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학자들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는 우리에게는 지나(支那)와 일본이 우리 사서를 다 모아 불사르고 없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나(支那)와 일본 서책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나(支那)와 일본사서들은 제멋대로 조작되고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나(支那)의 사기(史記)는 지나인(支那人)들의 임의로 그 대상의 호칭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3000년에 걸친 인세(人世)변천, 지명이 개역(改易)과, 강산(江山)의 이변(異變), 침략주의 사가(史家)들의 장난 등으로 그 민족명과 지명이 혹은 연대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바뀌고 섞여있다.
따라서 깊이 연구를 하지 않으면 오류를 낳게 된다. 또한 나라가 바뀔 때 마다 지명(地名)도 지역(地域)도 바뀌어서 그것이 유구한 세월의 운무(雲霧)속에서 흐려 있는 등 올바르게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고 역사가 그르치게 될 수 있다.
때문에 고대사연구는 먼저 민족사적인 연관과 역사지리적인 방면에서 지나(支那)의 서책(書冊)에 나타나는 모든 종족의 명과 지명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하며, 이와 같은 선행적인 받침이 없이 고대사연구 역(域)에 들어서게 되면 그 식별이 곤란하여 진위가 바뀌는 과오에 빠지기 쉽다.
예컨대 종족에 관한 호칭도 맥(貊), 호(胡), 동호(東胡), 오환(烏桓), 선비(鮮卑), 거란(契丹), 흉노(匈奴), 유연(柔然), 돌궐(突厥), 위굴(回鶻), 토번(吐藩)등 대륙을 지배한 유목민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한 것이 많지 않다.
그리고 지나(支那)역사를 연구하며 흉노(匈奴)의 예를 봐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흉노의 전부를 하후씨(夏后氏)의 자손인 것 같이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사마천 자신의 서술(敍述)과 같이 하후(夏后)의 후예(後裔)로서 흉노(匈奴)가 된 자는 서융(西戎) 일종(一種)에 불과했으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흉노(匈奴)라고 부르는 명칭(名稱)이 35개나 된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가 틀리기 쉬운 종족에 관한 호칭과 지명 등에 대하여 살펴본다.
종족명(種族名)과 지명(地名)에서 보는 호칭들
지면관계상 종족에 관한 호칭은 흉노의 경우를 보고 나머지는 지명에 대하여 다루려 한다. 먼저 종족 흉노(匈奴)를 말 할 때 우리는 하나의 흉노족(匈奴族)으로 보기 쉬우나 대륙에 퍼져 있는 흉노(匈奴)는 수십 개가 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35종의 흉노(匈奴)를 말하고 있다. 즉, 서융(西戎), 융적(戎狄), 견융(犬戎), 신후(申候), 산융(山戎), 렴윤(獫狁), 융적(戎翟), 적적(赤翟), 백적(白翟), 의거(義渠), 오씨(烏氏), 구연(昫衍), 임호(林胡), 루번(樓煩), 동호(東胡), 호(胡), 맥(貉), 월씨(月氏), 두만(頭曼), 모돈(冒頓), 북이(北夷), 난씨(蘭氏), 수복씨(須卜氏), 예맥조선(穢貉朝鮮), 씨강(氏羗), 곡여(谷蠡), 골도(骨都), 훈수(훈瘦), 굴사(屈射), 정령(丁靈), 걱곤(鬲昆), 신리(新犂), 루란(摟)蘭), 오손(烏孫), 호게(呼揭)등 무려 35개가 흉노(匈奴)로 기록되 있다.
이 흉노족이 연합하여 유방이 한(漢)을 세우고 2년 후인 서기전 200년 이를 정토(征討)하기위해 32만의 대군으로 한(漢)이 말하는 흉노를 없애려 했으나 한고조(漢高祖)를 무참히 격파한 모돈선우(冒頓單于)는 40만의 기마군단으로 한고조 32만을 격파해서 60년간 한(漢)을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으로 삼았었다.
이것은 이 35개의 흉노라는 예맥족(예맥조선족)의 연합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 예맥족의 동주(東周)시대 즉, 서기전 256년부터 진(秦)에 멸망될 때까지의 낙읍(洛邑)에서의 514년을 동주시대(東周時代)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당시 대륙의 주인이 한족(漢族)아닌 예맥족을 필두로 모두 북방유목민족들이었다.
지나인(支那人)들은 이들 북방민족을 부를 때 거의 조수(鳥獸)나 곤충(昆蟲)에 가까운 한자(漢字)를 말함으로써 한민족과 명확히 구별하였으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4000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 여기나 그들 역사는 북방민족이 지배한 역사로 그들 역사는 고작 1000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지나 역사를 가르치던 위안텅 페이(袁謄飛)는 “지나(支那)역사는 5%도 아니 된다”고 하였는데 역사왜곡을 하는 중공당국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있다.
