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와 일본은 왜 역사조작을 하는가

입력 2021-06-19 13:13:56

원문 링크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와 일본은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해 자기들 역사라 하나 여기에 동조하는 세계의 저명한 사학자들은 이를 부인한다. 그러나 영혼을 팔아먹는 식민사관자들은 이들 위서에 현혹 되어 있다. 
 
지금까지 지나와 일본이 우리 역사를 폄하하며 숨기고 지운 것은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창여 지방(昌黎地方)의 예맥조선과 낙랑조선을 숨기고 덮은 것도 그 한 예이다.
 
여기서 창여지방이라 함은, 요동반도 이서(以西)의 만리장성 동편에 위치해 있는 광영평야(廣寧平野)지방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이지방의 조선족을 후세의 지나인들은 조양(朝陽)지방에 자리한 번조선(蕃朝鮮)사람들과 함께 동호(東胡)라 불렀다. 
 
규원사화(閨怨史話)는 단군조선 1048년경 두홀왕년대(豆忽王年代)에 남후(藍候)가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가서 고죽군(孤竹君)을 쫓고 그 도읍(都邑)을 남방 남독(奄瀆)에 옮겼다고 했다.(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 史記 朝鮮列傳 注)
 
산해관이서(山海關以西)~천진구(天津口)까지 백하(白河), 난하(灤河)를 비한 18조(條)의 대소강하(大小江河)가 흘러내려 발해(渤海)로 들어가는 등(等), 이 지대는 광영평야(廣寧平野)에 못지않게 물이 많고 산색(山色)이 아름다운 대 평야지대인 것이다. 
 
이곳 무녕(撫寧)지방에 위치한 남후(藍候)의 조선을 예맥조선(濊貊朝鮮)과, 낙랑조선(樂浪朝鮮)이라 칭했던 것이다. 또한 제진(齊陳)이 말하기를 이 연(燕)나라와 조선과의 사이에 렬수(洌水)가 있으니 그 곳을 국(掬)이라 했다.  
 
이 예맥조선과 낙랑조선이 있었음에도 이를 다 지운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고조선도 3000여 년 전의 일이었고 자체문헌을 다 없앤 오늘에 고조선에 대한 기록도 지나인들 붓끝에 따라서 그 대상의 호칭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즉 3000여년에 걸친 사람이 사는 세상의 변천, 지명이 개역(改易), 강산의 이변(異變), 침략주의사가(侵掠主義史家)들의 작란 등으로 민족명과 지명들이 바꾸고 이동시키며 혹은 연대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바뀌고 섞여 그것이 유구한 세월의 운무(雲霧)속에서 흐리어있는 등 그것을 가려내어 올바르게 파악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제대로 된 자료를 모두 없앴거나 조작했기 때문이다.  
 
지나(支那)와 일본의 역사조작, 상상을 초월한다 
 
지나와 일본은 상고사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온갖 수법을 동원해 연대를 자르고 사실을 숨기고 덮으며 왜곡해 억지로 역사를 꾸며 가고 있는 것이 지나와 일본의 작태이다. 
 
세계 석학들이 우리나라가 세계시원국가(世界始原國家)이며 1만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데도 지나와 일본은 우리 사서(史書)를 철저히 없애고 역사를 조작하니 21세기에 와서도 이런 조작을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나는 고구려, 발해가 지나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며 최근 1985년 가을에 대조영의 무덤이 발굴됐는데 여기에서 출토된 족보에 “발해는 고구려의 후손으로서....”가 명시돼 있었는데도 말갈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다. 
 
발해(渤海)는 고구려를 이어 받은 황제국(皇帝國)으로 최근 발해 순목황후(順穆皇后;孝懿皇帝의 皇后)의 묘지(墓誌)가 나왔는데도 지나는 아직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사실은 당시 지나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던 해림대표 허해철 회장도 이 소식을 지나 현지에서 접했다고 필자에게 전해왔다. 
 
그 묘지(墓誌)는 141자가 새겨져 있는데도 사진도 글자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 궁전 함원전은 9칸인데 반해 발해의 궁전은 19칸이라 하고 있다. 발해가 황제칭호를 쓰는 황제국인데도 지나는 지방정권이라 주장한다.
 
지나는 발해가 속말(粟末) 말갈족(靺鞨族)이라 하며 대조영(大祚榮)이 말갈족의 시조(始祖)라고 말하며 698년 고려(高麗)를 세웠다고 하고 있는데 터무니 없는 말이다. 지금 지나인 중공은 광활한 고구려의 영토를 이어받은 발해 역사도 철저히 왜곡하나 이런다고 황제국 발해가 지나 지방정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나는 진(秦)시대(서기전 221년~서기전 206년)에 조(趙)와 연(燕)이 조성하고 있던 만리장성을 연결시켜 명왕조(明王朝)까지 건설이 계속돼 만리장성을 완성을 했다. 그 길이가 6000km이었는데 이를 지금은 압록강까지 2만2000km라하며 이것도 제멋대로 조작하고 있다. 이들 행태는 정상이 아니다. 
 
