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는 상고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배달국시대의 황제헌원(黃帝軒轅)을 자기들의 조상이라 일관되게 주장하며 헌원으로부터 요순시대(堯舜時代)를 거쳐 하(夏), 은(殷), 주(周)시대가 이어왔다고 하는 것이 고대 지나의 기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들은 황제헌원 이전의 역사를 포함해 삼황시대를 인정하기도 하고 또한 헌원 이전의 시대를 전설로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본다.
지나는 3명의 황제와 5명의 임금(帝) 등 8명을 삼황오제(三皇五帝)로 말하고 있으나 사서마다 각각 지칭하는 삼황오제가 다소 차이가 있다. 예컨대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 삼황(三皇)은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말한다.
그리고 남송(南宋)의 호굉(宏胡)이 지은 황왕대기(皇王大紀)의 오제(五帝)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등 5명을 말하고 있다.
혹은 오제(五帝)는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을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나인의 조상이 아니라, 모두 우리조상들이다.
이들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지방에서 그 근원을 발한 유소씨(有巢氏)~수인씨(燧人氏)~복희씨(伏羲氏)계(系)의 부족들이 기후가 온난한 동방의 평야를 찾아 북만주, 흑룡강~남만주 송화강~서만주 지방으로 흐르는 여러 갈래 강하(江河)들의 유역을 끼고 내려와 만주~한반도~북지지방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상고사는 자료도 없어서 그 역사를 추적하기는 쉽지가 않다.
우리 민족은 서기전 3000년, 이미 일대세력을 이룩하고 있었는데 지나인들은 이들을 리(夷) 또는 숙신씨(肅愼氏)라 호칭했고 주대(周代)에는 이적(夷狄), 험윤(玁狁)이라 하고, 춘추~한대(漢代)에는 호(胡), 맥맥(貊貉) 흉노(匈奴)라 했다. 한(漢)~위(魏)~진대(晉代)에는 예맥(濊貊), 한(韓) 오환(烏桓)이라 했으며 17세기 이래의 서양인들은 퉁구스(Toungus)족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지나가 자기조상이라는 우리 조선족의 갈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지나(支那)의 국가원수들은 모두 우리 선조들이었다
산해경(山海經)은 상고국가(上古國家)의 국가원수(元首)들이 숙신씨의 출신이라고 고조선시대와 배달국시대 임금(帝) 8대제(帝)를 포희(庖犧), 포희(炮犧), 복희(伏犧), 황제(黃帝), 전욱(顓頊), 곡(嚳)와, 요(堯), 순(舜)이라 했다.
그리고 공자는 주역계사(周易繫辭)에서 포희(炮犧), 전욱(顓頊), 곡(嚳) 3대를 빼어버렸고, 반고(班固)의 자호통(白虎通)은, 복희(伏犧), 신농(神農), 축융(祝融)을 위삼황(爲三皇)이라 해 별도의 삼황성(三皇說)을 주장했다.
타이완의 서양지(徐亮之)는 그의 저서 [史前史話]에서 일부 지나인들은 복희(伏犧), 포희(炮犧), 대호(大皞), 태호(太昊), 복희(伏犧), 복희(宓犧)를 그의 저서 모두 동음(同音)~동일인(同一人)이라 하고 있다. 전계서 [史前史話 (112면)]
따라서 상고시대(上古時代) 대륙의 모든 나라들 군주들이 체계적인 대(代)를 이은 것이 아니요 혹은 동일한 시대에 여럿이 나타나고 혹은 세대 교체적으로 등장하는 등 각기 혼동하나 역사발전에 기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반고(班固)의 고금인표(古今人表) 제8은, 그 8대의 제(帝)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호복희씨(太昊宓犧氏),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 소호제 김천씨(小昊帝金天氏), 제전욱고양씨(帝顓頊 高陽氏),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제요 도당씨(帝堯 陶唐氏), 제순유우씨(帝舜有虞氏)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배달국시대의 위인들은 고도의 문화와 그 유적은 결코 우발적 또는 일시적으로 생겨낸 것이 아니요 그 이전에 허구한 세월과 역사적인 과정을 밟은 후, 생겨났다고 지나 서적은 전하고 있으나 왜곡이 많다.
따라서 상고시대 당시 그 이름을 알린 자는 유오씨(有巢氏)와 수인씨(燧人氏), 포희씨(包犧氏)를 지도자로 숭앙했다. 유오씨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적은데 새와 짐승이 많아 당시 사람들이 새, 짐승, 벌레, 뱀 등의 노천의 피해가 심하니 집을 지어 뭇 피해를 피하게 함으로 그를 유오씨라 했다.
또 수인씨는 백성들이 과실(果實), 덩굴, 조개, 고동 등을 먹고 악취가 나고 위장을 상하게 해 질병에 걸리는 자가 너무 많은지라 나무에 구멍을 파고 송곳으로 불을 일으켜 음식을 익혀 먹게 하니 백성들이 그를 왕(王)으로 하고 그 호를 수인씨(燧人氏)라 했다.
또한 북만주지방에서는 서양인들이 말하는 우랄알타이 어계(語系)의 포의씨(包犧氏)가 나타나 고도의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중에도 위대한 것은 동양철학 역[易]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선조들에 의해서 나왔던 것이다.
