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왜 우리역사 반도에 가두려 했나

입력 2021-03-06 10: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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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은 단군조선 이전을 숨기고 신화로 만드는가 하면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에도 바로 나와 있는 낙랑국(樂浪國)을 아예 묻어버리고 지나와 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게 위만과 기준의 위치를 반도로 끌어들였다. 
 
또한 대륙에 있는 사로신라를 묻어버리고 고구려, 백제가 한반도에서 패망한 것 같이 함으로써 지나와 일본이 역사왜곡의 장을 마련해준 장본인임에도 우리나라 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이 삼국유사를 [삼국사(三國史)]보다 더 많이 이용함을 본다.
 
더구나 일연은 사학자가 아닌 사원(寺院)의 스님인데 그가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수많은 오류를 남김으로서 올바른 역사를 곡해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일연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三國史)]와 지나(支那)의 사기(史記)에서 ‘당서(唐書)’까지 지나 18사 동이전을 우리 역사로 만들려고 노력한 정황은 보이나 제대로 하지 않았다. 
 
김부식 찬 [삼국사(三國史)]는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대륙의 오월(吳越), 북으로 유연제노(幽然齊魯), 그리고 가한(可汗), 마립간(麻立干)을 포함한 지역을 하나로 보는 역사를 남겨, [삼국사]가 반도의 역사가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이것을 반도역사로 만들기 위해 고구려, 백제의 위치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백제, 고구려의 패망을 반도에 맞추기 위해 선덕여왕과 김유신의 신라를 밝히지도 않았다.  
 
또 김유신의 조상 김수로왕의 역사를 반도에 맞추기 위해 고구려, 백제사를 하지 않고 신라와 가락국기(駕洛國記)만으로 우리 역사를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단군조선을 첫 국가로 하기 위해 삼국이 추구한 다물(多勿)정신도 버렸다.
 
오늘은 우리 역사는 환국시대는 유라시아의 역사이고, 삼국시대는 반도역사가 아니라 아시아 역사인데 몰지각한 일연 등이 우리 역사의 뿌리와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 온 국민들도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다. 이에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한 사실을 제대로 다시 밝혀, 우리나라역사가 어떻게 말살하고 왜곡한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연은 고조선 이전의 상고역사와 낙랑조선 모두를 지웠다
 
일연은 우리 역사 시작을 환국과 배달국을 감추고, 단군의 고조선으로 알려왔는데 그 시발(始發)이 [삼국유사]에서 비롯되었다. 고구려 동천왕(東川王)때 위(魏)의 관구검이 침입해 고구려의 사서를 훔쳐간 후, 당고종(唐高宗)이 설인귀(薛仁貴)에게 고구려성 점령하면 도서관을 불살라 버리라 해서 668년에 4개월간 사서를 불태웠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22만권 이상의 사서들을 거둬서 불태워 없앰으로써 역사기록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서. 삼국사, 삼국유사를 인용하는데 위서(僞書)가 판치는 세상이 됐다.
  
이로 인해 우리 역사를 나타내는데 삼국이전에 있는 자료로는 김부식 찬 [삼국사]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들고 있으나 [삼국유사]는 우리가 중원을 정복하고 지배한 [삼국사 권(卷)46]과 [남제서 권(卷)58]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만주와 반도역사로 만들었다.  
 
이것은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이 있었던 역사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잘라버리고 반도역사로 한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또 [삼국사]도 고조선에 관한 기록이 없다. 이것은 [삼국사]의 폄하를 가져와 삼국사를 외면한 결과를 낳았다. 
 
물론 고조선 이전의 인물로 신라의 선조라 하는 소호금천씨가 있고 고구려의 선조라는 고신씨가 있다. 고신씨나 소호금천씨는 순(舜)의 조상이고, 순동이인(舜東夷人)이라 했다. [삼국사]는 아시아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나 [삼국유사]는 단군 이전역사를 지웠다.  
 
[삼국유사]를 발행한 후에 낙랑조선을 묻었고, 위만과 기준은 반도에 살지도 않았는데 반도인으로 둔갑시키는 우를 범한다. 또한 낙랑국과 낙랑군도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일연부터 낙랑국을 없앴는데 낙랑국은 서기전 1237년~서기전 32년까지 천년 이상 존속했던 나라이다. 한서권(漢書卷)28과, 사기조선열전(史記朝鮮列傳) 주(注)에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 사기(史記)에는 낙랑조선(樂浪朝鮮)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산해관이서(山海關以西)~천진구(天津口)까지 흐르는 백하(白河), 난하(灤河)를 비롯한 18조(條)의 대소강하(大小江河)가 흘려 내려 발해(渤海)로 들어가는 이 평야지대인 무녕(撫寧)지방에 위치한, 남후(藍候)의 조선(朝鮮)은 [예맥조선(濊貊朝鮮)과, 낙랑조선]이라 칭한 조선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낙랑조선의 강역중(疆域中) 오늘날의 해안(海岸)으로부터 동북방 약500리에 연(連)해 있었던 평지가 그 후 발해에 윤몰(淪沒)되었던 것도 모르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나(支那)와 일본에 역사말살과 역사왜곡 하도록 길 터놓은 것이 되었다. 
 
