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는 대륙사인데도 반도사로만 보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된 것은 지나(支那)와 일본이 우리사서들을 불사르고 없애버린 것과 그나마 몇 안 되는 사서의 연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데서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로 하여금 조작하고 왜곡된 역사를 우리역사로 가르쳐온 것이 문제이다.
역사를 연구하며 사서를 들추다보면 9세기 이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면서 우리역사기록을 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왜곡한 현재의 우리 역사체계가 옳지 않는데도 이를 추종하며 [삼국사기]의 기록이 대륙의 기록으로 볼 수 없다는데서 부정하나 이는 연구부족이다. 필자가 연구한 결과는 삼국사기 기록은 진실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東夷)기록을 [고조선(古朝鮮)] 국가 기원으로 하며,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倍達國)과 환국(桓國)을 지우고 있다.
지나(支那) 25사(史), 동이(東夷), 삼국유사 기록은 서화(西華) 동쪽 덕안(德安), 항성(項城), 진성(晋城), 고평(高平), 동쪽인 강회(江淮) 지역에만 광복신라(光復新羅) 백제(百濟)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만이 서화(西華) 동쪽의 왕신라(王新羅)와 반도에 간(干)신라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당(唐)영호징 신라국기(新羅國記)와 [거칠부(居柒夫) 국사(國史)]를 남겨서 두 신라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간(干)은 고구려의 지역통치자임도 기록하고 있어서 광개토태왕비와 진흥왕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반도의 신라는 서기503년 고구려의 간(干)에서 독립하였으며 백제 역시 반도사관자들은 공주(公州)를 백제의 웅진(熊津)이라고 하고 백제의 위치를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라 하고 한성(漢城)은 현 서울 부근이고, 웅진은 공주(公州)이며 사비성은 부여(夫餘)라고 하며 1972년 백제사마왕(百濟斯麻王)이란 지석(誌石)이 발견됨으로 해서 더욱 분명히 확인되는 것으로 여겨왔으나 이는 연구 부족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민족이 대륙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송(宋)나라 때 만든 <우적도(禹跡圖)>와 <송본지리지장도>에 의해서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동이지명(東夷地名)이 우적도(禹跡圖) 등에 포함되어 있고 현재의 지나(支那) 지도에서도 삼국지명(三國地名)이 존재함으로서 우적도(禹跡圖)에 의한 백제 웅진(熊津)의 위치를 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오늘도 삼국시대 당시 우리민족의 나라들이 대륙에 있었음을 밝히려고 한다.
지나(支那) 사서(史書)에서 본 동이(東夷)의 나라
한족(漢族)의 정사(正史)에서 동이(東夷)로 기록하고 있는 항목에는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가라(加羅), 왜(倭), 신라(新羅)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왜(倭)는 양자강 이남에 진번(眞番;진파)으로 불리던 담이(儋耳)로서 남월(南越)과 회계(會稽)지역의 민(民)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에서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가라(加羅)와, 왜(倭), 신라(新羅)가 반도에서 건국했다는 기록을 찾아보지 못했다. 동이나라들의 경계를 보면 서기전 11세기 주(周)와 조선의 경계는 하남성(河南省) 서화이고 서기전 5세기 연(燕)과 조선의 경계는 요동(태행산맥(太行山脈))이다.
서기전 3세기 진(秦)과 북부여(北夫餘)의 경계, 은산(陰山)서쪽 진(秦) 장성(長城)이었고, 진(秦)과 조선마한의 경계도 요동(태행산맥(太行山脈))이다. 또한 서기전 142년~87년 한(漢)과 마한(馬韓)의 경계도 요동의 태행산맥이다.
서기 4~5세기 북위(北魏)와 백제의 경계는 요서(遼西) 진평(晉平) 이군(二郡)이고, 6~7세기 당(唐)과 백제 경계는 광양(廣陽), 항성(項城), 덕안(德安) 강서성(江西省)이었다. 또한 6~7세기 당(唐)과 서신라(西新羅)의 경계는 석문(石門), 석성(石城), 항성(項城), 덕안(德安)이었다.
