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 지도에서 본 우리영역은 어디인가

입력 2021-08-07 12: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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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1945년 우리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서 광복이 된지도 76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서 우리 역사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사가 대륙사임에도 일제가 왜곡한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한 반도사관의 역사만을 고집하며 우리역사가 마치 반도역사인양 모든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는 바보짓만 해 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망발인지 한심하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지금까지 무엇을 연구해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도 강감찬 장군의 구주대첩이 반도에서 이뤄진 것 같이 말하는 자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한심함을 금할 수가 없다.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契丹軍)을 물리치기 위해 대륙 장춘(長春)에서 출발했고 구주는 심양땅으로 장춘에서 40Km지점에 있다. 당시 원나라도 고려왕을 심양왕이라 했다는 것, 또한 구주가 석하인 것도 반도사관자는 모르고 있다.
 
반도사관자들은 어찌해서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한 역사만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선조를 모욕하는 짓임도 모르고, 우리역사가 왜곡하기 시작한 시기도, 지나와 일본의 수법도 모르고 있다. 이는 반성해야 한다.
 
외국의 사서와 학자들도 지금은 반성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한 일본학자까지도 반성하며 연구를 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근본적인 연구는 하지 않으며 사서를 부정하기에만 급급하는 것을 보노라면 영혼이 없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지금도 역사왜곡을 하는 지나 학자도 우리 상고사를 말하며 환국 때에는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영역이고, 지나는 아주 좁은 영역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반도사관자들은 반도에 맞추어 서술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 민족사가 국가의 영토에 맞춰 서술하는 국가사관에 의한 역사가 아니고 상고시대의 영역을 숨기고 국가의 기원도 숨기고 있는데 대해 우리의 민족사관에 의해 지나의 9세기 이전의 역사를 밝히려 한다.
 
반도사관은 김일연(金一然)에 의해서 시작됐다
 
우리 역사를 반도로 왜곡하게 한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이다. 그는 낙랑국과 삼국사와 동이전을 제대로 연구도 하지 않고 삼국유사를 쓰므로써 반도사관을 창작한 자가 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한반도 기록이 없다. 김부식은이 삼국사와 동이전을 제대로 연구하지도 않고 낙랑국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연구하지 않았다.
 
그는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에 대한 구별도 못하면서 무책임하게 낙랑국을 낙랑군에 위치시키고 왜(倭)도 지나의 후한서 등 많은 기록이 있는데도 연구를 하지 않고 동이전을 몽땅 낙랑군에 가져가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밝힌바와 같이 낙랑국은 서기전 1237년~서기32년까지 남만주와 한반도에 이르는 왕국이었다.(漢書 卷28).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후한서(後漢書 卷1) 등에 낙랑국왕이 바뀐 것이 3번 나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낙랑국 최리(崔理)는 고구려 호동왕자(好童王子)가 옥저에 갔을 때 봤다고 했다. 삼국지, 후한서에도 옥저동쪽의 낙랑국이 나오고 최치원이 말한 유연제노(幽然齊魯)를 살펴보지도 않고 소동파가 왜곡의 지장도를 믿고 이를 덮어버린 것은 만고의 역적과 같은 역사왜곡의 효시(嚆矢)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반도사관은 일본만이 한 것이 아니다. 김일연의 무지가 빚어낸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제왕운기(帝王韻紀)가 일연(一然) 것과 동일한 것이다.
 
송나라 소동파는 타이완(臺灣) 지도를 없앴고 백제지도도 없앴다. 그러나 서진(西晉)때에 백제지명이 나온 것은 후에 백제가 망한 후에도 백제지도가 나온다. 이것은 소동파와 김일연이 뺀 것이 똑같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일연이 소동파의 왜곡지도를 보고 그대로 옮긴 것은 큰 문제였다.
 
일연은 낙랑국이 오늘의 하르빈 남쪽 땅이 낙랑국이었음을 몰랐고 백제가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 지역에서 망한 것도 모르고 만주가 신라땅이 되었다가 고려 땅이 된 것도 모르며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도 몰랐다. 일연(金一然)은 1500년에 백제와 왜(倭)도 고구려 후예임을 끊어 버린 사람이다.
 
화이도(華夷圖), 우적도(禹跡圖)에도 우리영역은 대륙이다
 
지나역사도설(支那歷史圖說)에 그려진 소동파 우적도(禹跡圖)에 타이완(臺灣)이 그리지 않으며 지나는 동이전을 만주와 반도 일본으로 맞추려 조작한다. 이는 당(唐)때부터 우리 대륙사를 반도로 밀어내려고 하나 그리 될 수가 없다.
 
고구려의 정복왕인 광개토태왕 때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伽倻)가 반도에 있었던 게 아니다. 이 때는 삼국, 가야, 왜가 대륙에 있었다. 이는 [삼국사]와 [남제서]를 연구해보면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지역에 있었음이 확인된다.
 
