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의 역사는 말할 수 없이 왜곡됐다. 지나인(支那人)들은 요순시대가 하(夏), 은(殷), 주(周)순으로 차례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나 이는 허구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사기> 자체도 거의가 허구임은 다 밝혀지고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지나 역사는 거의가 믿을 것이 못된다. 고구려 제11대 동천왕 18년에 위(魏)나라의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 서책(書冊)을 노리고 쳐들어와서 수도인 환도성이 함락된다.
갑작스런 침입에 동천왕은 환초령을 넘어 피난한다. 그런데 이 침입은 위(魏)가 서책(書冊)를 얻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관구검은 많은 서책을 가지고 가서 고구려의 책을 저본(底本)으로 해 위진(魏晉)시대의 사관 진수(陳壽)가 <삼국지>를 지었다. 거기에는 왜곡된 내용의 <동이전>이 나온다.
또한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더 심하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그들의 기록을 기초해서 우리역사를 말하는 것은 광복 후 지금까지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진수(陳壽)보다 100여년 후에 태어난 범엽이 쓴 후한서에도 <동이열전>은 들어가는데 사마천의 <사기>부터 너무 엉뚱하게 왜곡되어 있다.
훔쳐간 책을 밑천삼아 자기나라의 입맛대로 쓴 것을 우리는 그들의 기록을 기초해서 이야기를 할뿐 아니라 이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사마천의 <사기>도 단군조선을 교묘하게 자기 역사로 했다는 것은 일본의 아고 기요히코도 지적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학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나는 관구검(毌丘儉)처럼 우리 책을 가져가서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 백제가 망할 적에도 당고종(唐高宗)은 설인귀에게 사비성에 입성하거든 무엇보다 먼저 사고(史庫)를 없애라는 밀명을 받고 와서 사서를 없앴다.
10년 후 고구려가 망하던 때도 당고종(唐高宗) 밀명을 받은 설인귀(薛仁貴)가 사고(史庫)에 불을 질러 그 불길은 무려 4개월여를 꺼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만행으로 보아 엄청나게 많은 책이 잿더미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지나 역사는 삼황오제와 요순(堯舜)시대가 하(夏), 은(殷), 주(周) 순으로 차례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나 이 모두가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지나인들이 말하는 역사는 거의가 왜곡된 허구임을 말하려 한다.
삼황(三皇)과 하(夏), 은(殷), 주(周)의 역사도 우리역사다
지나는 중국(中國)이라는 국호부터가 잘못 되어 있다. 현재 지나 국호(國號)를 중국이라 하나,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지나의 국호는 1949년 모택동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中共)이다. 일반적으로 나라의 국호는 그 나라의 영토, 정체(政體)와 국가의 구조, 민족을 대표하는데, 중국이라는 것은 타당치가 않다.
중국이라는 국호는 가야(伽倻) 김수로왕(金首露王)이 먼저 쓴 국호였다. 그 다음에 중국이라는 국호를 쓴 것은 손문(孫文)이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일으켜 그 때 중화민국이 성립하면서 중국이라 불렀다.
그리고 지나는 지나인들이 말하는 흉노족인 영정(嬴政)이 진(秦)을 세운 후 지나로 불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화(中華)는 중원에서 생긴 화하족(華夏族)을 의미하는데 헌원(軒轅)이 탁록(涿鹿)으로부터 쫓겨 온 후 광릉에서 터를 잡고 하(夏), 은(殷), 주(周)를 거치면서 화하족을 형성했다.
화하족(華夏族)은 한족(漢族)의 옛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史記) 인용을 많이 하는데 서기전 27세기의 헌원이 서기전 32세기의 인물인 염제(炎帝)와 싸워 승리해 패권을 잡았다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헌원이 500년이나 거슬려 올라가는 위사(僞史)로 나타난다.
사마천은 고대 지나의 패권이 황제(黃帝) 헌원-전욱(顓頊) 고양(高陽)-제곡(帝嚳) 고신(高辛)-당요(唐堯)로 이어진 것처럼 기록하나 모두 허구다. 지면상 한가지만 예로 든다면 요(堯)가 순(舜)에게 선위(禪位)했다는 것도 허구다. 요(堯)는 고조선에 의해 정벌당한 나라였다.
또 순(舜) 임금도 단군의 신하로 순(舜)은 유호씨(有戶氏)의 아들로 단군왕검의 태자 부루(扶婁)로 부터 ‘오행치수법’을 전수받아 치수를 감독했던 일을 했던 인물인 것이다. 이를 요(堯)가 선위(禪位)했다는 미담(美談)은 소설인 것이고 하(夏)나라는 고조선의 제후국으로 정주(鄭州) 일대에 있었다.
