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3일 우리역사연구원 원장이신 오재성 선생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 내일 ‘삼국사편찬 875돌을 맞는데 참석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필자는 우리역사연구원에 가서 삼국사편찬에 수고하신 11분에 대한 기념제를 봤다.
평생을 삼국사연구에 매진하신 오재성 원장의 김부식 편저자를 위시해서 김영온, 최우보 이황중, 박동계, 서안정, 허홍재, 이온문, 최산보, 김충효, 정습명과 재판(再版)에 수고하신 김거두, 최득, 민개(閔開)에 대한 고마운 헌제(獻祭)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1146년 2월4일 [삼국사(三國史)]가 편찬이 된지 875주년이 되었으나 우리 사학계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진한데에 통탄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삼국사를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음으로 우리 국민들의 역사지식은 온통 왜곡된 내용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 역사무지에 대해 크게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역사를 바로세우지 않고는 우리의 정체성은 영원히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요새 코로나19로 인해 연구하며 가끔 KBS스폐셜에 나오는 역사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거의가 모두 반도 안에서 이뤄진 것 같이 왜곡된 내용으로 꾸미고 있는데 너무나 한심함을 금할 수없는 기가 차는 내용뿐이었다.
역사는 진실만을 기록해야 하는 것으로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밝혀 온대로 우리역사는 상고시대(上古時代)는 유라시아의 영역을 지배하고 고대도 중원(中原)을 지배한 역사인데 아직도 자학반도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시각이 많다.
삼국시대의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 왜(倭)도 그 건국한 곳이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 고구려(高句麗) 평양(平壤) 및 장안성(長安城)은 현재 대륙 지나(支那)의 하북성(河北省)에 있었고 모두 태행산맥(太行山脈)의 동쪽에 있었다.
고구려는 서화(西華) 항성(項城), 덕안(德安)동쪽을 지배하며 통치했던 사실이 지나의 사서에 분명히 기록들을 하고 있다. (唐書 卷 二百二十 列傳 十七, 遼史 卷四十八 志 七. 北史 卷九十四 列傳 十五. 後漢書 七十五, 三國志 三十).
오늘은 상고시대부터 고대국가들이 모두 대륙에서 동이(東夷)의 국가들을 건국하고 대륙을 지배한 것을 우리 사서(史書)뿐 아니라 지나사서(支那史書)에서 밝히려 한다.
지나(支那)는 왜 우리를 동이(東夷)라 하는가
우리 민족을 지나사서(支那史書)에서 보면 동이족(東夷族)이라 일컫는데 왜 이들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있는가? 그 뜻은 [동쪽에서 쇠붙이를 사용하는 사람들(銕古夷字也)], [동쪽에서 모든 것이 근본인 사람들(東方曰夷字柢也)]라 하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배달국시대의 구리(九黎)도 동이국(東夷國)이라 기록하고 있다(史記1. 40).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의 단군조선을 동이국으로 기록하고 있다.(後漢書 75, 三國志 30).
또한 지나 사서들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가라(加羅), 신라(新羅), 왜(倭)도 동이(東夷)의 각국으로 기록 하고 있다. 즉,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신당서(新唐書), 당서(唐書)등이다.
우리 민족은 지나유사(支那有史) 이래 역사기록에는 고대에서 9세기까지 동이(東夷)로 기록되어 있으니 9세기 이후의 역사가 9세기 이전역사를 능가할 수 없으므로 오랜 전통성에 의해서 동이(東夷)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인류사상 최초로 등장한 민족으로 상고시대부터 대륙에서 환국, 배달국 숙신(肅愼), 고조선, 예맥조선, 부여, 낙랑,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계보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정립되고 있지가 않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아니되는 것은 단군조선과 같은 시대에 숙신씨(肅愼氏)가 있었던 것도 빠져 있고, 또 부여보다 먼저 예맥조선이 있었음을 숨기고 있으며 또한 천년왕국낙랑국도 전설화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예맥(銳麥;濊貊)은 동주시대부터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제압한 것이 지나 역사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산해경(山海經)에 부여국(夫餘國)이 예맥의 고지(故地)라 하고, 진서부여전(晉書夫餘傳)에 그 왕의 인문(印文)에 예맥왕의 인(印)이 있고, 국중(國中)에 예맥(銳麥;濊貊)의 성(城)이 있는데 본래 예맥의 땅이라 했다.