진왕(秦王;정(政)은 서기전221년 제(齊)를 마지막으로 멸망시켜서 춘추이래의 6국을 통합했는데 지나(支那)전체를 통일한 것이 아니다. 이는 6국 통합이다. 또 그는 여태까지 왕의 칭호를 쓰다가 이를 버리고 황제라 칭하며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 하나 잘못된 것이다. 황제제도 역시 우리가 전해준 제도이다. 
 
전후 일본은 왜 고사 고전의 연구 활발한가 
 
전후 일본 사학자들은 지나와는 달리 고사(古史), 고전(古典)연구가 활발해졌는데 이것은 우리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접하고 그 내용이 일본고대사가 말하는 상가야왕조사(上伽倻王朝史)와 부합됨을 주목하게 됨에서였다.  
 
상가야 왕조는 서기전 3890년경에 개시한 환국 이후 신시시대(神市時代)의 환웅 37대와 서기전 2333년에 창건한 고조선의 단군47대와 서력 기원이후 실크로드를 지배한 예맥,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로 이어지는 위대한 혈맥이다. 
 
이 상가야 왕조는 일본열도에 존재했던 왕조는 아니나 일본민족의 뿌리이기에 조선과 실크로드 중동에 걸쳐 있는 역사로, 그 왕조의 사람들이 일본으로 옮겨오면서 역사의 텍스트도 가지고 왔고, 지명(地名)도 그대로 옮겨 왔던 것이다. 
 
일본의 고대사를 연구해온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는 [桓檀古記]의 고대 일본사와 접속부분연구를 <아시아의 비사-지보[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글로 1980년 <역사와 현대>에 발표됐다. 그리고 실크로드사 연구가인 가시마 노보루(鹿島 昇)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우리보다 먼저 일본어로 번역 출판했다. 
 
이로 인하여 다수의 고대사 연구가들이 “일본의 고사, 고전은 <환단고기>와 그 내용이 합치되며 [환단고기]와 비교 대조해 보아야 다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연구와 비교도 하지 않으면서 [환단고기]는 위서(僞書)라고 하는데 이들은 일본인보다 더 악질의 위선자가 되고 있다. 
 
이들은 사학(史學)의 임무(任務)는 먼저 역사 사실을 밝힘에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일제암흑기에 총독부직속기구로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총독부 정무총감이 회장이고 이완용이 고문의 두목이 되어 35권의 책을 완성한다. 참 슬픈 일이다. 
 
오늘날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치고 한국과 일본의 사학자들은 712년 나온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와 720년에 나온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일본열도의 진짜 사서(史書)라고 믿는 사학자나 고고학자는 없는데도 연구는 뒷전이다.
 
분명한 것은 상고시대 우리역사는 유라시아 역사이고, 삼국시대의 역사는 반도사가 아닌 아시아사라는 것을 지나와 일본학자들에 의해서도 밝혀지고 있는데 이를 모르고들 있다. (최태영 [인간단군을 찾아서] 269~274면 참조 인용하다).
 
글을 맺으며
 
동이족을 맨 처음 동이(東夷)라고 쓴 자는 남송(424~478)의 범엽(范燁)이었다. 고대는 동이족을 높이며 오늘날과 같은 거짓이 없이 동이족을 우러러 보았다.
 
주대(周代) 이전의 지나인들은 동방족의 국가를 숙신씨(肅愼氏)라 부르고 다음과 같이 지극히 존대(尊待)했다. “동방(東方)에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동방의 목덕(木德)이 어진고로 군자(君子)의 나라가 있다 하나니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사기(史記)의 흉노전은 요순(堯舜)이전에 산융(山戎), 렴윤(獫狁), 훈죽(葷粥)이 북방에 거주해 있었다고 하고 있으며, 진대(秦代)의 흉노는 동이, 북융(北戎), 동호(東胡), 예맥조선(濊貊朝鮮)등을 총칭했다 했는데도 이를 숨긴다. 
 
따라서 지나인들이 외족에 대한 부족칭(部族稱)은 하나같이 똑같지가 않다. 지나의 임혜상(林惠祥)은 숙신(肅愼)과 회족(回族)과 돌궐(突厥)을 혼동시(混同視)하되 그 종족이 6~10이상에 달한다고 하고, 또한 몽골족에는 동호에 속하는 부족과 돌궐에 속하는 부족이 있다고 했다. (林惠祥[中國民族史] 上 6面)
 
이와 같이 고대에는 우리민족을 존대하던 지나인과 왜인(倭人)들도 순수했던 족속들이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역사, 문화, 전통에 대한 열등의식이 옹졸한 족속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의 잘못도 한몫을 하고 있음을 크게 반성하고 개선을 해야 한다. 그것은 김일연이 역사를 바로 연구하지 않고 소설을 쓴 것과, 지금도 우리의 정체성을 못 찾고 있는 자학반도식민사관에 있음을 크게 반성하고 가야 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우실하, ‘동북공정넘어[요하문명론],.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3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