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반도사관 역사인가

입력 2020-12-26 13: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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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일본은 단군도 신화로 옮기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나 영국의 옥스퍼드사전(辭典)에는 단군이 실재인물임을 사전 509면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처럼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이 지구 250여 나라 중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상고사와 고대사를 제대로 아는 자는 1%도 아니 된다는 사실은 기가 찰 일이다. 우리나라 지도층이 우리 역사를 말할 때는 꼭 ‘반만년 역사’라고 말하는 것을 보노라면 피가 거꾸로 끓는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 역사를 가르쳤기에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광복75년이 되었으나 역사광복은 일제강점기 시대와 똑같이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이다. 우리의 국조(國祖)가 단군(檀君)이라 하는데 단군 이전에 배달(倍達國)과 환국(桓國)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역사교육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미국의 R. A Torry(1856~1928)는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찬란한 우리나라 역사와 정통문화가 세계 정상임을 모르고 있다.   
 
다시 G. 하비와 H.로이드(Gabriel Harvey, Humphrey Lloydis)가 말한 것을 인용하면 “자기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한국의 고대문화는 세계정상으로 ‘질투를 느끼게 하는 문화’라는 말이 외국인 입에서 나오는데도 정작 우리는 우리 문화가 고대부터 얼마니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미소니는 “한국인은 자신의 나라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기는 사업차 한국인을 자주 만나는데 한국 사람들은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못 봤다면서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 무지를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1990년 콜로라도 고생물학자(古生物學者)인 M. 라클리 교수와 러시아의 역사학자 푸틴은 우리가 상고시대와 고대부터 대륙의 주인으로 그 나라는 환국(桓國)과 배달국시대에도 대륙을 지배하고 그 중심에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학자들도 연구하고 말하는데 우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상. 고시대에 우리나라 역사의 미흡한 점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사연구 잘못한 사가들의 잘못은 바로잡고 가야 한다
 
우리나라 학자는 상고조선사를 연구하는 분이 극히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 역시 많은 사서(史書)를 보면서도 기록이 너무 없음에서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이를 그냥 넘어 갈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역사자료가 너무 없다는 것과 환국시대(桓國時代)는 문자가 없는 시대라서 더 어렵고 고대(古代)도 지료를 지나(支那)와 일본이 모두 없애버렸다. 여기에 이미 역사연구를 해온 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너무 왜곡된 지나와 일본사서(日本史書)를 참고로 해서 책을 쓰고 있기에 잘못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문정창(文定昌) 선생이 저술한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도 많은 연구를 한 흔적이 보이나 지나와 일본학자가 쓴 왜곡서적을 보고 기록한 것이 많다. 예를들어 소전(少典)의 아들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서방족(西方族)에 장가들어 동방의 염제(炎帝)를 제거하고 치우(蚩尤)와 73회를 싸워 이겼다고 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긴 적이 없다.
 
또 위만조선이 예맥조선과 진(眞)조선의 일부를 사탈(詐奪) 흡수했다는 것도 잘못되었다. 위만조선은 예맥조선을 단한 번도 대적한 적이 없고 위만이 한(漢)을 침입하였을 때 한(漢)이 구원을 요청하자 예맥은 기병(騎兵) 500기를 보내어 위만을 격퇴시키고 위만도 예맥에 승복하며 예맥이 한을 치라 하면 순응한 기록을 숨기고 있다. 
 
또 위만조선이 망한 후 조선족의 국가는 일시 단절됐다고 하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신라는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고, 그 이북을 당(唐)이 차지했다는 것들도 모두 허구이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제멋대로 쓰고 있는데 실망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는 신라와 발해 말갈(靺鞨)이 나눠 가진 것은 삼국사에 엄연히 기록이 있음에도 이를 연구하지 않고 지나와 일본의 왜곡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에 일제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당태종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 내에 몰아넣기 위해 반도의 평양을 낙랑(樂浪), 대동강(大同江)을 패수(浿水), 압록강을 염난수(鹽難水)등 평안도(平安道) 지방의 지명(地名)을 한대낙랑군지(漢代樂浪郡地)의 그것과 동일하게 만들어 놓았다.
 
