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우리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상고, 고대시대의 역사, 북방민족의 역사, 중국과 일본민족의 이동의 역사와 국가 형성과정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 체계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와 고대 원시민족 및 현대 자연민족에 있어서 그 문화, 즉 조선승배(祖先崇拜) 등의 당시 현상을 제대로 서술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요구되고 있다. 지금 중국과 일본의 역사는 잘못 서술되어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철저히 밝히는 것이 한국 역사학계가 해야 할 사명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있지도 않은 역사가 지금도 거침없이 서술되고 있다. 이는 역사찬탈이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선조와 후손들에 머리를 들 수 없는 죄인이 되는 일이다. 우리는 좀 더 전향적으로 우리 역사를 세계사와 동양사 및 문화사 전반에서 위상을 되찾아 높여 나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세계문명을 주도하고 세계 최초의 강대국으로 문자의 발명과 역법창제(曆法創製) 등을 우리 선조들이 해냈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빛나는 역사를 갖고 있기에 어느 것 하나 세계열강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독약을 먹였다. 그들은 “일본이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기에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할 것이다. 조선인은 위대했고 찬란했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결국 일본의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 할 것이다”고 했었다. 그것이 지금 적중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상은 그 예견한대로 혼란 그 자체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 한 운수회사의 사건을 갖고 ‘특별법 제정’ 운운 등 무지한 정치권이나 언론 모두 제멋대로다. 국민을 선도하기는커녕 앞뒤를 못 가리는 이들의 선동과 선동을 받는 일부 우리 국민의 수준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역사의 연구에 있어서도 외국의 역사, 신화, 종교, 풍습, 예술, 정치사회제도, 문화, 사상, 법제, 군사, 무기, 민족의 언어, 습성, 전통 등 우리가 세계를 선도한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가르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세계사적 고찰을 통해 광범위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지금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변조로 동양사 등에 형성되고 있는 허구의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사학자들은 중국의 위서(僞書)만을 맹신해 사료분석 등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이 마치 한반도 내에 있었던 것처럼 기술되고 말았다. 이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 일제 조선사편수회가 펴낸 35권의 내용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국사교재나 사극들도 오류투성이다. 단군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나 가야의 김수로 왕도 신화로 하는 등 우리의 상고사, 고대사들이 사실상 고사(枯死) 상태다. 이번 칼럼은 우리의 상고, 고대역사의 활동무대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이었음을 좀 더 살펴보고 가고자 한다.
고조선의 활동중심무대는 대륙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계가 고대사 연구에 가장 많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명의 혼동에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선조들의 활동영역을 정확히 가려내지 못한데 따른 역사적 오류가 심각하다. 예컨대 태백산, 백두산, 평양 등은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곳에 있음을 이미 언급했다. 평양은 서울을 뜻하는 말로 그 지명은 여러 곳에 있었다. 지명은 민족을 따라 중원으로부터 요동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이동 한 것이 역사를 더듬어 보면 알 수 있다. 고조선의 활약한 중심은 요동이었다. 중국 사기의 ‘조선열전’과 전한서(前漢書). 지리지,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조선열전’에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치기위해 육해군을 보냈는데 육군은 요동으로 가서 치고, 해군은 제(齊)를 출발해 발해를 항해한 뒤 위만조선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로써 원래 고조선의 속령인 위만조선의 영토가 된 요동이 발해의 북쪽임을 알 수 있다. 제(齊)는 지금의 산동(山東)이고 그 때 발해는 지금의 발해와 같다. 당시 요동은 한반도가 아니고 발해 북쪽에 위치했으며 고조선도 발해 북쪽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한이 위만조선을 치러 온 전한서(前漢書)의 고조선기록을 그대로 인용했다. 사기(史記)의 ‘조선열전’의 내용과 일치되는 것이다. 또한 이암(李嵒)의 단군세기에 “단국태자 부루(扶婁)를 도산(塗山)에서 중국 하우(夏虞=우임금)와 만나 양국의 국경을 획정하는데 유주와 영주 및 청주를 조선에 속하게 했다”고 했다. 그 곳은 지금 중국의 하북성 일부와 산동성, 요령성, 길림성 및 그 동쪽이다.
또한 이맥(李陌)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는 “단군임금 32년(서기전 2301)에 험독(險瀆), 개평(蓋平), 갈산(碣山) 등 요중(遼中)의 12성을 쌓았다”는 기사가 있다. 북애(北崖)도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요심(遼瀋)과 유연(幽燕)의 땅은 신시시대부터 이미 우리 한족(韓族)이 농목(農牧)하던 땅이었다고 하며, 우리 민족이 고대에 활약한 지역은 요동을 중심으로 압록강이북의 대륙이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조선의 옛 요동을 포함한 넓은 영토를 차지한 선진우수민족국가였다고 여러 곳에 거듭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존화양이(尊華攘夷)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워 위한중국 휘치필법(爲漢中國 諱恥筆法)의 중국사를 쓰면서도 고조선의 위대했음을 숨기지 못했다.
