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 삼한(三韓)이 한반도 역사로 왜곡·변질

입력 2014-07-19 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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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삼한, 삼조선은 대륙과 한반도 어디에 있었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족은 그 생명력을 회복하는 사상적 운동을 전개해야 재기재생 할 수 있고 그 올바른 길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있다. 역사의식과 민족의 정체성을 모르고서는 우리의 생명력은 회복되지 못한다. 우리는 퇴계사상과 실학사상, 외계사상에 구걸하며 우리의 정신세계를 고갈시켰는데, 이에 더해 일제가 반도사관 역사왜곡에 의한 민족말살정책으로 민족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은 물론 자주자존의 민족의식과 우리의 자랑스러운 옛 모습은 간데 온데가 없어져 찾아보기가 힘들게 됐다. 2500년 전에 저술한 논어와 이보다 2~3백년 후에 저술된 ‘이아(爾雅)’와 ‘회남자(淮南子)’에 “한국은 인간을 사랑하는 군자국”이라고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인류사상 가장 격렬한 민족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많은 외침을 받은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어디 있었는가. 이러한 침략을 받고도 우리가 건재함은 우리에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많은 민족들이 중원을 정복했었으나 타민족의 사상을 신앙하다가 그 민족에 동화돼 소멸했다. 우리에게는 만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 사상이 있었기에 건재한 것이다. 이는 한민족이 최초에 인간을 사랑하는 고유한 철학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는 세계의 학자들이 연구해서 모두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고대 단군조선은 진한(辰韓), 번한(番韓), 마한(馬韓)의 분국을 두어 다스렸고 제후국을 두어 조공을 받았다. 단군은 여러 분국 분봉왕(分封王) 수십명을 모아 회의를 열었고 속현(屬縣) 여러 군데를 순회 방문하는 등 강력한 통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조선은 이처럼 강력한 세력을 가진 한민족(韓民族)의 자랑스러운 대국이었음은 외국 학자들에 의해서도 증거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타민족을 경탄케 할 역사를 창조한 민족이다. 이번 칼럼은 고조선시대의 삼한역사 등을 더 살펴보고자 한다.
 
단군시대 삼한을 삼조선(三朝鮮)이라 불렀다
 
고조선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존재하고 그 위상이 천하를 호령했던 사실에 대해 기록한 역사가 있음에도 고조선의 삼한을 부정하는 친일 어용반도사관의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이는 한국의 역사발전에 암적 존재로서 작용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의 교활하고 교묘한 식민사관의 수법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 반도사관이다. 고조선의 영토가 한반도 내에만 존재했다고 축소시켜 놓은 이들이 우리 역사교육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실로 큰 문제다. 우리역사의 무대는 대륙이다. 그런데 몇 십 년 전까지도 고조선의 영토가 중원 깊숙이 뻗쳐 있었다는 주장은 허황된 망발이라고 비난당했다. 참으로 기가차고 한심한 일이다. 신채호 선생은 만주의 진한을 신조선이라 했고 마한을 말조선, 번한을 불조선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역사학자 한백겸은 우리나라의 북쪽은 원래 삼조선 땅으로 고구려가 됐고 남쪽은 삼한이 됐다고 했는데, 조선시대에도 삼한 삼조선의 인식이 존재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고대사를 연구하지 않고 중국의 조작된 기록만을 참고한데서 비롯됐다. 고조선은 이미 언급한바와 같이 단군왕검 때부터 삼한으로 나뉘어 연방정치를 했다. ‘태백일사’에는 서기전 1285년경 22세 단군 색불루 때 삼한을 바꿔 삼조선(삼조선)으로 불렀고, 단국세기에는 서기전 425년 44세 단군 구물(丘勿-규원사화에는 구홀(丘忽로 나와 있다)때 삼한(三韓)을 바꿔 삼조선(三朝鮮)으로 했다고 기록돼 있다. 단군조선시대에 삼한(三韓)의 명칭이 삼조선(三朝鮮)으로 불리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삼한(三韓)의 명칭에 대해서도 진한(辰韓)은 대부분의 사서에 진한(辰韓)으로 쓰여 져 있으나 그 외에도 진한(眞韓), 진한(秦韓), 진조선(眞朝鮮=진한, 진조선), 신조선, 진국(辰國) 등으로도 기록돼 있다. 번한(番韓)은 변한(弁韓), 번조선(番朝鮮), 불조선이라고도 불렀다. 마한은 후대에 가서 말조선 막조선(莫朝鮮)으로도 불렀다. 그러나 행정명칭은 진한, 번한, 마한에서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바뀌었으나 삼조선이 와해된 후도 이 명칭은 오랫동안 옛날의 그대로 명칭으로 불러지고 있었음이 확실시 된다.
 
