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상(地上)에 250여 나라가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처럼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 사는 우리나라 학생이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데 교사가 한국의 역사가 몇 년인가 물었다. 그 학생이 5천년이라고 말하니 미국인 교사는 아니라면서 코리아 역사는 1만년이라고 바로잡아 줬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는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조선사의 내용인 것이다.
세계 학자들은 우리역사가 1만년이 넘는 역사라는 것을 연구결과로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국민은 일제(日帝)가 심어놓은 왜곡 역사만을 우리역사라고 하고 있음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유라시아를 지배하였고, 삼국시대도 중원(中原)은 물론, 동북아시아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왜(倭)가 대륙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데도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에서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원을 다스린 것을 알고도 백제가 대륙에서 언제 중원(中原)을 잃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충청도에서 망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허황된 기록은 세계학자들도 비웃고 있는데도 우리나라 강단학파 사람들은 아직도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당서(唐書), 송서(宋書), 위서(魏書) 등에서 66건 이상의 일식이 대륙이라 밝혀지고 있는데도 무지한 말을 하며 우리역사를 반도사로 보니 지나(支那)와 일본학자들까지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신채호는 우리가 현재의 지나(支那)를 지배한 것을 알면서도 백제패망이 반도로 국한시켜 구미 학자나 러시아와 지나(支那)와 일본 학자들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제2차 대전 후 일본학계도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을 인정하며 올바른 역사연구를 하는데 우리는 백제역사도 초창기 하북성 위례성에서 건국한 것을 뭉개고 있다.
오늘은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우리가 삼국시대에도 중원을 정복하고 지배하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권46과 [남제서(南齊書)]권58의 실체를 알기 위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지나(支那)[25史)] 동이(東夷)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지명, 지나(支那)에는 있고, 반도에는 없다
우리역사를 연구하는 인사(人士)들은 삼국시대의 지명(地名)이 지나(支那)에는 있는데 반도(半島)에는 없는 사실도 모르고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만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즉, 신라(新羅)- 고려(高麗)- 조선(朝鮮)으로 변한 한반도 역사와 지나(支那)의 당(唐)은 20대(代) 290년간에서 끝내 멸망하고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가 시작됐다. 907년 당(唐)이 멸망해 송(宋)이 지나(支那)를 통일하는 960년까지의 54년간에 낙양(洛陽)을 중심으로 후양(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5개 왕조(王朝)가 발흥(勃興)과 쇠망(衰亡)을 거듭했다.
이 시대를 오대(五代)라 부르는데 이들 오왕조(五王朝)의 지배는 황하유역과 그 주변에 한정되어서 강남지방(江南地方)에 까지는 전혀 지배가 되지 않았다.
한편, 강남지방에는 많은 번진(藩鎭)에 세워져, 정권이 존립했다. 즉, 오(吳), 남당(南唐), 오월(吳越), 민(閩), 형남(荊南), 초(楚), 남한(南漢), 북한(北漢), 전촉(前蜀) 및, 후촉(後蜀)으로서 이들을 총칭해서 오대십국(五代十國)이라 한다.
이러한 창시자(創始者)는 거의가 지나족(支那族)이 아니었다. 또한 서기907년~960년-당(唐)-송(宋)-요(遼)-금(金)-원(元)-명(明)-청(淸)으로 변화가 많았던 지나(支那)에 삼국시대 지명(地名)이 있는데 반도에는 없는 것은 우리 동이족들이 대륙에서 지배했고 삼국시대에도 동이족이 지배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재도 지나(支那)와 한국의 지명(地名)이 같은 것이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우리가 지나(支那)로 이동하여 와서 그렇다고 말하고 있으나 우리는 원래부터 대륙에 있었고 현재도 같은 지명은 동서남북의 서로의 위치가 같은 것이 있음을 본다.
이것은 이동(移動)에 의해서 그렇다고 보기보다는 사서(史書)들을 이용하였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동사강목(東史綱目)]의 책서목이 [삼국유사(三國遺事)]편에 조선시대 [동국통감(東國通鑑)]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찬(纂)할 때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인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지나사서(支那史書)를 인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원본은 지나사거(支那史書)가 되는 것이다. 지나(支那) 사서(史書) 동이전(東夷傳)에 등장하는 지명이 지나(支那)에 있고 송(宋)나라 때 만든 우적도(禹跡圖)와 [송본지리지장도)]에도 있어 동이전(東夷傳)의 위치는 현 지나(支那)의 내부에 있었음을 잘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고구려, 백제 위치 지나25사 범위를 벗어난 적 없다
고구려, 백제의 패망시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지나(支那)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동일하기 때문에 지나(支那) 25사(史)의 동이(東夷)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반도(半島)로 옮긴 자가 김일연(金一然)이다. 그는 800년 전에 반도사관으로 되게 한 인물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함으로 삼국시대의 지명들도 반도에는 없으나 지나(支那)에는 각처에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송(宋)나라 제작의 고지도(古地圖)에도 동이지명(東夷地名)이 황해 서쪽에는 있으나 반도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 역사의 주인공의 무덤들이 모두 대륙에 있다. 상고시대부터 우리는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것으로 반도가 아니다.
