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곳곳의 한민족 흔적은 우연이 아니다

입력 2014-06-14 20: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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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한민족의 역사는 외적의 강압, 내부의 사대주의자들,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자들의 자기 비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책 등으로 역사가 뒤집혀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10여 년 간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두루 연구했다. 하지만 세계최초의 강대국이고 세계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민족임에도 허구의 중국역사에 우리 역사가 편입되고 간사한 일본의 역사왜곡에 동조하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목도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한심한 일이다. 이런 자들이 우리역사를 주도(主導)하고 있는 것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부식(金富軾)을 비롯해서 안정복(安鼎福), 박지원(朴趾源), 유인석(柳麟錫)같은 자가 먼저 중국을 내세우고 다음에 조국을 이야기했다. 중국을 상국(上國)으로 존중하고 우리나라를 존중하지 않은 자학적역사관(自虐的歷史觀)을 가진 자들이 이 나라의 역사를 그릇치고 말았다. 지금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필자는 인내에도 한계를 느끼고 전율을 느낀다. 사대사상에 물든 이들의 논리가 타당치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한민족에게 말을 할 수 없는 굴종의 치욕과 아픔을 준다. 우리 역사는 이들 학노(學奴)들에 의해 역사가 뒤엎어져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중원(中原)의 주인이고 천자국(天子國)이며 상국(上國)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수십만 권의 역사책을 불살라 없애버려 우리의 상·고대사연구에 어려움이 너무 크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료로도 우리가 중국의 중원(中原)에 먼저 선주(先住)했고 요하문명을 비롯해 세계 5대문명도 주도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지금도 자학적 역사관에 절여 있는 학노들에 의해 우리 역사는 망가 질대로 망가진 상태다. 학노들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도 연구도 하지 않은 채 중국과 일본이 심어준 논리에 안주하며 그들의 주구가 돼 있으니 너무 안타깝다. 이번 칼럼은 이들의 죄악이 얼마나 우리나라 역사와 민족사에 해독을 주고 있는지를 앞서 기술한 상고사의 글들을 통해 살펴본 뒤 고대사 원고를 이어가려고 한다.
 
환국(桓國),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은 실재했던 한민족의 나라
 
환국(桓國)과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은 한민족의 국가다.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찬란한 문명을 일으킨 우리 한민족의 선조가 세운 자랑스러운 국가다. 선조들은 환국시대부터 현 중국본토에 먼저 거주한 민족이며 선진문화민족으로서 대륙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민족특유의 문화를 갖고 중국과 일본의 문화전반 및 국가사회 육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면서 그 공헌도가 매우 컸다. 원돈중(元董仲)이 펴낸 삼성기(三聖記)에 의하면 상고시대 환국(桓國)이 서기전 7199년에 나라를 세웠고 12분국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9환족이 살았다. 당시 환국에는 백성이 많았으나 생활하는 데는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환국(桓國)은 5가지 교훈을 법령으로 지켰다. 그것은 ①성실하여 거짓이 없어야 할 것(誠信不僞) ②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을 것(敬勤不怠) ③효도하여 부모를 어기지 않을 것(孝順不違) ④깨끗하고 의로워 음란하지 않을 것(廉義不淫) ⑤겸손하고 온화하며 다투지 않을 것(謙和不鬪) 등이다. 환국은 이들 교훈으로 백성을 교화(敎化)해 평화롭고 부지런한 나라를 일구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이 없는 시대를 이끌어 갔다.
 
환국의 황제가 되시는 환인(桓因)은 소도(蘇塗)에서 제천행사(祭天行事)를 해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상을 교육하는 등 하늘의 이치대로 스스로 힘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덕치(德治)가 퍼져나가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모여들어 환국에는 12분국의 제후국이 있었다. 이들 나라는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句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또는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勾餘國) 또는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卑國) 또는 탁위국(啄韋國) 혹은 통고사국(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 등이다.
 