상고시대 만주는 찬란한 문화의 발상지였다
이같이 포희씨(包犧氏)가 나타난 연대에는 이미 우리는 고도의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중에도 가장 위대한 것은 동양철학 역(易)이었다.
이 역(易)은 팔괘(八卦)의 취상(取象)과 육효(六爻)의 훈(勳)등으로 천지만물의 정(情), 강유상추(剛柔相推)의 변화, 길흉, 득실에 관한 사항 등을 밝혀낸다는 것이며, 특히 이중에 포함되어 있는 천수(天數). 지수(地數), 대연지수(大衍之數)등은 오늘날의 수학으로서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역(易)의 심오한 진리는 공자(孔子)의 성(聖)으로도 그 생애의 반려로 했기에 가죽으로 만든 책 거죽이 3번이나 떨어졌다는 용어用語)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포희씨(包犧氏)의 집권이 몇 대에 걸쳐 몇 세게간(世紀間)에 계속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포희(炮犧), 복희(伏犧), 대호(大皞), 태호(太昊), 복희(宓犧)]등은 동일계왕조의 여러 제(帝)들이었으리라 보고 있다.
이 포희씨연대(包犧氏年代)의 동방족은 동일계왕조의 여러 임금들이 다스리며 이미 수렵과 어로로서 그 삶을 영위했으며 이 포희(包犧)시대인 때에 그물도 생겨났던 것으로 우리가 선구적 민족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우리 동방족들이 강변과 평야지대에서 정주(定住)하며 대륙을 지배한 것이 이후 2000년 후의 한서(漢書)와 위서(魏書)등이 말하는 구려(句麗) 등에 관한 조선족의 성격을 예시적(豫示的)으로 들어낸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인류역사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전기시대, 원자시대로 발전했는데 우리 선조들은 신석기시대로 돌과 철을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과 다른 민족이 없는 대궁(大弓)을 발견한 것이다.
또 한편 인류역사는 4300년 전에는 씨족시대, 부족시대, 부족연합시대, 귀족시대, 군주시대, 민주시대로 발전했는데 4300년 전은 씨족과 부족시대였는데 우리는 환국 때부터 인류사상 최초에 나라를 세우고 등장한 역사적 민족이다.
結語에 대신하여-역사시대에 나온 인물들의 공적
환국시대는 문자가 없어 역사기록이 없으나 배달국시대는 문자가 나오면서 역사인물의 행적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인물을 모두 열거 할 수는 없겠으나 몇 분의 역사적 행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공적을 볼 수 있다.
포희씨(包犧氏)는 고대인들의 이혼하는 만속(蠻俗)을 금지하고 부부제도를 실시해 인류가 준수 할 바, 윤리와 기강을 수립했다. 부모와 형제, 자식의 효(孝)등 오행(五行)을 바로 잡아 사람이 지켜야 할, 인도(人道)를 정했다.
복희씨(伏犧氏)는 일부일처제를 창시한 사람이다. 오늘날의 오륜인 오상(五常), 사람이 지켜야 할 인의예지(仁義禮智) 아버지는 의리로, 어머니는 자애로 형은 우애로 아우는 형을 공경하는등 오상(五常)을 중심으로 인도(人道)를 설시했다.
신농씨(神農氏)는 지나인들이 염제(炎帝), 적제(赤帝)라 하는데 보습, 쟁기 등, 나무로 농구를 만들어 신농씨 때에 백성들이 곡식을 먹기 시작하게 했으며 부싯돌로 불을 피워 쌀을 익혀 먹게 했다. 또 거문고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은 배달국시대 서기전 3400년경까지 약1000년 간의 포희(包犧)~복희씨(伏犧氏)의 연대에 거택(居宅)의 마련, 농경의 영위, 어로(漁撈)의 작업등 인간의 기본생활에 관한 기본방식을 얻게 하고 부부제도를 창시해 삼강(三綱), 오상(五常)등의 인륜이 발달할 터전을 마련하고 위대한 철학이요, 동양문명의 모체인 역(易) 즉, 팔괘(八卦)를 그려냈다.
이러한 문화를 이어 받은 신농씨(神農氏)시대 서기전 2900년까지의 약600년 간에 다시 주택의 건축, 궁실(宮室)의 영조(營造), 시장의 개설, 도시의 건설, 농경의 발달, 축산의 보급, 궁시(弓矢)의 제작, 의술의 발명, 악기의 제작 등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것이다.
지나인들은 공륜산하(崐崙山下) 타리무분지계(盆地系)의 하족(夏族)은 포희(包犧)~복희씨(伏犧), 신농(神農)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이(東夷)라 하고 자기들 조상이 아니라 하며 그들 정사(正史)에 취급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한 태도는 공자의 서전(書傳)과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마찬가지였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 권(卷10)은, 성제(成帝;서기전32~7년)시 까지도 신농대유오행(神農大幽五行)27권, 창괄전(蒼괄傳)1편(篇), 치우(蚩尤)2편(篇), 황제오가력(黃帝五家曆)33권, 전욱력(顓頊曆)31권, 전욱오성력(顓頊五星曆)14권의 사서(史書)를 보존해오다가 이 사서(史書)도 역사왜곡 위해 없앴던 그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배달국의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들까지도 자기들 조상이라 하고 있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나 행태를 보며 우리 역사 제대로 지켜야 함을 통감하게 한다. (文定昌,[古朝鮮史硏究]19面~30面參照 引用하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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