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신라역사, 사서가 입증한다

입력 2022-02-26 12: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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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교수
 신라(新羅)가 2개가 있었음은 지나(支那)의 사서에서도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인 삼국지와 신구당서에도 나와 있는데 북사(北史)는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권(卷) 94에 신라가 2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나(支那)는 9세기 이전의 역사를 숨기며 그들 중심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며 왜곡하나 그들 역사가 5%도 아니 된다는 것은 지나 학자도 말하고 있을 만큼 그들의 철면피한 치부를 보일 뿐이다.
 
분명히 말을 한다면 지나(支那) 한족(漢族)의 역사는 동이민족사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출발부터 잘못 되고 있다. 이미 밝힌 바대로 지나(支那)가 말하는 그들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모두 우리 동이(東夷) 조상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도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은 사학자(詐學者)들은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이 왜곡한 역사만을 말하는 자들을 보는데 제대로 연구하고 말을 했으면 한다. 동이(東夷)역사를 제대로 연구해보면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지나(支那)의 25사(史)에서 9세기 이전의 동이민족 영역인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의 동이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잘 알 수가 있다.
 
만약 위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 있다면 떳떳하게 밝혀주기를 바란다.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활동무대가 반도였는가! 삼국시대의 역사인물들이 모두 대륙이고 그 무덤도 대륙에 있는데 국내에 무덤을 만든다고 역사가 되지 않는다.
 
지나(支那)와 일본은 수십만 권의 사서(史書)를 다 불태우고 상고사(上古史)는 물론 고대사 삼국시대의 인물들도 반도에 가져다가 허구의 역사를 조작하나, 부질없는 일들이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가 반도 청천강인가!
 
살수(薩水)는 창해(滄海;하북성)의 서쪽에 있지 반도가 아니다. 모두 대륙에서 치러진 전쟁사를 제멋대로 조작해서들 말하나 거짓으로 조작된 것은 역사가 아니다.
 
오늘은 사서를 통해서 신라와 고조선 이후 동이나라들이 대륙에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사로신라(斯盧新羅)와 동신라(東新羅) 밝힌 사서(史書)
 
신라역사(新羅歷史)는 거칠부(居柒夫)의 [국사(國史)]와 [당영호징(唐令狐澄)]의 [신라국기(新羅國記)]가 각각 따로 있다. 거칠부(居柒夫)의 [국사(國史)는 반도신라의 역사이고, 당영호징의 [신라국기]는 사로신라(斯盧新羅)의 역사이다.
 
거칠부의 [국사]가 쓰여진 내력을 보면, 지증왕(智證王) 6년(서기545년) 이간(李湌) 이사부(異斯夫)가 왕에게 “나라의 역사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들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고 나쁜 것을 만대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책으로 편찬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왕이 깊이 통감하고 대아찬(大阿湌)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선비들을 널리 모아 그들로 하여금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또한,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국기(新羅國記)는 진흥왕 37년(서기 576년) “귀인(貴人)의 자제 중에서 훌륭한 자를 선발하여 곱게 꾸민 다음, 이름을 화랑이라 하여 백성들이 모두 떠받들어 섬겼다”라고 기록하였다.
 
안홍법사(安弘法師)가 수(隨)나라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고, 서역(西域) 승려 비마라(䀝摩羅)등 두 명의 승려와 함께 돌아와 [능가승만경(稜伽勝鬘經)]과 부처의 사리(舍利)를 바쳤다. 진덕왕(眞德王) 8년(서기654년) 봄 3월 왕이 사망하였다. 시호(諡號)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랑부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당고종(唐高宗))이 이를 듣고 영광문(永光門)에서 추도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대상승(常丞) 장문수(張文收)를 사절(使節)로 삼아 황제의 신임표를 가지고 와서 조문케 하였으며 왕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追贈)하고 비단 300필을 부의(賻儀)로 주었다.
 
신라는 시조 박혁거세로부터 진덕왕까지 28대 왕을 성골이라고 불렀으며 무열왕으로부터 마지막 임금까지를 진골이라고 불렀다. 또한 당(唐)나라 [당영호징(唐令狐澄)] [신라국기(新羅國記)]에는 “그 나라에서는 왕족을 제일골(第一骨)이라 부르고 나머지 귀족을 제2골(第二骨)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경덕왕 14년 망덕사탑(望德寺塔)이 흔들렸다. 이 망덕사탑은 [신라국기]에 “신라가 당나라를 위하여 이 절을 세운 까닭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그런데 이 망덕사탑(望德寺塔)이 갑작이 흔들리면서 떨어졌다 붙었다”하며 곧 넘어질듯 하였다.
 
