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 한족(漢族)의 시조 누구인가

입력 2021-05-22 1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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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러시아의 민족학자인 S.M. Shirokogrov는 ‘만주계(滿洲系) 고대 퉁그스족은 서기전 3000년 기(紀)에 이미 황하와 양자강, 각 중류(中流)이하의 중간지대에 살고 있었다. 지나 해안지대, 만주, 한반도, 동부 시베리아지방에는 고대 아시아족이 그 때까지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나(支那)의 서양지(徐亮之)는 세석기문화족(細石器文化族)이 시베리아 바이칼호(湖)지방에서 살다가 약 6000년 전부터 만주, 북지(北支)지방으로 이동해 온 종족이라 했다. 여기서 세석기문화족은 우리 조선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홍콩대학 임해상(林惠詳) 박사는 유라시아는 지구면적의 40%인데 유라시아 80%가 우리영토라 했다. 인구는 1억8000만명으로 당시 전 인구의 71%이고 GDP는 60%라고 했다. 
 
이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영토로 이곳을 지배한 나라가 환국(桓國)이며 우리 민족이 유라시아를 지배한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우리 역사를 잃어버렸다. 징심록(澄心錄)은 1만2000년의 역사서로, 환국(桓國)시대 12 연방(聯邦)나라 12 씨족이 지내온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우리가 세계 최초 시원국의 자손답게 우리 역사와 문화 전통을 제대로 지켜가야 함에도 이를 지워버려 모르고 있다.
 
여기에 지나는 우리의 역사와 선조를 자기들의 나라요 자기조상들이라 하며,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너무 역사를 소홀히 함과 역사를 모르는 무지함과 방관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들의 각성과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지나와 일본이 고대 예맥조선과 낙랑국(樂浪國)을 지워 없앴는데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에는 관심 없이 자리에만 연연하고 있는 꼴이다.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왜(倭)도 대륙에 있어서 우리 역사가 대륙사로 아시아 역사인데도 이를 연구도 하지 않고 그 전모를 모르고들 있다. 오늘은 지나가 우리나라 역사를 어떻게 조작하고 왜곡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요순시대(堯舜時代) 하(夏), 은(殷), 주(周) 한족(漢族)아니다
 
지나인들은 자기들의 역사로 요순시대(堯舜時代)가 하(夏), 은(殷), 주(周)나라 순으로 이어졌다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근거를 두고 말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한족(漢族)이 아니며 조작된 역사라는 것이 다 밝혀지고 있다. 
 
은(殷)의 시조인 전설의 왕조 하(夏)의 우왕(禹王)에 의하면 황하치수사업(黃河治水事業)의 공적에 의해 제순(帝舜)시대에 하남(河南)의 상(商)땅에 봉해졌다고 말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민족은 어느 나라 민족인가.
 
은(殷)은 서기전 1600년경 부족국가의 연합체로서 화북일대(華北一帶)를 지배했다. 이들은 지나족이 아니다. 황제 후손으로서 유목민이었다는 자료가 있다. 
 
그 역사는 제국수도(帝國首都)가 시조로부터 11대 탕왕(湯王)에 이르기 까지 8번이나 천도(遷都)를 한 것이 사실이고, 더욱이 탕왕(湯王)으로부터 19대에 해당하는 반경(盤庚)대까지 5회나 천도(遷都)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하(夏)나라부터 살펴보면, 하(夏)의 건국은 우(禹)가 서기전 2070~서기전 1767년으로 그 위치는 하남성 양성(陽城), 지금의 정주(鄭州)였다. 그리고 또한 은(殷)은 탕(湯)이 서기전1767~서기전 1046년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위치는 하남성 안양(安陽), 은허(殷墟)가 있는 곳이었다고 하고 있다.  
 
또, 주(周)는 무왕(武王)이 서기전 1046?~서기전 256년으로 위치는 호경(鎬京), 지금의 섬서성 서안(西安)이다. 이 나라들은 지나 역사가 아니다. 춘추시대 서기전770~서기전 403년까지 367년간 계속되고, 전국시대는 서기전 403~서기전 221년은 북방기마민족들이 지배한 시대로 이들 왕들은 모두가 한족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지나의 역사라고 하는가. 이들은 모두 우리 동이족들이 세운 나라들로서 고조선의 지배를 받은 나라로 보고 있다. 지나는 우리 사서(史書)를 훔치고 가서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나 그 실체가 다 드러나고 있다.  
 
역사에 열등감으로 지나는 삼황오제를 비롯해서 엄청난 역사조작하고 자기들 역사라 하나 하(夏), 은(殷), 주(周)는 지나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나 인류학적(人類學的)으로 봐도 지나가 말하는 한족(漢族)이 아니며, 이들은 모두가 북방기마민족인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주족(周族)도 한족(漢族)이 아니고 동이족이었다
 
지나는 주(周)도 자기들 나라라 하고 주족(周族)도 자기 동족이라 하나 아니다. 주족(周族)은 고고학적으로나, 고인류학적(古人類學的)으로 봐도, 몽골의 대초원지대로 부터 양(羊)을 몰고 오르도스 지방에 들어와 계속해서 황하동쪽 분수(汾水)곁에 정주(定住)해 씨족연합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족속이다. 
 
