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와 일본은 1만년이 넘는 유구한 우리 역사를 지우고 덮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작하며 왜곡하나 우리의 역사는 숨길 수도 지워 없앨 수도 없다. 지금은 과학의 발전으로 천체의 추적으로도 알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옛날과 달리 역사의 사실들이 과학적으로 입증(立證)되고 있어서 지나와 일본의 학자들도 지금은 이를 숙지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양심적인 학자가 소수이기는 하나 양심적으로 역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의 일부 사학자는 지금도 연구에는 관심에 없고 ‘조선사편수회’의 수괴(首魁)인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조작하고 왜곡한 조작된 일고의 가치가 없는 내용을 역사라고 철석같이 믿고 그 조작한 역사를 아무거리낌 없이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 7000여명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들이 역사를 신화로 둔갑시킨 허구의 역사를 가르침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리의 정체성도 갖지 못한 역사의 고아가 되고 있다. 본래 신화는 상고시대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역사로 가르치는 것은 역사 무지일 뿐 아니라 조상에 대한 죄이다.
물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어느 곳이고 신화는 있으나 우리는 상고시대 배달국시대 초까지 신화가 역사로 반영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역사는 환국시대부터 광활한 유라시아에 먼저 정주한 민족의 역사다.
지나와 일본은 우리 역사사료를 다 없앴으나 환국시대 12부족이 53대 3301년간 지속되고 배달국시대 37대 1565년 간 지속되었으며 단군시대는 47대 2096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역사는 그 누구도 지우거나 덮을 수없는 역사인 것이다.
여기서 바로 알아야할 것은 우리 역사에서 상고사는 유라시아를 지배한 역사이고 고대 삼국시대는 중원대륙 정벌하고 지배한 아시아역사라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또한 지워진 역사들도 제대로 정립이 요구되고 있다. 즉 예맥조선과 낙랑국(樂浪國)이 지워져 있는데 이 지워진 예맥조선과 낙랑국의 역사도 복원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 고대사의 정립이 제대로 안된 것을 제대로 해야 할 것들을 바로 하기 위해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신라 가야 왕 난생설(卵生說)을 살펴본다.
고조선은 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강대한 대제국이었다
단군이 개국한 조선을 조선, 단군조선, 고조선이라 부르는데 이는 기자조선, 위만조선과 혼동되지 않도록 단군조선 단군의 손이 살았던 나라로서 [고조선]이라 했는데 이는 지나의 산해경(山海經)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지나와 일본은 우리 역사를 위조하며 자기네들이 패권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조작하나 단군은 여러 분국 분봉왕(分封王)들이 다 모여 회의를 열어서 국가의 운영을 한 것을 볼 때 연방제(聯邦制)의 나라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고조선은 광활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大帝國)으로 조선의 강역은 지도상에 나오는 것보다도 더 넓은 대륙 북경북쪽의 만주와 반도까지로 되어 있다.
이 당시에는 제후국(諸侯國)의 왕들도 모두 단군이라고 했는데 이는 단군의 명칭은 나라의 수령(首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군조선(檀君朝鮮)을 두고 ‘고조선(古朝鮮)’이란 말이 생긴 것은 신라 이후이다.
고조선은 제후국(諸侯國)이 많은데 학자에 따라서는 73국~120국이 있었다고 하고 있으나 많은 제후국이 있었던 강대한 연반제국(聯邦帝國)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해왔으나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국가였다.
단군은 순회방문을 할 만큼 고조선의 세력이 그 어느 나라도 넘볼 수가 없는 국가임은 서구학자(西歐學者)들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지나와 일본사가(史家)는 우리 역사를 패배(敗北), 수치(羞恥)의 역사로 위조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이물(異物)들이 지나, 일본사가(日本史家)의 위조에 동조해 완전히 패배, 수치의 식민지사(植民地史)를 장식했다. 이것은 우리민족이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로 등장한 것을 모르는 역사 무지의 소치다.
오늘날 고고학에 의해 우리가 위대한 국가로 확실히 판명됐음에도 문서역사(文書歷史)에는 도리어 천자, 황제의 국가에 예속된 후왕(侯王)의 국가로 위조되어 있다. 즉, 자주독립의 민족사관이 패배속의 식민사관으로 변모되어 있어서 광복 후 오늘날까지 지속된 것은 수치인데 이는 모두 식민사관자들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부터 선진민족으로 대륙을 호령하며 반도가 아닌 대륙의 넓은 땅에서 살았던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함에도 위조역사에만 익숙해 있어 박혁거세와 김수로왕도 알에서 나왔다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혁거세와 김수로왕(金首露王)도 알에서 나오지 않았다
[홍사환은(鴻史桓殷)] 책에는 단군왕검의 가족관계와 신라시조-박혁거세와 가야(伽倻)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등의 가족내력도 실려 있다.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부(父)는 박원달(朴元達)이고, 모(母)는 ‘파소’로 해모수의 외손(外孫)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수로왕의 아버지는 ‘이비아지’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박혁거세와 가야(伽倻)의 김수로왕이 전설(傳說)속 신화(神話)가 아니라 실재(實在)한 신라와 가야의 왕들이다. 이를 일제(日帝)는 다 전설로 꾸미고 위장(僞裝)했다.
이들의 일화(逸話)를 보면 “해모스의 딸 ‘파소’가 훈춘에서 태백선주 박원달과 사귀다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자 몰래 배에 태워 보냈는데 해류(海流)를 따라 영일만에 닿았고 양산에 이르자 산기(産氣)가 있어 나정 숲을 지나다가 급히 아이를 낳았는데 이가 박혁거세(朴赫居世)”라는 것이다. 이곳은 반도가 아닌 대륙의 지명이었다.