일연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반도로 가져온 자다
  
기자(箕子)는 하남성 서화(西華)에서 살았고 그가 묻힌 곳도 대륙의 몽성(蒙城)이다. 그런데 이 기자를 반도로 끌어 들인 것이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다. 기자는 그 출생에서 살던 곳이 황하 이남인데 이것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우리역사로 보이게 한 장본인이 일연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살던 서화(西華)는 조선 땅으로 일연이 [삼국사(三國史)]와 [사기(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지나18사 동이전을 대한역사로 만들고 기자가 이 한반도에서 활동한 인물로 만들게 되는 계기를 일연이 마련했던 것이었다.  
 
기자의 계보를 보면, 은(殷)나라 말왕(末王) 주(紂)의 족숙(族叔)으로 이름은 수유(수臾), 자(字)는 서여(胥余)로 그의 조카 미자(微子), 비간(比干)과 더불어 은조(殷朝) 삼현(三賢)의 한사람이다. 세칭(世稱) 기자(箕子)는 지나의 관명(官名)이다. 
  
이러한 사실을 서전(書傳), 주서(周書),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주(註)는 [기국명 자작야(箕國名 子爵也)라 했으며 기국(箕國)은 오늘날의 태원(太原)지방이라 하며 춘추(春秋)와 춘추좌전(春秋左傳)에 기록하고 있다. 허나 이는 믿을 수 없는 허구이다. 
 
이는 기자가 사후 1000여년이 지난 한무제연대(漢武帝年代)에 와서 비로서 기자에 관한 잡음이 지나의 여러 사적상(史的上)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조선으로 망명한 후의 기자에 관해 신빙성이 있는 문헌이나 그가 40여대의 기자조선이 있었다고 하나 그 실체가 없다.
  
그리고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했다고 하고 있으나 그 곳은 한반도는 아니다. 기자는 [한무제(漢武帝)의 문화정책(文化政策)]의 소산(所産)의 하나로 그 주요한 몇 가지의 사실을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것은 서전(書傳), 주서(周書),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주무왕(周武王)이 즉위13년에 기자(箕子)를 방문해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전수(傳授)를 받았다 하고 있다. 그리고 구주(九疇)의 내용을 상세히 게재했다고 하고 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이미 1000여 년 전 우(禹)의 치수 벽두 도산국(도山國)에서 열린 만국회의(萬國會議)에서 창수사자(滄水使者), 즉 단군의 아들 부루(夫婁)가 우(禹)에게 치수법(治水法)을 전해준 금간옥첩(金簡玉牒)인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내용을 보면 주본기(周本紀)는 주무왕이 은(殷)을 토멸한 직후 소공(召公)에게 명(命)하여 옥에 갇힌 기자를 석방해 주었고 2년 후에 기자를 방문해 홍범구주를 물었다고 했으나 믿을 수 없는 내용이다.
  
조선으로 도망간 기자를 주무왕이 방문했다는 것은 환상도 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광(徐廣)은 그 대목 주(注)에서 처음 듣는 소리라고 [일작원(一作原)이라 했다.
  
일연은 위만조선, 한사군을 반도역사로 보이게 했다 
  
삼국유사에 위만조선을 수록된 이후 위만조선(衛滿朝鮮)과 한사군(漢四郡)을 설명하면서 우리 역사로 만들어 놨다. 그러나 위만은 이곳에 온 적이 없고 지도도 없는데 반도에 있는 것 같이 일연은 나타내려고 했다. 
  
위만조선은 이병도(李丙燾)의‘국사대관(國史大觀)’에 있을 뿐, 그 외에 위만조선을 나타낸 지도는 없는데도 한사군(漢四郡)과 함께 한반도에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위만조선의 지도를 표기한 역사지도도 없는데도 굳이 위만조선을 우리 역사로 만든 것이 일연의 삼국유사가 처음이다. 일연의 큰 실수다.
 
위만조선에 대한 사료는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의 조선전(朝鮮傳)과,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 예(濊), 한(韓) 범위에 위만역사(衛滿歷史)를 남겼다. 위만조선은 우거 때 망하고 그 땅에 한사군이 되었다고 했다. 
  