그런데 은(殷)시대인(서기전 1600년~서기1100년)후반 주(周)의 13대 고공단부(古公亶父)의 시대가 되어서 은족(殷族)의 침공을 받았기 때문에 황하서쪽을 건너 합서성(陜西省) 기산(岐山)으로 가서 도시국가연합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미 살펴본 대로 주(周) 15대 문왕(文王)은 서방(西方) 티벳 강족(羌族)의 지도자인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맞아 은타도(殷打倒)의 준비를 시작해, 산사람을 제물로 바친 원한이 깊었던 여상이 주(周)16대 무왕을 도와서 은(殷)을 격파해 주제국(周帝國)이 수립됐다고 하고 있다.   
 
이 주(周)도 서기전 770년 서방(西方)의 견융(犬戎)의 침공을 받아 수도(首都) 호경(鎬京)을 버리고 동쪽의 낙읍(洛邑)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 호경에서의 약 330년을 칭해서 ‘서주(西周)’라 하고 있다.
 
한편 동주(東周)는 서기전 256년, 진(秦)에 멸망할 때까지의 514년을 칭해서 동주(東周)로 부르고 그 이전을 시대를 주(周); 서주(西周(서기전1100년~서기전770년)라 부르고 있는데 이 주왕조(周王朝)도 지나족 역사가 아닌 것이다.  
 
위안 텅페이(袁騰飛)가 말한 지나 역사가 5%도 아니 되고 95%가 되는 역사가 지나역사인 것을 대륙역사연구를 한 사학자라면 서기전 1100년~서기전 770년)까지의 주(周;西周)시대의 역사도 동이역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지나는 자기들 한족(漢族) 시조가 황제(黃帝) 헌원(軒轅)이라 하며 황제 헌원으로 부터 요순시대(堯舜時代)를 거쳐 하(夏), 은(殷), 주(周)의 시대가 이어졌다는 것이 지나인들이 지나 기원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이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황제 헌원은 지나의 시조가 될 수 없다. 그는 김유신의 선조이기도 한, 헌원이 지나인의 시조라면 삼국통일을 한 김유신도 지나인이라야 옳은 것이다. 김유신은 엄연히 우리 신라의 장군이지, 지나 장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 
 
지나는 95%의 역사를 메꾸기 위해 배달국시대의 우리 선조들을 모셔다가 자기들의 선조이고 삼황(三皇) 오제(五帝)라 하며, 사서(史書)마다 각각 지칭하고 있는 것이 다르게 나옴을 보는데 이는 모두 조작하고 왜곡한 것으로 가관이다. 
 
지나의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삼조당(三祖堂)의 치우천황(蚩尤天黃), 헌원황제(軒轅黃帝), 신농염제(神農炎帝)를 말하나 이와 달리 삼황은,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를 말하는 남송 때 호굉(宏)이 지은 ‘황왕대기(皇王大紀)’에는 오제(五帝)는 복희, 신농, 황제, 당요(唐堯), 우순(虞舜)등을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를 연구한 ‘중국은 없다’의 저자 정희철 선생은 오제(五帝)를 황제,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을 말하는데, 위에 말하는 삼황오제는 각기 다르나 이들은 모두 우리의 조상이지 지나의 조상이 아니다. 
 
지나의 왕계보는 거의가 동이족으로 지나족이 아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도 지나의 왕계보는 거의가 우리동이족으로 지나족이 아니었다. 진왕(秦王)과 한(漢), 수(隨), 당(唐), 원(元), 요(遼), 명(明), 청(淸)등도 지나족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작되고 역사를 왜곡한 “지나의 역사는 5%도 되지 않는다”는 위안 텅페이가 말한 95%가 지나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역사연구를 한 사학자라면 그 누구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지나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연구는 뒷전으로 역사연구는 하지 않으면서 지나와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우리 역사라고 하는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역사는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어찌해서 우리 역사 대륙사(大陸史)를 반도역사(半島歷史)라고 하는가! 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이다.
 
교육부도 위정자도 역사를 모르는 자들은 수치로 알아야 한다. 반도사관으로 가치관이 변질되어 애국심이나, 민족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도 없는 무신경은 이 나라의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으로 수치만을 더하게 하고 있음에서다.
 
국가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역사를 바로 세워야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환국시대의 유라시아사와, 삼국시대의 아시아사를 모르는 무지는 더 이상 용납 할 수 없는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온 국민의 각성과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역사유적지답사기‘.’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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