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독일 뮌헨대학 울리히 베크(Ulrich Beck.70) 교수는 지난 5월의 세월호 참사가 ‘특별히 위험한 사회’인 한국사회의 단면(斷面)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의 상황을 보고 “인류학적 쇼킹(shocking)한 사건”이라며 “한국사회가 위험사회를 넘어 ‘재앙사회(catastrophic society)’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 국가적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가 총체적 변화를 도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 지금 한국사회는 역사의식도 공동체의식도 연대의식도 찾아 볼 수없는 일제가 심어놓은 가치관의 변질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 개인주의,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한탕주의가 만연된 사회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초등교육부터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나 시민생활의 교육훈련이 없는 ‘돈만 벌면 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만하면 된다’는 위험사회를 넘어 ‘재앙사회’로 가고 있음을 본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도 없이 위험사회 그 자체가 돼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
먼저 ‘역사를 잃으면 다 잃는다’는 교훈을 바로 인식하고 가야 할 때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은 나라는 비전이 없고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다. 칸트(Kant)는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잃어버린 역사를 바로 찾고 올바른 가치관을 찾는데 교육을 통해 공유해야 다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교육이 말이 아니다. 김성식(金成植) 선생은 “자존심은 인격의 핵이다”고 했다. 우리 국민은 한민족이라는 자존심을 갖기를 기대할 뿐이다.
우리가 알듯이 로마제국의 위대함은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하고 이를 지킨 데서 1500년간의 역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우리가 일본에 지배당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의 문인, 사가(史家)들이 조작해 ‘선(先) 중국, 후(後) 조선’의 자학적 역사(自虐的歷史)를 조작해 국민을 가르친데 그 이유가 있다. 이 결과 조선조가 ‘이민족(異民族)의 국가인 중국을 존중하고 다음으로 조선을 위해야 한다’고 해 조선시대의 명현(名賢)은 다 중국을 천(天)으로 받들었다. 청구비사(靑邱秘史, 一卷一 面)에 보면 ‘중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군주는 중국을 등지지 아니했다’ 하고, ‘중국을 등지는 것은 배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까닭에 한말(韓末)의 대학자요 의병의 장이라 하는 유인석(柳麟錫)은 “중국은 세계의 대종(大宗)이요 천지의 중심이다. 조선은 중국을 천(天)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의암집(毅菴集, 二十六 宇宙問答)에서 말하고 있다. 이런 자주성이이 없고 비굴하며 자비적(自卑的)이고 자학적(自虐的)인 역사를 조작한 문인선비(文人鮮卑)와 사가(史家)들에 의해 조선조는 일제에 의해 결국 망국의 길을 걸었다. 지금도 이런 부류의 역사를 안다는 자가 부지기수로 우리나라에는 많고 요소요소에 중책을 맡아 우리 역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그러나 내외문헌을 다시 고증해보면 H, G 웰즈가 <역사학 개론>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사상의 역사이다”라는 점을 주시해 봐야 한다. 우리 한민족은 한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있고,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사상(人間思想)이 있으며, 물질을 존중하는 중물사상(重物思想)이 있었다. 이 같은 삼대사상(三大思想)을 가진 우리 민족은 문화로서 그리고 무력으로 중국과 기타 민족을 지도·지배했다. 이번 칼럼은 조선을 건국한 제1세 단군의 치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조선을 개국한 제1세 단군의 치적
1. 황태자 책봉과 조서의 선포
구환(九桓)의 백성들 추대를 받아 천제자(天帝子), 곧 천자(天子)인 단군은 제(帝)의 아들 부루(扶婁)를 황태자로 세웠다. 그리고 단군은 신시배달국의 옛 규범을 중흥하였고 다음과 같은 긴 조서(詔書)를 선포했다.
