟁인 두뇌경쟁력의 시대가 되었고, 경험보다는 창조의 시대, 지식정보시대로 지구의 시대에서 우주의 시대로 이행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사고(思考)나 실제가 19세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당시 우리사회 상황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전근대적 사고의 경직성이 당시도 온 사회에 팽배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지식기반사회에 맞도록 정치도 경제도 사회일반이 편승(便乘)해가야 하는데  21세기에 맞지 않은 19세기적 현상이 온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 있다. 지난날의 잘못된 전근대적 사고의 경직성이 있다면 이제는 유연한 현대적사고와 학문에 부합되는 인물로 그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여전히 19세기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지식정보화와 제4차 산업혁명의 사회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하는데 정체(停滯)된 19세기적 사고로 시대변화의 물결을 인식하지 모르고 있다. 90년대는 고대지식의 150배 이상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하는데 세계의 흐름을 모르고 농경사회의 사고에 머무르고 있었다. 
 
지금도 이스라엘민족이 연간 60권의 책을 읽고, 이웃 일본이 30권의 책을 읽는 국민인데 우리는 책 한권 읽지 않으며 큰소리로 애국을 말하지만 오늘 우리 국민들같이 지식성, 자동성, 국제성, 책무성, 전문성, 신뢰성, 청렴성, 협동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정치가 아쉽고 이를 찾아보기가 힘든 사회가 되었다.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법과 상식도 무시,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면 된다는 지도층의 행태도 눈뜨고 못 볼 상황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는 찾아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애국심도 양심도 화인 맞은 양심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상황은 모두를 슬프게 하고들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법을 지켜야 할 정치인들이 법을 무시하고 궁색한 거짓 변명으로 이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국제간의 문제도 국제법적으로 처리해야 함에도 이를 외면하고 국내법으로 해결하려는 판결은 국격(國格)을 훼손시키는 수준 이하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또한 정치인은 국익을 우선하고, 학자는 진실을 밝혀야 하며, 언론인은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인은 국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고, 대다수 학자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언론인은 사실을 밝히기보다 정권의 시녀가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로 제정신 아닌 것 같다.
 
이게 정상적인가! 묻고 싶어지는 우리 자화상이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국민에게 눈물만을 안겨주고 있는 정치를 하고 있다. 또한 법 대신에 ‘떼 법’이 판치는 나라의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국가위상도 말이 아니게 퇴락됨을 모르고들 있다. 
 
21세기를 리드하는 지도자의 위상 견지를 
 
현재 우리는 시대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지식정보화시대의 물결이 세차게 부는 21세기를 리드하는 지도자의 위상을 견지하면서 모든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주변을 보면 엄청난 부정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은 지식 정보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학문, 사상, 인격 등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그 경쟁의 원동력은 사람의 품격과 학술수준의 첨단화가 그 바탕이 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이를 외면하는 근시안 같다.  
 
연구기능과 사고 및 사상, 인격과 정보력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음에서 각 방면에 국제경쟁력이 강해질 수 없고, 약화될 수밖에 없는 오늘이다. 이렇게 되면 21세기 지식정보화 물결을 타지 못함으로 나라가 세계 인류사회에서 꿈과 비전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한 두 가지 예를 들면 65년 한일협정 시, 청일간의 간도조약은 우리와 상관이 없음에도 우리국경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획정’한 내용을 그대로 국회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당시협정을 비준함으로써 세계에 국제법 무지의 나라임을 알렸고, 징용자의 판결 역시 한일협정을 무시한 판결로 국제법 무지를 노출시켰다. 
 
또한 국내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법체계는 봉건시대와 달리 자유경쟁이 원칙으로, 법도 계약자유원칙과 소유권존중원칙 및 자기책임원칙, 이 세 기둥이 기본인데 이를 무시하고 국가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전횡하며 이를 통제와 규제로 하는 것은 자유시장 경제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성장의 가장 강력한 원리는 인간의 자유선택에 있다. 국가의 통제와 규제로 한 나라가 성공한 예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에 신흥국가가 147개나 독립했는데 남미 신흥국가가 취한 정책을 추진한 나라는 모두 후진국 반열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2차 대전 후 147개 신흥국가중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남미 등 가난하고 배고파하는 실패한 나라가 취한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해서도 아니 되는 것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후 세계는 세상이 다 아는바와 같이 사회주의와 자본본주의 체제경쟁이 미국과 구소련의 경쟁에서 보듯 이미 결판이 났는데,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 정책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두뇌를 가졌음에도 노벨상 하나 못 받는 것도 우리나라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되고 있는 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 왔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179개의 노벨상을 받고, 일본도 30개나 노벨상을 받은 것은 19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과학과 기술경쟁에 19세기적 사고와 정책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한물간 이데올로기 교육도 문제이지만 탈 이데올로기시대에 거짓과 기만부터 바로 잡고가야 한다. 북의 남침도 일부 교사는 북침이라 하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48번이나 남침을 간청한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도 일부 교사들이 북침이라고 학생을 속이는 것도 이제는 그만둬야 한다. 이 나라를 수렁으로 끌고 가는 교육으로는 이 나라가 선진화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무는 잎이 아니라 열매로 결실을 맺는다’고 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 충고를 이제는 받아들일 때이다. 실존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역사에서 살길을 배운다”고 했다. 서양 격언에 “사회주의에 미쳐보지 않은 자는 바보요, 이를 믿는 자는 더욱 바보”라는 말은 왜 나왔겠는가. 선진화로 가야하는 길에 19세기 유령은 버릴 때라 생각된다. 
 
끝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은 법을 파괴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자유와 평등을 근본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자유가 없는 평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가 비트는 “법이 무시된 곳에 전제(專制)가 태어난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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