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2주년 맞은 우리 정신상황 이래도 되는가

입력 2021-03-20 19: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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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3.1절을 102주년을 맞고서도 3.1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현재 국민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오늘의 국제사회는 지식기반사회이다. 그런데 우리의 지식수준은 아직도 19세기의 사고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는 문제이다.
 
지난 11일 신문을 보니 주일대사가 부임한지 40일이 되어도 외무상도 못 만나고 있다는데 왜 그런가? 위정자도 국민도 모르고 있다. 왜 일본은 우리를 깔보고 있는지도 모르며 3.1절 기념식만 거행하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일본에 먹혔으며 지금 우리가 극일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협정에서 일단락한 것을 무시한 대법원판결이 국제법적으로 적절치 않은데도 이를 모르고 있음은 왜인가? 일제강점의 원인과 강점 후의 일도 분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년 기념식만 거행하나 우리가 반성하고 우리가 나아갈 점,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고칠 것을 못 고치고 있다. 지금 일본이 우리와 대화를 기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 속내도 너무 모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감정을 내세우는 일은 그만하고 극일 위해 일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일본국민의 장점은 친절, 근면, 성실, 검소이다. 또한 공동체의식이 강하고 학자들의 연구심이 강한 점도 장점이다. 반면 단점은 배타적이고 타 국민에게 지운 죄과를 반성할 줄 모르고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점도 많으나 다른 점도 많다. 전후 처리문제를 봐도 반성과 책임을 회피하며 일관되게 언어의 교술(狡術)을 부리고 있으며 편향적으로 배척감 조성 전술을 구사하며 그것을 정당화 하려고 국민을 교도한다. 
 
예컨대 패전(敗戰)은 종전(終戰), 침략은 진공(進攻), 탄압은 진압(鎭壓), 억압(抑壓)은 배제(排除)로 하는 언어의 교술((狡術)과 또 명치유신 이후 우리나라를 위시해 동남아국가의 역사도 조작하고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왜곡도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대사에서 터무니없는 조작을 자행해 마치 일본이 우리보다 더 나은 민족인양 자국의 열세를 불식시키려고 하는 면이 일본교과서에 나와 있는데도 우리는 광복 이후73년이 되는데도 ‘조선사편수회’의 조작 왜곡의 범위를 못 벗어나고 있다.
  
한편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 이후 침략전쟁을 하며 타민족과 국가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었음에도 이에 대한 뉘우침이나 책임을 지려는 자세는커녕 이를 은폐하며 반성을 모르는 것은 일본답지가 않은 것이다. 독일은 피해국이 보상했다. 한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에게 700억 마르크(한화96조)를 보상한 것과는 너무 대조를 이른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역사도 제대로 알고 말해야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한 역사를 보면 1875년 운양호사건을 일으켜 조선침략을 시작으로 명성왕후의 시해(弑害), 1910년 한일합방, 이후 10년간 농민의 전농지의 50%(10만ha) 이상을 약탈했다. 그 결과 75%의 농민이 토지를 잃고 말았다.
 
그들이 발한 토지수용령을 모름으로 인해 이들 농민은 소작인이 42%이나 토지관리인으로 전락했고, 약탈한 토지는 모두 일본인 지주(地主)에게 귀속시켰다. 또한 농민의 혈세는 조선총독부 수입의 50% 이상이었고 합방 후 4년간 5~6배나 증가시켰다. 
 
또한 일본은 1910년~1919년간 쌀 18배, 면화 27배 증수(增收)와 민족성의 철저한 말살을 위해 총독부 발표만도 22만권 이상 사서를 불태워 버리는 만행으로 문화동화정책(文化同化政策)을 강권적으로 전개했다. 80대 이상 국민은 모두 체험했다.  
 
일제강점기 이에 반대하는 우국지사들이 1907년~1908년 사이에 1만5000명이나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사실도 있고, 1919년 3.1절 때도 8000여 애국지사를 살해하고 1만60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20만명 이상이 투옥됐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징용자 80만~200만, 학도병 36만이상이  징집되었고, 정신대(성피해자)가 5만(실제는 그 몇 배)명을 전쟁터로 내몰아 희생시켰다. 이 수자는 그들의 말한 수자이나 실제는 더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민족말살정책을 감행하면서 말과 글, 국기, 애국가, 신앙까지도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숭배케 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나아가 창씨개명까지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철권정치를 함으로써 우리 강토와 민족을 비참하게 유린한 것이 일제강점기의 36년간의 실상이었다. 
 
이같이 잔인한 수탈과 민족말살을 자행한 일본과 1965년 대좌한 우리대표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준비 없는 협정이었다. 그것은 대일청구권도 문제려니와 모든 청구권을 일괄 보상명분으로 개별보상의 길을 막음으로서 근래에 문제가 되고 있는 징용자보상 등의 청구소송은 줄을 잇고 있으나 법정에서 승소할 수 없는 원천을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 대법원의 한일협정무시는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법적인 처리는 끝나서 일본의 처분만을 기대하는 것은 당당한 권리가 아니라 은혜를 바라고 있을 뿐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일협정은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와 어업협정, 대륙붕문제와 문화재반환문제, 독도문제, 사할린동포귀환문제등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일본이 파놓은 함정에 모두 빠졌던 것이 한일협정이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일단락한 것을 지금 와서 다시 일본에 요구는 옳지 않다.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짝사랑에 그치고 있음을 깨달을 때도 되었건만 19세기 논리만 무성한 것은 바로잡고 가야한다.  
 
