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덴마크의 사상가 키엘케 골(Kier Kegaard(1813~55)은 “인간은 역사에서 살길을 배운다”고 했다. 역사를 모르고서는 앞날을 펼쳐 갈 수가 없다. 미국의 철학자 산타야(Santaya na(1863~1952)는 “역사를 잊어버리는 자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했다. 이 같이 역사는 우리의 진로를 펼쳐나가는데 필수적이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그 사상을 펴려고 천하를 주유하다가 뜻을 얻지 못하자 역사를 바로 써서 치란(治亂)의 원리를 후세에 알게 하는 것이 그 사상을 당세에 펴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해 만년에 중국정사(中國正史)라는 춘추(春秋)를 저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공자 후(孔子 後) 일인(一人)이라고 칭하는 주자(朱子)는 방대한 중국사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저술하는데 정력을 다했다. 이에 대해 건안구각본, 이씨방자후서(建安舊刻本, 李氏方子後序)에 보면 이씨방자(李氏方子)는 “군주가 이 책을 통하면 도덕과 위무(威武)의 본질을 알고 치란흥망(治亂興亡)의 원리를 안다”고 평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위대한 역사를 발전시켜 갱생(更生)하고 덴마크 갱생의 선구자 그룬드 비는 덴마크의 역사를 새로 발견하고 그 역사교육을 토대로 갱생운동을 전개해 오늘의 덴마크를 있게 했다. 역사를 되찾는 운동은 이처럼 성공을 담보하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스라엘과 덴마크는 역사를 통해 자국의 정체성을 바로 찾는데 성공했다. 이 같이 역사는 정체성을 바로 잡는데 긴요하고 중요하고 핵심이다.
역사는 그 나라 국민의 영광과 치욕을 기록한다. 영광은 그 국민의 자존심과 애국심을 북돋우고 치욕은 그 국민의 비분심(悲憤心)을 일으킨다. 일제는 초대 총독부터 역사말살을 강조하며 조선족의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유구한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에 대한 긍지를 송두리째 말살·기도해 역사왜곡을 자행(恣行)한 것이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內正毅)부터 마지막 총독 아베노부유키(阿陪信行)에 이르기 까지 일본은 우리의 고사서적(古史書籍)과 열전(列傳) 및 충의록(忠義錄) 등을 마구잡이로 불태웠다. 일제 총독부가 소각한 책은 무려 22만 수천권에 달한다. 일제는 ‘조선사편수회’로 하여금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폄하하며 우리 역사를 뿌리가 없는 민족으로 각색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상실하게 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심었다. 우리의 자부심과 역사에 대한 긍지를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역사의 위대함을 알기에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그 피해는 지금도 우리 온 국민에게 파급돼 엄청난 결과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도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목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역사가 1만년에 이르는데도 아직까지도 반만년 역사라고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은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초 고대광역국가 환국(桓國)
우리역사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국내문헌 등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이전 BC 7199년~3898년(3301년)까지 실재한 환국(桓國)과 BC 3898년~2333년(1565년)까지 배달국(倍達國)이 존재했다. 이를 이은 고조선은 BC 2333년에 건국했고 47대 단군 2096년을 이어갔다. 아시아, 유럽, 시베리아 등 유라시아에 걸친 강역을 지배했던 고대의 이들 대제국 환국·배달국·고조선의 역사는 7천년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역사 1만년 중 대부분이 강성제국으로 그 위세를 떨친 셈이다.
환국(桓國)에 대해서는 환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紀古史), 부도지(符都誌), 삼성기전(三聖紀傳), 숙조탑비(寂照塔碑), 신시본기(神市本紀), 유기(留記), 난랑비서(鸞郞碑序), 조대기(朝代記), 마한세가(馬韓世家),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세년가(世年歌), 천부경(天符經) 등 많은 역사서의 기록에 명확히 남아 있다. 환국은 지금의 중국 감숙성(甘肅省) 내 천산(天山) 서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국(桓國)의 왕은 1대 안파견(安巴堅), 2대 혁서(赫胥), 3대 고시리(古是利), 4대 주우양(朱于襄), 5대 석제임(釋提壬), 6대 구을리(邱乙利), 7대 지위리(智爲利) 등 7환인(桓因)으로 돼 있다. <7환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년 3301년과 7명의 재임기간이 수명을 감안하면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해 마지막 7대만 기록에 남겼다는 설, 7대 이전의 기록이 소실됐다는 설, 7이란 의미에 각별한 의미를 두어 7대만 강조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단군고기(檀君古記)의 기록을 보면 환국시대(桓國時代)는 53대 3301년간 지속됐다. 또 환웅시대(桓雄時代)에는 18대 1565년 환인(桓因)이 있었다. 단군시대는 47대 2096년간 지속됐다. 그런데 재야 사학자들은 배달국 시대가 37대 1110년 간 존속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연구를 통해 통일된 연대와 역대 단군을 바로 할 필요를 느낀다. 정확한 연대와 임금들을 알려면 일본 궁내성(宮內省)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우리의 옛 고서 상기(上記)등 많은 고서를 보면 확실해 지는데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깝다. 한·일 협정 후에도 일본은 침략으로 약탈해간 우리 도서를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해 축소한 역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류의 문명은 정확히 말해 요하(遼河)에서 시작했다. 요하문명은 황하문명보다 2000년이 앞선다. 발굴이 늦어져 세계사 인류문명의 발상지에서 요하문명이 빠졌으나 뜻있는 세계의 학자들은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하고 있다. 야비한 일제는 우리 1만년의 역사를 절반 이하로 축소했으나, 그렇다고 우리 역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4만 년 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왔고 1만5000년 동안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나라 환국(桓國)을 세워 다스린 선진민족이다. 일본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지도를 받은 것을 지우려 하지만 이미 한·중·일 사가들은 역사를 벗겨보고 진실을 알고 있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타 민족의 지도를 받은 일이 없고 도리어 타민족을 지도한 위대한 역사와 타민족을 지배한 강대한 역사를 창조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유민의 한을 역사왜곡에서 찾고 있다. 우리 상고시대에 광역국가를 세운 환국(桓國)을 나라가 아닌 사람 환인(桓因)이 있었다고 역사를 조작했다. 환국(桓國)과 배달국 그리고 단군조선은 엄연히 실재했다. 일본의 역사변조 왜곡은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삼성기(三聖記)를 보면 우리의 환국시대 강역(疆域)은 동서 간 3만 리요, 남북이 5만 리에 이르고 인구는 1억8000만명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 이후에도 중국, 유라시아,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에 이르는 대 강역(大 江域)을 지배했다. 상고시대부터 우리가 강대하고 선진왕국을 건설한 것은 더시이상 재론이 필요치 않다.
