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와 일본, 왜 우리역사 반도로 밀어 넣는가

입력 2021-02-06 1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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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 역사는 몰지각한 반도사관자들이 고조선부터 말하고 있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지나(支那)의 주(周), 진(秦), 한(漢), 당(唐)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25사(史)도 우리역사는 고조선 이전의 구리(九黎)시대의 국호시대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史記40 1)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된 역사를 그대로 전파하며 연구는 뒷전으로 하고, 지나(支那)와 일본이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말살하며 유라시아와 대륙 중원(中原)역사를 숨기고 있으니 이는 역적 짓이나 나름없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국가기원을 고조선으로 하고, 이를 기록한 ‘삼국유사’를 효시(嚆矢)라 하며 받들고 있어 국사편제는 왜곡을 더할 뿐으로 개선의 기미가 없다. 이런 자들은 광복 후에도 일제강점기시대 교육을 받은 교육자들의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는 매국적(賣國的)행각은 그대로 둘 수 없는데도 교육부 자체가 아무런 인식이 없는 상황이다.
 
지나와 일본이 우리 역사서를 다 불태워서 사료가 없어졌으나 몇 권되지 않은 사서와 광개토태왕비(開土太王碑), 진흥왕비(眞興王碑), 지나의 사료(史料)에서도 충분히 고증되고 있음에도 연구는 않고 우리역사를 부정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이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며 학자의 양심이 있는 자들인 지 의문이 갈 정도이다. 삼국사기도 우리나라 영역이 대륙의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고조선의 영역임을 뒷받침하고 있음에도 삼국사를 부정하고 삼국유사를 부각시키며 왜곡만 하고 있다.
 
역사 무지가 도를 넘는 수준이니 통탄할 일이다. 우리 국민도 역사무지가 하늘에 닿아 있는 상황으로 그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우리역사를 고증해 보면 바로 할 수 있는데도 사학자가 아닌 가짜 학자들, 즉 사학자(詐學者)들로 인해 우리역사는 말이 아니게 훼손이 될 뿐만 아니라 송두리째 뒤엎어놓고들 있다.
 
지나는 이미 살펴본 대로 고대부터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나 우리가 대륙을 지배하고 지나에 모든 문물제도와 기미정책(羈縻政策), 기마전술(騎馬戰術), 철기문화며 농업문화권을 형성하게 해 지나를 자극하고 발전하게 했다.
 
오늘은 지나와 일본이 우리역사를 대륙에서 반도로 밀어내는 의도는 다른데 있지 않고 그들 역사가 우리와는 비교가 아니 되게 열등함을 숨기기 위함임을 밝히려 한다.
 
지나 역사는 4000년 역사라 하나 고작 1000년 역사일 뿐이다
 
지나의 역사를 보면 은(殷)시대가 서기전1600년~서기전1100년)경부터 주(周)시대(서기전1100년경~서기전770년으로 보고 있다. 역사시대에 들어간 이 은(殷)시대의 군주(君主)를 보면 모두 우리 동이족들이다. 이 때 한족(漢族)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또한 은(殷)시대 후 주(周)도 한족이 아니다. 이 은(殷)과 주(周)나라도 진출방향을 보면 황하유역에서 탄생해 낙읍(洛邑;洛陽)과 호경(鎬京)후에 장안(長安-현재의 서안(西安)으로부터 확대하고 있음을 본다. 당시 한족(漢族)집단은 형성조차 않은 시대다.
 
지나는 한족 집단이 서방(西方)으로부터 사막을 넘어서 황하와 위수(渭水)에 와서 정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마치 한족이 국가를 탄생시킬 집단으로 추정하나 당시 한족은 지도자도 타민족을 장악할 능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서기전770~서기전 403년까지 367년간 계속되었으나 이 기간 사서(史書)에 나오는 민족은 거의가 동이족으로 한족이 아니다. 이 춘추전국시대부터 동이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전해준 철기(鐵器)의 사용도 시작된 때이다.
 
