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바르게 기록해야지 위작(僞作)해 왜곡하고 조작된 것을 역사라 할 수 없다. 자학반도식민학노(自虐半島植民學奴)들이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35권을 금과옥조로 말하는 역사는 우리역사가 아니다.
일본학자들까지도 우리 역사가 왜곡사라는 것을 말하고 있음에도 광복 75년이 된 오늘까지도 반도역사라 말하며 1만2000년의 역사를 반만년역사라 하는 자를 보노라면 한심하기가 그지없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허구 역사를 말하는지 울화가 치솟는다.
구미의 학자들까지도 이미 기술한 대로 우리의 신석기시대는 1만8000년 전이라 하는데 우리는 반도타령만하고 있음에서다. 우리는 환국시대는 물론, 신석기시대 이래(以來)도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湖)지방에서 시원(始源)을 발한 알타이어족이 대륙을 지배했다.
오늘 우리나라 학노들은 우리민족의 역사상한(歷史上限)을 고조선으로 하고 그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을 소홀히 함은 사학(斯學)의 타락(墮落)인 것이다. 단군조선은 환(桓)나라 후손인 환웅(桓雄)이 건설한 나라요, 알타이어계 동방족의 시원인 염제신농씨, 태호복희씨는 물론 그 이전까지 소급되는데 우리 역사의 시원도 모르고 있다.
신석기 중기부터 시베리아 바이칼 호 지방에서 유소씨(有巢氏)~수인씨(燧人氏)~복희씨계(伏羲氏系)의 부족이 기후가 온난(溫暖)한 동방의 평야를 찾아 북만주 흑룡강~남만주~송화강~서부만주지방으로 흐르는 여러갈래 강하(江河)들의 유역을 타고 내려와 만주~한반도~북지(北支)지방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서기전 3000년기(年紀)에 이미 일대세력을 이룩하고 있었던 것인데 요(堯)~하(夏代)의 지나인(支那人)들은 이(夷)또는 숙신씨(肅愼氏)라 호칭했으며 주대(周代)에는 이적(夷狄) 엄윤(嚴狁)이라 했으며 춘추(春秋)~한대(漢代)에는 호(胡), 맥(貊) 흉노(匈奴)라 했고 한(漢)~위(魏)~진대(晋代)에는 예맥(濊貊), 한(韓), 오환(烏桓), 선비(鮮卑)라 했으며 17세기 이래 서양인들은 퉁구스(Toungus)족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퉁구스족의 유래에 관해 Castren은 시베리아 모든 유족(遊族) 퉁구스들은 흑룡강의 비옥한 유역지대에서 이동해온 것이라 하고, 이들의 언어와 민속에 대하여 여러저서를 발표한 P, P Schmidt는 일반학설과는 반대로 발해나 읍루족(挹婁族)을 퉁구스~만주족으로 보지 않고 한국인이라 주장한다.
한편 러시아의 민족학자 S, M, Shirokogorov는 퉁구스~만주족의 조상 즉 퉁구스족은 원래 지나(支那) 중앙부에 살고 있었다는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으며 또 Parker Koppers등은 동호(東胡), 선비(鮮卑), 척발(拓拔)을 퉁구스라 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는 한반도사가 아니라 아시아 역사인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상·고대사 연구의 전제인식(前提認識), 바르게 해야
어느 나라나 민족은 역사현상(歷史現象)의 기본요소이며, 우리 역사의 연구는 먼저 우리 겨레의 민족사(民族史)와 정치판도사(政治版圖史)를 이민족(異民族)과의 관련에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곡, 조작된 것은 역사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상고사를 연구하지 않고 단군조선에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역사를 제대로 연구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나와 일본은 우리의 연구풍토를 역으로 역사조작에 고대부터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두 가지 예를 든다면 당고종(唐高宗)은 668년 고구려를 멸망되자 강한(强悍)한 조선족의 역사를 한반도내에 몰아넣기 위해 평양(平壤)을 낙랑(樂浪), 대동강을 패수(浿水), 압록강을 염난수(鹽難水)라 하는 등 펑안도지방의 지명을 한대(漢代) 낙랑군지(樂浪郡地) 의 그것과 동일하게 만들어 놓았다.
지난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당태종(唐太宗)은 일찍부터 저작랑(著作郞) 소덕언(蘇德言) 등에게 괄지지(括地誌)를 편찬하게 했으며 괄지지(括地誌)가 비로소 고려도(高麗都) 평양성(平壤城). 본한낙랑군(本漢樂浪郡)이라 했다.
이로 인하여 당대(唐代)에 편찬된 정의(正義). 정체불명의 무능서(茂陵書). 송대(宋代)에 편찬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등이 그와 같이 전했고 그러자 그 후의 여러 사람들이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등에 그와 궤(軌)를 같이 하는 주서(注書)를 달아 놓았다.
또한 일본은 러일전쟁 후 만주와 조선을 요리하기 위해 군국일본은 남만주철도회사의 출비(出費)로 백조고길(白鳥庫吉) 등에게 만주역사지리와 조선역사지리를 편찬하게 했다.
이로 인하여 백조고길(白鳥庫吉)은 '만번한(滿番汗)은 압록강이다, 평양은 한대(漢代) 낙랑(樂浪)이다, 진번군(眞番郡)은 압록강북안(鴨綠江北岸)지방이다' 등을 내용으로 한 만주역사지리와 조선역사지리를 편찬했던 것이다.
여기에도 불만을 품은 조산총독부 수사관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는 백조고길(白鳥庫吉)을 크게 비난하고 '만번한은 청천강이다, 진번군은 충청남도다' 등을 내용으로 말도 아니 되는 ‘만주발달사(滿洲發達史)’를 발간했다.
