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東夷)의 영역에서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를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支那) 25사(史)’,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광개토태왕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이 있다. 이 기록을 보충할 유적에는 흑도(黑陶)와 빗살무늬토기(土器)가 동이사(東夷史)의 영역도 말해 줄 수 있다.
과학자는 태초에 지구는 하나의 땅이었는데 그것이 2억8000년 전 갈라졌다고 한다. 최태영 선생은 반도에는 4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우리 동이가 살던 땅에는 2만5500년 전의 빗살무늬토기와 1만8000년 전, 자(尺)가 나오는데 상고시대에 우리가 대륙에서 살아온 것을 말하고 있다.
발굴하는 곳에 따라서 연도는 일치하지 않으나 3만5000년 전 유물들이 나온 것을 보면, 문명이 우리 동이에서 시작하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무대가 상고시대도 고대도 대륙임을 말한다.
지금은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행정과 언어도 다르다. 그러나 고대 한자와 한글은 어법이 생각하는 순서에 의해서였는데 그것은 최초의 언어생활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14세기 이전에는 같은 언어생활을 했다. 따라서 우리 역사를 14세기 이후만을 가지고 서화에서 반도까지 분화시킬 수는 없다.
또한 고대의 동이와 중세의 동이가 다르다고 하고 있으나 배달국시대 지명 동평(東平)과 거야(鉅野) 주위에 사로신라(斯盧新羅)와 백제의 지명인 황산(黃山), 평원(平原), 대산(大山), 동명(東明), 박성(博城), 백마하(白馬河), 제성(諸城), 석문(石門), 석성(石城), 항성(項城)이 있으니 고대와 중세 동이는 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있었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는 동이사(東夷史)로 정립되어야만 진정한 민족사를 밝히는 표제가 될 수 있다. 즉, 국사(國史)가 아닌 동이사로 하고, 한민족(韓民族)이 아닌 동이민족(東夷民族)으로 해야 한다(以上은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122面~123面 참조, 인용하다).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는 동이민의 역사이고 우리는 인류문화 조상임과 동시에 의술, 과학, 천문, 철기, 옥(玉), 천제문화(天帝文化), 농경문화 등도 우리에게서 전해진 것을 말하려 한다.
지나(支那)는 우리 조상의 선진제도 익혀서 발전했다
우리는 10만년 전부터 농업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농경문화가 1만8000년 전 우리로부터 시작되었고, 세계 최초의 시원국(始原國)인 것을 유네스코도 이를 인정하고, 철학자 하이데커도 “문명 발상지가 한국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犬)를 사육한 것도 1만년 전부터 우리에게서 시작됐고, 개를 키우면서 신석기시대가 되었다. 인류역사가 99.9%가 구석기시대인데 우리는 구석기시대를 거치지 않고 1만8000년 전 신석기시대라는 것은 세계 석학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명문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 정치인, 종교인들과 지식인층도 우리 역사를 5000년이라 하며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우리의 역사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 가서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미 밝힌 대로 지나와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 나라들인데 이를 감추기 위해 우리 역사를 자기들 역사라 도둑질을 하는데 세계 학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상고시대 지나 땅은 없었다. 모두 우리의 영역이었다.
우리 민족이 대륙을 지배한 것은 문명이 앞선 것은 물론, 우리는 배달국시대부터 철기(鐵器)를 사용하였고 배달국(倍達國)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蚩尤天黃)은 한 번도 전쟁에서 패(敗)하지 않았던 것은 병법과 전략, 철기 사용에 있었다.
세계는 치우 천황을 “전쟁의 신”으로 추앙한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철을 사용하였으니 지나는 우리 민족의 적수가 될 수가 없었다. 치우천황은 헌원(軒轅)과 73회의 싸움에서도 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나는 서기전 500년경에 와서야 철 생산이 시작됐다. 우리는 석기시대에 돌과 철을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하고 지나(支那)에 궁시(弓矢)를 수출하여 무력(武力)이 강대한 조선이었고, 예맥조선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지나를 1000여년 동안 정벌 정복 지배했다.