또한 삼국지 부여전(夫餘傳)에 선대(先代)로부터 전해온 옥벽규찬(玉璧珪瓚)에 예맥왕의 인(印)이 찍혀있다고 했다.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에 예맥의 노인들이 예맥(銳麥;濊貊)이 고구려와 종(種)이 같다고 말하고 고구려의 일명(一名)이 맥이(貊耳)라 하였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 흠명왕(欽明天皇) 15년에 12월조(條) 예맥을 박(狛)이라 했는데 박(狛)은 예맥(銳麥;濊貊)이다.
이 기록들은 부여 고구려가 예맥을 계승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상의 고찰에서 우리 한민족의 계보를 정립하면 환국, 배달국, 고조선, 숙신씨(肅愼氏) 예맥, 부여, 낙랑,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으로 계승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숙신씨(肅愼氏), 예맥조선, 낙랑국등이 오도(誤導)되고 있다.
숙신씨(肅愼氏), 예맥조선 낙랑국은 실재한 나라이다
흑룡강지고(黑龍江志稿 第一, 地理志 沿革)에 숙신씨(肅愼氏)는 4000년 전에 대국을 건설하고 예맥(銳麥;濊貊)은 3000년 전에 건설한 구국(舊國)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런 기록을 다루지 않은 것은 역사연구를 게을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먼저 숙신씨의 역사를 살펴보면 숙신씨는 4300년 전 다른 나라는 석기시대에 돌(石)과 철을 파괴하는 석족(石鏃)을 발견하고 만여리(萬餘里) 떨어진 지나에 궁시(弓矢)를 수출해 무력(武力)을 만 여리(萬餘里)에 떨쳤다고 했다.
또한 진서각주(晉書斠注)에도 숙신씨가 4000년 전에 대국(大國)을 건설해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동쪽 모든 지방을 다 차지했다고 했다. (晉書斠注 卷97, 列傳 第67 東夷 肅愼氏 註 ).
그 당시는 동서민족이 몇 백리 소부락을 형성한 씨족시대로서 무력(武力)이 만 여리(萬餘里)를 떨친 대국(大國)이 없었다. 그런데 숙신씨가 홀로 대국을 건설했으니 이는 당시 강대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맥이 등장한 3000년 전은 구국(舊國)이 없는 시대이다. 동서민족이, 다 몇 백리 소부족(小部族)으로 분립해 불합리한 감정으로 침략하는 전투형 시대이다. 이 시대는 모든 부족이 아침에 흥했다가 저녁에 망하는 무상(無常)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예맥은 산해경 대황동경(山海經 大荒東經)에 기록한 유위국(有蔿國)이라 칭했는데 극히 강대해 지나를 정벌함으로 지나인(支那人)이 증오심으로 예맥(濊貊;穢濊貊)이라는 악명을 붙이었다. (管子全書 卷11, 小稱篇 參照).
관자전서(管子全書)에 [예맥(銳麥;濊貊)이 흉악(凶惡)하다] 하고,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공씨(孔氏)가 예맥에 맥(貉)이라는 짐승의 이름을 붙인 것은 악명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 예맥은 서기전 770년 동주(東周)시대부터 1000년간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오랜 역사를 보존한 인류사상 강대족(强大族)으로 그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었는데 지나 역사에는 단 한 줄도 예맥조선의 실체를 숨기고 있으나 그들이 예맥이라는 것은 예맥조선으로 보는 것이 옳다.
예맥(銳麥;濊貊)은 서역지방에 원정한 강국이었다
지나가 예맥을 부족으로만 명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예맥에 정복당하고 전쟁할 때마다 패배로 수모를 당한 것을 감추고 숨기기 위한 데서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예맥과의 전투에서 이긴 때보다 패한 적이 많음에서다.
그 실증은 한고조(漢高祖)가 서기전 200년에 예맥을 정토(征討)하려고 32만의 대군을 화북(華北)에 집결해 운강(雲岡)의 석굴(石窟)가까운 평성(平城);山西省大同縣)까지 진군했으나 모돈단우(冒頓單于)가 이끄는 40만 기마군단에 포위되어 격파되고 만다.
여기서 40만이라는 것은 부족의 군대가 아니라 예맥조선의 군대이다. 패전을 인정한 한고조는 일족의 공주를 단우(單于)에게 시집을 보내고 많은 선물을 보내며 형제의 약속을 맺음에 의해 화의(和議)를 맺은 것은 그 한 예이다.
