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최근 ‘2014년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한국의 전통성이나 지문 없는 사관(史觀)으로 나온 내용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한민족의 구성과 역사조명에 초점을 두고 타민족과의 관계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 민족의 구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하면 인류학, 고고학, 언어학 등의 힘을 빌어야 하겠지만 그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충청도 공주시(公州市)에 있는 석장리유적(石壯里匠遺跡)은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그 연대가 추정되고 있다. 이 유적은 지금부터 약 1만5000년 전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한민족의 역사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이 석장리유적(石壯里匠遺跡)은 매우 오랜 시대에 있어서 연구의 단서(端緖)가 되는 기념비적 유적으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따라서 그 이후의 역사가 우리의 연구과제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깬 민족으로 석기시대부터 다른 곳에서 들어와 요동, 중국대륙, 한반도에 제일 먼저 정착했던 주인이다. 10만 년 전 그 당시 빙하 등의 영향을 받아 민족 대이동의 영향으로 대륙과 한반도 일대에 거주했던 것이다. 그 때 어떤 인종이 살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박사(1910~1996)는 “백인종인 코카서스 인종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민족 대이동 종족들이 역사적인 설정 아래 혼합해 한데 뭉치기 전 환국과 신시대에는 곰, 호랑이, 태양조상 등을 섬기는 여러 부족들이 서로 분열해 싸우고 있었던 시기였다. 우리 조상들은 처음에는 중국 북방에 생활 근거를 갖고 있다가 점차 남하해 중국대륙 깊숙이까지 이동했다. 선조들은 황하, 양자강 유역은 물론 섬서성(陝西省), 사천성(四川省), 청해성(靑海省), 감숙성(甘肅省) 등 중국전역과 바이칼(Baikal) 호수 및 시베리아 등의 드넓은 일대까지 활동무대로 삼았다. 이처럼 고대 우리민족은 대륙 깊숙이까지 들어가 고대국가를 건설했다. 이를 통해 활동무대는 아세아와 유라시아대륙 전역에 이른다는 것이 국내외 학자와 역사연구가에 의해 밝혀졌다. 우리민족은 고대에 아세아 유라시아는 물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외국의 학자와 우리나라 신진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도 연구가 부족한 자는 이를 믿지 않겠지만 미국, 러시아, 유럽, 학자들에 의해 밝혀지는 사실이다. 이들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남미 칠레 남단까지 우리 민족이 들어간 흔적을 남겨 전 세계 많은 학자들의 연구하고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로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멕시코와 니콰라과 등지에서 나타난 흔적이 그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처럼 금줄치기를 한다. 또 유아지기, 윷과 윷가락 윷판, 격구놀이, 제사지내는 모습, 장례문화(5日葬), 만가(輓歌)를 부르는 것, 사자(死者)의 얼굴에 가면을 씌우는 것, 사자의 입에 옥을 넣은 것,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 언어, 고수레(식사 전에 밥을 자연에 먼저뿌리는) 풍습, 상투, 갓, 장신구, 머리비녀, 벽화 등에서 우리 선조들의 전통과 유사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사는 허구라는 사실 밝혀야
이러한 연구 성과는 놀라움 그 자체다. 이렇게 광대한 한민족의 구성에 관해 우선 사학(史學)의 입장에서 언급한다면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다른 민족에 비해 비교적 순일(純一)한 편이라는 것이다. 그 주된 기본적 요소는 언제든지 우세하고 명백하며 뚜렷하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늘 지배적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요소를 주도적으로 융합해 왔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환웅(桓應)대에 와서 단군(배달임금)이 나와 환국(桓國)을 무력통일하고, 기원전 2333년 아사달(지금의 감숙성(甘肅省)으로 추정된다)에서 조선(朝鮮)이라는 광역국가를 건설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우리 역사를 도적질하며 자기역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특히 일본은 있지도 않은 고대사를 제멋대로 조작하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강도행위들을 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인가. 얼마나 그들의 역사가 부실했으면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자국역사의 잘못을 지적한 학자를 억누르고 감옥에 가두고 있는가 하면 일본은 고대 우리 역사를 흉내 내며 없는 역사를 조작하고 또한 변조·왜곡하며 가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말한다. 중국 땅은 고조선의 땅일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땅이기도 했다. 지금의 중국영역(中國領域)도 우리 것이 아니었는가. 아무리 숨겨도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전한서(前漢書) 지리지(地理志)에는 산동반도 래육묘(百+支 來六墓=백제 동성왕·東聖王의 무덤)가 있고, 양자강남쪽 남경교외(南京郊外)에는 공주의 무령왕릉(武寧王陵)보다 규모가 크고 모양이 같은 무덤이 300수십 개가 있다. 이들 지역에서 고구려 성과 왕릉 및 장군의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철저히 말살 하려고 하지만 이는 착각이며 이율배반(二律背反)이며 나아가 죄악의 행위다.
