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 사서(史書)는 지나(支那) 위주로 쓰여진 소설과 같은 내용들이기에 이를 사서(史書)라고 보는 것은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동양사까지도 그릇되게 함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고 그 진위를 잘 살펴보고 말을 해야 한다.
사마천은 지나가 상고사가 없음과 빈약한 역사를 우리 사서에서 도용하며 사서를 썼기 때문에 사마천의 사서를 인용함에는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학자들도 사마천의 사서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은 필자와 같은 심정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의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같은 학자는 분명히 사마천의 사서는 지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고조선 역사를 교묘히 거꾸로 편집한 것이라 했다.
사마천의 사서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조작하고 편집한 것을 숨길 수 없다. 지나 역사는 5%도 아니 되기에 우리 역사를 가져다가 자기들 역사라 하나 사마천의 사서는 믿을 것이 못 되는 소설임이 밝혀졌다.
지나는 공자가 춘추(春秋)를 저술하면서 우리를 이족(夷族)이라 하며 우리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등으로 부르면서 자기국토를 중원(中原)이라 했다. 즉, 자기들이 세계의 한복판의 중심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모르는 자가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1만 년 전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중원은 물론, 유라시아의 80%를 지배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이는 오늘날 지나의 사학자나 세계사학자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시원국(始源國)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이를 왜곡할 수가 없다
오늘은 중원 대륙에서 과연 어느 종족이 지배했는지, 나라와 그 주인공이 어느 민족이 나라를 세우고 지배 한 사실을 지면이 허락되는 대로 밝히려 한다.
중원(中原)을 지배한 것은 모두 동이족이다
이미 기술한 대로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모두가 우리 선조(先祖)임을 밝혔다. 즉, 삼황오제는 모두가 배달국시대의 우리 선조였다. 그런데 지나는 이런 역사 훔치기를 하고 있다. 지나의 상고사도 동이족의 역사가 아니던가.
우리의 역사는 환국(桓國(서기전7199~서기전3897년), 배달국(倍達國)(서기전 3897년~2333년), 고조선(서기전2333년~서기전 238년), 예맥조선(銳麥;濊貊朝鮮), 부여(夫餘), 낙랑국(樂浪國(서기전1237년~서기32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져온 유구한 역사 민족이다.
그런데 지나는 춘추시대(서기전 770년~서기전 403년)와 전국시대(서기전 403년~서기전 221년)에 동이 기마민족의 기마전술의 습득과 군마의 수입과 증산에 힘쓴 결과 북방기마전술을 익힌 군사대국 조(趙)나라와 겨루어 조(趙)를 격파했다.
진(秦)이 조(趙)를 격파한 후, 서기전221년 제(齊)마저 멸망시켜 초(楚), 연(燕), 한(韓), 위(魏), 조(趙), 제(齊) 6국을 통합시킨 것은 춘추 이래 난세에 영정(贏政;秦王)이 이들 나라들을 통합한 지나는 전국을 통일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지나의 25사는 글자를 보지 말고 전체를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25사와 신구당서(新舊唐書), 양서(梁書)등에 내용변경, 개필(改筆)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한서(漢書)에는 연(燕)이 북에만 있고 동서남(東西南)이 없다.
그리고 지나 역사는 진(秦)부터 역사가 시작했다고도 쓰고 있으나 지나의 나라들이 모두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다. 요순(堯舜), 은(殷), 주(周),등 전국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이 거의가 동이가 세운 나라이다. 또한 진(秦)을 세운 영정(嬴政;秦王)부터 한(漢), 수(隨), 당(唐), 원(元), 명(明), 청(淸), 금(金)등 그 왕들은 모두가 어느 민족이 세운 나라였는가. 모두 동이다.
이러기에 위안텅 페이(袁 騰飛)가 양심적으로 지나 역사는 5%도 아니 되며 95%가 동이 역사라 밝히자 지나는 그를 감옥에 처넣고 있는 것이다.
지나 순한족(純漢族)은 ‘니므르세족’이 아니다
지나에 한족(漢族)은 없다. 굳이 한족을 말한다면 사람을 토막토막 자르고 장기를 팔아먹는다는 ‘니므르세족’이라는 야만족을 들 수 있는데 이들도 지나 조상이 아니다. 지나 조상은 우리와 같은 조상(祖上)이다.
지나의 역사를 다 말할 수는 없으나 나라를 세운 왕들을 보면 진(秦)을 비롯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나라를 건국한 왕들의 조상을 보면 진을 세운 영정(嬴政;秦王)부터 황제(皇帝)라 하나 이도 이미 기술한 대로 조작일 뿐이다.
즉, 지나는 영정을 시황제(始皇帝)라고 부르지만 이미 밝힌 바대로 황제는 그가 죽은 후 추서(追敍)한 것이었다. 지나는 영정부터 청(淸)나라 부의(溥儀)까지 335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과연 그들의 황제였나.
지나는 배달국의 헌원(軒轅)을 자기조상이라 하는 황제(黃帝)때부터 1911년 청(淸)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558명의 제왕(帝王)이 있었다는데 그 중 396명은 황제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도 오락가락이고, 162명은 왕이라 불렀다.
이들도 모두 우리 동이로 한족이 아니다. 지면상 몇 나라의 왕을 보면, 원(元)은, 고조선 단군4세 오사구의 아우 오사달 후손인 홀필열(忽必烈)이 건국했고, 명(明)나라는 주원장(朱元璋)이 건국했는데 그는 함경도 함흥사람이다.