또한 환국(桓國=환하게 밝은 정치를 하는 나라)에는 구이(九夷)라는 한민족(韓民族)이 있었다. 그 명칭은 황이(黃夷), 적이(赤夷), 남藍夷), 양이(陽夷),우이(嵎夷), 방이(方夷), 견이[(畎夷=서이(徐夷), 회의(淮夷)], 현이(玄夷), 백이(白夷) 등이다. 이들을 구환족(九桓族), 구려족(九黎族), 구이족(九夷族) 등이라고 불렀다. 각각의 특징을 보면 황이(黃夷), 양이(陽夷), 우이(嵎夷), 방이(方夷), 견이[(畎夷)의 경우는 피부가 누른 편이고 머리는 검으며 코는 높지 않고 볼이 넓다. 또한 눈이 평평하며 눈동자가 검다. 적이(赤夷)는 피부가 붉은 구리 빛이며 황이(黃夷)와 비슷하고 코는 낮고 뽀죽하며 곱슬머리다. 남이(藍夷)는 피부는 짙은 갈색이며 모양은 황이(黃夷)와 비슷하다고 했다. 또한 현이(玄夷)는 피부는 검고 코는 낮고 짧으며 넓다고 했다. 그리고 이마는 뒤로 넘어지고 입술이 나왔으며 곱슬머리라고 했다. 백이(白夷)는 피부가 희며, 코는 높고 눈은 깊고 동자가 푸르며 머리카락은 잿빛이 많다고 했다.
 
이를 보면 우리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민족인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미까지 우리 민족의 말과 유산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활동영역은 동서양 오대주에 미친다. 세계가 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DNA의 검사로도 이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환국(桓國)은 53대 3301년 지속된 세계 최초·최대의 강대국임이 밝혀지고 있다. 역사서를 변조하고 역사를 날조하며 왜곡한다고 상고시대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의 역사가 없어지는가. 역사도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돌아오고 있다.
 
세계문명을 일으킨 배달국의 위대한 역사
 
환국(桓國)에 이어 배달국은 서기전 3898년 전에 세워졌다. 배달국은 18대 1565년간 찬란한 세계문명과 문화를 일으킨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환국 시대는 여러 부족이 한 종족으로 통일되기까지 오랜 기간 싸움이 지속됐다. 싸운 기간이 거의 2천년에 이른다. 특히 치우(蚩尤)와 헌원(軒轅)은 한민족이다. 이민족(異民族)의 우두머리가 된 헌원(軒轅)과 치우 간에 73회의 싸움이 치열하게 일어났지만 치우가 승리했다. 지금 이들 두 영웅은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중국이 자기들의 조상으로 만들어버 버렸다.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중국역사로 둔갑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모두 우리 한민족(韓民族)이다. 배달국을 세운 역사를 보면 환국(桓國)의 지위리(智爲利) 환인(桓因) 때에 후계자를 논할 당시 모든 신하들이 어질고 용맹하며 지혜로운 환웅(桓雄)을 천거했다. 일찍이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하는 홍익인간 세상을 만드는데 뜻을 두었기 때문에 삼위산(三危山·돈황)과 태백산(백두산) 사이의 땅을 다스리도록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신하들에게는 3천도단을 거느리고 가도록 했다. 또한 하늘의 가르침을 열어 이화세계(理化世界), 즉 합리적인 진리에 맞도록 세상백성들을 교화해 자손만대에 모범이 되는 훌륭한 법을 만들어 다스리도록 했다. 이에 환웅(桓雄)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입약(立約), 시정(施政), 행형(行刑)의 담당관리와 곡식, 생명, 질병, 형(넓은 의미의 법), 선악판단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을 관리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아래 송화강 유역에 도읍을 정하니 신시(神市)라 불렸다. 이것이 배달국 건국이다.
 
송화는 그 전에는 소밀(蘇密), 속말(速沫, 粟末), 소머리·(우수·牛首)라고 했는데, 이는 모두 소머리라는 뜻이다. 태백산 기슭에서 흰소(白牛)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데에서 비롯됐다. 소머리는 민족의 이동과 함께 강원도 춘천과 경주의 소시무리, 일본 각처에 있는 소머리대왕(牛頭大王)의 사당과 절(寺) 등으로 전래됐다. 정착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이 박달나무 아래서 제단을 만들고 환웅(桓雄)을 수장(首長)으로 세우니 보본(報本), 경천(敬天), 숭조(崇祖)하는 교(수두교, 蘇塗敎)를 펴고 법질서를 두루 보호하며 교화하면서 살았다. 이가 바로 신시의 환웅천황이다. 그들이 오랜 신시를 지내는 동안 그 지역의 원주민과 융화, 통혼, 혼합하기도 하고 무력으로 정복, 배제하기도 했다. 특히 곰을 상징으로(토템으로) 하는 종족과 융화해 통혼하고 범을 상징으로 하는 종족은 배제했다.
 