우리는 유라시아를 제패했던 기마민족으로서 실재한 고조선을 통해 아세아 최초이자 최강의 국가를 건설한 민족이다. 고대에 중국과 항상 전쟁과 전투에서 고조선은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오늘날 세계는 5천년간 1만4500번의 전쟁이 있었는데, 우리는 유사 이래 932회의 외침을 받았다. 이 숫자는 오늘 지구상에 250여개 나라 중에서 제일 많은 외침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존속된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위대한 역사와 사상이 있었음을 전술한 바 있다. 그런데 사상이 없고 야만생활을 하는 일본에 왜(倭)를 세운 것은 기마만족인 가야다. 가야는 부여의 유민이다. 그리고 백제, 신라, 고구려가 일본을 지배하고 지도했다. 일본은 있지도 않은 역사를 조작날조(造作捏造) 하나 일본이 나라를 세운 것은 4세기인 AD390년 일본에서 태어난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의 왕손인 오진(應神)이다. 그가 왜를 세운 실존인물로 왜왕 제1대인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그 이전의 왕이 있는 것처럼 조작하나 다 가공(架空)의 인물이고, 가공의 왕들이며, 가공(架空)의 역사다. 일본의 고대사는 모두 허구(虛構)임이 다 밝혀진 상태다. 그래도 일본은 억지를 쓰며 일본역사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2600년으로 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1000년이나 조작된 역사다.
일본역사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은 일본학자들도 말하고 있다. 미쓰노(水野 祐) 교수는 일본역사는 978년이 조작이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인 제1대 진무덴노(神武天皇)에서 9대 카이카 덴노(開化天皇)는 다 가공(架空)의 왕들이라 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의 왕들도 거의가 다 한국에서 건너간 유민이었다. 특히 고대에는 백제왕가에서 나온 사실을 일본 학자들도 실토하고 있다. 예컨대, 와다나베 미쓰도시(渡邊光每)같은 학자는 “고대천황가(古代天皇家) 도래(渡來)의 그 뿌리가 백제왕가에서 나왔다”고 양심적으로 실토하고 있다. 미쓰노(水野祐)교수는 일본서기(日本書紀)상의 기년(紀年)도 모두 잘못됐음을 정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1대천황이라는 진무덴노(神武天皇)는 BC 660~585년의 천황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있지도 않은 가공의 천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실제 1대 왜왕(倭王)인 오진(應神)의 경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270년~310년으로 조작했으나 미스노(水野祐)교수는 363~394년으로 명기(明記)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도 터무니없는 그 시대에 일본이 국가를 세울 상황도 형편도 아니었다고 역사조작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4세기 까지 신석기시대의 원시적 생활을 하는 상태에서 국가 건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한국에서 건너간 한족(韓族)이 일본을 깨우치는 역사를 숨기려 한 것이다. 진실은 이것을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 신황기(神皇紀)에는 “백제 인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을 깨우쳐 문화를 전하고 천황이 됐다”는 내용을 쓰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왕은 몇 대부터 몇 대까지 백제 인이 즉위한 일황(日皇)인지 분명히 쓰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은 허황된 기록임이 밝혀진 오늘, 일본은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한 허위의 일본역사를 사실(史實)로서 기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공(架空)의 신화에 역사적 근거를 준 것이 일본 역사인데, 이것들은 다 허황한 거짓 기술(記述)인 것이다.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보다 100년이나 먼저 쓰여 지고, 위지(魏志)나 왜인전(倭人傳)보다 50년 일찍 쓰여 진 진짜 역사서인 신황기(神皇紀)는 일본국토에 이주하기 이전의 통치자 신황(神皇) 이름을 기재하고 있다. 신황(神皇)이 일본 땅에 온 후의 역사에서 신황(神皇)과 그 황후며 친족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 때 다스린 내용과 지명, 일람도(一覽圖), 지도(地圖)까지 첨부돼 있어 일본이 내세우는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한 허위의 역사가 다 거짓의 허황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이 계획을 세워 꾸며낸 역사서로서 사서(史書)라기보다는 권력사다. 