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우리는 태고시대(太古時代)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 그리고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엄연히 실재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무지가 너무 지나치다. 1만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관심 조차 없기까지 하다. 대다수 국민이 일본의 식민사관에 세뇌돼 있어서인지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다. 역사는 그 국가의 골간이며 국체 그 자체의 얼굴이다. 역사를 모르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민족애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의 우리 사회상이 바로 말 해주고 있다.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이며, 우리는 어떤 민족인가. 이를 제대로 모르고 일제의 논리대로 말하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 해서 오늘날 우리선조의 위대한 역사를 이런 지경에 까지 방치하게 된 것 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이 같은 현실과 연관해서 반성하고 새로운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필자는 이글을 쓰는 와중에도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를 도둑질하고 왜곡하고 있는데 대해 방관만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도무지 우리 모두가 정상이 아니라고 본다. 이래가지고 우리가 세계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일본은 우리나라를 늑탈하자마자 1910년 ‘조선사편수회’를 총독부산하에 두고, 27년간 역사왜곡을 위한 연구를 하고 나서 1937년에는 황국사관에 입각한 37권의 책을 발간해 조선역사라고 하며 1만년 이상의 역사를 그 절반이하로 잘라낸 위조사를 내놓았다. 일제는 이를 통해 우리의 민족정기를 뿌리째 뽑아 아예 말살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답습되고 학생들에게까지 그 식민사관이 교육되고 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 선조들에 대한 죄악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중이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고작 1000년 중원을 차지한 중화족이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도적질 하는데 대한 침묵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일본과 중국의 허황된 날조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필자는 태고시대 환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시대의 상황과 사실을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합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우리 역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위대한 역사이며 민족인가를 정립해 가고 있다. 이를 통해 한민족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세계에 나아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동북아재단’에만 이를 맡기고 있으나 그 주요 구성원들이 일본의 식민사관에 절여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한다.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연구는 하지 않고 요직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자국의 고대사를 높이기 위해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처럼 꾸미며 거짓의 곡필을 휘두르며 제멋대로 하고 있다. 해설을 부치기까지 하는 등 모든 사실을 자기나라에 유익하게 꾸며 가는데 반해 우리는 엄연히 있는 사실도 부인하며 이들 나라의 주구노릇을 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문외한인 일반인도 다 아는 사실조차 부인하는 짓은 매국행위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릴 때다. 지난날의 잘못을 뒤로하고 우리의 역사를 되찾아줬으면 하는 열망을 담고 오늘도 중국의 역사조작과 배달국시대에 잃어버리고 잊혀 진 당시의 정황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짜 맞춘 중국역사 사기(史記)에 경계해야
사마천(司馬遷)은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역사서를 써서 그 가치가 상당하지만 우리의 역사기록은 전적으로 배척, 축소·왜곡, 삭제하며 출발하고 있다. 또한 동이족에 관한 것을 쓸 경우도 간략하게 취급하거나 아예 삭제한 가운데 사기(史記)를 썼기 때문에 사기(史記)는 3류 소설만도 못되는 책이 되고 있다. 예컨대 요, 순, 우 임금 당시와 이전의 인물들을 설명하다 보면 이들 거의가 동이족 혈통인데다가 과거 배달국과 조선의 역사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서인지 이 같은 소설의 역사가 써졌다. 그가 쓴 사기(史記)를 보면 고대 중국의 시원(始原)의 역사는 없다. 오히려 배달국, 동이(東夷)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결국 사실 그대로 기술할 경우 중화(漢,中夏族) 민족은 변방 이민족 피지배 집단이 돼 버리는 탓에 사마천은 배달국과 고조선 동이(東夷)겨레에 대한 많은 사료가 있었음에도 이 기록을 수집조차 하지 않았다. 아울러 중국 동부 해안지역에 살고 있던 동이족(東夷族)을 접할 수 있음에도 이를 접하지 않고 중국 측 기록에만 충실 한 억지 역사서를 꾸며낸 것이다. 우리 배달국이나 고구려, 백제가 중국대륙에 방대한 식민지를 두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 학자가 역사연구를 하며 중국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의 바른 역사를 결코 찾을 수가 없다. 상고시대에 분명히 우리 구이족(九夷族)은 만주 한반도는 물론 기름진 황하, 양자강유역에 일찍부터 정착했다. 이들 동이족(東夷族)들은 지금의 신강성지역(타림분지로 추정) 또는 아시아남방에서 이동해 오는 지나어족(화하족, 중화족)의 무리들과 부딪치게 된다. 동이족들은 이들을 정복하고 지배계급으로 군림했다. 