지나에서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서기전 770년~서기전 403년)부터 철기 사용이 시작되는데 진(秦)의 한(韓), 위(魏), 연(燕), 제(齊), 초(楚), 조(趙)를 통합도 우리 민족의 도움이 컸다. 그것은 무기, 우수한 지휘관 획득에서 이뤄졌다. 그것은 기마민족의 우수한 검술(劍術), 궁술(弓術), 창술(槍術), 마술(馬術)을 시작으로 무도(武道), 의지, 책임감, 모든 것을 우리에게 배워서 성공했다.
김유신도 반도 아닌 강회신라(江淮新羅)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유신(金庾信)이 반도사람으로 알고들 있으나 이미 밝힌 대로 반도의 사람이 아니다. 김유신이 반도인(半島人)이 아님을 좀 더 이에 대한 역사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반도사관 탈피를 바라는 마음에 더 밝히게 된다.
사서(史書)에 기록된 김유신은 영락기(永樂紀; 205년~283년;595년~673년) 사이에 살았는데 근세에 와서는 사서(史書)에 의해서 김유신이 활동한 무대를 밝히지 않고 경주인(慶州人)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나(支那) 25사(史)동이(東夷)’는 그 어느 곳에도 김유신이 반도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서 그가 반도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들어본다.
1) 김유신 가계(家系,(族譜)의 체계상 반도인이 될 수 없다. 2) 김유신은 동이민족국가 체계상 반도인이 될 수 없다. 3) 김유신은 백제와의 전쟁터인 지명(地名)에 의해서 반도인이 될 수 없다. 4) 김유신은 동이민족의 문명사에 의해서도 그는 반도인이 될 수 없다.
김유신의 가계는 조작될 수도 있으며 무덤도 가묘(家廟)를 만들 수 있다. 지명(地名)도 조작 또는 이동시킬 수가 있으나 문명의 흐름 만큼은 시작과 이동경로가 뚜렷한 것이라서 조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서(史書)를 취사선택한다고 하면서 부정(否定)도 하고 왜곡하여 왔다. 사서로 보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지나(支那) 25사(史)동이(東夷)’ 기록에서 김유신에 대한 모든 것을 밝혀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魏書東夷)’ 기록을 필두로 ‘지나(支那) 25史)’를 인용하여 기록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나(支那)25사(史)동이(東夷)’기록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부정하면 ‘삼국유사(三國遺事)’도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잘못된 역사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지나와 일본이 왜곡한 역사만을 배우고 서책도 조작된 역사서만을 읽어서 대화를 해보면 참으로 한심함을 숨길 수가 없다. 1만년이 넘는 우리 역사를 5000년 역사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외국인들이 웃고 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먼저 나라를 세운 ‘시원국(始源國)’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국내에서는 인류문명의 시작과 인류문화역사의 조상이었다고 강조하며 우리가 지상의 시원국이므로 자부심을 가져야한다고 하는 박종원 원장 외에 겨우 몇몇 분만 있을 정도다. 우리들은 역사 무지의 부끄러움을 모르고들 있다.
거의 모두 서구 석학들이 우리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실정으로 이는 시원국의 자손으로 참으로 부끄럽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상고시대와 고대의 역사도 제대로 말하고 가르치는 분은 외국에 비하여 너무 적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삼국시대의 역사도 엉망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반도인이 아닌데도 반도에서 삼국을 통일한 것 같이 가르치는 선생과 현재 교재는 모두 허구로 잘못된 역사다.
김유신은 이미 밝힌 대로 대륙에서 낳고 대륙에서 자랐으며 대륙에서 삼국통일 한 것을 반도에서 통일한 것 같이 조작한 역사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김유신전(金庾信傳)에서 그의 부(父)는 서현(舒玄; 비(碑))에는 김도연(金道衍)이고, 조부는 무력(武力)이고, 증조부는 구해(仇亥)이며, 12대 조부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며 헌원의 후예이며 소호(少昊) 씨의 자손이다. 이들의 무덤 또한 숨기고 조작을 하나 그 무덤도 대륙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호(少昊)는 강수(江水;양자강)에 살았다. 김유신 조상은 양자강 유역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그의 조상 헌원의 출생지도 대륙 곡부수구(曲阜壽丘)이고, 김유신은 서화(西華)동쪽 강회(江淮)지역의 서신라 장군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워, 이 조작되고 왜곡시킨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바로잡아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와, 우리 정체성을 되찾아야 민족이 산다.
(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124面~127面 참조, 인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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