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가 삼국시대부터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에 의해 조작과 왜곡됐다는 것은 수차에 걸쳐서 이미 말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역사를 모르기에 지금도 일제강점기에 조작한 ‘조선사편수회’ 역사를 우리 역사로 보고 우리 역사를 반만년이라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서(史書)는 종합적인 검토 하에 과학적인 고증 등을 통해 정립해야 하는데 우리는 고증도 하지 않고 임의로 제멋대로 말하고 있는데 역사는 진실만이 역사이지 거짓된 것을 제멋대로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는 1만년이 넘는 역사로 세계시원국이라는 것은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도 말하나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自虐半島植民史觀)에 의해 말이 아니게 왜곡되어 있는 역사만을 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
지나와 일본이 우리의 고서(古書), 전기(傳記), 열전(列傳), 충의록(忠義錄) 등 수많은 사서(史書)를 불태워 없앴고, 남아있는 사서(史書)와 유적(遺跡)도 후세사람들에 의해 교정 또는 재건(再建)시켜 왜곡시킬 수 있으나 문화와 문명의 사실과 그 실재를 왜곡시킬 수 없다.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 역사를 반도에로 가두려 하나, 우리의 실재한 사서기록과 유적유물은 우리가 대륙에서 일어난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목화(綿)의 사용에 관한 것이 예(濊)와 마한(馬韓)때 사용한 것이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되어 있고 나침반과 신라비단, 쇠뇌(弩)를 생산하던 서신라(斯盧新羅)의 기록이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나전칠기를 생산한 고구려, 백제의 섭라(涉羅;(歙=(新安)에 관한 기록이 북사(北史), 위서(魏書), 삼국사기와 광개토태왕비가 입증한다. 이곳은 다 반도가 아닌 대륙이다.
오늘은 우리 역사가 실증적으로 밝혀줄 사실들을 다시 조명해 우리 역사가 반도역사가 아니고 중원대륙인 아시아의 역사임을 시대의 역사와 삼국시대의 역사를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다.
삼국사(三國史)에서 보는 고구려 백제, 읍루, 선비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가 얼마나 거짓되고 허구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지나 <사기(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18사(史)가 고구려, 백제가 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 있었음을 똑같이 말하고 있다.
이미 누차 밝힌바와 같이 ‘고구려, 백제가 강성 할 때 강병(强兵) 100만으로 남으로 오월(吳越)을 다물(정벌)하고 북으로 유연제노(幽, 燕, 齊, 魯)를 정복해 지배한 사실’과 수(隨)나라 멸망도 요동 즉, 요(遼)의 동쪽을 정벌에 기인한 것이었다.
환국은 유라시아의 역사로 러시아의 역사학자 푸틴은 “러시아는 환국이었다”고 하였거니와 삼국시대도 중원을 지배했다. 삼국시대도 고구려 백제가 강성한 때는 유연제노(幽, 燕, 齊, 魯) 오월(吳越)을 정벌하고 지배했다고 했다.
여기서 그 지명을 살펴보면, 유(幽)는 하북성 북부이고, 연(燕)은 산서성 북부이며, 제(齊)는 산동성 북부이다. 그리고 노(魯)는 산동성 남부이다. 오(吳)는 강소성 남부이며, 월(越)은 양자강 이남을 나타낸다.
그리고 지나 18사(史)는, 사기(史記)를 비롯해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위서(魏書), 양서(梁書), 북제서(北齊書), 진서(陳書), 수서(隨書), 주서(周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구오대사(舊五代史)이다. 이를 축약(縮約)된 역사를 모은 18사략(史略)이 있다.
침(侵;침범)과 요(撓;점유)는 전전국가 배달국 구리(九黎)의 땅을 회복해 구토(舊土)회복을 다물(多勿)이라 했다. 또한 제노( 齊,魯)와 오월(吳越)사이는 서신라(西新羅)는 사로국이었다가 가라(加羅), 고구려, 백제에서 광복한 사로신라(斯盧新羅;(서기전 150?~9세기)가 되었다. 한편 고구려 간(干)에서 신라왕으로 변경한 나라로 독립한 신라(동신라)는 간(干)에서 신라왕으로 독립하는데 그 왕이 지증왕(智證王)이다.
아직도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모르고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를 두어 왜곡한 역사만을 우리 역사로 가르치며 반도북쪽의 여진족 등 민족들을 오랑캐라 하며 단군도 매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들이 진정 우리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은 반도로 왜곡한 역사만을 역사로 하고 있음에서다.
우리 민족은 환국시대 유라시아 시베리아까지 우리영역이었고 삼국사영역은 중원대륙을 위시해 현 지나 전 영역을 우리 동이족이 있었던 것은 외국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아니라 하니 푸틴같은 러시아 학자도 ‘지나와 일본은 없는 역사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학자라는 자는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이다. 이런 자가 3만이 된다고 하고 있다.
<삼국지(三國志)>권 30의 동이전의 동이배열
<삼국지>권 30은 당시 동이의 배열을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으며 현토 남쪽에 고구려가 있고, 동쪽은 읍루(挹婁)이고, 서쪽은 선비(鮮卑)가 접해 있고 북쪽에 약수(弱水)가 있으며 읍루는 부여 동쪽 천리에 있고 남쪽에 북옥저가 있다고 하고 있다.
