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역사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입력 2021-05-15 11: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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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역사를 깊이 연구한 중국의 위안 텅페이(袁騰飛)는 “지나 역사는 95%가 허구이고 5%만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지나가 서북공정과 동북공정으로 지나(支那) 역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중화사상에 맞게 조작하나 이는 역사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이미 다룬 바 있는데 지나는 우리가 대륙에서 지배해온 사실을 지우려고 위(魏)와 당(唐) 때부터 우리 사서(史書)를 없애며 왜곡해 왔다. 
 
한 예를 들어보자. 고구려 제11대 돈천왕(東川王) 18년에 위(魏)의 관구검(毌丘儉)이 쳐들어와 환도성이 함락되고 임금이 환초령을 너머 피난을 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관구검이 노린 것은 국토가 아니라 고구려 도서관의 도서였다. 그는 고구려의 많은 책을 잔뜩 강탈해 싣고 물러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수(陳壽)가 펴낸 것이 삼국지(三國志)이고 지나의 사서(史書)들이다.  
 
지나는 동주(東周)시대부터 1000년간이나 대륙을 지배한 예맥조선과 1200년 이상의 낙랑국(樂浪國)등의 역사를 지워 없앴을 뿐 아니라 대륙에서 건국하고 중원을 지배한 고구려, 백제, 신라역사를 왜곡했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은 역사를 조작, 허구로 만든 왜곡된 역사를 마치 지나의 역사인양 거짓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삼한(三韓) 이후 고려(高麗)가 승계한 영역을 송(宋)나라가 승계한 것 같이 대체했을 뿐 아니라 고려를 승계한 조선을 청(淸)나라로 대체한 역사전부가 잘못된 허구임을 위안 텅페이(袁騰飛)는 양심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지나는 그를 지금도 감옥에 가둬 놓고 동북공정도 제멋대로 하고 있다.
 
지나가 제대로 역사를 연구한 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지나는 위안 텅페이(袁騰飛)뿐만 아니라 조선족의 학자들도 감옥에 가두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동양사(東洋史)의 대가(大家)로 지나의 사학자들이 모르면 자문을 구하는 연변대학의 김희덕(金熙德) 박사의 경우도 ‘북한 김정일이 프랑스 의사를 데려다가 병치료 한다’는 말 한마디를 한 것을 두고 간첩이라 하며 10년 이상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조선사와 지나가 만든 지나의 역사를 우리 역사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지나와 일본이 펴낸 대륙의 우리 역사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짓역사이기에 오늘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다. 
 
역사학자를 핍박해 조작한 역사는 역사 아닌 소설이다
 
위안 텅페이(袁騰飛)는 베이징 경화학당(京華學堂)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는 2010년 청소년 대상 110분짜리 동영상 강의에서 지나 역사는 5%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전부 허구라고 진실을 고백했는데 이것이 그가 감옥살이를 하게 된 이유이다. 
 
그의 이름이 우리나라 네티즌에서는 원승비(袁勝飛)라고 하고 있으나 그의 이름은 원승비가 아니라 위안 텅페이(袁騰飛)이다. 원텅페이의 등(騰)이 승(勝)으로 되어 있는 것은 오자(誤字)로 잘못된 것이다. 
 
위안 텅페이가 지나의 동북공정도 잘못임을 분명히 말을 한 것은 그가 학자다운 양심을 지키는 자임을 말하고 있었음에 우리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도 이런 학자다운 연구와 솔직한 면모를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이미 밝힌 대로 2016년 8월초 지나에 우리 역사답사를 가서 요하문명의 홍산(紅山)에서 빗살무늬 파편을 김남석 고조선 답사 총무와 몇 개를 주어 와서 숭실대역사박물관에 전시하기를 바랐는데 박물관 열람실에는 열람이 되어 있지 않아 몇 년 전 우리역사연구원의 연구자들과 숭실대학 방문시 황준성 총장에게 말한바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역사에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은 습성이 고질화된 것 같다. 1971년 이탈리아ㅠ정부의 초대를 받은 우리나라 한글학자 한갑수 박사와의 세계최고인류학자이며 석학인 이탈리아의 자코모(Giacomo) 박사와의 만남에서 인류의 수수께기인 ‘솟대’를 비롯한 11가지 문화에 대해 질문을 하고 한 박사의 설명을 듣게 된다. 
 
그 때 자코모 박사는 2시간이나 눈물을 흘린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코리아 당신의 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고의 선진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나라가 제일 먼저 절대자를 모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코모 박사는 반생의 피나는 연구 속에서도 그 어느 나라에서도 풀지 못했던 인류시원의 수수께끼들이 한국의 사상과 문화, 종교, 속에서 오롯이 존재해 풀림을 깨닫고 한국이 인류시원의 국가임을 깨닫게 되는 감격에 나오는 뜨거운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 후 자코모 박사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들을 일깨워주는 말을 한다.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시원사상이라고 일컫는 삼위일체(三位一體)사상이 이집트나, 이스라엘도 아니고, 바빌로니아나 인도, 지나도 아닌 코리아에서 나왔음을 말했다.
 
