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는 대륙역사, 반도역사 아니다

입력 2021-07-24 14:24:52

원문 링크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삼국사(三國史)는 90%가 대륙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지역의 기록임에도 우리는 삼국시대나라들이 반도에서 시작한 것같이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가 왜곡한 것을 역사로 보고 있는데 우리 역사는 처음부터 대륙에서 시작했다.
 
필자는 이달 15일 조선일보 31면에 ‘일본 섬에서 태어난 ’사마‘;무령왕(武寧王)...위기의 백제 다시 일으켰어요’의 기사를 보며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너무 우리 역사를 모르고 있어서 좀 더 연구하고 썼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필자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바로는 5세기 이전 신라. 백제, 왜(倭)가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지나(支那)의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그 어디에도 없다.
 
만일 그 역사가 반도에 있었다면 지나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 사서 어디에도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 사서에서 고조선 땅 서화(西華) 동쪽에 신라(駟盧國), 백제국(伯濟國), 왜(倭)가 있었다는 기록은 있어도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15일자 조선일보31면, ‘일본섬에서 태어난 ’사마‘...위기의 백제 다시 일으켰어요’라는 기사를 보며 언제까지 역사 기사가 ‘조선사편수회’가 왜곡한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백제도 5세기에는 대륙에 있었지 반도가 아니다. 더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했다며 송파구에 있는 몽촌토성이 한성(漢城)이라 하는데 기가 찬다. 이곳은 한성이 아니다. 무령왕이 태어난 곳도 일본이 아니고 대륙양자강 이남의 왜(倭)다.
 
무령왕 당시 일본은 양자강 이남에 있는 왜(倭)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도 670년 타이완(臺灣)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백제와 무령왕의 역사, 왜(倭)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썼으면 한다.
 
당시 무령왕이 대륙의 백제가 혼란한 상황을 피해 반도에 왔고 그는 백제의 분봉왕인 칸(干)으로 지금의 총통(總統)같은 지위로 당시 왕이라 불렀고 무령왕능의 벽돌도 대륙의 것이나 그 벽돌은 새 벽돌도 아니었음은 이를 말해준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영역을 우리 사기와 지나 25사의 영역을 밝히려 한다.
 
우리 역사를 반도역사로 보는 것은 역사무지이다
 
우리나라 삼국사기와 지나의 사서(史書)는 우리 동이민족의 영역이 지금 지나의 하남성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로 기록이 되어 있고 구당서와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까지 9세기 이전의 우리 민족의 영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바꿀 수가 없다. 사서와 유적은 후세사람들이 교정(校訂) 또는 조작해 왜곡할 수 있으나 문화, 문명의 흐름은 왜곡하기가 어렵다.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는 유라시아가 주 무대 였고, 삼국시대는 아시아가 주 활동무대였다.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말해왔으나 KBS의 역사스폐셜이나, 저명인사라는 분들이 반만년이니 5000년역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르고 알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자신들의 정체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깝다.
 
다시 분명히 밝히는 것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환국은 세계시원국이고 요하문명을 비롯해서 세계 5대문명을 일으킨 것도 우리 동이고, 녹두문과 갑골문자등도 우리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바둑과 24절기도 우리 선조인 복희가 만들었다.
 
고인돌이 6만개가 세계에 널려있는데 고인돌은 임금의 무덤으로 여기에도 고대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으나 고대문자가 나오면서 기록들은 사서뿐 아니라 이를 가장 확실히 밝혀 입증할 수 있는 비문(碑文)으로도 남겨두고 있다.
 
예컨대 고대 우리 배달국과 조선의 영역을 밝혀주는 광개토태왕비를 비롯해서 만주와 동신라(東新羅)를 밝혀줄 진흥왕비와 역사인물로 서화(西華) 항성(項城)의 동쪽 서신라(西新羅)의 김유신, 장보고와 백제를 밝혀줄 개로왕(蓋鹵王)과 무강왕(武康王)등은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닌 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특히 광개토태왕비와 진흥왕비는 서화(西華) 동쪽에 왕신라(斯盧新羅=西新羅), 백제, 임나(任那), 가라(加羅), 왜(倭)가 있었으며, 반도에는 고구려 간(干)의 땅이었다가 503년 독립한 동신라를 입증하는 왕비(王碑)인 것이다.
 
배달국시대(倍達國時代)와 고조선시대는 기록이 많지 않으나 광개토대왕시대에는 사서(史書)와 비문(碑文)이 있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를 가장 확실히 밝힐 수 있는 시대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와 일본은 왜(倭)를 숨기며 덮으나,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분명하게 있었던 것을 숨길수가 없는 것이다.
 