군국일본(軍國日本)은 조선을 항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말도 되지 않은 왜곡조작을 어용학자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제멋대로 했다. 대륙에 있는 지명을 반도로 옮기고 지도도 제멋대로 날조, 반도 안에 있었던 것 같이 조작했다. 
 
예컨대 일본의 세기노 사다(關野 貞)등은 평양을 위만의 왕검성(王儉城)이라고 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지나 학자 양수경(楊守敬)은 왕이 4가지 조건을 들어 평양이 낙랑군의 치지(治址)가 될 수 없다고 하니 당황해 대동강변 구두진리(狗頭津里)소재 8천평의 소구능(小丘陵)즉 그들의 말하는 토성을 낙랑군의 터라고 내세웠다고 말한다. 
 
이 조작한 조선고대사를 각급학교에 강요했고 광복 후 일부 학노들은 이를 정설로 받아서 가르쳤기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국민일반의 역사 상식화 된 상태이다.  
 
유라시아 80% 우리강역역사 모르는 우리 한심
 
이를 알기 위해서는 민족사와 정치판도사를 지나 등 타민족과의 관련에서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1만2000년의 우리역사 속에 민족대 민족 간의 교섭과 그 정치세력의 변동은 심히 다기다단(多岐多端)하며 그 역사활동무대는 상고시대부터 유라시아가 무대였으나 지나와 일본의 위서(僞書)에 현혹되어 우리역사를 크게 틀리게 오전(誤傳)해 놓았으나 우리 대륙의 활동무대는 변할 수 없다.  
 
우리 기마민족(騎馬民族)의 분포지역은 이미 밝힌 대로 광대한 지역이었다. 시원(始源)부터 우리는 유라시아의 80%가 우리영역이었고 지나는 20%에 불과했다는 것은 지나의 임혜상(林惠詳)교수도 밝히고 있다.(林惠詳 箸 中國民族史)上 參考).
 
인종의 분류가 생물과학적으로 처음 취급된 것은 린네(C, VON Linne;1707~1778년) 이래의 일이며, 최동(崔)棟)박사는 조선족의 조상족(祖上族)은 인류의 최고문명(最古文明)을 건설한 바빌로니아의 악카드(Akkad)족의 분파이며 서기전 3000년경 중앙아시아로부터 동방에 이동해 북만주 송화강(松花江) 연안지대에 정착, 발전해왔다고 하고 있는데 그 반대이다. 
 
러시아의 민족학자 S. M. Shirokogrov는, 만주계 선(先) 퉁그스족은 서기전 3000년기(紀)에 이미 황하(黃河)와 양자강(揚子江) 각 중류이하의 중간지역에 우리민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고, 또한  지나 해안지대, 만주, 한반도, 동부시베리아지방에는 고(古)아시아족이 그 때까지 살고 있었다고 했다.  
 
지나의 서양지(徐亮之)교수는 세석기문화족(細石器文化族), 즉 동방족은 시베리아 바이칼호(湖)지방에서 살다가 약 6000년 전 부터 점차 만주, 북지방으로 이동해온 종족이라 했다. 종족의 구별은 언어에서도 구별되나, 이 언어도 오늘날 인류세계에 약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했다. 
 
그 중 지나계의 독립어, 알타이계의 교착어(膠着語), 앵글로색슨계(系)의 굴절어(屈折語)는 현대 삼대어계(三代語系)라 일컫는바 조선족과 일본인은 굴절어를 사용하는 어족(語族)으로 나눠지고 있는데 상고시대 우리말을 사용했다고 하고 있다. 
 