삼국지, 위서, 진서, 송서, 남제서, 양서, 주서, 수서, 남사, 북사, 구당서, 당서, 통전, 및 통감, 기타 중국의 여러 사료전, 고구려전, 백제전, 신라전, 한전, 동이전, 이역전, 변방 지리지 음악지, 예악지 등에도 고조선, 한민족의 선진성과 국력이 강대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 강성한시절의 강역을 알게 하는 기록이 허다하다.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이를 긍정하고 있다. 1976년 문정창(文定昌)선생은 백당사학논총2호에서, 대만대학의 서량지(徐亮之)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惠祥)교수는 중국민족사 상권 ‘중국민족분류’에서 각각 고조선의 활동지역이 한반도, 요동반도, 강소, 안휘, 하북, 발해만 연안, 호북 동쪽까지 미쳤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강량부(姜亮夫)는 ‘하은민족고(夏殷民族考)’를 인용해 은(殷) 및 주(周)시대에 조선족이 활약한 지역이 현 중국 본토 깊숙이 미쳤었고 또 은(殷)의 지역은 본래 조선 땅이었고 진(秦)이 있기 전에 동이조선족(東夷朝鮮族)이 현 중국본토에 정착했음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옛 지명과 지금 지명은 다른데 유의해야
중국은 자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숨기고 외국의 역사를 깎아내리기 위해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위한중국휘치(爲漢中國諱恥)로 변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나라를 민족으로 거론하고 지명을 수시로 바꿔온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리지인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이나 고대 군사지리지(軍事地理誌)는 믿을 수 있어도 그 후의 지리지와 지명은 변조됐기에 오류를 범하기 쉽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가야하는 것은, 고조선 시대의 요동도 그 위치가 유동적이고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본래 요동이란 중국의 동쪽 끝을 말하는데 지금의 요동반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고대에는 북경 근처 난하유역이 요동인 것에 유의해야 한다. 범장의 ‘북부여기(北夫餘記)에 “동쪽 한계가 패수이고 그 패수는 지금의 난하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동쪽이란 요동의 동쪽 끝을 말하는 것이다. 난하부터 갈석산까지의 지역은 중국에 속했고, 이 지역이 고대중국의 요동이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요동은 대부분 고조선에 속해 있었고 그 서남부 일부가 중국영토에 속해 있었다. 고구려는 한때 요동지역을 차지했다. 그런데 현행 국사책에는 이 요동을 지금의 요동으로 인식하여 고구려 전성기의 강역을 요하까지로 잡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가 차지한 요동은 고대의 요동으로 난하 동북지역이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한국의 북조(北朝) 발해국도 현 중국 동북지역의 대부분과 러시아의 연해주 전체를 그 영토에 포함하고 있었다.
규원사화(揆園史話)의 저자 북애(北崖)는 조선숙종 때 사람으로 조선조의 역사가 자주자존의 민족의식을 잃고 조선(祖先)이 살던 이 강토와 역사에 대하여 “압록강 바깥 사방 만리의 땅은 우리 선인들이 고생하여 경영하던 땅이니 어찌 본시 중국 한나라의 땅이랴, 어찌해서 우리 한인들은 중국인의 위업은 믿으면서 자기 조상이 자랑할 만한 위업은 왜 살피지 못하는 가”라고 했다. 이어 배달국의 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皇-서기전 2770년 즉위)인 치우천황(蚩尤天皇)같이 “헌원(軒轅)이 우리나라 치우(蚩尤)에게 도전해오매 탁록 땅에서 크게 싸웠다. 이 때 중국인은 갑옷과 투구를 쓸 줄 몰랐다. 헌원(軒轅)이 동이족이면서 중국 화하족(華夏族)의 황제가 되어 치우천황과 73회나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치우천황(蚩尤天皇)에게 항복한 역사를 일깨워주고 있다. 치우천황(蚩尤天皇)의 손들이 유주와 청국에 살아 그 위력이 줄지 아니했다”고 했다.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선생은 “단군은 설화에서 말하는 곰의 아들도 신도 하느님도 아니며 고조선을 개국한 우리의 실존 조상”이라고 역사 첫머리에 찍어댄다. 일본은 고사(古史)들의 고조선국 개창(開創) 및 단군기록을 신화(神話)라고 해서 대부분을 없애고 변조했다. 이제 변조된 역사는 제자리로 찾아놓아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다.