일본은 한국사를 질시해서 한국사를 왜곡한다. 그런데 그들의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한국인은 받아들인 결과 우리의 역사는 엉망이 됐다. 한국 고대사의 날조 앞잡이가 이마니시 류(今西龍)인데, 그는 환국은 물론 고조선도 단군도 모두가 실재가 아닌 신화라는 사상으로 삼국유사도 불태우거나 변조하고 일본이 일찍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날조했다. 또한 우리고대사를 신라부터 시작이라는 당치도 않은 설을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호도함으로서 고대사를 못 믿을 것으로 돌려 버렸다. 하지만 세계학자들은 “세계문명의 발상지가 한국이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보다 구미학자(歐美學者)들에 의해 한국의 역사는 재조명 되며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대도 일본은 패전 후도 군국주의시대의 역사교육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이제는 세계로 웅비해야 한다
일본은 패전 후 한국의 6·25동란으로 경제대국이 되고, 군사적 강국으로 등장했으나 일본은 사상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국민을 이끌어 나갈 정신적 목표가 있어야 했다. 이 목표가 없자 극우 정치인들에 의해 일본은 다시 신군국주의로 가고 있는 중이다. 패전 후 그들은 아직도 반성은커녕 잘못 조작된 일본 역사를 그대로 쫒고 있다. 마치 일본이 고대부터 한국을 지배했다는 군국주의 시대의 역사교육을 그대로 가고 있다. 이는 침략야욕의 재판을 하고자 하는 것과 진배없다. 독도를 자기영토라고 트위터에 올리는 것을 봐도 그들의 야욕은 여전하다. 이제 우리는 일본이 독도문제나 위안부의 문제를 자기들 구미대로 뇌까리는 것을 바라만 볼 수 없다. 그들의 속성이다고만 볼 것이 아니다. 도둑맞은 역사부터 바로 되찾고 일본의 잘못을 제대로 대응하고 가야 한다. 이것이 되지 않는 한 한·일 간의 진정한 정치·군사·외교 및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교린(交隣)은 있을 수 없다. 우리 국민도 일제의 잔재를 일소(一掃)시키기 위해 거국·거족적으로 역사바로세우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를 진작해야 할 정신문화연구원장은 20일 상생TV에 나와 조선조(朝鮮朝)를 이조(李朝)로 까지 표현했다. 참으로 한심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일본이 우리를 하시(下視)하며 말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우리역사에 대한 모독이며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에 욕을 돌리는 행위다. 이제 위정당국도 이런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왜색일소(倭色一掃)를 위해 과감히 전면에 나서서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이는 우리의 역사의 전통성이나 바른 역사로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역사를 바로 되찾는 것은 우리 선조의 뜻으로 알고 정부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실행에 옮겨주기를 절실히 희망한다. 이런 바람은 비단 필자만의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위대하고 찬란하며 정직한 우리역사를 제대로 본 궤도(軌道)에 올려놓도록 해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웅비(雄飛)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가 우리 역사를 이용해 재편되는 것을 막고 도둑맞은 역사를 제대로 되찾아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가야 한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창조한 선조에 대한 보답이며 애국애족의 길이다. 또한 정부도 국민도 다 같이 해야 할 우리의 사명임을 자각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일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최인 선생의 관련 도서와 성헌식 선생의 ‘천년 만에 밝혀진-안시성과 살수’, 박찬희 선생의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홍익인간-(2)’, 임길채 선생의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상·하)’, 김정주 선생의 ‘畿內の緣故遺跡’, 장효 선생의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추산겸장(秋山謙藏)의 ‘日本の 歷史’, 일본국서간행회(日本國書刊行會)의 ‘神皇紀’ 등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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