이러한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이 해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그 감응(感應)이 아닌가 한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이 [당영호징(唐令狐澄)] [신라국기(新羅國記)]는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의 역사인 것이다.
 
왕(王)과 간(干)의 호칭도 다른 두 신라였다
 
이미 살펴 본대로 최치원이 지은 [제왕연대력]에서는 사로신라의 왕은 모두 왕(王)이라 불렀고, 거서간(居西干)등으로 부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신라(斯盧新羅) 왕(王)은 어느, 어느 왕이라 하였다.
 
이것은 삼국사를 편찬한 김부식이 본 거칠부(居柒夫)의 신라에 의한 신라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고 김부식의 논찬(論纂)이 있었기에 구별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사로시대(斯盧時代) 즉 혁거세 이전 4대왕이 있었고, 진평에 이르러 30대이다. 때문에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신, 구당서(新, 舊唐書)]에서 공통부분이 사로신라 왕호(斯盧新羅王號)로 하고, 비공통부분(非共通部分)은 고구려(高句麗), 간(干)에서 독립한 신라왕호(新羅王號)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두 신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동신라(東新羅) 고구려 간(干)인 거서간(居西干) - 마립간(麻立干)을 고구려 왕(王)과 동격(同格)으로 보아 왔다. 즉 고구려 간(干)으로 21대를 왕으로만 봐왔던 것이다.
 
이 당시 간(干; 간, 칸, 한)은 고구려의 지방지도자이다. 제후국과 같은 동신라(東新羅)의 땅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로 알려져 있는 낙랑왕국의 일부로 있었는데 고구려가 서기32년에 낙랑조선을 항복 받아 병합함으로 고구려에 병합되었는데 한성(漢城), 오늘의 평양에 별도(別都)를 두고 남부(南部)에 많은 간(干)을 두었다.
 
거서간(居西干)-마립간(麻立干) 외에 구간(九干)을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즉,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간(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 등이다.
 
경주(慶州)에서 함안과 범안에서 왕관이 출토되는 것 등은 바로 위의 간(干)들의 유물인 것이다. 거서간(居西干)-마립간(麻立干)시대는 고구려 간제도(干制度)를 이해하고 고구려가 지금의 연방국가 형태임을 인식하여야 두 신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광령, 길림, 이동의 신라는 서기 32년~502년까지 고구려간(干)시대를 마치고 신라(동신라)로 503년~936년 만주(滿洲)와 반도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글을 맺으며-자장법사가 두 신라를 다닌 기록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자장법사가 대륙의 사로신라와 반도의 서라벌신라를 두루 다닌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와 있다. 선덕여왕 5년(서기 636년) 여름 5월에 개구리 때가 대궐 서쪽 옥문지에 많이 모였다.
 
자장법사가 불법(佛法)을 탐구하기 위하여 당(唐)나라에 갔다가 선덕여왕 12년(서기643년) 3월 당나라에 가서 불법(佛法)을 탐구하던 고승(高僧)자장이 돌아 왔다. 그는 대륙에 태자가 둘인 사로신라의 정신대왕(淨神大王)이 있음과 반도의 선덕여왕이 자식이 없음도 확인하고 있다.
 
자장법사는 사로신라(서신라)와 반도서라벌 신라(동신라)에서 수행(修行)을 위해 각각 다녔던 것이다. 여기서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가 같은 지역이 아닌 두 신라의 합본(合本)임을 알게 하여 준 것이다.
 
여기서 당(唐)나라의 [당영호징(唐令狐澄)] [신라국기(新羅國記)]는 사로신라의 역사로 제노(齊魯)와 오월(吳越)나라의 사이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거칠부(居柒夫)의 국사(國史)는 동신라(東新羅)가 서기503년 독립으로 433년간의 신라가 서라벌(徐羅伐)에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두 신라역사이다. (以上은 오재성 편저, [九犂系 新羅史] 10面~43面 參照, 本文을 引用하였음).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오재성 편저 九犂系 新羅史).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정희철, [중국은 없다]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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