패전을 인정한 한고조는 화의를 맺는데 그 내용은 양국이 서로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 것, 한실(漢室)의 여자를 단우(單于)에게 시집보낼 것, 관시(關市;교역장(交易場))를 설치할 것, 한(漢)으로 부터 예맥(銳麥)에게 세폐(歲幣)를 보낼 것 등이었다.
여기서 중원(中原)을 평정한 예맥은 강력한 기마군단을 가지고 고비사막을 넘어 돌펜 분지(盆地) 다그라마간 사막을 넘어서 서역(西域)지방을 원정했다. 이 당시, 루란(樓蘭), 우전(于闐)등 36개나 되는 오아시스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나 모두 예맥(銳麥)의 군문하(軍門下)에 들어갔다.
따라서 예맥의 영토는 동(東)은 서만주(西滿洲)로부터 북(北)은 바이칼호(湖), 이에니세이강, 오비강의 상류까지이고, 서(西)는 다크라마칸 사막을 포함해서 파밀고원(高原)까지, 남은 곤륜산맥(崑崙山脈)으로부터 싸이다무분지(盆地)를 거쳐 전한내(前漢內)의 난주(蘭州) 그리고 오루도스를 거쳐서 만주(滿洲)까지 달했다.
예맥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고대문명을 일으키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예맥이 남북으로 분열해 북의 예맥은 중앙아시아로 가서 힘을 비축해 아시아로부터 유럽까지 들어가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철기사용을 용이하게 해 유라시아에 철기문명을 유발시기에 이른다. 이들의 투구며 철재병기며 화살, 농경기구는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가져오게 할 뿐만 아니라 지나에 서기전 500년경부터 철의 생산이 시작하게 했다. 지나는 오래 동안 청동기가 병용되는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것이 진(秦)시대에 화살촉은 동(銅)이었는데 한고조 시대에는 약간의 화살에 철족(鐵鏃)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보나 종래의 같은 방법이었기 때문에 예맥의 기마군단(騎馬軍團)에는 적수(敵手)가 되지 못했다.
지나는 한무제(漢武帝)시대가 되어서 주철(鑄鐵)기술이 나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85%나 되는 산림이 5%로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글을 맺으며
역사를 모르고는 행복함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행복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하는 자가 제일 많은 나라이다. 우리보다 못사는 후진국도 자기조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긍지를 갖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제도권 사학에서는 원전(原典)을 무시해서 모른다. 역사를 모르면 ‘막가파’가 된다. 삼국유사에 익산무왕(益山武王)이라 하나 무왕(武王)은 과부의 아들이다. 당시 과부아들이 왕이 되는 법이 없다. 반도에 왕이 없었고 간(干)이 있었다. 즉 총독의 지위이다.
무녕(武寧), 거칠부(居柒夫), 이사부(異斯夫)는 반도에 있었다. 역사를 모르는 자는 모두 왕이라 하고 있다. 고대사도 아시아를 지배한 역사이건만 이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신라의 지증왕(智證王)도 당시 거서간(居西干)이었다가 503년에 왕이 지위에 오른 것이다. 김유신이 싸운 곳은 14곳이 다 대륙이다. 우리나라 상고사와 고대사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상태다. 우리 상고사는 유라시아를 지배한 역사인데도 말이 아니다.
더구나 숙신씨, 예맥조선, 낙랑국 등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되고 있다. 낙랑국은 1237년에 건국해서 서기32년까지 1000년 이상 지속된 사실이 한서 28에도 명기 되어 있는데 우리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전설로만 이야기 되고 있다.
또한 강감찬 장군이 거란족을 치기 위해 출발한 곳이 장춘(長春)이고, 윤관 장군이 1104년 여진족을 치려고 출발한 곳도, 이성계 장군이 1364년 여진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1370년에는 요하 동쪽 동녕부(東寧府)를 정벌하러 출발한 곳도 모두 장춘이다. 당시 고려왕을 원나라왕도 심양왕(瀋陽王)이라 했다. 반도가 아니다.
이제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를 복원하고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민족인가를 자각하고 우리 정체성을 바로 찾아 저 아시아로 나가야 한다. 로마가 1500년간 지속한 것은 역사, 전통, 긍지, 자부심을 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以上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吳在城 編著, [九黎系, 倭-日本史]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이야기].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을 引用했음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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