670년 타이완(臺灣)의 일본과 일본열도의 일본은 다르다
 
5세기 이전 일본은 없고 기록에 왜(倭)가 대륙에 있었다. 삼국지는 회계(會稽), 주애(朱崖), 담이(儋耳)에 있다했고, 후한서는 회계, 회계동야현(會稽東冶縣), 단주(澶洲), 이주(夷洲), 주애, 담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공통인 담이를 한서(漢書)에서는 남월지(南越地)라고 했으며, 진번군(眞番郡)이라고도 했다. 이곳들은 양자강 이남에 있는 지명이지 현 일본열도가 아니다. 일본은 처음부터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말하나 이는 허구일 뿐이다.
 
일본 역사를 보면 왜(倭)는 서기전 53년~500년간 지나의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현재의 일본은 이미 밝힌 바대로 명(明)으로부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1403년 일본국왕으로 인준을 받은 후 부터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일본을 9세기 이전의 일본이나 670년 이전의 왜(倭)로 있었던 것을 모르고 있으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하고 백제유민이 타이완(臺灣)에서 670년 처음 일본국호를 처음으로 쓴 것 모르고 있다.
 
타이완(臺灣)에서 670년 왜(倭)가 일본으로 변경해 9세기(882년)까지 신라와 교류한 기록이 있는데도 왜(倭)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것처럼 조작하나 이는 670년 이전 왜(倭)를 규명하면 그 조작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왜(倭)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서(漢書28)에는 낙랑해중왜인(樂浪海中倭人)이라 하고, 한서(漢書)에는 양자강 이남에 왜(倭)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는 대방(帶方)의 동남쪽에 왜(倭)가 있으며 현재 회계(會稽), 절강성에, 담(儋)은 해남도에 있다. 또 송(宋;420~479)때 쓰여진 후한서에는 회계(會稽), 주애(朱崖), 담이(儋耳), 단주(澶洲), 이주(夷洲), 주애(朱崖), 회계동야현(會稽東冶縣)에 있고 양(梁)때 쓰여진 남제서(南齊書)에는 대방남쪽에 있다고 했다.
 
당(唐)때 쓰여진 양서(梁書)에는 회계(會稽), 대방(帶方), 주애(朱崖), 담이(儋耳), 주애(朱崖)의 기록이 있다. 또, 남사(南史)에서도 담이, 주애 기록이 있다.
 
649년 이전에 왜(倭)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이 더욱 명명백백히 밝혀졌음에도 왜(倭)가 670년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했다면 그 일본이 현재의 일본이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우리역사를 밀어내기위해 왜(倭)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기원(起源)에 대한 일본교재도 잘못되어 있다
 
일본은 일본인(日本人)의 기원(起源)이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 신석기시대를 맞아 이 시대에 마제석기(磨製石器)와 토기(土器)를 사용하게 되어 농경, 목축이 개시됐다 하며 어느 정도 지각(地殼)의 변동과 빙하가 걷힌 결과 일어난 세계적인 해수면이 상승에 의해서 일본 국토는 대륙에서 분리되어 이 열도를 무대로 승문문화(繩文文化)라는 독특한 신석기문화를 형성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신석기문화는 일찍부터 농경, 목축이 행해졌다고 하며, 서아시아 지나의 신석기문화와는 달리 수렵, 어로를 주로 하는 자연물채집경제에 기초를 둔 문화였다 하고 있는데 이도 조작된 허구이다.
 
3세기경에는 일본의 고대국가 야마다이국(邪馬台國家)가 히미고(卑彌呼)라는 조선무녀(朝鮮巫女)에 의해서 30여 부족들을 연합해서 성립하고 그 후 4~5세기에 걸쳐서 성립한 야마토국가(大和國家)는 5세기 거대한 고분(古墳)을 만들어 호족이 연합한 국가를 만들었다고 하나 이것 또한 허구로 왜곡한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열도에는 이런 국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 시대에 왜(倭)는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있어서 왜(倭)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지배를 받는 시기로 일본열도에 이런 조작한 왜곡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야마토국가(大和國家)는 한술 더 떠서 반도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까지 두었다고 조작하고 있는데 일본의 학자나 우리나라학자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는 이 허구의 역사를 믿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분명한 것은 15세기 이전 그것도 3~5세기에 일본열도에는 야마토국가(大和國家)나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쓰는 나라는 없었다. 이미 밝힌바 대로 명(明)으로부터 막부(幕府) 3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1403년 일본국왕으로 인준을 받고 난 후부터, 일본이라는 국호를 일본열도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제대로 알고 역사를 전개해야 한다.
 
글을 맺으며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양자강 이남의 왜(倭)는 야마토국가(大和國家)를 지칭하는 것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一僑大學) 낭아하라 계이지(永原慶二)교수가 감수(監修)한 교과서대웅(敎科書對應)의 자세한 해설[절대중학사회역사(絶對中學社會歷史)]40면에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는 반도 역사가 아니다. 대륙사이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倭)가 대륙에서 건국하고 발전해간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나라 역사는 연구하면 할수록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문화를 쌓아 올린 자랑스러운 역사로 그 정체성을 온국민이 갖고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4
감동이에요
0
화나요
1
슬퍼요
1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