그 역사가 동이족의 역사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 사실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오랜 세월동안 동이족과 중화족은 중원(中原)내에 나라를 세우고 혼재했으나 사마천은 동이족의 활동은 물론 나라의 영역과 위치를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어떠한 나라가 동이족 나라인지 잘 알 수가 없게 했다. 이에 중국은 지금도 자국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처럼 꾸미는 일을 다반사로 하고 있다. 실제로 전대(前代)의 사서는 거짓이 없는데 후세사가들이 새로 사서를 저술 할 때 문구를 고치고 역사를 왜곡되게 제멋대로 꾸미며 없는 사실들을 끼워 넣는 것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사마천이 쓴 사기도 어떤 나라가 동이계 나라인지 밝히지 않고 대부분 나라를 중국 한족의 나라인양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사관(史觀) 때문에 고대 구이족(九夷族)과 동방동이족(東邦東夷族)의 역사 중 상당 부분이 중국의 역사가 돼 버린 것이다. 때문에 고조선이나 삼한에 대한 기록들도 그 양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중국 쪽 사가들의 입장에서는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를 특별히 체계적으로 기술할 의무는 없었다 해도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정확히 거짓이 없었어야 함에도 그들은 자기역사에 가져갈 것은 다 가져다가 붙이면서도 그에 더하여 역사를 과장·왜곡한 것이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도 동방동이족(東邦東夷族)과의 관련 사안이나 조선족의 역사를 되도록 회피, 무시, 축소해온 경향이 전 사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중화민족의 위상을 높이려는 집필사관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 중에는 중국의 사서를 100퍼센트 사실이라고 믿는 자가 있음은 심각하게 경계할 일이다. 중국사서의 기록을 맹신함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중국사서는 역사연구 집필에 참고가 되는 선에서 그쳐야 하지, 우리나라에 참고서가 없다고 해서 마구 이용함은 오류를 낳게 되기에 유의해야 한다. 중국한족이 요동에 이주한 산 것은 150년도 안 된다.
3류 소설에 불과한 사마천의 역사 추방해야
중국사서들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서를 위시해서 네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품고 있다. 첫째,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둘째, 동방의 동이족과 중원(中原)내 동이족을 포함한 구이족(九夷族)에 대한 기록이 구이족인지, 중국 화족인지 민족계통을 거의 구분하지 않았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도 중국 화하족(華夏族)의 역사에 포함시킨다는 식의 유별난 사관은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일로서 이러한 마구잡이식 역사왜곡은 중국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남의 나라 역사와 문화를 자기들의 역사문화라고 자처하는 중국인들로부터 과연 올바른 역사를 찾을 수 있을지 난망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사에서 은(殷), 요(遼), 금(金), 원(元), 청(淸)은 각각 동이족, 거란족, 몽골족, 여진족들이 세운 나라다. 그러나 중국은 이 역사들도 모두 중국의 역사로 포함시키고 있다. 왜 이들은 이러한 역사만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그들 중화족의 역사는 우리역사의 10분에1도 안되기에서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역사를 중국 식으로 정립하면 이는 위사(僞史)일 뿐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논리는 성립 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사서들이 민족계통을 밝히지 않는 배경에는 동방족이 중원대륙을 오랫동안 지배한 사실이 엄연하기에 배타적 심리에서 나온 중국의 사관임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대체로 중원을 동서로 가를 경우 화북 산동을 포함해 중국의 동부 해안지역은 동이족이 오랜 세월 점거해 살았다. 다시말해 평야지대인 황하, 양자강의 기름진 동부해안지역에서는 동이족이 삼국시대까지 점거해서 살았다.
세 번째 중국사서의 오류는 중원부터 요서, 발해만, 요동반도, 만주, 한반도까지 단군조선, 번한(番韓), 번조선(番朝鮮), 마한, 막조선(莫朝鮮)이 있었고 아울러 수십 개의 소국인 제후국이 삼한에 속해 있었으나 이들 국명과 부족명칭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았다. 예컨대 고조선의 국명이 조선이었음에도 낙랑, 낙랑조선, 예, 맥, 예맥조선, 한(韓), 진한, 변한, 한국(韓國), 고구려, 고려, 마한 등으로 기록했다. 종주국과 제후국, 부족국가, 부족명칭 등을 제대로 구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웃 나라의 국호가 조선이었음에도 부족의 명칭을 마구 갔다 붙여 예맥조선이니, 낙랑조선이니 하고 한(韓) 또는 진국, 진한 등 마음 내키는 대로 기술했다. 역사집필을 아무렇게나 확인도 하지 않고 이전에 발간된 역사서에서 대강 베끼고 다시 축소하고 과장시키는 등 성의가 없는 집필을 했음이 확연하다. 네 번째 오류는 주요 나라들의 위치가 부정확하고 중구난방 식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고조선이 북쪽에 있었다 하고, 동쪽에 있었다고도 기록했다. 한마디로 대륙의 조선인지 한반도의 조선인지 알 수가 없다. 조선을 진한, 한(韓), 진국, 낙랑조선, 예맥조선, 부여조선, 진(辰), 진(秦)등 여러 가지로 적어 놓아 필자도 혼동하곤 한다. 단제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도 이 같은 중국기록의 문제점을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지적했지만 정확한 판단력과 인내와 영감이 있어야 그 진위를 판별 할 수 있다. 나라의 위치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어 혼란이 가중된다. 지금의 난하를 패수로 썼다가 어떤 기록들에는 현재의 요하를 패수로 기록 하는 등 강은 말 할 것도 없고, 산 이름과 위치조차 중구난방이다. 따라서 중국사서의 조선관련 기록과 동이족 관련 기록을 맹신하다가는 망신 당하기에 꼭 알맞다. 아직도 우리 사학계나 재야 사학자 중에는 중국 사서를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명심해야 할 점이다.