이들이 강하게 융성해 큰 세력을 이루는 동안 배달국은 역법(曆法)을 창제하고 공수(貢壽:供授) 혹은 두열(頭列)이라는 음악과 산목(算木)을 창제했다. 또 팔괘(八卦)와 환역(桓易)을 창제하고 동철(銅鐵) 생산으로 병기제작을 했다. 오행이치(五行理致)와 칠성역(七星歷)의 발명,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 간지(干支), 부도문(苻圖文), 한자의 창제 등도 주도해 오대문명을 이끌어 인류사회에 크게 공헌했다.
 
외래사상이 빚은 비극…가치관 망가져 정상 아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족은 그 생명력을 회복하는 의식 사상적 운동을 전개해야 재기·갱생(更生)한다. 주먹구구 식이거나 구호 등으로 부르짖는 자연발생적 운동으로는 새 역사를 창조치 못한다. 지금 한국의 서생과 지식인 중에는 퇴계사상, 실학사상, 외래사대사상에 구걸하다가 탈 이데올로기시대에 역주행 하는 인사들이 있다. 이들은 선진국이나 OECD 국가들이 버린 사회주의적 사상에 매여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우리사회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무지가 세상에 난무하고 있다. 원인은 독서를 하지 않은데 그 배경이 있다. OECD 국가 독서 평균이 연간 1000페이지인데 우리는 고작 8페이지를 읽고 세계를 논하고 있다. 일본은 3000페이지가 넘게 독서하는데 우리는 이처럼 작으니 시끄럽기만 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고유의 민족사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바로 찾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제자리를 못 찾은 채 해매고 있다. 가치관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우리의 정신상황이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조선조에 큰 영향을 끼친 유교의 사상과 무관치 않다. 유교는 대중화 한 이후 4백년을 넘지 못했고 불교는 상류계급에 보급된 것이 1000여 년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유불사상은 외래사상이고, 무저항사상이다. 외래사상으로서 민족의식을 북돋울 수 없다. 아울러 인류 역사상 가장 피해를 많이 준 사회주의 사상 속에서 우리나라의 재건은 더더욱 어렵다. 지금은 지식기반사회다. 지식이 불과 78일 만에 두 배가 된다는 세상에서 우리는 책과 담을 쌓고 있다. 유교라는 무저항사상으로 투쟁을 수행할 수 없다. 우리는 천민사상, 인간사상, 중물사상을 갖고 있다. 이 사상은 우리의 고유사상으로서 그 진가를 인류 역사 속에서 구현해 왔다.
 
우리가 세계로 뻗어가려면 우리민족의 사상이 바로 인식돼야 민족의식을 북돋울 수 있고 외래사상을 극복 할 수 있다. 강성했던 거란, 여진족, 몽골은 사상과 철학이 없어 짧은 기간 융성하다가 몰락했다.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사상과 철학이라는 것이다. 철학사상은 그 민족의 생명력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인류사상 가장 격렬한 민족투쟁의 역사였다. 우리는 정신사상으로서 민족투쟁을 수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신상황은 말이 아니다. 위계질서(位階秩序)며 연대의식(連帶意識)이나 공동체 의식(共同體意識)을 찾아 볼 수 없다.
 
국가나 민족보다 자신과 자기집단만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자화상은 비참하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세월호 사태는 이를 말해 준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중국은 천자의 문물제도며 군사학, 주역철학, 철활자, 고시 석촉 등을 한국에서 수입했다. 또한 불교사상과 선교도 한국사상을 수입하고 계승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직시하고 이제 우리는 다시 거듭나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정기를 바로 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상고사’, 최인 ‘한국학강의’,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조선민족사’,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梶村秀樹 渡部學 編者 ‘日本に訴える シリ-ズ’ ‘日本と朝鮮. 貝塚茂樹‘中國の歷史’,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西嶋定生·護雅夫·木村尙三郞·猿谷要 ‘世界歷史の基礎知識1·2’,.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외 다수서책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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