또한 그들은 전 왕조의 유품을 남기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고 또 종족명(種族名)이나 지명(地名)도 제멋대로 바꾸고 지역도 이동시켜 말하나 진실이 다 밝혀지고 있다. 한 예를 든다면 황하(黃河)는 황제가 다스리는 하수(河水)라 했다.
이 황하(黃河)의 명칭도 시대마다 달리 불리기도 했다. 즉, 하수(夏水;河水), 태수(泰水), 면수(沔水), 덕수(德水), 진수(晋水), 살수, 한수(漢水) 등으로 불렀다.
동이북방민족의 지나(支那)에의 공헌은 무엇인가
지나(支那) 4000년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들은 볼만한 문화가 없었다. 그런데 동이민족(東夷民族)이 한민족(漢民族)사회에 준 공헌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의 공헌을 몇 가지만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첫째는 봉건체제를 파괴해서 신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지나(支那) 역대왕조의 말기에는 조정내의 관료에 의해서 관위(官位)나 재산이 독점되고 귀족도 세습(世襲)이 되어 하층계급에 있어서도 농노적 지위가 고정화 되는 등 사회전체가 경직화되었는데 북방민족인 한민족(韓民族)이 이 체제를 파괴하고 신체제를 확립할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의 공헌은 북방유목민족이 흉노(匈奴)에 대표되는 철(鐵)의 사용과 기마전술(騎馬戰術)을 한민족(漢民族)에게도 갖게 한 것이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서기전 770년~서기전403년)에 철제농구사용에 의해서 농업을 크게 진보시킨 점과 기마전술로 진왕 정(秦王. 政)을 비롯해서 한(漢) 이후의 역대 왕조도 기마전술로 국가통일을 이룬 점이다.
셋째의 공헌은 한민족(漢民族)에 만리장성을 쌓게 한 것이다. 장성(長城)은 북방유목민족의 침입으로부터 국토를 방위하기 위해서 춘추전국시대의 열후(列侯)들이 쌓기 시작하여 진왕 정(秦王. 政)에 이어지고 명 왕조(明王朝)까지 건설이 계속되어 총연장6000km에 이르는 인류사상 최장의 건조물이다.
이 시대는 북방민족에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쌓고 마치 지나(支那) 역사로 보는 사학자가 있으나 춘추전국시대는 북방민족(北方民族)의 역사이다.
또한 시대는 내려가서 특히 삼국시대(三國時代;3세기) 말기(末期) 몽강(蒙疆)의 제민족(諸民族)과 티베트족이 대거 한민족(漢民族) 거주지에 이주하여 소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時代(4세기~5세기)이 되면서 이에 의해서 지금까지의 한민족(漢民族)이라는 인종을 거의 절멸시켜 이민족(異民族)과의 혼혈에 의한 새로운 한민족(漢民族)을 출현시켰다.
따라서 수(隨, 서기581년~619년)부터 시작하는 지나인(支那人)은 신종(新種)이라고 말하리만큼의 한민족(漢民族)인 것이다. 여기서 이민족(異民族)이라든가, 지나민족(支那民族)의 의미가 없는 것으로 우리 한민족(韓民族)과 한족(漢族)은 피를 나는 민족인 점에서 구분이 매우 난이한 것이다.
글을 맺으며 - 1200년간 대륙을 지배한 북방민족
북방민족이 대륙을 지배한 환국시대는 유라시아를 지배했고 이어서 서기전 3세기로부터 9세기까지의 1200년 동안 지나(支那)는 흉노(匈奴), 선비(鮮卑), 유연(柔然), 돌궐(突厥), 위구르(回鶻), 토번(土蕃)등의 유목민족이 강대한 왕국을 건설하고 한족(漢族)의 왕조에 군림한 시대로 북방민족의 역사이다.
더욱이 10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1000년간에는 북아시아와 지나(支那)에 과시(跨示)하는 정복왕조인 요(遼), 금(金), 원(元), 청(淸)이 대륙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들은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으로 한족(漢族)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북방유목민족으로 지나(支那)의 문화권과는 이질의 유목, 수렵문화권을 형성하여 북아시아의 문화라고 하는 이동(移動), 이주문화(移住文化)를 구축하여 지나(支那)문화에 자극을 주었던 것이다.
이들 진(秦), 초(楚), 연(然), 제(齊), 한(韓), 위(魏), 조(趙)등 7개국인 전국칠웅(全國七雄)이 황하유역에서 중원(中原)의 패권(覇權)을 놓고 본격적으로 서로 다투게 되어 사가(史家)들은 이 시대를 춘추시대(서기전 770년~서기전 403년)와 구분하여 전국시대(戰國時代(서기전 403년~서기전221년)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전국책(戰國策)을 편찬, 집대성하여 이 시대를 기술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이 기간을 ‘전국시대’라고 하는데 춘추전국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춘추시대 열국들이 주(周)를 받든 것처럼 기술하고 있으나 가공(架空)의 이야기일 뿐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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