<사기(史記)>와, <전한서(前漢書)>는 위만조선의 망한 것만을 말했으나 <후한서(後漢書)>와 <삼국지(三國志)>에서는 예(濊)항목에 우거조선을 남려(南閭)가 배반하니 연(燕), 제(齊)사이에 소요가 일어났다 하고, 그 땅에 한(漢)나라가 창해군을 설치했다고 했다. 여기서 위만조선의 위치는 창해군이 있는 연(燕), 제(齊)사이에 있었다. 
  
그러므로 위만조선 위치는 한반도가 아닌 창해군이 있는 연(燕), 제(齊)사이에 있었다. <사기(史記)>와, <전한서(前漢書)> 위만조선은 연(燕), 제(齊) 사이를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한반도로 옮겨온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런 일련의 삼국유사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학자들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창해군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 위치는 삼국지(三國志) 동이(東夷)의 남북 배열을 보면 분명해 진다. 
  
즉 창해군 위치는 고구려 남쪽에 예(濊)가 있고, 예(濊) 남쪽에 한(韓)이 있으며, 한(韓) 남쪽에 왜(倭)가 있다고 했다. 왜인(倭人)이 살고 있던 지명으로 회계(會稽), 주애(朱崖), 담이(儋耳)가 있다. 이 담이(儋耳)는 남월(南越)이다. 이곳은 반도가 아니다.
 
위만조선의 위치는 삼국지(三國志)권 30과 후한서(後漢書)권(卷)85, 사기(史記) 권30과 한서(漢書)권6에 창해군 지역으로 이곳이 바로 위만조선의 위치이다. 분명한 사실은 위만조선과 한사군(漢四郡)이 지금 우리나라 영역에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창해군이나 한사군 위치를 한반도로 맞추려고 했다. 더구나 그는 낙랑조선을 낙랑군으로 덮어버렸고 가라(加羅), 고구려, 백제에서 광복한 사로국 신라와 고구려 마립간(麻立干)에서 독립한 신라가 2개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덮었다.
  
삼국유사는 자장법사가 신라에 왔을 때, 선덕여왕이 있다는 항목과 또 자장법사가 또 다른 신라에 갔을 때, 보천, 효명이라는 두 태자(太子)를 둔 정신대왕이 있음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두 곳의 신라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연은 두 신라를 구분하지 않고 신라기록을 한반도에 맞추고 있었다. 일연은 한반도의 역사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우리 역사의 진실이 묻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삼국사권(三國史卷)46]과 [남제서권(南齊書卷58)]의 지역에서 벌어진 역사를 덮었다. 
  
즉, 대륙에서 일어난 사로국(斯盧國)의 신라(新羅), 백제국(伯濟國)의 백제(百濟), 비미국(卑彌國)과 구로국(狗盧國)의 왜(倭), 가라(加羅)등이 발전하고 고리국(古離國)은 고구려(高句麗)에 병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륙의 사로신라는 가라(加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에 속했다가 먼저 가라(加羅)를 병합하고 당(唐)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패망케 했다. 이러한 김유신과 김춘추의 신라역사를 반도로 가져와 맞춘 인물이 다름 아닌 일연인 것이다. 
  
그는 분명히 두 신라가 있음을 알면서도 사로신라의 사실을 반도로 가져와서 반도남단에 있는 서라벌 신라역사로 만든 사적(史敵)의 원흉이 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일연은 단군조선 때 삼한이외의 지역으로 서기전 1237년 아홀단제 때 숙부인 고불가를 낙랑홀에 임명함으로서 낙랑조선이 시작이고 그것이 [한서(漢書)권(卷 28]과 사기(史記)의 조선열전(朝鮮列傳) 주(注)에도 기록되고 있다. 
  
낙랑국에는 자명고(自鳴鼓)라는 보물 때문에 적이 침범하면 대처할 수 있어 평화를 유지해온 나라이다. 이 낙랑국을 낙랑군으로 덮어 버린 자도 바로 일연이었다. 이 두 신라를 감추기 위해 구당서(舊唐書)와 당서(唐書)는 두 신라의 기록을 하나인 것처럼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일연은 바른 역사를 쓰지 않았다.
  
한편, 송(宋)나라는 한(漢)나라 이전의 동이와 진당간(秦唐間)의 동이역사를 몰아내는데 모든 수단방법을 다하는데 우리는 일연의 행태와 같이 역사를 지금도 말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찬란한 역사를 말살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온 국민도 알았으면 한다. 
  
(以上은 최태영,[단군을 찾아서]. 崔仁,[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三國遺事에는 우리역사가 없다.] 吳在城 編著, [九黎系, 倭-日本史].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이야기].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日本國書刊行會,[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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