지나와 일본이 우리역사를 제아무리 조작하며 왜곡해도 우리역사가 반도사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반도사라며 5000년 역사라 말하는 자가 많은데 너무 역사를 모르고들 있다. 사서(史書)를 제대로 연구를 해보면 우리가 반도가 아닌 대륙사임을 알 수 있는데 너무 연구를 하지 않는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망하고도 9세기 이전 요(遼)중심의 동쪽은 동이민족 영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남송(南宋)이 만든 화이도(華夷圖)와 우적도(禹跡圖)에도 우리 영역은 반도가 아닌 대륙인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그것은 화이도가 양자강 중심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화이도를 제작할 당시 지도의 중앙을 나타낸 것이 양자강(揚子江)이기 때문이다. 양자강을 중심으로 나타내고 있는 화이도는 황하중심국가에서 제작됐다고 볼 수 없고 양자강 중심의 국가에서 제작됐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장안(長安;黃河) 중심의 동이국가에서 제작된 것을 모방(模倣) 또는 축소해서 만들었다고 볼 수는 더더욱 없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화이도가 황하(河水;漢水)중심의 국가에서 제작됐다면 황하가 지도제작에서 중심이 되어야하는데 화이도는 중앙이 양자강 중심의 남송(南宋)때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의 나라들 중 가장 역사왜곡을 한 나라가 당(唐)과 송(宋)때 가장 심했는데 그것도 상고시대부터 고대에도 중원을 정벌하고 정복한 동이가 중심인 황하 중심 국가를 양자강 중심의 지도가 옛 장안(長安)에 갖다 놓은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도 중원에 있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왜(倭)도 대륙에 있었던 것도 숨길 수 없다
 
지나와 일본은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모든 사서(史書)들을 없애고 역사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나 이미 밝힌바 대로 숨기거나 덮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일본 학자도 다 밝히고 있음에서다.
 
왜(倭;衛)가 서기전 50년~서기 670년 이전까지 양자강 이남에 있다가 670년에 타이완(臺灣)에서 국호(國號)를 일본이라 하여 당(唐)나라의 승인을 받은 후인 것은 세계학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덮고 갈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반도사관의 원로이신 박모 교수가 일본에 가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이 사실인가?”고 일본의 학자에게 물으니 그가 책을 가져다가 보이며 사실인 것을 확인해주고 나서야 믿었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나라 강단학파 학자들이 역사연구를 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왜(倭)는 발음이 [왜]와 [위]가 있으나 옥편에서는 국호로는 왜(倭)가 사용된다고 했으나 한서(漢書)28, 후한서(後漢書)85, 삼국지(三國志)30, 옥편에서는 위(衛)→위(委)→왜(倭)로 발음함이 옳다고 했다.
 
왜(倭;衛)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은 지나의 위서(魏書) 동이(東夷 37, 47), 삼국지(三國志) 집해(集解) 卷30과 사기(史記) 卷30, 평준서(平準書)3과 사기(史記) 4, 본기(本紀) 등에 나와 있다. 그리고 이 왜(倭)는 한(韓)의 일부였다.
 
지나와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은 가진 수법들을 동원해서 왜(倭)를 숨기려하나 왜(倭;衛)가 동북, 회계(會稽), 동남, 타이완(臺灣), 서북, 담이(儋耳;廣西省), 서남, 주애(朱崖;海南島) 사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나의 사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지면상 몇 개 만 소개를 한다면, 북사(北史 卷94 列傳 27, 28), 남사(南史 卷 79 列傳6 및 송서(宋書 卷97 列傳19), 구당서(舊唐書 卷199 列傳 24) 등 많은 기록들이 있다. 이를 왜 감추고 숨기려하는지 지나와 일본의 속좁은 행태는 버려져야 한다.
 
지나와 일본은 원래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진 민족인 것이다. 이를 구태여 없는 역사를 조작할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연구하고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정립해야 한다.(이상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24면~31참조 인용)
 
글을 맺으며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반도사관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서는 아니 된다. 우리 역사를 사학자들에게만 맡기고 그들의 말을 듣다보니 세계에서 우리 같이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는 민족이 이 지상에 없는 것이다.
 
또한 연구를 많이 연구한 석학자 중에도 우리역사가 대륙의 유연제노오월을 지배한 [삼국사(三國史)]가 고조선이 빠져있기에 이를 무시한 최남선(崔南善) 선생과 최태영(崔泰永) 선생 및 신채호(申采浩)선생, 반도사관의 원조(元祖)가 된 김일연의 지나가 왜곡한 사서(史書)와 소동파 등의 지도로 왜곡시킨 것을 그대로 믿고 이를 밝히지 못한 것은 참으로 슬픈 일로서 천추의 한이 되고 있다.
 
이제는 온 국민이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정립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지나와 일본의 국민같이 열의를 가지고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정립을 제대로 바로 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왜곡한 역사로 우리의 역사가 아니다. 광복 76년이 지났는데도 우리역사를 찾지 못함은 슬픈 일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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