또한 동경제국대 세기노 사다(關野 貞)는 러일전쟁 개전 2년 전 부터 대한제국 내에 잠입해 그들이 말하는 고적(古蹟)조사 사업에 착수했으며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개설되자, 세기노 사다 등에게 고고학적 조사를 명하니 세기노 사다는 평양(平壤) 지방에서 고구려유적조사에 착수했다.
동경제국대교수 도리이 유조(鳥居龍藏)는 1909년 한낙랑시대(漢樂浪時代)의 고적조사대를 이끌고 만주에 들어가 조사한끝에 남만주조사보고서를 일본학계에 제출했다.
이에 조선총독부가 이도리이(鳥居龍藏)를 조선사편찬 사료수집원으로 촉탁하니 그는 전게(前揭)고구려유적 조사사업을 한대(漢代)낙랑유적 조사사업으로 변경하게 했다. 이같이 지명이나 국명을 제멋대로 왜곡을 한 것이 이들이 한 짓이었다.
사가(史家)의 임무는 역사사실을 정확하게 조사해 그것을 기전(紀傳)함과 동시에 그러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연구, 체계 세워 엄정한 역사학을 성립,수호, 발전시킴에 있는데도 우리사학계는 국치(國恥)연대에 위작(僞作), 날조(捏造)된 설(說)들을 그대로 승전(承傳)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민족심리, 민족정기, 민족문화, 국민사기의 손상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以上은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1面~6面 參照, 引用했음).
역사진실은 상황따라 바꿔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원로 사학자중에도 660년 ‘백제와 668년 고구려가 망하자 통일신라는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고 그 이북의 광역을 당(唐)이 차지했다’고 쓰고 있는 서물(書物)을 보노라면 어쩌다가 이런 위작(僞作), 날조(捏造)된 서적을 참고해 쓰는지 안타깝다.
백제는 660년 7월18일 망(亡)하는데 이는 웅진성의 성주인 니식(禰植)이 싸워보지도 않고 당(唐)에 항복하려고 의자왕이 항전할 의사를 배신하고 왕을 앞세워 주군(主君)을 소정방(蘇定方)에게 넘김으로 대 백제가 멸망하게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곳은 대륙에서의 일이지 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제가 망한 후 흑치상지(黑齒常之)장군은 백제의 250여성을 모두 탈환했다고 했다. 이 성들은 반도에 없는 성들이다. 이에 대한 기록은 구당서(舊唐書)와 당서(唐書), 우리 <삼국사>와 <삼국유사>까지도 동일하게 백제 땅을 신라(新羅)와 발해(渤海)가 나누어 차지했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한 4곳의 기록을 보면, 구당서(舊唐書) 권199상17쪽과 신당서(新唐書)권22-19 삼국사권28-12와 <삼국유사>는 “<삼국사>에 이르기를 백제 말년에 발해 말갈과 신라가 백제 땅을 나누었다.(三國史云百濟末年渤海靺鞨新羅分百濟地)”고기록하고 있다.
한편, 당(唐) 의봉(儀鳳) 년간에 융(隆)을 웅진도독 대방군왕으로 삼아 귀국하게 해남은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곧이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신성으로 옮겨 통할(統轄)하게 했다. 이 때 신라가 강성해지니 융(隆)이 감히 돌아오지 못하고 고구려에 가서 의탁하고 있다가 사망했다.
이렇게 되자, 무후(무(武后)가 그의 손자 경(敬)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하려 했으나 그 땅이 이미 신라. 발해 말갈에 의하여 분할 통치되고 있었음으로 나라의 계통이 마침내 단절되었다는 것이 <삼국사>의 해석이다.
분명한 것은 <삼국사권>46이나 <남제서>권58의 위치가 반도가 아닌 대륙인 것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강성한 때는 유연제노(幽燕齊魯) 오월(吳越)을 다물(多勿)해 수(隨)나라 멸망도 요(遼)의 동쪽 정벌에 기인한 것이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이 지역을 분명히 말하면 유(幽)는 하북성북부, 연(燕)은 산서성북부, 제(齊)는 산동성북부, 노(魯)는 산동성남부, 오(吳)는 강소성 남부, 월(越)은 양자강 이남이다. 이곳은 반도가 아닌 모두 대륙에 있는 나라들로 이는 사기에서 오대사까지 입증된다.
글을 맺으며
지나(支那)의 사기(史記;서기전95~서기전91)에서 오대사(五代史;서기973~1053년)까지의 기록에서 입증되는 우리 고대사도 제대로 기록하지도 않으며 왜곡 날조하는 역사서는 사서(史書)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왜곡되고 날조된 것을 참고로 논문(論文)도 가치가 없는데도 우리 학계는 논문으로 보고 학위를 남발하는 것은 참 역사를 매장하는 것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행위로 범죄와 진배없다.
이런 결과, 우리 자손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애국심도 공동체의식도 정의심도 연대 의식도 제대로 배양할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가서 가치관마저 변질시켜 법(法)도 원칙도 무너뜨리며 이해관계에 매달려 사회의 어두움만 배양시키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선진국과 같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인류사회에 상식이 통하고 법과 원칙이 바로서는 모범된 국가로 발전되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바로 세워나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바로 해야 할 사명과 책무라 사료된다.
신축년 새해를 맞으며 광복75년이 되어도 정체되어 있는 우리 역사의 현실을 우리 손으로 바로 세우는 다짐과 결단으로 이를 실현토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할 때라 본다.
새해를 맞아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상(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발해가 백제 땅을 차지하다.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古代日本史」. 「韓國史の延長」. 정희철’[중국은 없다.]. 「.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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