[홍사환은(鴻史桓殷)]에는 “김수로왕의 부(父)- 마한(馬韓)의 9세(世)여왕의 아들 ‘이비가지’이며 본명은 문(文)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300년 전의 최면길(崔勉吉)이 쓴 [홍사환은(鴻史桓殷)]에 나오는 기록이다. 300년 동안 우리는 알타령만 한 꼴로 참으로 기가 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가시마 노보루(鹿島 昇)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사를 옹호하던 변호사 출신으로 역사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그도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접하고 단군탄생(檀君誕生)의 시간까지 밝힌 것보고 “일본의 황통사(皇統史)는 거짓역사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2000여년 전 연변과 훈춘은 동부여(東夫餘)의 서울이었으며 이후 1000년 후에는 동북삼성(東北三省)인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과 연해주(沿海州)를 아우르는 대제국발해국(大帝國渤海國)의 동경성(東京城)이 되었다. 이 훈춘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모후(母后)의 고향이기도 하다.
위와 같이 조선사편수회가 박혁거세와 김수로왕을 35권의 위조된 역사를 우리 국민에게 퍼뜨려 이 허구 역사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오늘날까지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면 이제는 바로 가르치기를 바라진다. 더 이상 조상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반도식민지사관(半島植民地史觀)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의 정체성(正體性)이 밝혀짐으로 외래사상의 병폐(病弊)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역사를 모름으로 사대주의 사상이 만연되어 사회공동체 의식이 없으며 민족의식도 없어져서 불신감만이 만연되어있는 사회 상황이다. 또한 패배의식으로 가치표준을 잃고 있다.
지나와 일본은 우리의 모든 문물제도 전수(傳授)받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나와 일본은 자기들 중심의 역사를 위해 우리 역사를 왜곡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위조는 지금도 여전히 위조하며 조작하나 그들이 위조한 역사는 거짓된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 아니다.
그들의 역사서를 보면 우리 민족은 글자도 모르고 무지하다고 야만인으로 비하하면서 우리를 미개인같이 묘사하나 지나와 일본을 개화시키고 무기며 모든 문물제도가 우리에게서 전수된 것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우리는 석기시대를 거치지 않고 신석기시대에 그들은 석기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을 그들은 숨기나 그들의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인류발달사에 편향해 한민족(韓民族)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우리 역사를 발견치 못한다.
지나 문화가 모두 우리민족에 의해 개화되고 발전한 것은 지나의 정사(正史)와 경전(經傳)에 분명히 나와 있다. 지나 문화의 대종사(大宗師) 공자(孔子)와 지나병가(支那兵家)의 대종사(大宗師) 강태공(姜太公)이 우리 민족이라 분명히 기록하고 조선을 군자국(君子國)이라 찬양했다.
또한 지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우리 민족이고 우리 조선을 대국이요 구국(舊國)이라고 찬양했다. 지나 왕조들의 진(秦), 한(漢), 수(隨), 당(唐)은 말할 것도 없이 원(元), 명(明), 청(淸)의 왕조 수장이 모두 우리 동이족이다.
이들 나라는 고대부터 조선에서 궁시(弓矢)만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문화까지 수입한다는 결론까지 부치었다. 이는 자민족만이사람이요 타민족은 짐승이라 하시하는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를 선전하는 지나 정사(正史)와 경전(經傳)에 명기(明記)하고 찬양하며 결론까지 내린 사실을 위조라 할 수 있겠는가.
지나는 황제때부터 1911년 청(淸)나라가 멸망하기까지 558명의 제왕(帝王)이 있었는데 그 중 396명은 황제라 불렀고 162명은 왕이라 불렀다. 이중 거의가 동이이고 지나인은 몇이 안 된다. 그들 조상을 따지고 보면 몇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수치를 모르고 있는데 우리와 피를 나눈 민족들이다.
우리는 고대부터 천제(天帝), 천자(天子)의 천민사상(天民)사상(思想)을 펴왔다.
고조선의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의 하늘의 뜻을 이 땅에 널리 이루게 하리라’는 이상이 그들에게도 보편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지나와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면 자기들 역사가 되리라 생각하나 그건 망상이다. 지나의 가장 오래 됐다는 사기(史記)도 고조선역사를 거꾸로 꾸민 것이라는 것과 일본서기(日本書紀)도 조작되고 왜곡인 것 이미 오래전 다 밝혔다.
필자는 1978년 학위를 받고 귀국하기 전 일본인의 조상이 모셨다는 이세궁에 가서 거기에 모신 신위가 모두 우리 조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세궁에는 36위의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는데 신라와 가야인, 백제인 신위(神位)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숨기나 허황된 역사 위조는 너무 가관이다. 일본인들도 우리 단군의 자손인 것을 숨길 수 없다. 한 예를 든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정씨(丁氏)인데 그가 죽은 후 왜군이 돌아갈 때 단군신상(檀君神像)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며 모셔 갔다.
지금 가고시마(鹿島) 미야마(美山)에 있는 단군사당 교구산구(玉山宮)에 모셔진 단군신상은 1m높이의 통돌로 되어있고 제사때 제문(祭文)도 우리말로 했다.
지금 일본에는 상가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들은 우리의 고조선사와 일본의 진정한 고대사인 상가야 왕조사가 연접되어 있어서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같은 학자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가 진정한 역사서가 아니라 밝히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반도사관 역사에서 벗어나려는지 참 안타깝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반재원, [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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