8세기에 와서 당(唐)과 서신라(西新羅)의 경계는, 항성(項城)으로 보여지는데, 연주(兗州), 사지연수(泗之漣水), 대산(岱山), 치청(淄靑), 순천(順川), 청해(淸海), 진해(鎭海) 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으며, 이 당시 언어도 우리말로서 우리가 대륙의 주인임을 확실히 밝혀주는 것이다.
지나(支那)에는 상고사(上古史)가 없다. 그래서 상고시대에 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支那) 역사를 엮은 사마천(司馬遷)은 상고사를 조작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삼황오제설(三皇五帝說)도 조작하나 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즉, 환웅천왕(桓雄天王)시대의 수인, 복희(伏羲), 신농(神農)을 가져다놓고 있으며 오제(五帝)로는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을 오제로 하고 있으나 이것도 여러 번이나 바꿔놓고 있다.
대륙을 지배한 우리역사 제대로 알아야
우리 민족이 대륙을 지배 할 수 있었던 것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민족의 우수성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5대문명을 일으킨 민족이었고 인류의 역사 99.9%가 석기시대인데 다른 민족과 달리 우리는 18000년 전부터 신석기시대였다는 것은 컬럼비아 대학의 브라운 교수도 말하고 있다.
세계의 시원국(始原國)으로 유라시아를 지배한 환국(桓國)은 53대 3301년간이나 대륙을 지배하였고, 환웅천왕이 다스린 배달국은 37대 1565년간 대륙을 지배한 것은 외국의 학자들이 더 잘 전하고 있다.
우리는 배달국시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皇;蚩尤黃帝)때 부터 청동기를 사용하고 있었을 만큼 타민족이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무기와 군사력으로 대륙을 지배해온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조선시대도 43대 2096년 간 170여의 제후국을 거느릴 수있는 대 제국이었던 것도 세계학자가 다 인정하고 있는 데도 우리는 아직도 단군신화를 조작한 왜곡역사를 말하는 자가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고조선은 일찍부터 철제품(鐵製品), 강철(鋼鐵)의 주조(鑄造)내지는 단조(鍛造)되었다. 그 결과 순수한 철보다는 여러 형태의 선철(銑鐵)과 강철(鋼鐵)이 많이 생산됐다. 이는 다른 민족의 수준에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이후 우리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2000년 동안 지나(支那)에 수출했는데 고시(楛矢), 석족(石鏃)은 석기(石器), 철기(鐵器)를 파괴하는 신비성이 있고 지구상에 다른 데서는 없으며 오직 우리 땅에서만 생산되는 것이었다.
고대 석기(石器)와 철기(鐵器)를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한 우리민족은 사방 원시민족을 정복하고 인류사상 최초로 대국(大國)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민족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고대(古代)에 지나(支那) 문헌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최초의 천자(天子)와 황제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창안했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천자(天子), 황제(皇帝)라고 칭했다.
이러한 사상들은 우리가 인류의 대표라 자처하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하는 것임을 우리나라 국민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끝을 맺으며-조국광복 되었어도 반도사관은 정상 아니다
우리민족의 역사가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도 대륙이 우리의 터전인데도 이것을 모르는 민족으로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이 조작한 역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조국광복이 된 지 73년이 지났는데도 우리역사는 일제가 조작한 왜곡역사만을 우리역사로 하며 학교에서도 그대로 가르치며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사학자들은 언제 역사를 바로 세울 것인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음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망으로 우리의 주권은 광복되었는데도 역사는 아직도 일본이 우리민족의 얼과 전통을 말살하고,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조장하기위하여 조선총독부가 1922년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16년에 걸쳐서 만든 ‘조선사’ 35권의 왜곡 변조한 것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1945년 9월12일 총독부가 폐지되고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阿倍信行)가 떠나면서 남긴 연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베 노부유키(阿倍信行)는 아래와 같은 연설을 했다. “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놓았다.”
“결국 조선인(朝鮮人)은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朝鮮)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 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阿倍信行)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도 식민사관자들은 정신들을 못 차리고 역적과 노예 짓만 하고 있는가! 세계가 비웃고 있음을 온 국민들도 이제는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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