중화민족의 위상을 높이려는 집필사관 경계해야
사마천은 배달국시대의 치우천왕(蚩尤天王)과 헌원(軒轅)에 대해서도 허무맹랑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헌원(軒轅) 관련 신화를 만들 때는 꼭 치우천왕(蚩尤天王)을 등장시키는데, 너무 낭설을 늘어놓고 있다. 그 조작한 것들이 가관이다. 사마천은 중국역사의 뿌리가 없기에 헌원(軒轅) 이전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것부터가 역사위작(歷史僞作)을 작정하고 한 의도를 엿보게 한다. 그가 헌원(軒轅)의 혈통이나 부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은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다만 소전(小典 BC, 3168)의 자손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소전(小典)은 배달민족이다. 그리고 신농씨(神農氏)도 언급하고 있는데, 신농씨(神農氏)는 강수(姜水)에 살았기 때문에 성을 강씨(姜氏)라고 했고 복희씨(伏犧氏)의 여동생인 여와(女㛂)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사마천은 조선열전 외에는 한민족(韓民族) 역사는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헌원(軒轅)을 중국 최초의 황제로 기록할 것을 결심한 것 같다. 어느 나라나 그 시조는 명확한 배경설명을 자세하게 밝힌다. 그런데 헌원황제(軒轅黃帝)의 경우 그 배경설명이 전혀 없다. 헌원(軒轅)의 역사는 치우천왕(蚩尤天王)때인 대략 BC 2707년경으로, 사마천이 쓰려는 중국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헌원(軒轅)이 군대를 일으켜 신농씨(神農氏)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은 제후들을 정벌했다고 거짓 기술하고 있다. 나아가 치우(蚩尤)만 가장 포악해 헌원(軒轅)은 치우(蚩尤)를 탁록의 들에서 싸워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역시 허위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신농씨는 헌원(軒轅) 시대의 왕이 아니다. 이처럼 연대 상으로 보면 수백 년을 뛰어 넘어 헌원(軒轅)이 신농(神農)을 대신해서 왕이 됐다고 했다. 중국고서에 나오는 역대 왕계를 보면 신농(神農)부터 헌원(軒轅) 사이의 왕들은 7명이나 된다. 이처럼 허황된 거짓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 위조의 작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히려 헌원(軒轅)은 치우천왕(蚩尤天王)과의 수없는 전투에서 패했다. 사기(史記)에도 헌원이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불안해서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치우천왕(蚩尤天王)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헌원(軒轅)이 고달프고 불안한 말년을 보여주고 있는 기록이다. 그런데 180도 다른 기록으로 포장해 중국의 첫 황제가 됐다고 하고 있다. 지금도 이런 왜곡과 위작은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기록 할 때 이민족(異民族)에게 의해 지배당한 역사일지라도 이를 부정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외침을 받으면서도 굳건히 버텨 몽골이 유일하게 굴복을 못시킨 국가였다. 우리의 역사에서 이민족의 실질적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우리민족이 일본의 폭력으로 36년간 지배를 받은 것도 배제 할 수 없듯이 중국은 오랫동안 우리 한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중국에는 이런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전무하다시피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재야학자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하(夏), 진(秦), 조(趙), 촉(蜀), 오(吳), 제(齊), 송(宋), 양(梁), 진(陳) 등 중원(中原)에 있었던 국가들은 모두 고조선족(古朝鮮族)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 국민들 조차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은 이들의 정확한 민족계통을 밝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한민족의 중국을 지배한 사실을 은폐하려는데 그 배경이 있기에서다. 우리는 분발해야 한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가꾸고 지켜야 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이다. 우리역사를 우리가 지켜야 이 나라가 바로서고 빛난다. 이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지상명령이기도 하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상고사’와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한창건 ‘환국배달 조선사신론’과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임승국 변역주해 ‘환단고기’ 외 다수의 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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