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환국을 환인(桓因)으로 거론 말아야

입력 2021-11-06 10: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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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우리나라의 소위 사학자라며 글을 쓴 것을 보노라면 이들이 나라의 사람이며 우리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직도 풍납 토성도 백제의 수도 위례성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있음에서다.
 
필자는 이미 백제가 반도가 아닌 대륙의 위례성에서 건국했음을 밝힌 바 있다. 모 대학의 사학과 원로교수가 조선일보에 풍납토성이 백제수도라는 주장을 했는데 필자는 이에 항의하며 풍납동 위례토성에는 말갈족 3000명이 온 적이 없는데도 이 같이 주장하는 역사무지를 본지에 게재한 바가 있다.
 
그런데 지금도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한 35권의 조선사(朝鮮史)를 그대로 믿으며 우리나라 역사를 일본이 조작한 그대로 믿는 이물(異物)들이 있음에 이해 할 수가 없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거짓역사를 반복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시초는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의 쓰다소우키치(津田左右吉)교수의 제자인 이병도(李丙燾), 손진태(孫晉泰)교수들이 쓰다(津田)교수의 잘못된 역사방법을 따름으로 잘못된 시발이 원인이라고 최태영선생의 지적한대로 지금도 그대로 따라감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쓰다(津田)는 1919년 신라본기(新羅本紀), 21년에 백제본기(百濟本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를 차례로 사료비판하며 역사왜곡을 위해 삼국사기(三國史記) 초기기록이 허구라는 주장을 펴 당시 제국주의 역사학을 체계화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 지금은 역사도 과학적으로 천체의 관측과 지진과 장마와 홍수며 그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기록이 모두 증명되고 있는 오늘에도 허구라는 것은 용납이 안 되고 쓰다(津田)의 주장이 모두가 허구임이 밝혀졌는데도 우리 학계는 아직도 왜곡된 역사만이 옳다고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바른 역사를 말해도 광복70여년이 되도록 답보 상태라는데 개구무언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서 이 나라역사와 정신을 망가트리고 있다. 오늘은 ‘우리의 위대함은 찬란한 역사가 있음에서’이기에 왜곡역사추방을 해야 함에서 [삼국유사]에 환국을 환인으로 된 것이 일제의 왜곡임을 밝히려 한다.
 
삼국유사 변조한자는 이마니시 류(今西 龍)이었다
 
환국(桓國)과 환인(桓因)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권두의 기이(紀異) 제1, 단군을 얘기하는 항목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 환국이 있었다.” 환국의 높은 서자(庶子)벼슬을 하는 환웅(桓雄)이 논의의 초점이다.
 
1280년경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조선 중종 때인 1512년에 발행된 [삼국유사]가 확실한 발간연대를 가진 고판본(古版本)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목판 인쇄본이나 필사본으로 된 5~6종의 판본이 완질 혹은 부분적으로 전해온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그 나라에 높은 벼슬을 하는 환웅이 있었고 마지막 환웅대에 단군이 나타나 조선을 세웠다”고,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인용한 고기(古記)에는 원래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삼국시대 이후 지배이념이 된 불교의 영향으로 어떤 책들은 환국을 불교에서 말하는 제석(帝釋), 환인(桓因)으로 변조함으로서 현재 전해지는 [삼국유사] 판본에는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가 옛날에 환인이 있고, 급기야 환인의 첩(妾)의 아들(庶子)환웅을 유도하기에 이른다.
 
특히 1920년대 한국사 왜곡에 나선 이마니시 류(今西 龍)를 비롯한 일본인들이 이점을 결정적으로 빌미삼아 [삼국유사(三國遺事)] 정본의 환국을 환인으로 변조하고 이를 정본처럼 내세워 단군을 말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역사변조의 원흉인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1921년 교토대학(京都大學)조교수때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고 변조한 영인본(影印本)을 발행해 국내외로 퍼트린다.
 
이에 대해 최남선(崔南善)선생과 문정창(文定昌)선생이 이 만행에 대해 지적하고 연구서까지 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국내학자들은 유독 환인으로 변조된 [삼국유사]만을 가지고 연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환국이라고 명기된 원본이 서울대에도 있는데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는 것 같지도 않는데 누구를 위한 학구태도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환국과 환인의 차이는 천지 차이임에도 아무 갈등도 없이 환인(桓因)이라고 전제하고 연구를 개진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고 창피함도 모르는 족속이 아닌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자(庶子)도 왜곡한 일제(日帝)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국의 서자(庶子)’ 환웅이란 말을 우리말로 풀어 설명하는데 우리말로 서자(庶子)란 말뜻이 모든 [삼국유사]의 해석본에 이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환국의 서자(庶子)라는 말은 ’환국의 높은 벼슬사람‘이란 말이다.
 
