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제국의 대륙 지배 부정한 ‘기자조선설’

입력 2014-08-09 1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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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기자·위만조선, 한사군의 허구(І)
 
일본은 가증스럽게도 우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조선 역사는 기자조선부터 시작했다고 1975년 일본 삼성당편수소 편(三省堂編修所 編)으로 발간된 ‘각국별:세계사의 정리(各國別:世界史の整理)’에서 주장했다. 이는 일제의 역사말살 행위가 해방 후에도 이어진 만행과 다르지 않다. 한국의 역사를 기자조선, 위씨조선, 한(漢)의 지배 순으로 역사를 왜곡·날조했다. 그들의 책자를 보면 이런 내용이 담겼다.
 
“기자조선은 서기전 3세기경 조선에 이주한 중국인이 기자조선을 건국했다. 위씨조선은 서기전 2세기경 조선에 이주한 중국인 망명자가 기자조선을 넘어뜨리고 현재의 평양부근에 건국했다. 이어 서기전 108년에 전한(前漢)의 무제가 평양을 공격해서 위씨조선을 멸망시켜 낙랑, 진번, 현토, 임둔의 4군을 설치했다. 서기전 313년 경에는 고구려에 정복되기 까지 중국이 조선 지배의 중심이 되어 주변 제국에 한(漢)문화를 이식했다. 또 낙랑군의 남반(南半)은 210년경부터 대방군(帶方郡)이 됐다. 고구려는 서기전 2세기경 북방으로부터 압록강중류의 산간지대에 이주해서 수렵민족으로서 1세기경부터 강대하게 돼 중국의 북변을 위협하며 제 왕조와 항쟁을 계속했다. 후한이 멸망 후 만주에 세력을 넓혀 313년 이후 낙랑군을 비롯해서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조선의 제 지역을 병합했다. 1~4세기경 남선(南鮮)에 진한, 변한, 마한의 3국이 분포해서 중국 군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삼한을 병합했다”
 
이는 가당치 않은 역사날조다. 필자는 앞으로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의 역사가 모두 날조이고 허구라는 것을 기술하고자 하며, 우선 이번 캄럼에는 기자조선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한(漢)나라, 기자, 위만은 조선을 지배한 적이 없다
 
단군조선은 이미 살펴온 바와 같이 선진국을 이룬 강한 대국이었다. 연대로 보아 기자(箕子)가 조선에 온 것이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조선은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강대국가로 조선의 윤리 도덕적 사상, 법규범의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유승국 선생은 “고조선은 일찍이 이치가 깊고 오묘한 도리와 규범의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었기에 중국 주(周)나라의 인문주의는 동방 및 은(殷)의 문화와 서로 다르지만 영향을 받았다. 또 중국문화와 공자(孔子)의 사상이 요순(堯舜)에서 비롯된 것과 공자(孔子)가 동이족으로 지연적 혈연적으로 동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순(舜)나라도 우리 한(韓)족으로 중국은 조선선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유교의 군자사상(君子思想)과 충효사상(忠孝思想)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고대중국지리지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이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일컬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기자는 은 말(殷末) 주 초(周初)의 실존인물이라는 것과 그 때 은(殷)의 유민과 동이(東夷)의 일부가 동으로 이동한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자(箕子)가 반드시 조선에 정치망명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기자가 조선의 국왕이 된 사실이 없다. 기자(箕子)는 은(商)멸망 시 주(周)의 왕과 왕래하다가 중국에서 살기 어렵게 되자 단기 1211년(서기전1122) 그 집단이 조선변방으로 피해와 살게 된 것이다. 중국에 대한 사대관계에서 벗어난 한말(韓末)부터는 비합리적인 기자왕조 설을 버리고 중국인 기자왕조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통설이 되고 있다.
 
당시 상황이 제왕운기(帝王韻紀) 원문에는 ‘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夫餘, 銳貊(濊貊)이 檀君壽’라고 했다. 즉, 당시 모든 부족의 족장을 다 단군이라고 칭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모든 부족 중 주체는 조선이다. 조선은 광의적으로 단군조선이요, 협의적으로 예맥조선이다. 예맥조선도 극히 강대해 위만의 상전인 한고조를 지원하고 위만을 책동하여 한고조를 배반케 했다.
 
