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支那)는 하(夏)나라를 오늘날 하남성 정주일대를 말하는데 사기(史記)에 따르면 우(禹)가 하(夏)의 제후(諸侯)가 되었는데 예주(豫州)의 남쪽에 있었다. 오늘날 하남(河南)의 양적(陽翟)에 있다. 이들은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이었다.
그런데 하(夏)의 시조가 되는 우(禹)는 화하족이 아니다. 헌원황제의 손(孫)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 족보 일부를 보면 우(禹)의 부(父)가 곤(鯀)이고 그 조부는 전욱(顓頊)이며 증조부는 창의(昌意)로 헌원(軒轅)의 아들이다.
따라서 우(禹)는 황제의 현손(玄孫)이고 전욱(顓頊)의 손자가 된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는 요(堯)임금의 말년에 홍수가 일어났는데 우(禹)가 치수에 성공하여 순(舜)임금이 죽은 후에 우(禹)가 왕으로 추대되어 서기전 2070년경 하남성 양성(陽城)에서 하(夏)를 세워 이후 17대가 이어졌다고 한다.
하(夏)의 수도는 지나(支那) 사기(史記)나 한서지리지 등에 따르면 하도(夏都)는 양성(陽城)에 있었다고 한다. 사기(史記)의 하본기(夏本紀)에 따르면 우(禹)가 순(舜)의 아들 상균(商均)을 피해 양성(陽城)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군세기(檀君世紀) 4대 단군 오사구(烏斯丘) 5년 8월 기사에는 “무자(戊子) 5년, 가을 8월 하(夏)사람들이 와서 방물(方物)을 바치고 신서(神書)를 구하여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오사구(烏斯丘) 5년이면 서기전2133년이다.
이는 이미 하(夏)나라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를 보건데 하(夏)는 우(禹)가 세운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허구(虛構)의 역사를 엮은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기집해(史記集解)의 시법(諡法)에 따르면 우(禹)는 순(舜)으로부터 선위(禪位) 받아 공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사마천의 사기를 근거로 우(禹)가 헌원황제(軒轅黃帝)의 현손(玄孫)이라는 것이나 우(禹)가 순(舜)으로부터 선위(禪位)를 받았다는 것은 허구(虛構)인 것이다.
부도지(苻都誌))에 따르면 요(堯)의 무리였던 우(禹)가 순(舜)이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어 이때에 이르러 추격하여 순(舜)을 살해하고 순(舜)의 두 부인(妻)도 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오늘은 하(夏)나라는 화하족(華夏族)이 아니고 순수한 동이족(東夷族)인 헌원(軒轅)의 자손인지 그가 통치한 하(夏)나라 역시 단군조선 제후국인지 살펴본다.
하(夏)는 단군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이었다
지나(支那)의 사서들은 제멋대로 기록한 것이 많아서 신뢰하기가 어렵다. 하(夏)나라에 관해서도 종잡기가 어렵다. 사기 정의(正義)에 따르면 제왕기(帝王紀)에 이르기를 우(禹)가 봉함을 받아 하(夏)의 제후(諸侯)[백(伯)]가 되었다고 한다.
즉 하(夏)는 ‘제(帝)’나 ‘왕(王)’이 아닌 ‘백(伯)’이란 점에서 하(夏)의 시조(始祖)
우(禹)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계보를 이은 것이 아니라 단군으로 부터 봉(封)해진 제후가 아니며, 하(夏)는 우(禹)가 세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우(禹)가 지나(支那)가 삼황오제의 첫 순위로 모시는 헌원(軒轅)의 현손(玄孫)일지라도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불과하다. 지나(支那)는 헌원(軒轅)과 우(禹)도 우리 동이족(東夷族)인데 화하족(華夏族)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있지도 않은 역사를 조작하는 지나(支那)의 옹졸한 그 행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국가나 개인도 거짓은 다 밝혀지게 마련인데 어찌해서 고대부터 오늘날 까지도, 더구나 21세기에 와서 모두 과학적으로 다 밝혀지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하(夏)나라 뿐만 아니라 은(殷), 주(周)나라 할 것 없이 그 조작과 왜곡은 세계가 이미 익히 다알려져 있는데도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25권(卷)은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중원대륙(中原大陸)을 지배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뒤집어 가지고 마치 지나(支那)가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한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기자조선설(箕子朝鮮說)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例)라고 말하고, 한대(漢代) 이전의 현토(玄免)와 낙랑지역에 이르렀던 조선 영역은 한 번도 지나의 제후국이 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연(燕)나라 주(周)에 예속된 적이 없다”고 그의 저서 [고조선(古朝鮮)]에서 밝히고 있다. (以上은 정희철, [중국은 없다]. 113~115참조인용)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학반도식민사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세계가 깊이 연구한 내용을 아직도 이마니시 류(今西 龍)가 왜곡한 ‘조선사편수회’의 허구의 역사만을 신주(神主)모시듯 하고 있음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기가 차는 일이다.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는 우리국민 이래도 되나
과거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고 했다. 그러기에 지나(支那)와 일본은 없는 역사도 조작하여서라도 역사를 만들려고 하는데도 우리는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단군조선도 러시아의 푸틴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25권(卷)은 단군조선의 중원대륙을 지배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뒤집어가지고 마치 지나(支那)가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한 것이다”고 했는데 국내학자들은 그 연구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단군조선을 넘볼 수 있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도읍지는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장당경(藏唐京)이며 당시 70여의 제후국을 거느린 강대한 나라가 단군조선이었음을 부인 할 수가 없다.