국제정세 바로 알고 국제법도 알고 대처하기 바라다
 
우리는 세계의 변화에 너무 둔감한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주변정세는 조선조 말기의 현상과 너무나 비슷하다. 외세는 몰려오는데 국가장래를 위해서보다 자신과 자기정당과 자기지역만을 생각하고 19세기 수준의 정치하는 꼴이 꼭 같다는 것이다. 
 
이런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사고로 정치하는 것은 이미 쌓아놓은 기틀도 망가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고는 일찌기 조선조 고종이 국제정세 분석도 제대로 못하고 나라를 망가뜨린 것과 진배없는 행태이다. 연구와 분석이 더 요구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신상황을 보면 사리사욕에다 부정부패와 정의와 도덕은 찾아 볼 수 없고 예의나신의와 청렴과 수치도 모르고 자존심마저 빈사상태로 국가의 정체성마저 찾기 힘든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오늘이다.
 
가치관의 변질로 정치,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음에서도 19세기 사고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정치인은 국익을 위하고, 학자는 진실을 밝혀야하며, 언론은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다 정상적이 아님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도 국가경영 비전이 없는 정치와 창조적 도전정신을 잃어버린 경제로 부동산정책은 19세기 전이나 볼 수 있는 전제정치 시대에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자율성을 길러주지 못하는 교육은 국가목표를 잃게 하고 있으며 국민도덕, 의식의 저하는 우리나라 미래를 암흑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로마의 베게티우스가 말을 했는데, 우리는 남북이 대치상태인데 군대를 해체하고 방어시설을 제거하며 거꾸로 전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조선조말기 고종이 국제정세를 잘못 판단해 영국의 지원을 버리고 러시아를 택함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것 같이 지금 우리나라 위정자도 그 전철을 밟고 있는 양상은 문제이다. 
 
또한 탈이데올로기시대에 선진국들이 버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책은 버려야 함에도 국제화시대에 국제적시각의 결여는 더 심각한 것 같다. 제2차세계대전 후 국제사회는 크게 변하고 달라졌다. 80년대 고대지식의 150배 이상 팽배하고 2015년 3월부터는 78일 만에 배가된다는 세상인데 우리는 봉건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징용자 보상문제 성피해자 보상문제 등은 법적으로는 이미 끝난 것이기에 대화를 하려면 유엔조약법을 인용해서 대화하도록 해야한다. 조약법 제65이하를 원용하면 우리와 관계없는 ‘간도조약’ 삭제며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 
 
글을 맺으며
 
국내문제도 우리의 체제는 북한과 지나(支那)의 봉건체제가 아니다. 전후 우리는 봉건체제와는 달리 자유시장경제 원칙하에 발전했고, 인격의 대등과 재산권 존중이라는 3개의 큰 기둥 하에 세워진 데서 오늘의 성장을 일궈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2~3세기 이전에나 볼 수 있는 일들을 예사로 하고 있다. 
 
지금 사회는 국제사회의 변화도 바로 알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비롯해 위정자도 국제법을 무시하는 일들을 예사로 자행하며 제멋대로 가는 것은 삼가야 한다. 위정자들의 국제법 감각이 없는 것은 누구에게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난민(難民)구제의 경우 난민의 입장에서 구제를 해야 함에도 난민의 눈 가리고 몸을 묶인 채로 북으로 보낸 것은 국제인권법(國際人權法)에 저촉되는 처사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국제법적인 시각은 난민의 입장에 서서 구제를 해야 함에도 이를 위배한 것이다. 첫째, 난민이나 망명자가 올 경우 범죄자로 보면 아니 되고, 둘째 그 난민을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에 보내서도 아니 된다. 
 
셋째는 난민이나 망명자를 인도적(人道的)으로 처우해야 하며, 넷째, 세계인권 선언이나 ‘망명자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에 나와 있는 대로 난민이나 망명자는 조약에 명기되어 있는대로 타국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어서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조치를 무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국제적 규제가 있는 대로 심사 및 보호가 되어야 함에도 이를 보호 않은 것은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는 국제인권감각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강단학파의 이영훈 교수는 <반일종족주의>라는 글에서 일제강점기 동안 강제동원과 식량수탈, 성피해자 등 반인권적, 반인륜적 만행이 없었다고 했다는데 과연 일제강점기동안 반인권적, 반인륜적 만행이 없었는가? 기가 찬다. 
또한 국회의원이 시대에 역행하는 법을 만들고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법리를 내세워야함에도 우리 현 체제가 봉건체제와 달리 자유경쟁이 원칙이고 계약자유와 인격의 대등, 재산권존중의 3개 기둥을 뿌리채 뽑는 법과 정책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법구조가 초중학교 수준의 발상으로 법을 제정하고 정치를 농단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없음에서 3.1절 102주년을 맞으며 법을 전공한 한사람으로 이를 쓰게 한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적가치, 예컨대, 생명, 재산, 행복, 존경, 지식, 쾌락, 명성, 우월, 세력, 권력 등의 획득, 유지, 증대를 둘러싸고 대립할 때, 정치는 이러한 이해대립을 조정하고 분쟁을 해결해 사회생활안정을 시키기 위해 있는데, 안정된 사회를 혼란으로 이끄는 정책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을 상대하는 위정자들은 현안을 대하는 원칙, 방법, 목표, 전망상의 연구, 분석을 제대로 하고, 법적으로도 흠이 잡히지 말아야 한다. 한일관계가 1600년 이상 교류하며 우리가 그들의 스승이요 일본을 개명시켰으나 지금은 역현상이 되어서는 아니 됨에서 3.1절 102주년을 맞으며 우리가 가다듬어야할 점을 말하는 바이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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