원래 삼한(三韓)은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에 삼한(三韓)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은 조선시대 학자들이 중국기록을 인용하면서 위치나 영역 등을 자세히 분석·고찰하지 않고 중국기록을 무조건 맹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 사가들은 고조선의 영역이 대륙이 아닌 한반도 지역이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중국 삼한의 기록을 마치 한반도내에 있었던 것처럼 기술했다. 여기에 일제가 고조선 영역과 연대를 축소시키고 자신들의 삼한지배 설을 타당성 있게 전개하기 위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았던 단편적인 국내의 삼한 관련 기록들을 분석·검토해 아예 삼한이 한반도에만 실재했던 것처럼 조선사에 편집했다. 다만 한반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대륙에서 삼한이 와해된 후 그 유민들이 한반도로 이동해 과거의 국명을 다시 부활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삼한은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에 언제 삼한이 정착한 것인지는 사료가 빈약하기에 정확한 기록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중국사서와 국내사서에는 고조선의 유민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진조선(眞)朝鮮)과 번조선(番朝鮮)의 유민을 가리키는 것이다. 진조선(眞朝鮮)은 부여가 됐고 한반도 지역의 막조선(莫朝鮮)은 오랜 세월 동안 외적의 침략을 거의 받지 않아 태평성대를 구가 했다. 대륙에는 많은 부족국가가 있어서 전쟁이 끝일 날이 없었다. 연나라, 한나라 등의 침략에 이들과 맞서 선봉장 역할을 해 온 번조선(番朝鮮)의 유민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번조선(番朝鮮)의 유민들은 동으로 육로 또는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부는 부여 및 동쪽의 동이계 소국에 합류되었고 일부는 한반도의 마한(막조선, 말조선)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들은 이주해 온 뒤에도 말조선 지역에서 마한(馬韓) 또는 종주국이었던 진한(辰韓)이라는 국호를 내세웠고 또 일부의 무리는 변한(弁韓)이라는 옛 국호로도 부흥을 꾀했을 것이다.
 
삼한은 이처럼 다시 한반도에서 나타난 기록이 있다. 즉, ‘신단민사’에는 다음과 같이 한반도의 삼한 건립을 기술했다. ‘번조선의 마지 막 왕인 기준(基準)이 위만과 싸우다 바다를 거쳐 남으로 한(韓=마한 막조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됨)의 땅에 이르렀다. 한(韓)의 54개 군국(郡國)을 가지고 금바저(金馬渚-지금의 익산(益山)에 도읍을 정하고 성곽을 쌓고 국호를 마한이라 했다. 마한에 속하지 않은 한(韓)의 땅은 진한과 번한으로 불러, 서와 남으로 분할됐는데 서쪽 땅은 마한이 차지하였고 남쪽은 진한과 번한이 차지했다.
 
이들이 서기전 194년경 한반도 이주할 때 분명히 이 지역은 마한 또는 막조선이었다. 그러나 막조선은 이미 와해돼 있었고 수십 개의 부족이 할거했다. 통일국가는 없음에서 기준(基準)이 옛 마한(막조선)을 부활시키려는 의도에서 마한이라 했음이 확실하다고 한정호 선생은 저서 ‘대조선 민족사’에서 언급하고 있다.
 
중국의 ‘후한서’에는 ‘변한은 남에 있고 마한은 서에 있으며 진한은 동에 있다고 했다. 이는 삼한이 대륙에서 와해된 후 한반도 지역 내의 삼한을 묘사한 것으로 본다. 또 진서(晉書)에 ‘한(韓)은 조선이다. 동남바다 쪽에 있는데 그 종족이 삼종 족인 마한, 진한, 변한이다’라고 적어 놓았다. 김교헌 선생의 ‘신단실기’에는 삼한 땅은 조선 남쪽에 있어서 제(齊)나라 노(魯)나라와 함께 바다를 격해서 서로 바라보고, 북쪽은 대수(帶水)를 지나고 동쪽은 예맥과 접했으며 서쪽과 남쪽은 바다에 닿았으니 지방 천리이다. 크고 작은 나라 78개가 있어 단군, 기자를 지나 여러 천년이 되도록 끊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고조선 유민이다. 후한서에 ‘변한과 진한이 더불어 합해 섞여 산다’고 했다. 동족이니 섞여 사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기록은 전부 이런 식이다. 정확한 시대를 알 수 없다. 최동 박사는 단군조선 내 부왕의 나라가 변한(卞韓)이었는데 변한은 후에 번조선(番朝鮮)으로 불렀다. 번조선은 요동반도 서쪽에 위치하고 요동반도의 후방이었기에 막조선(莫朝鮮)이라 불렀다고 했다.
 