지나(支那)와 일본은 우리의 사서를 철저히 없앰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없애서 조작하고 왜곡하여 우리나라 국민을 현혹하게 하고 있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부터 대학에서도 왜곡역사를 배웠는데 지금도 그대로임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최태영 선생의 연구를 이어 받아 사서(史書)를 모으며 봐도 너무나 빈약한 상태로 이삭을 주우며 [단군고기(檀君古記)]의 기록도 환국시대가 7대로 하고 있으나 53대 3301년이고, 배달국의 환웅시대가18대가 아니라 37대 1565년이다.
단군시대는 47대 2096년인 것은 바로 되고 있으나 낙랑국(樂浪國)과 예맥조선(銳麥朝鮮;濊貊朝鮮)은 3000년 전의 구국(舊國)인데도 거론조차도 않고 있다.
필자가 2016년 8월 상고사와 고대사 유적지가 있는 지나(支那)를 답사하며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예맥조선(銳麥朝鮮;濊貊朝鮮)에 관한 책을 구입하였는데 지나(支那)는 예맥을<흉노제국(匈奴帝國)>이라 하여 책을 발행하고 있었다.
글을 맺으며 - 역사 알아야 민족 나아갈 방향 찾는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세계를 움직이는 종주국(宗主國)이다. 우리의 상고사는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고대사도 아시아를 지배한 역사이다. 지나(支那)의 사학자 임혜상(林惠詳) 홍콩대학 교수도 지구의 땅 40%가 유라시아인데 이 땅의 80%가 우리 영역이고 자기들은 아주 적은 지역이었다고 말하였다.
우리역사가 반도사로 된 것은 일연(一然)때부터로 서기전 1237년~서기 32년까지 있었던 낙랑국(樂浪國)을 없앴고 3000년 전의 예맥조선은 거론조차 않고 있다. 지나(支那)와 일본은 우리예맥조선을 아주 지우고 있는데 이제 복원해야 한다.
낙랑국(樂浪國)은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인 한서(漢書) 권(卷)28, 사기(史記), 조선열전 주(朝鮮列傳 注)에 나와 있고, 예맥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1000년 간 대륙을 정벌, 정복하여 지배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예맥조선을 계승한 것이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이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부여국(夫餘國)이 예맥의 고지(故地)라 하고 있다. (山海經 第十一, 海內書經).
진서(晉書) 부여전(夫餘傳)에 그 왕이 인(印)이 있고 국중(國中)에 예맥(銳麥)의 성(城)이 있는데 본래 예맥의 땅이라 하고 삼국지(三國志) 부여전(夫餘傳)에 선대로부터 전하여온 옥벽규찬(玉壁珪瓚)의 인(印)이 찍혀 있다고 했다.
후한서(後漢書)에 예맥(銳麥)의 노인들이 예맥은 고구려와 종(種)이 같다고 말하고 고구려의 일명(一名)이 맥이(貊耳)라 하였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흠명천황(欽明天皇)15년 12월조(12月條)에 예맥(銳麥)을 박(狛)이라 칭하였다. 박(狛)은 예맥(銳麥)이다. 일본 신사(神社)앞에 세워진 박견(狛犬)은 예맥(銳麥)의 개(犬)로 일본에서는 고구려(高句麗)의 개(犬)로 소개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자학사관교육(自虐史觀敎育)을 언제까지 하려는가. 더 이상 조상에 죄를 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서가 없다고 부인만 하지 말고 이삭을 모아서 봐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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