역사시대의 배달국시대는 물론 9세기 이전 동이민족의 영역은 반도가 아니며 대륙이다. 그런데 우리역사를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은 상고시대(上古時代)와 고대(古代) 동이역사를 다른 것으로 오도(誤導)시켰다.
상고시대나 고대의 지명과 선조의 무덤들이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지명들이 지나(支那)에는 있어도 반도에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국시대 태원(太(原)이 산서성(山西省)에 있고, 북평(北平). 태백산(太白山), 은산(銀山), 신성(新城), 광양, 청하(淸河), 석문(石門), 서안평(西安平), 평원(平原)이 하북성(河北省)에 있다. 광능(廣陵), 하수(河水), 동명(東明), 황산(黃山), 제성(諸城), 백마하(白馬河)가 산동성(山東省)에 있으며 항성(項城), 숭산(崇山), 광주(光州)가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것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 사(泗), 마두(馬頭)가 안휘성(安徽省)에 있고, 덕안(德安), 무녕(武寧)이 강서성(江西省)에, (海), 연수(漣水), 서주(徐州)‘ 주류성(周留城)이 강소성(江蘇省)에 있다. 진해(鎭海)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데 이곳은 반도가 아니고 모두 대륙인 것이다.
또한, 김유신(金庾信)이 활동한 전쟁터가 모두 대륙에 있으며 삼국사(三國史)를 편찬한 김부식은 자신이 모르는 삼국시대지명 360곳이 모른다 했는데, 이 지명들이 모두 대륙에 있고, 고대 삼국들도 모두 대륙에서 건국했다.
끝을 맺으며 - 삼국시대도 이(東夷)는 대륙의 같은 영역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온조(서기전 18년~서기 28년)가 백제를 하북성에 있는 위례성에서 건국하고 31대 의자왕(서기641년~660년)까지 678년간 강성한 대백제(大百濟)였다. 그 영역은 중원은 물론 하남성까지 백제 영역이었다.
그러나 반도에는 고구려, 백제의 지명이 없다. 세종대왕 때인 1402년에 만든 지도에는 우리나라지명이 대륙과 반도에 있었다. 그런데 성리학에 미친 성호 이익이 지도에 유연제노(幽燕齊魯) 오월(吳越)지역 지명을 다 빼어 버렸다.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하기까지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공통이고 지명은 반도에는 없어도 지나(支那)에는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정약용(丁若鏞)과 안정복(安鼎福)의 역사와 일제(日帝)와 일본교재가 똑 같다. 이는 우리 삼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결과에서이다.
백제의 패망기록도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가 동일한데 패망할 당시의 지명도 반도에 없고 요(遼)동쪽 지나(支那)에만 있는 것은 왜인가. 백제의 왕릉(王陵)이 무령왕릉과 무강왕능이 있으나 이는 오늘날의 총독과 같은 지위인 것이다. 우리백제선조의 무덤들이 모두 대륙에 있다.
배달국의 치우(蚩尤) 천자(天子)의 능(陵)도 동평(東平)에 있고, 헌원(軒轅) 황제(黃帝)의 능(陵)도 섬서성(陝西省) 황능현성(黃陵縣城) 외곽(外郭), 교산(橋山)에 있다. 우리나라는 김수로왕과 김유신(金庾信) 능(陵)을 조성했으나 이는 시신(屍身)이 없는 무덤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이를 바로 봐야 한다.
우리가 대륙사(大陸史)인 것에 대해 태원(太原)은 49년에 고구려가 평정한 곳 중의 하나라고 후한서(後漢書)와, 김부식의 삼국사(三國史)에도 기록 되어 있으며, 지나(支那)의 위서(魏書), 북사(北史)에는 섭라(涉羅)에 관한 기록에서도 504년 이곳은 백제에게 빼앗긴 곳이라는 데서도 백제가 대륙에 있었음을 입증한다.
사기(史記)에서 남제서(南齊書)권58과 삼국사기(三國史記)권(卷)46의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도 강단학파의 일부는 연구가 너무 부족한 것이다.
우리는 동이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서화(西華;河南省) 동쪽의 동이(東夷)가 배제(排除)되어 우리역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요(遼), 금(金), 원(元), 청(淸)은 동이(東夷)의 후예이면서도 동이역사를 계승하지 못하고 주(周), 진(秦), 한(漢)의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감출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이기에 반드시 진실이 승리하는 날은 올 것이다. 동이를 한반도로 몰아내기 위해 소동파(蘇東坡)는 우적도(禹跡圖)를 왜 고려인에게는 절대로 팔지 말라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유연제노(幽燕齊魯)오월(吳越)지역에 있었음을 지우려는 의도였다.
<參考文獻>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정희철, [중국은 없다]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