이 하(夏)나라는 흘달(屹達) 단군 때 은(殷)과 함께 하(夏)를 정벌하고 나아가 관중(關中) 일대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또한 <은(殷)>은 <상(商)>이라고도 하는데 하북성 일대에 있었던 우리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다.
주(周)도 우리 동이족의 나라로 섬서성 일대에 있었던 나라로 사마천은 여기서도 왜곡하나 동이족 중에 융적(戎狄) 출신으로 보고 있다. 한족 나라가 아니다. (以上은 정희철, [중국은 없다]. 84面~101面을 參照하고 本文 引用했음.)
춘추전국시대 역사도 북방민족의 역사다
지나는 자기들의 역사구분을 은시대(殷時代)도 서기전 1600년~서기전 1100년이고 주시대(周時代)가 서기전 100년~서기전 770년이며 동주시대(東周時代)가 서기전 770년 도읍을 호경(鎬京)에서 낙읍(洛邑)으로 옮긴 때라하며 이 역사가 자기들 역사라 하나 이 당시 모든 나라가 지나 역사가 아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춘추시대 열국(列國)들이 주(周)를 받든 것처럼 기술하고 있으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중심은 지나인이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가 동이(東夷)라는 북방유목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판명된다.
지나에서 전쟁이 가장 많았던 때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보고 있다. 178개의 나라들이 252년 동안 치고받은 횟수가 무려 450회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시대의 전쟁은 지나인들의 전쟁이 아니라 순전히 북방민족끼리 패권을 다투어서 생긴 전쟁으로 다른 이민족이 섞여든 일은 없었다.
역사시대에 들어간 은시대(殷時代)가 되니 1899년 발견된 하남성 안양현(安養縣) 소둔촌(小屯村)의 은허(殷墟)에서 나온 갑골문자(甲骨文字)에 의해서 은족(銀族) 외에 50여 씨족집단(후에 국가가 됨)과 남방계 만족(蠻族) 50여개의 이름이 나오는 시대였다.
그런데 은(殷)의 세력권 확대방향이나 그 후 계속되는 서주(西周)의 진출방향을 보면 낙읍(洛邑;洛陽)과 호경(鎬京;후에 장안(長安),현재의 서안(西安))으로부터 동방으로 확대해간 것이 사실인 것으로, 한민족이 민족집단은 서방의 사막을 넘어서 황하(黃河)와 위수(渭水)에 도착해 정착한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어느 시대나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좋은 곳으로 이주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듯 고대국가가 황하유역인 낙읍(洛邑;洛陽)과 위수(渭水) 주변인 호경(鎬京)에 탄생한 원인은 이 곳이 농경지로서 매력 보다도 교역을 위한 거점으로서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이곳 주인은 우리 동족이었다.
춘추전국시대를 주름잡은 것도 우리 북방기마민족이었고 중원을 통일했다는 진(秦), 한(漢)시대와 원(元)을 거쳐 명(明)과 청(淸)시대를 합해도 불과 1000년에 불과하다. 이들도 그 수장인 왕(王)과 황제(皇帝)는 모두 동이족일색이었다. (以上은 智勝, [우리 上古史].12面~27面. 정희철,[중국은 없다]. 84面~101面‘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58面 以下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글을 맺으며
필자는 우리나라와 이웃나라들의 역사를 연구하며 이 세상에서 자기들 역사가 아닌 것을 자기들 역사라고 말하는 지나와 일본을 보면서 그들의 역사 중 일부를 우리역사에 포함해야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나의 진(秦), 한(漢), 수(隨), 당(唐), 명(明), 청(淸)도 따지고 보면 모두 동이족 나라이기에서다. 은(殷), 주(周), 진(秦) 이하 모든 지나의 경우를 봐도 한족(漢族)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동이족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秦)은 본래 서이족(西夷族)으로 흉노계열(匈奴系列)로서 진(秦)을 세운 영정(嬴政)은 본래 오래(惡來)의 후손이고 오래(惡來)는 은인(殷人)으로 지나의 사학자 전사년(傳斯年)의 견해도 은(殷)을 동이의 나라 역사에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은 파미르고원에서 출발해 바이칼호수 흥안령 일대를 거쳐 반도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한 인류 최초의 강대국이다. 상고시대에는 유라시아를 지배했고 고대에는 아시아를 지배한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나와 일본(日本)은 우리 역사를 도둑질해가며 인류역사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며 짐승과 곤충으로 우리를 비하해 왔으나 우리는 “역사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 는 사실이 반드시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을 믿고 의심치 않는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한동억,[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三國史 高句麗本紀」,「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 [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전문가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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