한편 춘추시대를 이은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서기전 403~서기전 221년까지 약 200년간을 말하는데, 지나에는 구래(舊來)의 진(秦), 초(楚), 연(燕)과 신흥(新興)의 전제(田齊), 한(韓), 조(趙)의 7개국이 부국강병책으로 병립한 시대였다.
 
이러한 제후난립(諸侯亂立)의 전국시대를 진(秦)은 기마민족(騎馬民族) 병사를 포용해 기마전술의 습득과 군마의 수입증산에 역주(力走)한 진(秦)이 같은 유목민족으로부터 기마전술을 배운 군사대국 조(趙)와 라이벌 관계로 조와 대립한다.
그러나 진(秦)이 조(趙)를 파(破)함으로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군사 균형이 일거에 무너져서 800년 만에 지나를 통일한 것은 진(秦)의 정(政), 즉, 진왕(秦王;서기전 221~서기전 206년)이었다. 그들이 진시황(秦始皇)이라 일컫는 자이다.
 
또 전한(前漢)시대(서기전202~서기8년)와 후한(後漢)시대(서기25~220년)과 삼국시대(三國時代(220~280년)도 한족(漢族)이 지배한 적이 없다. 모두 동이족으로서 한족 아니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북위(北魏(386~534)-송(宋(420~479년)에 한족이 지배한 것은 얼마인가! 수(隨)시대(581년~618년), (唐)시대(618~907년)도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다. 그리고 오대십국(五代十國;907~960년), 송(宋)시대(960~1279), (元(1271~1368년)이나 명(明; (1368~1644)과 청(淸); 1636~1910년)의 왕족계보를 봐도 모두가 동이족이다.
 
지나 역사가 4000년이라 하나 이는 허구의 역사다. 지나의 역사는 원등비(袁騰飛)가 말했듯이 지나의 역사는 5%도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그 역사 내용을 보면 1000년 내외라 하는 것이 옳다. 이러기에 그들은 우리역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지명과 지도를 옮기고, 상, 고대사를 지우고 숨기며 조작을 하는 것이 일상이다.
 
일본의 역사도 숨기고 덮으며 거의 조작되어 있다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 대륙사를 반도사로 하는 또 하나의 나라가 일본(日本)이다. 일본은 대륙에서 왜(倭;衛)등으로 발음은 ‘와’로 불리는 부족으로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따라서 고대에 일본열도(日本列島)에 동이왜(東夷倭)는 없었다.
 
왜(倭)는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가라와 같이 동이전에 기록된 것은 모두 동이이기 때문이다. 왜인(倭人;와인)들의 활동지명이 진번군의 동쪽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조선(朝鮮)의 후예이기 때문으로 보았기 때문에 동이(東夷)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왜(倭;와)는 서기670년에 사라진 나라 명칭이다. 왜는 현재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삼국사기 및 당서(唐書)에 670년 12월에 왜(倭)가 그때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했으니 그때 사라진 나라이다. 그러던 일본을 왜 우리는 왜(倭)라 하는 것인가!
 
이는 1592년 일본이 임진란 이후 일본을 양자강시절 야만인이라는 데서 낮추어 부르는 것이 아닌가! 추정되나 정확히 이렇다하는 답은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일본서기에는 국호(國號)변경의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즉 왜(倭)가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지나(支那) [25사(史)]에 등장하는 왜국(倭國)은 670년에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당서(唐書)에는 함형원년(咸亨元年;670년) 왜(倭)가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도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왜(倭)가 일본 국호변경기록이 없다. 왜 기록을 하지 않고 숨기는 것인가?
 
이것은 일본이 지난날 타이완(대만)이 왜(倭)의 이주(夷洲)였고 670년 일본이었음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일반적인 서책에는 타이완은 1600년 이전은 모른다고 하는 것도 있고, 한(漢)나라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도 하고 있다.
 