단군숭앙(崇仰) 두려운 일본이 저지른 역사왜곡
일제가 단군을 신화(神話)라고 몰아버린 발단은 옛 사람들이 국조단군을 숭앙(崇仰)해 단군의 고상한 정신이 민족과 함께 살아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고려조에는 몽골의 인왕백고좌(仁王百高座) 강회(講會)금지정책 하에서도 호국불교신앙과 함께 단군정신을 고취했는데, 조선조에서는 유학숭상정책 때문에 불교는 억압했지만 단군숭앙사상(檀君崇仰思想)만은 유지해서 구한말까지도 단군과 고조선을 의심한 일이 없었다. 상고시대(上古時代)의 환국, 배달국, 고조선, 예맥(濊貊), 부여(夫餘), 고구려, 삼한(三韓), 가야(伽倻) 등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주력이 강성해서 요동과 중원 및 한반도는 우리 선조들의 본거지였다. 우리 선조가 이민족을 억압하고 지배하며 서울을 여러 곳에 두고 크게 활약하다가 점차 세력에 밀려 한반도로 옮겨오면서 수도(首都)를 여러 번 옮겼던 것은 이미 전술했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산하와 도시의 명칭도 중국에서 쓰던 그것과 동일하다. 중국 본토와 같은 지명을 반도 내에도 만들어 놓은 이름 때문에 옛날의 우리 주 무대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더구나 강단사학자들이 역사를 한반도만으로 줄여버리려는 데서 생겨난 지명의 혼란이 더 가중되었다. 옛 고조선의 3경, 발해의 5경, 고려의 3경 등과 같은 시대에 서울이 여러 곳에 있었던 사실에 관해서는 신채호(申采浩), 최동(崔棟), 이시영(李始榮), 정인보(鄭寅普) 선생들이 연구해 왔다. 아울러 이 보다 일찍이 북애(北崖)가 연구발표를 하기도 했다. 서기 1675년 조선 숙종 원년 북애(北崖)가 편찬한 규원사화(揆園史話)=고조선 단군역사)에는 “왕검성(王儉城)이란 경성(서울)이라는 의미의 고어(古語)이고 평양도 틀림이 없다. 평양은 제2의 왕검성이고, 단군의 제2평양은 압수(압수(鴨水)의 북쪽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산 이름도 대륙과 한반도의 것이 동일한 것이 많다. 북애는 “예컨대 태백산이란 같은 이름을 가진 산도 많다. 이를 모르고 태백산을 영변의 묘향산이라고 하면 오류다. 개마, 태백, 장백 등은 모두 같은 산의 이름이다. 이는 역대방언(方言)의 차이다. 개마, 백두도 같은 뜻인 이자동의(異字同意)인 것이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태백산만 해도 부루칸산(불함산(不咸山= 태백산), 바이칼호수 근방의 천해(天海)의 태백산, 태산(泰山)의 태백산, 서안의 태백산, 감숙성(甘肅城)내의 태백산, 태원(太原)근방의 태백산, 하얼빈 완달산의 태백산, 사아란산(斯阿蘭山)의 태백산, 우리나라 백두산의 태백산, 강원도의 태백산 등이 있다. 아사달(阿斯達)도 하얼빈의 아사달(阿斯達), 장춘농안 백악산의 아사달(阿斯達)등이 있다.
대륙 내에도 평양(平壤)이란 지명과 태백산(太白山)이란 산이 여러 곳에 있다. 이들 지명과 산명들은 우리 한족(韓族)이 중국 대륙과 유라시아에서 활동한 유서 깊은 산하(山河)였던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인 동양미술사학자인존 코벨(Jon Carter Covell(1910~1996) 박사는 동양에서 오랜 연구 끝에 우리 한족(韓族)이 동아시아에 정착한 연대는 현재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일찍 정착했다고 주장한다. 일제가 역사말살을 위해 우리 역사를 절반이상 잘라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중국은 우리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도 자기 것으로 조작변조하고 있으나 “우리 문화가 중국과 다르고 우리 한민족 문화가 독특함을 말하고 있다. 단군은 단군이다”고 했다. 코벨 박사의 이 같은 주장은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한족(韓族)은 고대부터 여러 다른 종족과 융합하면서 중국의 중원(中原)과 유라시아, 한반도, 일본열도 등을 지배하고 지도한 위대한 민족임을 외국학자들도 연구하고 그 사실을 강조하는데 유독 우리나라 강단파는 식민사관의 자비적(自卑的) 역사관을 견지하고 있다.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타국에 예속된 적이 없었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푸틴은 1982년에 발간한 책 고조선에서 남·북한, 중국, 소련 역사학자들의 연구업적을 총 망라 한 연구결과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본 바닥이던 요동에서 살았고 이후 한반도로 밀려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조선사편수회에서 활약했던 이병도 체제의 강단파 국사교육은 단군조상과 우리 민족이 요동의 강역에 살았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강단파의 거두 이병도 박사는 그동안 주장해 왔던 학설을 바꾸어 “단군은 실제 인물이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급기야는 최태영 선생과 한국 상고사(韓國上古史)를 발간한다. 이 책은 영문으로도 발행됐다. 그러나 이병도 박사의 제자들은 연구는 하지 않고 과거 중국에 요공을 하느라 없는 기자조선을 갖다 넣어 역사를 왜곡하더니 이제는 일본의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호도하려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일제가 가르쳐 준대로 자기나라의 역사를 멸시·폄하하고 일제가 취사선택 해 과학적이라는 말로 던져준 위서(僞書)만을 다루고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張曉 ‘韓國の民族とその步み’,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三省堂 編修所編 ‘各國別:世界史の整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貝塚茂樹‘中國の歷史’, せい いくと ‘新漢族から大和民族’ 외 다수서책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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