“하늘의 뜻은 하나의 진리로 유정유일(唯精唯一)함으로 자아반성, 전 인류평화, 부모공경, 조상숭배, 충효하고, 부부상경(夫婦相敬), 만민평등, 박애사상과 화합협동, 순천애인(順天愛人),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직성실 등 하늘의 법칙은 오직 하나일 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님으로 너희들은 오로지 순수하게 참마음을 다해 마음을 통일하면 하늘의 이치를 알 수 있고, 하늘의 뜻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이고 사람의 마음도 이같이 한 가지다. 이런 까닭에 스스로 살펴보아 자기마음을 알면 이로서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다. 이리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교화하여 하늘의 뜻에 잘 맞출 수 있다면 이로서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잘 쓰일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 세계만방을 거느릴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태어남은 오로지 부모로부터 연유하였고,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 되어 나라에 까지도 그 정성이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충성되고 효도함이다. 너희가 이 도리를 잘 지키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화를 벗어 날 수 있으리라. 새나 짐승도 쌍이 있고 다 헤진 신발도 짝이 있는 법이니 너희 남녀는 서로 화합하여 원망하지 말며 질투하지 말고 음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열손가락을 깨물어 보면 크건 작건 가림 없이 모두 아프지 않더냐! 이와 같이 그 차이는 없는 것이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고 헐뜯지 말며 서로 도와 싸우지 말아야 가정과 나라가 흥할 것이다. 너희는 소와 말을 보아라. 그들이 먹이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양보하여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 없어야 하고, 함께 일하며 서로 도둑질하는 일이 없어야 나라와 가정이 번영할 것이다. 너희는 호랑이 무리를 보아라. 힘만 세고 난폭하여 신령스럽지 못함으로 비천하게 되었다. 너희가 사람다운 성품을 잃지 않고 난폭하지 않는다면 남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항상 하늘의 뜻을 받들어 모든 것들을 사랑할 지니라. 그리고 너희는 위태로운 것을 보면 도울지언정 모욕을 주지 말지니라. 너희가 만일 이런 뜻을 어긴다면 영원히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어 한 몸은 물론 네 가정까지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너희가 만일 논과 밭에 불을 질러 곡식이 타버리면, 신과 사람이 노여워 할 것이니라. 너희가 아무리 두껍게 싸서 감춘다 해도 그 냄새는 반드시 새어나오게 마련이다. 때문에 너희는 항상 바른 성품을 경건히 갖고 사악한 마음을 품지 말 것이며, 화되는 마음을 쌓아두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하늘을 정성들여 공경하고 백성과 친하면 너희는 이로써 끝없는 행복을 누릴 것이니, 너희 오가(五加)의 무리들이여 이 뜻을 잘 따를 지어다”
2. 각종의 직제와 도읍의 천도, 12성 축성 및 산업장려
다음으로 나라의 직제 등 국가 기반을 든든히 했다. 건국 시 오가(五加) 즉, 호가(虎加), 마가(馬加), 우가(牛加), 웅가(雄加)의 직제를 국토가 넓어지고 백성이 많아짐에 따라 팔가(八加)의 직제를 두어 다스리도록 했다. 단군의 팔가제도(八加制度)는 (1)호가:(虎加):용가(龍加)....총리(오늘의 총리에 해당)에 부루(扶婁) (2)마가(馬加)....주명관(主命官)에 신지(臣智). (3)우가(牛加)....주곡관(主穀官) (4)웅가(雄加)....주병관(主兵官)치우(蚩尤) (5)응가(鷹加)....주형관(主刑官) (6)노가(鷺加)....주병관(主病官)....부우(扶虞) (7)학가(鶴加)....주선악관(主善惡官)....주인(朱因) (8)구가(狗加)....주홀관(主忽官)....여수기(餘守己) 등으로 나눠 담당케 했다.
이 외에도 팽우(彭虞)에게는 땅을 개척하도록 했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宮室)을 짓게 했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겼다. 또 신지(臣智)에게는 글자를 만들게 했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醫藥)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하도록 했다.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했다. 비서갑(斐西岬) 황후(皇后)는 누에치고 배짜는 일을 했고, 황태자 부루(扶婁)는 질그릇을 구워 기구를 만들게 했다. 또한 둘째 아들 부소(扶蘇)는 약(藥)과 병(病)을 다스리게 하고, 셋째 아들 부우(扶虞)는 사냥을 맡아 짐승의 해를 막는 일을 하게 했다. 넷째 아들 부여(扶餘)는 예(禮)를 맡아 좋은 풍속을 선양(宣揚)하는 일을 하도록 했다. 이 같은 제도로 선정(善政)의 다스림이 온천하에 두루 미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즉위 23년이 되는 경인23년(서기전2311)에 아사달의 도읍지를 송화강가로 옮기고 평양(平壤)이라고 했다. 또한 즉위33년, 경인23년(서기전2311)에 요중(遼中)에 12성을 쌓는다. 즉,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통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齡), 갈산(碣山), 여성(黎城)이다. 즉위50년이 되는 정사년(서기전2301)에 대홍수가 있어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었다. 황제는 풍백(風伯)인 팽우(彭虞)에게 치산치수 할 것을 명해 물을 다스리게 하고 높은 산과 큰 강을 잘 평정해 백성들을 평안하게 했기에 우수주(牛首州)에는 그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즉위51년이 되는 무오51년(서기전 2283)에는 운사(雲師)인 배달신(培達臣)에게 명령해 혈구(穴口), 즉 강화도 정족산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마리산(摩利山)에는 하늘에 제사 드리는 제단을 쌓았다. 이것이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다. 이 때 강남의 장정 8000명을 동원해 이 일을 3년 만에 마쳤다. 단군황제는 재위54년(서기전2280) 3월에 친히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하늘에 제사 드리며 온 백성들이 자손만대의 번영과 안녕을 빌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하느님께 경배하며 제사 드리는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다. 백성들은 황제를 따라 집집마다 천단(天壇)을 만들고 새벽마다 경배했다. 이렇게 나라가 안정되니 질병이 적어지고 장수했으며 도적이 없어 문을 닫지 않았다고 했다.