한민족(韓民族)은 최초에 등장한 강대민족
환국(桓國)은 3천여 년 간 다스린 왕국으로 7명의 왕이 다스렸다고 하나 필자는 7명의 왕(桓因)은 환국(桓國)말기에 다스린 왕이 아닌가 보여진다. 3000여 년간 다스린 왕이 7명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국(桓國)은 실재했으며 환국(桓國)을 다스린 강역(疆域)은 한반도가 아닌 아시아와 유라시아대륙이었다. 이 대륙에서 우리 한민족은 원주민과 융합하면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해서 크게 발전했다. 환국(桓國)에 이어 환국(桓國)의 마지막 지위리(智爲利)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BC3898년 신시(神市)를 건국하고 신시시대(神市時代)를 열었다. 그가 거발환(居發桓)으로 배달국의 첫 환웅(桓雄)이다. 배달국은 거발환(居發桓)부터~마지막 환웅(桓雄) 거불단(居弗檀)까지 이어졌다. 그 후 단군(檀君)이 조선(朝鮮)을 세우고 민족적 동방이동(東方移動)을 개시했는데, 중국인들은 이들을 동이(東夷) 또는 숙신국(肅愼國) 혹은 예(濊)·맥(貊)이라고 일컬었다. 이 숙신국(肅愼國)은 흑룡강지고(黑龍江志稿 第一, 地理志 沿革)에 나온 기록을 보면 석기시대에 돌과 철을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했다. 4300여 년 전에 만 여리 동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해 무력이 만 여리에 떨치기도 했다. 아울러 4000여 년 전에 대국을 건설해 지금의 길림성 동쪽 모든 지방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고전(中國古典)에 나오는 소위 구이(九夷)라는 것도 대체로 조선족을 의미하는데, 중국 본토 내에 까지 선주(先住)한 동이족(東夷族)이 중국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단군조선의 전성기인 BC10세기쯤부터 5~6백 년 동안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연평부)도 조선족의 하나였다. 고대 양자강 회하역(淮河域)에 조선인이 많은 소왕국(제후국)을 건설했는데, 그 중에는 서언(徐堰)이 나라를 세워 1000여년을 누렸다. 중국의 36개국(혹은 50여국이라고도 함)으로부터 조공을 받은 서국(徐國) 같은 나라가 있었다. 지금도 강소성(江蘇省) 서산(徐山)에 사당이 있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불이지국(弗離支國) 같은 나라도 있었다. 불이지국(弗離支國)은 ‘주서’(周書)의 불이영지弗離令支)와 ‘사기’(史記)의 이지(離支)다. 지금의 직예(直隸), 산동(山東), 산서(山西) 등 여러 성(城)을 정복하고 발해(발해)란 이름을 주기도 한 나라다. 옛 이름이 부여인 하르빈(哈미濱)은 조선족이 최초로 개척한 평야(불)다. 옛 3조선(진·번·막)이 있었는데, 옛 조선이 강성한 때 왕후(王侯)의 3경(京) 중 하나는 북부여의 옛 지역인 아사달(阿斯達, 구월산)이다. 중경은 지금의 하르빈으로 또 현 개평현 동북 안시성(安市城)터다. 남경은 평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평양도 옛날에는 중국에 있다가 후에는 반도안의 대동강 유역으로 옮겨진 것이다.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조선이나, 만주, 몽골, 터키 등은 몇 천 년 전에는 우리와 같은 혈족이었다”고 하고 있다. 반면 중국 한족(漢族)은 우리 한민족과는 언어나 습관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했다. 이처럼 중국역사와 우리역사는 같을 수가 없다. 동북공정은 아주 잘못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 손으로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최인·한창건 선생, 임승국 번역 주해 ‘한단고기’, 이강민 ‘대한국고대사’등의 서책들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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