고대부터 역사를 날조하는 중국도 서전 무성편(書傳 武成篇)에 화하만맥(華夏蠻貊)이라고 했다. 즉, 안으로 중국과 밖으로 예맥(銳貊=濊貊)이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예맥이 지극히 강대해 중국 이외의 모든 민족을 대표하였다고 표시한 것이다. 무성편(武成篇)은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역사를 기록 한 것인데, 주 무왕(周 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후에 기자(箕子)가 조선에 망명했다고 해도 조선은 기자조선보다 먼저 건국하고 극히 강대해 기자가 감히 나라를 세울 상황이 아니었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은 우리역사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허구의 역사다. 당시 우리 조선은 중원을 호령한 초강대국이었고 예맥조선도 강대해 한 무제(漢 武帝)가 대륙에 4군을 설치한지 26년 만에 예맥조선이 임둔, 진번 2군을 탈취하고 현토군도 대부분 탈취했다. 그리고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 무제(漢武帝)시대까지 중국 중원에 진출해 한족을 정벌·정복했다. 또한 한(漢)은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치한 적이 없다. 기자조선은 우리 역사에 사대주의자들이 끼어놓은 허구의 역사이다.
 
기자조선 군주명과 역사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 같이 조선이 한(漢)족을 정벌·정복했다는 것은 조선의 주체인 단군조선이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보다 강대한 것을 증거한다. 이 같이 강대한 조선에 대해 ‘중국은 역사왜곡을 통해 자존심을 견지하려고하는 치사한 짓을 마다 않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고대부터 중국을 위주로 한 역사를 위조했다. 이는 중국학자 양계초(梁啓超), 사부아(謝扶雅)등도 긍정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역사에는 이렇게 기술돼 있다.
 
“주 무왕(周 武王)이 은(殷)을 멸한 후에 기자(箕子)를 조선 왕으로 임명하고 기자(箕子)가 주 무왕(周 武王)의 임명을 받아 조선왕이 되어 한씨족(韓氏族)을 지배하고 연인(燕人) 위만이 다시 기자조선을 계승해 한민족의 지배자가 되고 한무제(漢武帝)가 또한 위만조선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설치해 완전히 한민족을 지배했다”
 
그러나 기자조선이 허구인 것은 기자조선이 40여대의 왕이 계승했다고 하는데서 드러난다. 그 40여대의 군주의 이름이 어디에도 한명도 나와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 또한 전무하다. 기자조선은 순전히 날조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설령 기자조선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는 한 개의 망명정권으로서 유명무실한 존재요, 한 지방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온 미약한 존재였을 뿐이다. 중국인은 소위 대중화(大中華)라는 제국주의에 편향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위조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사대주의사가들은 기자조선을 부정하는 일설로서 1975년 국사교과서에는 허무맹랑한 한씨조선설(韓氏朝鮮說)을 내세우기도 했다.
 
한씨조선설(韓氏朝鮮說)은 본래 송나라 왕응린(王應麟), 청나라 고염무(顧炎武), 청나라 가경시대(嘉慶時代)의 왕계배(汪繼培) 등이 시전한혁장(詩傳韓奕章)의 한씨(韓氏)를 근거로 위조 한 것이다. 왕계배(汪繼培)는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 ‘옛날 주선왕(周宣王) 때에....한서(韓西)가 또한 한씨(韓氏)로 성(姓)하였다가 위만(衛滿)에게 망했다(王符, 潛夫論, 卷九, 志 氏姓)’는 문구를 들어서 황당한 한씨조선(韓氏朝鮮)을 억설(臆說)했다. 왕씨(汪氏)는 한(韓)의 오자(誤字)요 서(西)는 선(鮮)과 동일하다 해서 한서(韓西)는 즉, 조선이라고 억설(臆說)을 폈던 것이다.
 
그런데 기자(箕子)가 한씨(韓氏)가 아니라는 실증이 있다. 위략집본(魏略輯本)에 기자(箕子)의 후손인 기준(箕準)이 ‘인(因)하여 한씨(韓氏)로 모성(冒姓)하였다(魏略輯本, 卷二十一, 朝鮮)’고 돼 있다. 이는 위만이 기자조선을 탈취해 기자의 후손을 압박함으로 그들의 본성을 감추고 한씨(韓氏)라는 가성(假姓)을 사용했다고 한 것이다. 가성이 한씨(韓氏)라는 것은 본성이 한씨(韓氏)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중국사가가 무리한 한씨조선설(韓氏朝鮮說)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민족을 중국인의 후손으로 조작하려는 의도다. 시전 한혁장(詩傳 韓奕章)주(註)에 ‘孔氏曰韓武之穆也’라고 했다. 즉, ‘한씨(韓氏)는 주 무왕의 후손’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한(韓)은 국명(國名)이요 후작(侯爵)이요, 무왕의 후손’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을 주왕(周王)의 후손으로 조작하기 위해 한씨조선(韓氏朝鮮)을 위조한 것이다. 때문에 중국사가의 무리한 조작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은 우리 민족을 말살하는 대 오류(誤謬)인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기자조선은 이처럼 완전히 조작된 허구의 역사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그 정체를 다시 밝히고자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제주도교육위원회 ‘耽羅文獻集’, 張曉 ‘韓國の民族とその步み’.\,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三省堂 編修所編 ‘各國別:世界史の整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せい いくと ‘新漢族から大和民族’외 다수서책을 참조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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