3, 천하구역(九域) 삼한 나누고, 오행치수법과 양잠 등 장려
재위67년째 갑술년(서기전2267)에는 태자 부루(扶婁)를 도산(塗山)에서 순(舜)이 보낸 우사공(虞司空)과 만나게 했다. 태자가 이 명을 받들어 도산으로 가던 도중 낭야성(琅耶城)에 반달동안 머물면서 백성들의 형편을 묻고, 민정을 살피게 했다. 도산에 도착해서는 물을 다스리는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해 주었으며 국경도 다시 정했다. 당시 같은 한민족인 순(舜)이 조선의 서쪽 땅에 유주(幽州), 영주(營州), 병주(倂州)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이를 안 된다고 하자, 이 회담에서 유주와 영주가 고조선에 속하게 됐다. 또 회대(淮岱)에 제후(諸侯)를 두고 순(舜)에게 그 곳을 감독하게 했다. 이것이 도산회의(塗山會議)이다.
즉위 93년 째 되던 해 경자93년(서기전 2241)에는 누에치기를 권하며 수해(水害)가 많은 때라 도랑과 물골을 깊이 파며 밭을 일구었고, 고기를 잡고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고 정사를 잘했다. 이렇게 되니 백성들의 물자가 풍족해 나라살림에도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매년 상달(十月)에 백성들이 크게 모여 제천의식(祭天儀式)을 거행했는데 백성들이 모두 기쁨에 넘쳐서 환호하며 태평성가를 부르고 스스로 즐겼다. 이로부터 단군의 교화(敎化)는 온 누리를 가득 덮어서 온 구역(九域)과 멀리 탐랑(耽浪)에 까지 미쳤으며 가르침은 점차 만방에 널리 퍼져갔다. 이에 단군은 천하의 구역(九域)땅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삼한(三韓)은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으로 모두 오가(五加) 65족속(族屬)이다. 즉 일조(一朝), 삼한(三韓), 오가(五加), 65부족이 구환(九桓)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하며 말하고 있는데도 연구는 하지 않고 아직도 치욕적 역사를 그대로 중국과 일본의 조작한 역사만을 제역사로 보는 사대주의자가 많으니 한심한 일이다. 조선왕조실록(太宗十四年 五月條)을 보면 조선왕은 천제(天祭)를 거행치 못했다 한다. 천제는 중국의 천자가 천제를 거행하는 것이고 조선은 중국을 섬기는 나라임으로 감히 천제를 거행 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조선조의 군주는 소위 황단(皇壇)을 설치하고 시시(時時)로 북으로 중국을 향하여 절을 했다고 했다. 그뿐인가. 단군대(檀君臺), 사선정(四仙亭)을 철거하고 마을마다에 공자묘(孔子廟), 관우묘(關羽廟)를 세웠다. 그리고 실학파(實學派)의 요인(要人)이라는 박지원(朴趾源)이나 조선조의 사가(史家)라 칭하는 안정복(安鼎福)같은 자들이 다 같이 중국을 천(天)으로 받드는 사대사상은 지금도 강단파에 의해 자학적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단군조선은 자타가 모두 탄복하는 위대한 고대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제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환국과 신시배달국에 이어 강대한 국가를 건국한 단군1세 홍성제(弘聖帝)는 선정을 베풀고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한 후 서기전 2241년 3월15일 봉정(蓬亭)에서 붕어(崩御)하시니 교외(郊外)밖 10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는데, 모든 백성들은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단군의 기를 세우고 아침저녁 함께 앉아 경배하고 사모하여 마음속에서 잊지 못했다고 했다. 이 때 단군홍성제(檀君弘聖帝)의 수(壽)는 130세였다. 이에 태자 부루(扶婁)가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2세 단군부루(檀君扶婁)이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는 게으른 자를 위해 기다리는 법이 없다”고 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제3대 대통령이었던 T. 제퍼슨은 “역사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알려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려 줘야 한다. 단군에 대한 기록들은 일제가 다 분서(焚書)했으나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 단기고사(檀奇古史),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記), 규원사화(揆園史話), 태백일사(太白逸史), 부도지(符都誌), 제왕운기(帝王韻紀), 삼성비밀기(三聖秘密記), 조대기(朝代記), 고조선비사(古朝鮮秘史), 북애거사(北崖居士) 범장(范樟)이 편찬한 신단실기(神檀實記), 동사연표(東史年表), 조선사략(朝鮮史略), 대동사강(大東史綱), 조선역사(李昌煥著), 조선세가보(朝鮮世家譜), 해동춘추(海東春秋), 민족정사(民族正史), 신황기(神皇紀) 상기(上記) 등에서 그 기록을 볼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한국상고사’, 최인 ‘한국학강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조선민족사’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三省堂 編修所編, 各國別:世界史の整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西嶋定生·護雅夫·木村尙三郞·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외 다수서책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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