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민주정치와 올바른 정당 역할

입력 2021-08-21 13: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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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지식기반사회 걸맞는 정치 기대한다
 
오늘날 민주정치에 있어서 정당이 하고 있는 역할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우 크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은 정부와 국민 간에 개재(介在)해서 양자를 현실에 결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들은 현재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정당이라는 것이 일반에 그리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정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현대정치에 있어서 특징적 경향인데 우리는 그 수준에 못 미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정당은 현재의 민주정치운명(民主政治運命)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意義)를 갖는 것이나 일반에는 그리 환영을 못 받는 여야 정당으로 비쳐지고 있음에서다.
 
세계 주요한 나라들을 보면 정치는 어느 때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통령, 내각, 국회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 이를 좀 더 해명하면 대통령·내각·국회의 배후에는 정당이라는 정치적 존재가 있어서 정당이 이러한 기관들을 움직이고 있다. 이는 현재 민주제에 불가결한 정치적 존재로 보고 있다.
 
정당은 법률적으로 공인된 정치적 존재가 아닐지라도 실제로는 정치제도의 하나이다. 정당은 내각·대통령·국회 등 공식 정치기관의 배후에서 이를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정당은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음을 본다.
 
말을 바꾼다면, 현대 정당은 의회정치의 발전과 일체불가분의 관계로 결부되고 있어서 전형적인 정치집단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서구 나라들도 현대민주정치는 대의제(代議制)요, 국민 대표의 이념(理念)으로 발전해왔다.
 
각국의 정당은 그 나라들의 제반 사정, 제도적 전통, 그리고 민족적 특성을 배경으로 조직돼온 것이 그 이유로 보고 있다. 오늘은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21세기에 걸 맞는 정치를 바라면서 세계에 자랑스러운 정치풍토를 위해서도 달라져야 할 점을 말하려 한다.
 
시대가 바뀐 21세기에 걸맞은 정치 기대한다
 
오늘의 시대는 지식기반사회로 발전했다. 따라서 과거의 정치학의 주권, 국가론,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연구 영역의 기본적 정치개념의 어느 하나에 매달린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은 고대 지식의 거의 200배가 팽배한 시대이다. 19세기적 사고는 통하지 않는 사회임에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19세기 수준의 정치이념을 내세우는 것은 시대착오로 우리의 지식 수준은 21세기 수준으로 탈바뀜 돼야 한다.
 
‘언론중재법’ 같은 발상은 우리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며 ‘세계신문협회(WAN)와 국제언론협회(IPI) 등 세계 언론단체들도 “분명히 민주주의 벗어나는 행태”라며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는 기사를 보며 참으로 한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런 발상을 하는 정치인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일본 “미쓰비시 채권압류결정, 명백한 국제법 위반”의 기사를 보고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이런 말을 하려면 일본이 어떤 국제법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제대로 밝히고 말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망신만 부를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국가는 타국의 재판에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권면제의 원칙이 확립되고 있음에서다. 일본은 재판에 참가치 않고 각하(却下)하기를 바랐는데 우리 재판부는 반인도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보상문제는 한일협정에서 법적 처리는 끝난것을 재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본이 독일과 달리 반성도 없고 성피해자(소위 일본군 위안부)와 노무자 등에 국가보상을 하지 않은데 대해 이는 잘못인 것을 지적해 왔는데, 한·일협정을 맺을 때도 똑같은 우(愚)를 범한 것은 우리 대표들이었다.
 
일본은 우리나라 광복 이후 1948년 정부가 출범하자 축하금조로 15억달러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3억달러로 그것도 물자로 받았다. 이는 우리 잘못이었다.
 
또한 한·일협정이 성립되고 국회 비준을 받으면 국내법과 똑같은 효력이 있는 것인데 우리 법원은 국제법 무지로 국가와 온 국민에 망신만을 안겨주고 있다.
 
성피해자에 관한 것을 시정하려면 1969년 5월3일 비엔나에서 체결된 [조약법에 관한 조약(Vinna Convention on The Low of Treaties)]의 무효, 종료, 운용정지에 관해 규정한 것을 원용해 처리할 것을 국내법적 시각에서만 이를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이에 고집만 하고 있음에서다.
 
일본과 이를 시정하려면 한·일협정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국제법으로 처리하도록 하면 되는 것을 우리는 국내법만으로 처리하는데서 문제가 되고 있다.
 
성피해자 문제도 독일은 1952~2012년(60년간), 700억유로(약 92조6500억원을 이스라엘 정부와 개인에게 배상금으로 지급했다. 이를 참고로 이 문제도 대화로 다시 조정해 해결하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민주노총도 법을 위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성격과 전후 변화의 특색은 생명과 단결권 보장에 있었다. 즉 제1차 세계대전과는 다른 하나는 파쇼 대 민주주의 싸움의 성격을 띠고 등장한 면이 있으나 그것으로는 노동법의 분야로 보면 노조를 괴멸 상태로 하게 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싸움이었다.
 
전자는 독일·일본·이탈리아였고 후자의 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등 자본주의국과 소련의 사회주의국의 연합국이었다. 이 연합국은 국제적 노동운동의 요청에 답해 평화와 민주화의 기초로서 근로자가 인간적인 생활을 하도록 단결을 무엇보다도 기대했다.
 
이 기대는 이탈리아와 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단결권 보장을 헌법에 실현했다. 이 보장은 우리나라 헌법도 보장해 전후 신생국 147국 가운데 가장 선진화를 앞당기게 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우리나라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 행동권 보장과는 달리 노조가 사용자의 권리마저 독점하려는 행태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법은 노사정의 권력기능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이 조화가 없다.
 
노조가 경영권과 인사권 등에도 관여하며 사회의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노동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대화로 조정해야 하는데 지나친 월권은 노조나 온 국민에게도 심려를 주고 있음에서다.
 
우리 노조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권고 수준을 지향해서 하는 활동은 무방하나, 사용자의 권리마저 독점하려면 이는 자멸의 길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법은 허수아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 투쟁을 해야지 이를 이탈함은 비극이다.
 
모든 것은 법과 순리대로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 또한 위정자들도 21세기에 맞지 않은 가정보호법이니, 평등법이니, 언론중재법이니 하며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제하며 통제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살길을 배워야 한다는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경청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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