또한 코리아는 고대 이집트인보다 2세기 반에서 2세기 전에 황하연안에서 인류문명을 싹 틔운 민족임을 발표하면서 더불어 ‘당시의 황하유역에는 지나인(支那人)이 한사람도 없었음을 강조하고 황하문명(서기전2000년)과 황하문명의 모체의 문명인 홍산문명(서기전 4500년~서기전3000년)이 바로 코리아문명임을 밝혔다고 말했다. 
 
지나의 역사왜곡은 어린이 만화(漫畵)임을 세계석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사실이 아니며 지나 역사는 소설(小說)임을 외국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지나학자도 부인 못하는 요하문명 바로 알아야 
 
1985년 당시 지나문화부장 주무츠(朱穆之) 최고인민회의발언, 즉 “홍산문명(1만년 상고사)은 한국의 것이다.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우리 지나인은 한국인의 후손이 되며 지금의 지나 영토는 원래 한국인이라는 땅임을 부인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나는 그 조상도 문화도 우리 것으로 더 이상 숨길 수없는 홍산문화를 세계고고학계에 밝혀야 하며, 아울러 기존의 지나 황하문화가 인류의 기원이라는 주장으로서 황하족기원설, 즉 ‘지나문화는 인류의 기원이라는 지나문화는 복합문화이다’라는 주장으로서 세계의 사학계를 상대로 새로운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2016년 홍산문화 답사를 가서 봤을 때는 홍산문화가 자기들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는 말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들이 지나문명이라 해도 1963년, 1979년, 1987년 대거 발굴된 요하의 적봉산(赤峰山)에서는 지축(地軸)을 흔드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우리의 홍산문명(紅山文明) 것이었다.  
 
우리 고유의 문화였던 ‘적석총’과 ‘적관묘’ 신을 모시는 둥글고(하늘) 네모난(땅), ‘제단’(천단)과 ‘마고여신상’ 또한 옥(玉) 문화의 기원인 정교한 ‘옷장식’들이 쏟아져 나와  황산문명의 사실은 한국의 배달문명(홍산문명)에서 발원된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편 지나는 1993년 8월, 적봉시(赤峰市)에서 <지나북방고대문화 국제학술영토회>를 10일간 개최해 미, 영, 일, 등 11개국의 학자 100여명의 참가한 회에서 이 문화가 동이족 토착인(고대한국)의 문화로서 동방문명의 발원지이며 세계문명의 창시문화였음이 전 세계 학자들에 의해 공인되기에 이른다면서 여기에 지나학자도 그렇다고 했다. 
 
그것은 지나의 문자의 아버지라고 하는 낙빈기마저도 그의 50년간의 필생의 대작인 [금문신고]를 펴내면서 ‘동이족(동이배달민족)이 동양에서 최초로 나라를 세웠음’을 발표하고 지나의 문명 또한 한국문명에서 비롯됐음을 밝혀 결론이 나온 것이다.  
 
글을 맺으며 
 
이미 오래전 5대 문명에 대해서는 다뤘었는데, 요하문명은 지금까지 인류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문명(일명 스메르문명(서기전 3500년)보다도 1000년 이전에 문명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황하문명보다는 2000년 이전 문명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의 탓인지는 모르나 역사인식이 너무 뒤떨어져 있다. 요하문명에 대해 세계가 모두 우리 역사가 얼마나 유구하고 위대하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하는데 부끄럽게도 우리는 세계지식인들로 부터 자기나라 역사를 모른다고 지적받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요하문명을 비롯해서 세계 5대문명이 모두 우리의 조상들에 의해서 이뤄진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더구나 우리가 대륙사임에도 반도에 국한한 역사라고 하는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이 행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역사는 반도 역사가 아니라 환국시대부터 유라시아를 80%의 영역을 가지고 환국이후 배달국 단군조선, 예맥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그 계보가 이어진 역사로 찬란한 역사인데 지나는 우리 예맥조선과 낙랑국도 지웠다. 하지만 산해경에 부여국(夫餘國)이 예맥의 고지(故地)라 했다. (山海經 第十一, 海內西經).
 
지나는 예맥을 지웠으나 진서부여전(晉書夫餘傳)에 그 왕의 인문(印文)에 예맥왕의 인(印)이 있고 국중(國中)에 예맥성(城)이 있는데 본래 예맥의 땅이라고 삼국지 부여전에 선대로부터 전해온 옥벽규찬(玉璧珪瓚)에 예맥왕의 인(印)이 찍혀 있다고 했다.  
 
후한서 동이전에도 예맥의 노인들이 ‘예맥은 고구려와 종이 같다고 말하고 고구려의 일명(一名)이 맥이(貊耳)라’ 했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예맥을 박(狛)이라 칭했다. 박(狛)은 예맥이다. 예맥후손이 고구려이다. 일본진자(神社)에 박견(狛犬)은 일본이 예맥, 고구려 자손임을 말해주는 표상으로 일본도 우리 자손임을 알 수 있다.
 
세계는 지금 문화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해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되찾지 못함으로 아직도 오리무중에서 헤매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아직도 제정신들을 찾지 못하고 우리가 문명의 주인임을 모르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나의 양심적인 학자 위안 텅페이는 지나역사가 5%도 아니 된다는 것은 역사연구를 한 결과에 얻어진 것임을 고백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 역사는 대륙사로 대륙을 호령하고 지배한 역사임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이제는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찾기를 충심으로 바라지는 것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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