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중국대륙 지배한 ‘한민족 예맥’

입력 2014-08-23 2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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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지금까지도 중고교 교과서에는 위만이 한민족을 침략하고 지배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중국사의 위조를 그대로 번역하고 위만조선(衛滿朝鮮)을 한국사에 넣는 것은 실로 한심한 일이다. 세계의 저명 학자들까지 위만이 조선을 지배치 못한 것으로 판명해 주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위만조선을 한국사에 버젓이 넣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역사연구는 고고학적, 민족학적, 인류학적 기타 각 방면의 학자에 의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음에도 우리 국사편찬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지금 반도식민사관의 사람들이 조작된 중국사를 맹신해 우리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민족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제대로 중국사를 연구하고 새로 재검토하면 위만이 한민족을 지배치 못한 사실이 판명되는데도 연구에는 담을 쌓은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의 고대사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
 
고조선 맥 이은 예맥, 중국대륙 정벌·정복·지배했다
 
사기(史記, 卷之九十三, 列傳第三十三)에 보면 한고조와 노관(盧綰)이 동향인이요, 노관의 부(父)와 한고조의 부(父)가 서로 사랑하고 생일이 같았다. 이로 인해 한고조가 천하를 얻은 후에 노관(盧綰)을 연(燕)나라 왕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노관이 배반함으로 한고조가 토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한서(前漢書 朝鮮傳 燕王盧綰 反人匈奴)에 보면 연인 위만의 망명(燕人衛滿 亡命)’이라고 했다. 즉, 노관(盧綰)이 한고조를 배반하다가 실패하고 흉노(匈奴)에 도피하니 노관(盧綰)의 부하로서 노관(盧綰)과 한고조를 배반하던 위만이 조선에 망명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전기 사기에 노관이 덕망(德望)과 선치(善治)가 없고 일시적 권모로서 성공했다. 그리하여 안으로 한고조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밖으로 예맥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키다가 실패하고 흉노에 도피했다고 했다. 이는 노관의 부하 위만이 사기꾼으로 한고조의 불신을 받고 오직 예맥을 배경 삼아 반란을 시도하다가 패망한 것을 적시한 것이다.
 
또한 한서(漢書 卷之一, 高帝紀 第一上)에 보면 한고조 4년에 예맥의 용감한 기병을 보내 한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한고조가 예맥의 군사적 원조를 받았다고 한 것이다. 노관(盧綰)과 위만이 예맥을 등에 업고 한고조를 배반하고 한고조가 예맥의 군사적 원조를 받은 것은 예맥의 국력이 한고조의 국력보다 강대한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예맥의 국력이 한고조보다 미약하다면 노관과 위만이 예맥을 등에 업고 한고조를 배반할 수 없고 예맥의 국력이 한고조의 국력보다 빈약하다면 군사적으로 한고조를 후원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고조에게 격멸당하고 빈손으로 조선에 망명해 유명무실한 기자조선을 계승한 위만이 한고조의 국력보다 강대한 예맥을 정복하고 우리민족을 지배했다는 것은 얼토당토한 허위조작이다. 위만이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망명할 때에 한민족의 의복을 입고 한민족의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이는 예맥을 배경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위만이 한민족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한민족을 가장한 것이었다.
 
겨우 생명을 보존한 망명객 위만이 세운 정권은 한 지방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빈약한 존재였을 뿐이다. 중국역사를 새로 검토하면 위만이 한민족을 지배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종합하면 예맥은 ①한고조를 도와준 강대한 국가였고 ②위만을 책동해 한고조를 배반케 한 강대한 힘이 있었으며 ③위만이 의존해 생명의 보호를 받은 나라였다. 반면 위만은 예맥의 지원 하에 반란을 일으키고 예맥의 보호 하에 겨우 생명을 보존한 미약한 이민족(異民族)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에서는 위만을 한국사에 엮어놓았다. 이는 식민사관을 탈피하지 못한 구차한 구태(舊態)다.
 
한무제가 우리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한 일이 없음은 중국역사에 명기돼 있다. 삼국지(三國志)에 ‘漢武帝伐滅朝鮮 分其地 爲四郡 自是之後 胡漢稍別’이라고 했다. 즉, 한 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을 정복해 사군을 설치하니 한민족(韓民族)과 한민족(漢民族)이 분리됐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민족은 사군에 예속되어 한 무제(漢武帝)의 지배를 받고, 위만조선에 거류하던 한민족(韓民族)은 한 무제(漢武帝)의 지배를 받는 중국민족과 분리돼 한 무제(漢武帝)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이는 한 무제(漢武帝)가 우리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하지 못한 것을 입증한다.
 