러시아의 민족학자 S. M. Shirokogrov는 다년간 지나에 머무르면서 인류학적 조사를 했고, 지나인의 형질(形質), 인류학적 분야와 퉁그스 전승(傳承)문제에 관해서 일연(一連)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퉁그스- 만주족의 조상 퉁그스족은 원래 지나 중앙부에 살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지금 한국인 선조인 것을 말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도 우리는 반도가 아닌 대륙으로 우리의 영역은 삼국사(三國史)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권(卷)58의 지역 즉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지역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伽倻), 왜(倭)가 대륙에서 건국하고 발전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글을 맺으며 - 우리가 대륙의 주인임을 숨길 수 없다
 
세계학자들은 ‘서구문명을 동양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고 했다. 이 동양의 나라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 주인공인 것을 잊고 있다. 철기문명(鐵器文明)도 우리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것은 석기시대에 우리는 신석기시대로 철기(鐵器)를 통해 대륙을 지배한 역사를 숨길 수 없다. 1만2000년 전의 초기 동이(東夷)사람들이 동아시아를 떠나 메소프타미아에 이른 사람도 다름 아닌 환국(桓國)의 부족인 우리들이었다. 
 
이 흔적은 고구려벽화(오회분 4호능(陵) 불의 신, 조왕신, 참성단, 불씨, 부싯돌 신라 다동식 등잔, 아궁이, 온돌, 화로, 불가마, 부락 등 이 땅의 흔적은 팔레스티나의 여리고(Jericho) & 이라크의 자르모(Jarmo)에 전해진 것을 유물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고 있다. 
 
농경(農耕)도 충북 청원군 소로리, 재배볍씨 59톨은 1만5000년 전인 것은 세계적 언론매체인 BBC도 인정하고 있다. 2001년 국제 벼 유전학술회의와 2003년의 세계고고학대회는 전인미답(前人未踏) - 답자(畓字)는 우리만이 쓰고 지나, 일본에는 없다.
 
우리는 신석기시대 이래 시베리아 바이칼호 지방에서 시원을 발한 우리 알타이어족이 먼저 송화강(松花江)유역에 정착한때로 부터 만주, 한반도 북지나(北支那)에서부터 유라시아에서 최고(最高;最古)의 문명국이 우리들이었다.  
 
1만3000년 세계의 인류는 뉴기니아 원주민이나 유럽인들 구별없이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구석기시대로 문명정도가 거의 같은 출발선상에 있었으나 우리는 현대사회의 주요농산물과 가축이 거의 유라시아에서 유래되고 농사도 우리가 보급했다. 
 
이는 2014년 충북단양군 하진리 세계최초의 자(尺), 눈금 돌(20,6cm-0,4cm)와 첫 계량형(計量型)-규격화, 신척(神尺), 금척(金尺)은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말해준다.  
 
프랑크 <리 오리엔트>는 “세계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의  역사라 했다. 지나의 낙빈기(駱賓基;1917~1994)도 1988년간 <상해 복단대 인류학회 논문>에 5000년 지나 역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허구로 시작된 역사라며, 역사를 바로 세워야 지나다워진다고 글을 쓸 정도이다. 원등귀(袁騰貴)가 지나의 역사는 5%도 아니 된다고 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자(孔子;서기전 551~서기전 479년) 역시 역경(易經) 설괘전(說掛傳)에 “만물이 진(震)에서 나오니 진(震)은 동방 한국(韓國)”이라 하고 있으며 황제내경(皇帝內經)에 동방(東方)은 지구가 형성할 때 최초로 문명이 발생한 곳”이라 했다.
 
러시아의 R, S, H 자리카시노바는 “한반도 내에는 구석기시대 벌써 신석기 사람이 살았고 다른 곳에 비해 일찍이 한국적인 문화의 독특성을 발전시켰다” 고 했다.
 
당시 한반도는 기후가 온화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세계최대의 공용알 화석지(보성 선소해안 시화호), 세석기문화왕국이었다. 1990년 고생물학자 M, G,라쿨리 콜로라도대교수는 “한국은 고대 세계수도”라 했다. 동양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역사의 시작이다.
 
우리는 문명, 문화를 잉태하고 문명과 문화를 꽃피운 민족과 국가인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앞으로도 인류사회에 크게 공헌해야 하는 민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상(以上)은 최태영,[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정희철’[중국은 없다.]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유우찬, [한국사의 실체]. 朴昌和 찬술, 金星謙 번역,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朴昌和 筆寫 金星謙 번역, [고구리 창세기]. 檀檀學會編輯, [桓檀古記].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讀賣新聞大阪本社編,[騎馬民族の謎].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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