고구려는 요(遼)의 동쪽 천리밖에 있고, 남쪽으로 예맥조선이 연접되어 있고 동쪽은 옥저와 연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부여가 접해 있다. 환도(丸都) 아래에 도읍했는데 지방이 2000리나 되고 호수(戶數)는 3만이 된다고 하고 있다.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고 북쪽에 읍루(挹婁)가 있으며 부여 남쪽에 예맥과 접하고 있다. 예(濊)는 남쪽은 진한(辰韓)과 연접됐고 북쪽은 고구려 옥저와 연해 있다. 그리고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아 있다. 지금의 조선동쪽은 모두 그 예(濊) 땅인데 호수(戶數)는 2만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韓)은 대방(帶方)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끝이 났고 남쪽은 왜(倭)와 연접해 있다. 또 마한(馬韓)은 그 서쪽에 있다고 했으며.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남쪽에 큰 바다 속에 있다는 것이다.
<후한서>권85의 동이(東夷)나라 배열도 반도는 없다
<후한서>의 기록은 부여국은 현토 북쪽 천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와 동쪽은 읍루와 서쪽은 선비가 접해 있다. 북쪽에는 약수(弱水) 있는데 지방이 2000리로서 본래는 예(濊)의 땅이다. 읍루는 옛적의 숙신(肅愼)이다. 부여 동쪽 천 여리나 되는 곳에 있다.
동쪽으로는 큰 바다를 끼고 있고 남쪽과 북쪽은 옥저와 인접됐으나 북쪽의 끝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고구려는 요동동쪽 천여리나 되는 곳에 있다고 했으며 남쪽은 조선 예맥과 연결됐고 동쪽은 옥저가 있고 북쪽은 부여와 접했다. 구리의 또 한 가지 이름은 맥이다. 종족하나는 소수에 의지해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소수맥이라 한다.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고, 북쪽으로 큰 바다를 끼고 북쪽은 읍루(挹婁), 부여(夫餘)와 연접했으며, 남쪽은 예맥과 연결되어 있다. 예(濊)는 북쪽은 고구려 옥저와 연결되어 있고 남쪽은 진한(辰韓)과 연결되었고, 동쪽은 큰 바다에 가서 끝이며 서쪽은 낙랑(樂浪)에 이르렀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한(韓)은 세 종족이 있다. 첫째 마한(馬韓)이요, 둘째, 진한(辰韓)이고, 셋째는 변한(弁韓)이다. 마한은 모두 서쪽에 있어 모두 54나라인데 그 북쪽은 낙랑과 연결되었고 남쪽은 왜(倭)와 연결되어 있다. 진한은 동쪽에 모두 12나라인데 그 남쪽에는 왜(倭)와 인접되어 있다. 이 왜(倭)는 대방동남쪽 큰 바다 속에 있는데. 산을 의지한 섬곡에 사는데 그들의 나라는 수효가 백여개나 된다.(倭在帶方東南大海中)고 하고 있다.
<삼국지> 한(韓)의 백제(伯濟)위치는 유연제노(幽, 燕, 齊, 魯) 오월간(吳越間)에 있었다. 이에 대한 것은 당나라 패망 후 송(宋)나라에서 만든 우적도(禹跡圖)를 통하여 중원(中原)지도를 복원하고 동이(東夷)의 각 위치를 확인 할 수가 있다.
<삼국지> 권30에서 왜인(倭人)은 부여(夫餘), 읍루(挹婁), 옥저(沃沮), 고구려, 예(濊), 한(韓)과 함께 동이(東夷)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인(倭人)은 한(韓)과 전혀 다른 민족으로 보고 있는 것은 송(宋)나라 이후 외국전에 수록된 고려 이후 한(韓)조선인과 동일본이 다르다는 인식 때문에서이다.
지나는 <사기(史記)>에서 <당서(唐書)>까지 동이전을 중원대륙의 역사가 아닌 만선(滿鮮)역사로 고정하려는 명(明)나라의 의도에 의해 조선조 태종의 한조선의 맞춤역사, 동이(東夷)와 왜(倭)역사를 밀어내는데 성공해 진당간(秦唐間) 중원(中原) 통일을 했다는 것으로 맞추려는 역사왜곡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왜인의 위치는 양자강 이남이고 7세기 이전 왜(倭)는 <삼국지>와 후한서(後漢書)에 의해서 양자강 이남임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한서(漢書)>권7과 <후한서>권85에 왜(倭)는 회계(會稽), 야현(冶縣;(台州), 단주(澶洲;舟山). 이주(夷洲;
(臺灣), 주애(舟崖;(海南島), 담이(儋耳;南越)지역에 있어서 우적도에서도 확인된다.
글을 맺으며
이미 밝힌바 있는 미국의 R. A. 토리(1856~1928)는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것이다.
G. 하비와 H. 로이드(Gabriel Harvey. Humphrey Lloydis)는 “자기조국을 모르는 것 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고 말하며 “한국의 문화는 세계정상으로 질투를 느끼게 하는 문화”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이를 모르고들 있다.
오죽했으면 고대의 철학자요 정치가인 키케로(Cicero)는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것은 영원히 어린이로 남는다”고 말했다. 조선조 다산(茶山) 정약용선생도 “대장부들이 우리 옛것을 알지 못하고 선배들의 논의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학문의 고금을 꿰 ?뎔? 있다 해도 엉터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이런 어리석음은 이제는 깰 때도 되었다.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한지도 73년이 지났는데도 수치를 모르는 우리학계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뒤엎어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너무 우리역사와 문화를 모름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以上은 吳在成 [삼국사(三國史)]5~36面 [백제는 중국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三國遺事에는 우리역사가 없다.] 吳在城 編著, [九黎系, 倭-日本史].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이야기]. 日本國書刊行會,[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外 多數의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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