북경대학교 역사자료집에 의하면 타이완(臺灣)은 이주(夷洲)라 명기하고 있는데 이주(夷洲)는 후한서(後漢書)부터 왜(倭)의 이주(夷洲)로 기록하고 있다. 후한서왜전(後漢倭傳)에 관계된 지명으로 회계(會稽), 주애,(朱崖) 담이(儋耳), 이주(夷洲), 단주(澶洲)가 있는데 회계(會稽)는 절강성, 담이(儋耳)는 귀주성, 주애(朱崖)는 해남도, 단주(澶洲)는 항주입구 바다, 이주(夷洲)는 타이완을 나타내고 있다.
 
왜(倭)가 당(唐)과 사로신라(斯盧新羅)에 의하여 본거지에서 축출되며 타이완을 이주(移住)하게 되고 이주(夷洲)에서 일본을 재건하고 본국탈환의 꿈을 키우며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사로신라의 장보고에 의하여 봉쇄를 받았기에 일본을 건국한 왜인들은 국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일본서기도 일본열도 기록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지나 25사(史)’ 동이전(東夷傳), 왜(倭)의 위치를 일본열도에 맞추려고 노력해도 맞지가 않고, 오히려 동이역사전체를 흐리게 하고 있다. 그것은 동이전의 왜(倭)는 일본열도에 존재하고 있지 않기에서다.
 
여기서 우리도 바로 알아야할 것은 동이전에서 백제(百濟), 사로신라(斯盧新羅), 가라(加羅)도 대륙에 있어서 반도와 무관한 나라이다. 동이전은 우리와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산서성 요(遼)를 중심으로 동서를 가르는 ‘지나 25사(史)’ 동이전과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공통부문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리고 일본서기도 일본열도의 기록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지진과 홍수가 많은 자연조건을 가진 일본열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만큼 자연현상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서기의 일식(日蝕)기록을 ‘지나 25사(史)’동이전을 아시아 전 지역에 대입했을 때 집중관측 지는 양자강 이남의 기록으로 확인되기 때문이기에서다.
 
일본열도에 진출하기 전 왜인(倭人)들이 사는 곳으로 백제유민이 가서 나라를 세웠다. 이들은 본토회복을 위해 대륙 동남해안으로 진출해 본토회복을 기도했으나 성공치 못하자 일본열도로 진출한 백제와 왜인들의 후예는 동일본을 건국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진출한 낙랑인, 고구려인, 신라인, 백제인, 가라인들의 후예(後裔)가 왜인(倭人;倭寇)들과 함께 동일본을 건설한 것으로 보여진다.
 
1279년 원(元)나라 정벌 때부터 명(明)나라 때까지 본토 회복을 반복시도하며 사로신라, (元), 명(明)의 동해안에 출몰하기도 하고 고려 땅에도 침범했으나 본거지를 잃어버리고 개척지인 유구열도를 거쳐 일본열도까지 진출하게 되였고, 중앙정부가 없는 일본열도로 완전히 이주해 버렸다고 보고 있다.
 
그 후 타이완은 네덜란드가 1624년 남서안에 침입해 안평(대남)에 젤렌디아스(Zeelandia)성(城)을 구축하고 대남시(赤嵌)에 프로바덴시아 성(城)을, 북부 기륭에 트리니다드 성(城)과 산토도밍고 성을 구축하고 있던 스페인에 대해 공격해 1642년 네덜란드 통치가 시작됐다.
 
이 후 명(明)나라 유신 정성공(鄭成功)이 1661년에 건너와 대륙회복을 꿈꾸었으나 그 이듬해 1662년 사망하고 3대 32년 만에 청(淸)나라에 굴복했던 것이다. (以上은 吳在城 編著, [九黎系, 倭-日本史] 2面~64面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힘)
 
이러한 역사를 가져서인지 왜(倭)의 역사와 이를 이은 일본역사가 잘못 인식되어서 타이완 역사는 1600년 이전이 없었던 것처럼 비치게 되어 숨겨져 있다. 따라서 일본인과 타이완인은 자신들 역사를 오늘까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吳在城 編著, [九黎系, 倭-日本史]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이야기].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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