필자도 강연장에서 질문을 받아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한문의 출처를 알기위해 보는 대백과사전인 <사원(辭源)>에는 3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서자(庶子)란 1, 첩의 아들, 2, 많은 아들(뭇 서자), 3, 옛날부터 있는 높은 벼슬이름, 세가지 뜻으로 쓰였다. 삼국유사의 서자(庶子)는 3번째 높은 벼슬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기660년 7월18일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는데 당시 당(唐)의 웅진도독부를 거느렸던 유인궤(劉仁軌)는 당(唐)으로 돌아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좌서자(左庶子)벼슬을 줬다. 서자(庶子)는 당시 최고의 벼슬이었던 것이다.
 
또한 왕세자의 스승 같은 유공(有功)한 사람들에게도 서자(庶子)벼슬을 줬다. 압축 표현된 사서(史書) 자구(字句)에 굳이 환웅의 첩의 아들이라는 뜻을 담는다는 것은 후세인들이 서자란 말의 본 뜻을 잃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첩의 아들이라 해놓고 그게 안 됐던지 “그 당시엔 사회가 어지러웠다”고 부연 설명을 한 것도 있다. 조선총독부가 1925년 6월 칙령 제285호로 ‘조선사편수회’ 관제에 따라서 만들어낸 35권은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최태영 선생은 쓰레기통에 다 버렸다.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사악한 의도로 일본사를 조작하기 위해 서기전 53년~500년간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왜(倭;日本)를 숨기려 우리 역사를 제멋대로 조작했다.
 
일본의 히로히토 왕세자의 스승으로 일본의 동양사학자로 최고권위자이며 훌륭한 신사인 사사기와 림푸(笹川臨風) 박사도 ‘조선사편수회’에 소집되었으나 “이런 엉터리 역사는 만들 수 없다”고 하며 3일 만에 일본으로 귀국해버린다.
 
지금 일본은 우리와 대조적으로 일본의 역사라는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거짓된 역사라며 왜곡역사를 부인하며 일본의 첫왕이 단군의 73대손이 첫 왕이라는 궁내성(宮內省) 도서관에 있는 [상기(上記)]의 기록을 말하고 있다. 우리 학계는 언제 우리역사를 바로 잡을 것인지! 너무 대조적이라 창피하기까지 하다.
  
글을 맺으며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상고사와 고대사를 두고 벌어지는 비극은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에게 환국의 환인과 배달국의 환웅 및 고조선의 단군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주어지지 못한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가 조작 왜곡한 역사로 일본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황통사(皇統史)의 식민사관이 조선인들에게 그대로 교육되는 바람에 우리 조상들의 뿌리가 잘려서 나감으로서 역사에 대한 자신을 잃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광복 후 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약했던 이병도체제의 강단학파 국사교육은 1만년이 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상고사를 없애고 고대사도 2000년이나 잘라내면서 우리가 유라시아와 중원(中原)의 주인인 것을 부정하며 일본이 하자는 대로 말하는 데서 지금도 이 구도는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국가의 앞날을 위해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도 일본이 만들어준 황통사(皇統史), 식민사관(植民史觀)으로 일제 음습한 기도아래 일제가 가르친 대로 자기 역사를 무시하고 일제가 취사선택해 과학적이란 말로 던져준 자료만을 다루는 학문풍토가 득세해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역사를 살려야만 나라가 변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지식층의 인사들까지 우리 역사를 모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역사를 5000년 역사라고 하면서 단군이 시조라고 하는데 참으로 한심하고 기막힌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우리 역사가 환국이 3301년이고 배달국이 1565년의 역사는 아예 접어놓고 말을 하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라 꾸미고 옛날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고 사실과 180도 다른 거짓역사를 강조한 것을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은 심히 어리석고 통탄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세계학자들과 일본학자들에게조차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일제가 물러간 지 73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일본 황통사 사가들에게 속아서 우리 역사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고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세계 250여 나라 중에 우리나라 국민같이 자기나라의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상황이다.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서 1만년이 넘는 우리나라 역사인데도 5000년 역사라 하는 자가 거의 대다수로 이상한 현상이다.
 
이러한데도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려하려고나, 배우려고도 하지 않은 희한한 민족은 없다할 것이다. 일반사회의 지도자나 종교계의 지도자들도 역사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제에서 광복한 후에도 여전히 반도식민사관으로 황패돼 있는 것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 [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전문가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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