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조선은 한(漢)을 제후국의 하나로 다루었다
누차 살펴 본바와 같이 은(殷)의 뒤를 이은 주(周)는 서기전 770년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 견융(犬戎)의 압박을 받아 지금까지의 수도(首都)인 호경(鎬京)으로부터 낙읍(洛邑)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동주(東周)라고 말해지고, 그 중에서도 서기전 403년까지를 춘추시대(春秋時代), 그 이후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시대가 되면, 부족국가 수준의 주왕조의 권위는 이름뿐이고, 사실상 제후들의 들고 일어나는 대혼란의 난세(亂世)이었다. 이때 공자(孔子)를 비롯해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리는 사람들이 여러가지 ‘전쟁술’, ‘처세술’을 제창해서 이들을 받들어진 것은 춘추시대 후반의 일이다.
그런데 동주의 수도 낙읍(洛邑);현재의 낙양부근(洛陽附近)은 고대 우리민족의 문화발상지로 산물(産物)도 풍부한 하남성(河南省), 황하유역 지역으로 삼국시대의 독무대이기도 하고, 고도의 문화가 유포된 별명이 중원(中原)이라고 하는 곳이며 우리민족이 지배한 지역이다.
그런데 예맥의 모돈선우(冒頓單于)는 이미 기술한 동호(東胡), 월씨(月氏), 정령(丁零), 견곤(堅昆) 등을 차례로 격파했다. 그런데 전한(前漢)의 고조(高祖)는 서기전 200년 32만의 대군을 화북(華北)에 집결, 예맥을 도모하려고 했다.
그래서 운강(雲崗)의 석굴(石窟) 가까운 평성(坪城;山西省大同縣)까지 진군해 갔으나 그 때 돌연 예맥의 모돈선우가 이끄는 40만 예맥기마군단에 포위되어 한고조(漢高祖)의 32만의 대군이 여지없이 격파되고 말았다.
이에 패전을 인정한 한고조가 일족의 딸과 많은 선물과 함께 선우(單于)에게 보낸 것을 두고 이미 기술한 대로 지나와 일본은 예맥을 흉노라 하며 숨기나 이를 숨길 수 없다.
40만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부족국가 수준으로는 동원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직이고 체계적인 국가의 행적조직으로 능률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지나와 일본이 흉노라 하며 예맥조선 숨기나, 이는 예맥조선임이 분명하고 이를 감출 수 없다.
이 예맥조선의 기마군단은 그 후 남북으로 분열했으나 북 예맥은 중앙아시아에서 힘을 비축하고 얼마 안 되어서 유럽까지 정벌함으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하게 된다. 그 때에는 유럽에도 철제의 촉(鏃)과 화살의 선단(先端)에 부착하고 있었을 것이나 당시 유럽의 나라들도 첨예하고 강대한 예맥의 기마군단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유럽보다 우리가 투구와 갑옷 등자(橙子) 등의 무구(武具)에 있어서도 우리가 월등하게 앞서있고 익숙히 이용해왔기 때문에 예맥의 기마군단을 대적할 수 없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러한 예맥의 기마군단과 같은 나라는 이후 요(遼), 금(金), 원(元)이 계승되고 정복왕조가 되어 정복한 땅의 밭을 빼앗아 자기 민족에게 주고, 한인(漢人)을 둔전민(屯田民)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족의 반항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국가의 기초를 파괴하는 것이 되었다. 때문에 명(明)대에서는 군둔(軍屯), 민둔(民屯), 상둔(商屯)으로 나누어서 관리했다. 상둔은 소금상인에 의해서 변경에 설치된 둔전(屯田)을 말하는 것이다. 상인은 군량을 변경지배에 수송해 그 대가로서 소금이 공급되었다.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북방의 기마민족은 고대에는 모든 면에서 타민족보다 앞선 철재무기와 군사로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했고, 삼국시대도 중원을 지배한 것이다.
예맥조선은 3000년 전의 구국(舊國)이 없는 시대에 구국이라고 불리는 단군조선을 이어진 조선국이었다. 그러나 예맥조선이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며 한족을 지배함으로 짐승의 명칭으로 예맥(濊貊)이라 하나 이 예맥(銳麥)은 숙신씨(肅愼氏), 낙랑국과 함께 숨겨진 나라이다.
숙신씨는 단군시대에 대국이었고, 예맥은 3000년 전의 국가로 강대한 국가였다. 또 낙랑국은 이미 말한 바대로 서기전 1237~서기 32년까지 있었던 나라를 지나와 일본은 숨겨서 지우고 있으나 엄연히 존재했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漢書, 卷 28).
숙신씨는 순(舜) 25년, 4300년 전에 만(萬)여리 떨어진 지나에 궁시(弓矢)를 수출했다고 했다. 예맥은 3000년 전의 구국이다(黑龍江志稿 第一, 地理志,沿革). 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를 없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과감하게 나서서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제 나라 제 조상을 모르는 자는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자궁심이나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자손만대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도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으로 황폐화된 민족혼을 되찾아야 한다. 이는 우리의 찬란하고 위대한 빛나는 역사를 바로 세울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손만대의 자자손손이 세계에 빛을 발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정희철’[중국은 없다.]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유우찬, [한국사의 실체]. 朴昌和 찬술, 金星謙 번역,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朴昌和 筆寫 金星謙 번역, [고구리 창세기]. 檀檀學會編輯, [桓檀古記].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讀賣新聞大阪本社編,[騎馬民族の謎].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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