이 같은 고찰을 보면 기자가 우리 민족을 지배한 일이 없고 위만이 또한 우리 민족의 지배자가 되지 못하고 한 무제(漢武帝)가 우리 민족을 정복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아직까지도 식민사관을 탈피치 못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우리 민족을 지배한 것인 양 날조하는 것은 중국의 날조한 위서(僞書)만을 사실인양 보고 연구 부족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국 민족은 우리 한민족을 지배하지 못했다. 당시는 우리 민족인 강대한 예맥이 이들을 지배한 시대다. 예맥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 무제(漢武帝)시대 까지 1000여 년 동안 중국을 정벌·정복 지배했다.
 
춘추, 노(魯), 연(燕)시대 예맥의 정벌
 
춘추시대에 중국을 정벌한 민족은 예맥이다. 예컨대 논어(論語 卷十四 憲文第四)에 보면 ‘춘추시대에 중국은 이민족(異民族)의 정벌을 받아 거의 멸망의 위기에 직면했다가 제환공(齊桓公)의 신하 관중(管仲)에 의해 겨우 구출됐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공자는 “관중(管仲)이 없었다면 중국은 멸망해 우리가 피발(彼髮)하는 되놈이 되었으리라”고 말했다. 이처럼 당시 중국을 정벌한 민족은 우리 한민족인 예맥이지 중국의 한(漢)이 아니다.
 
또한 중국학자인 양계초(梁啓超)도 그의 저서(著書) 국사연구(國史硏究, 六篇, 歷史上 中國民族之 觀察 32面)에서 춘추전국시대에 동이(東夷)가 중국을 정벌하다가 제환공(齊桓公)에 패했다고 했다. 또한 공자(孔子)의 말에 의하면 중국을 거의 멸망케 한 민족은 피발민족(被髮民族-韓民族)이다. 그런데 회남자(淮南子, 卷 十一)에 예맥이 종발(縱髮)했다고 했다. 종발(縱髮)은 피발(被髮-머리털을 풀어헤친 머리)이다. 고려도경, 조예조(高麗圖經, 皁隸條)에 보면 우리 민족이었던 예맥은 피발(被髮)했다고 나와 있다. 이상의 고찰에서 춘추시대에 중국을 정벌해 거의 멸망케 한 민족은 예맥이 분명하다.
 
시전 민궁구장<(詩傳 悶宮九章(註)>에 신안호씨(新安胡氏)가 예맥이 노(魯)를 정복했다고 하고 사기(史記)에 태사공(太史公)은 연(燕)이 북으로 예맥의 압박을 받아 거의 멸망에 직면한 때가 수차(數次)라고 했다.(中國史記, 三十四, 燕召公 世家 第四). 또 연(燕)이 예맥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史記, 二十九, 貨殖列傳 第六十九, 烏氏倮)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예맥이 경제적으로 연(燕)의 상위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맥조선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을 제압하며 군림했던 고대의 강대국이었던 것인데 한사군도 세(3)군이 예맥조선에게 빼앗겼다.
 
고조선은 모든 제후국(諸侯國)의 맹주(盟主)요, 예맥조선 역시 국력은 부족수준의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에 비교할 바 못할 만큼 강대했다. 예맥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을 지배하고 고조선을 계승한 강국이었음을 말해준다. 예맥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 무제시대(漢武帝時代)까지 중국에 남출(南出)하여 한족(漢族)을 정벌·정복해 1천여 년 동안 중국을 지배한 사실이 중국사에 명기돼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을 정벌한 민족은 고조선에 이어 예맥이었던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에 이 사실이 기입돼 있다. 우리는 예맥을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 중국인이 쓰는 예맥(濊貊)을 쓰지 말고 최인 선생이 표현한 것과 같이 예맥(銳麥)으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맥(銳麥)에 대해 부언한다면 손자병법 군쟁(軍爭)에 예졸물공(銳卒勿攻)이라고 했다. 즉, 강병(强兵)을 공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예(銳)는 강병(强兵)을 가리키는 것이다. 맹자(孟子, 告子章句下-(註)-)에는 맥(麥-보리)을 내한(耐寒)의 곡(穀)으로서 북방예맥의 땅에 생산된다고 했다. 단, 한족(漢族)이 주식을 곡(穀)이라 칭하고 분식(粉食)을 곡이라 칭하지 않는데, 맥(麥=보리)을 분식(粉食)함으로 예맥이 맥을 상식(常食)하는 것을 들지 않았다. 요컨대 예맥(銳麥)은 맥(麥-보리)을 상식(常食)하면서 강병을 거느리고 천하에 횡행한 자랑스러운 고대 강대국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그 진실을 더 밝혀보고자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한창호 ‘한국고대사 발굴’,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최진열 ‘대륙에 서다’,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소재영 ‘우리고전산책’, 張曉 ‘韓國の民族とその步み’,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三省堂 編修所編 ‘各國別:世界史の整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せい いくと ‘新漢族から大和民族’,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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