조선은 아시아의 종주국, 삼한은 대륙에 있었다
 
‘대청일통지’, ‘만주원류고’, ‘한서’, ‘지리지’ 등의 기록에 요동과 남만주 광령지방이 진한, 진조선(眞朝鮮)이라고 돼 있다. 이것이 옳은 기록이다. ‘한국고대사’의 저자 문정창 선생도 서기전 280년까지 산해관(山海關) 서쪽부터 국경지방인 상곡 등 화북지방이 번조선의 영토라고 했다. 이곳은 조선족의 중심활동무대였다. 러시아의 학자 유 엠 부틴은 서기전 3세기 이전 까지 고조선의 서쪽 국경이 하북성 동쪽에 자라잡고 있었다고 그의 저서 ‘고조선’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압록강이 고조선의 남쪽 경계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일부 사대학자인 이병도, 리지린(북한학자) 등이 진한이 원래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중국의 사가들에게도 전염되어 진한 등 삼한이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기술하게 됐다고 주장하며 친일 어용학자들의 식민사관을 예리하게 비판·지적했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조작하는데 어찌해서 한국의 학자들은 엄연히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한다”고 개탄하기까지 했다. 또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은 요동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고대 중국의 믿을 수 있는 지리지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은 요양의 동쪽에 있으며 바다(발해)의 북쪽의 산의 남쪽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만주의 진한을 가리키는 것 같다. 유 엠 푸틴은 동이는 서기전 5세기 후 난하 동쪽의 민족을 의미한다고 했다. 조선시대에 펴낸 사서들에는 누구도 삼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 사서는 없다. 조선사학자들은 지금의 반도사관의 사람과 같이 중국이 조작한 위서(僞書)의 기록을 그대로 믿고 인용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제대로 연구한 학자라면 고조선, 삼한, 삼조선이 한반도 지역의 마한(=막조선)만 제외하고 삼한이 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삼한은 분명히 대륙에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이에 대한 사료를 모두 없앴으나 지금 남아있는 ‘규원사화’ ‘단기고사’ ‘환단고기’ 내의 ‘단군세기’ ‘태백일사’ 등을 비롯해 일본이 펴낸 ‘신황기(神皇紀)’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고조선의 영역과 함께 삼한 삼조선의 위치를 명시할 수 있기에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중국 기록들은 의도적으로 추정만 할 뿐 국내사서처럼 정확한 영역을 표시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이 없다. 중국 사가들은 고조선 시대 수십 개 제후국(부족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중국을 내세우려고 하는 휘치필법(諱恥筆法)이라 우리영역의 기술을 기피해 왔다.
 
고조선의 영역은 대륙이며 그 중심부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발해만의 북쪽 요동에 있었다. 고조선의 조선족들은 북경근처의 난하로 부터 흑룡강, 한반도 대부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여러 국가를 세우고 존속했다. 이러한 사실의 기록들은 고구려 발해계통의 옛 기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제왕운기’에 “요동에 별천지가 있으니 중국의 여러 왕조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며, 반도가 북의 대륙과 연해있는 중방천리 땅이 조선이다. 시라, 고례, 예와 맥은 모두 단군국민의 자손이다. 열국이 모이고 헤어지며 강성하고 쇠퇴하여 삼한이 이루어졌다. 주와 현이 산곡 간에 흩어져 각각 나라라 일컬었으며 그 중의 대국은 부여와 비루국이었고 그 다음은 삼국과 남북옥저와 예맥이었다”라고 했다. 고조선은 일본이나 종래의 일부 역사학계가 인식했던 것처럼 북한의 평양 대동강 유역에 위치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은 역사를 뒤엎어놓는 무뢰한과 진배없다. 그 한 예를 다시 언급한다면 고구려5대 모본대왕시대(慕本大王時代)에 고구려 군이 한나라 요지 태원(太原)을 점령하니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항복하고 배상금을 바쳤다고 기록돼 있다.(前漢書七十八 蕭望傳 第四十八) 그런데 후한서(後漢書)에는 채동(蔡彤)이 은신(恩信)으로 불러 항복받았다고 거꾸로 기록했다. 완전히 180도 다르게 역사를 뒤바뀌어 놓았다. 그리고 배상금을 은신(恩信)으로 썼다. 이것이 중국의 역사조작 수법이다. 중국고대사는 95%가 위조된 역사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조선민족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한창건 ‘환국, 배달, 조선사신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三省堂 編修所編 ‘各國別:世界史の整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西嶋定生·護雅夫·木村尙三郞·酒井忠夫·高橋幸八郞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외 다수 서책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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