또 청(淸)나라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그 후손이 다시 세운 나라이고, 금(金)나라는 신라말의 경순왕 후손인 아골타(阿骨打)가 건국한 나라이며 김씨(金氏)가 세운 나라이기에 금(金)이라 국호(國號)를 한 것이었다.
위의 청(淸)나라의 전신인 후금(後金)을 세운 왕을 우리는 누루하치라 하는데 누루하치의 성(姓)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애신각라라는 성(姓)은 원래 김씨(金氏)에게서 분가해서 나간 성씨(姓氏)인 것이다. 따라서 청의 마지막 부의(溥儀)도 당연히 애신각라(愛新覺羅)가 부의의 성(姓)인 것이다.
이 애신각라라는 뜻은 ‘신라를 사랑한다’라는 뜻인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은 세계를 움직인 종주국(宗主國)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앞으로 우리 강역도 되찾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역(江域)도 반도가 아니다
우리 한국사는 상고시대는 유라시아의 역사이고, 세계시원국이며 고대는 아시아가 우리 강역인 것은 지나의 학자와 세계학자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반도로 맞추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나는 우리 강역을 반도로 맞추며 지명도 개명하고 지도도 제멋대로 그리나 그렇게 될 수가 없다. 특히 당(唐)나라 때부터 우리 지명을 만주와 한반도로 옮기고 송(宋)의 소동파(蘇東坡)는 서기1100년에 우적도(禹跡圖)에 우리 지명, 강역을 숨기고 덮었다.
그러나 엄연한 역사 사실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소동파는 우적도(禹跡圖)를 그리며 1600년 이전 타이완(臺灣)역사는 없다고 숨기나, 숨길 수 없다. 지금 타이완 정부는 대륙을 찾기 위해 우적도 지명 다 확보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타이완(臺灣)이 670년부터 일본(日本)인 것을 나타낸 지도가 숭실대학 박물관에 가면 세계 유일하게 나와 있는 지도가 있음을 확인된다.
3년 전 우리역사연구원 고대사연구팀이 숭실대학 박물관을 방문해 이를 확인했고, 황준성 총장에게 유네스코(UNASCO)에 등재가치가 있음을 오재성 원장은 진언하고 온 적이 있다. 우리는 이 지도의 가치를 모르고들 있다.
오늘날까지도 지나와 일본은 타이완(臺灣)이 일본이었음을 숨기며 역사왜곡하나 숨길 수 없다. 지나도 649년 이전 장안(長安)중심의 한족정사(漢族正史)에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사례를 제시한바 있다. 예컨대 당항성(唐項城)은 당자(唐字)를 빼고 항성(項城)으로, 구지산(九子山)은 구화산(九華山)등 수백의 지명을 지우고, 숨기며 덮으나 우리 역사를 숨길 수는 없다.
지나는 우리 역사를 숨기고 왜곡과 조작하며 덮으려 하나 지나가 진당간(秦唐間) 역사와 동이(東夷)를 기록한 역사서가 18사이다. 지나의 기록도 참고가 되지만 우리에게는 세계유례가 없는 천년의 역사서인 삼국사다.
발행연도며 11명의 공동으로 연구해 펴낸 [삼국사(三國史)]의 기록은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돼야 함에도, 일부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일제강점기이론에 세뇌돼 이를 무시하는 사학자(詐學者)가 되어 우리 역사를 망가트리고 있다.
삼국사 권46의 [고구려, 백제가 강성한때, 강한병력 백만으로 남으로는 오(吳)와 월(越)나라를 없앴고, 북으로는 유연제노나라를 제거했다. 그 나라를 지배했던 나라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의 기록은 지나 남제서권58에도 있다.
글을 맺으며
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언제까지 기만에 찬 사학자(詐學者)로 우리의 역사를 병들게 하려는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바라진다. 그것은 우리 사서를 믿지 못한다면 외국의 사서와 학자들의 연구한 성과도 제대로 보고 말을 했으면 한다. 우리 역사는 지울 수 없는 유구하고 위대한 역사이다.
제 아무리 우리 삼국을 반도 안에 가두려 해도 우리 역사를 반도에 가둘 수 없다. 상고사는 물론 고대사를 봐도 고구려의 마립간(麻立干)은 고구려의 신하이다. 이 마립간은 오늘날 중동에 있는 7개의 카자흐스탄을 비롯해서 우즈베기스탄 등 몽골도 고구려의 마립간으로 우리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분명한 것은 [삼국사(三國史)]는 아시아역사(亞細亞歷史)이다. 그런데도 김일연(金一然)은 우리 역사를 반도 안에 가두는 반도사관의 원흉이 되고 있다. 그는 낙랑국(樂浪國)도 반도사관 때문에 없앴다. 낙랑국에 관해 기록한 사서(史書)는 한서권(漢書卷28), 사마천(司馬遷) 조선열전(朝鮮列傳 注)에도 기록이 있다.
낙랑국은 서기전 1237년~서기32년까지 남만주와 반도가 낙랑국이었다. 삼국이 반도에 건국을 할 수없는 이유도 낙랑국이 반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도 장성(長城)이남을 다스렸는데 반도에 집어넣고 있다. 제 정신들이 아니다. 바라건대 왜곡역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연구했으면 한다.
김유신의 14의 전쟁터는 반도에는 없다. 모두가 대륙에 있다. 또 소동파 지도에 타이완(臺灣)이 없다. 그런데 북경대가 발행한 지도에는 타이완이 이주(吏洲)로 나온다. 의자왕때 지명이 북경근처만 바꿔져 있고 대륙에 다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알기를 충심으로 바라진다. 학자는 진실(眞實)만을 밝혀야 학자이지, 왜곡한 것을 따름은 학자가 아니기에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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