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지금까지 중국 역사의 기술을 보면 휘치필법(諱恥筆法)이었다. 첫째, 한족과 중원 국가들의 수치스러운 기사는 숨긴다.(爲漢中國諱恥) 둘째, 한족과 중원의 나라는 높이고 외국은 깎아내린다.(矜炒而陋夷狄) 셋째, 한족에 관한 국내사는 과대하게 쓰고 남의 역사는 작게 쓴다.(祥內略外)
이는 중국 위주의 위한중국휘치(爲漢中國諱恥)이다. 이렇게 역사를 변조하기 위한 일환으로 중국은 1959년 평화로운 티베트 침공을 했고 1986년부터는 티베트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서남공정’에 130여명의 연구 인력을 투입했다. 중국장학연구중심(中國藏學硏究中心)으로 10년간에 걸쳐 이뤄진 ‘서남공정’에서는 티베트 역사가 중국사로 들어갔다. 이후 중국은 우리 역사를 말살하는 ‘동북공정’에 들어가 그 작업도 거의 끝나고 있다.
중국은 상고사가 없음에도 우리 상고사를 그들의 역사로 가져다 메우는 인면수치의 만행을 감행했다. 그들의 역사는 4300년에 불과해 우리와는 대비가 안 될 만큼 빈약하다.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3000여 년 동안 지배를 받아온 것을 지우기 위한 역사공정을 무차별 벌이고 있다. 우리가 오히려 중국의 지배를 받은 양 역사날조를 통해 우리 역사를 중국 역사에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편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천인공노할 언어도단의 해적행위다.
왜 이들은 이러한 역사적 만행을 행하는 것인가. 고대 강대한 한민족(韓民族)의 조선은 3000년 이상 중국을 지배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이들과 융합하고 때로는 전쟁을 했으나 언제나 우리가 우위에 있었기에 그들은 동이족을 공포스러워 하며 두려워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서도 중원과 동북의 교차지대인 난하유역에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이를 증명한다.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동이족의 중원진출 기회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시대 중국의 화하족(華夏族)은 동이족을 지배한 일이 결코 없다.
배달국시대 우리 한민족이지만 화하족(華夏族)의 우두머리로 나온 헌원이 우리 한민족의 치우천황과 오랜 기간 싸웠으나 번번이 패해 치우천황에게 항복한 이후 3000년간 중국은 우리 배달국이나 단군조선시대도 언제나 우리의 지배세력 하에 있었다. 이를 용인할 수 없는 중국은 역사변조를 통해 5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현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춘추시대 이후부터 해 온 ‘존화양이(尊華攘夷)’를 내세워 왔다. 그것은 중국의 화하족(華夏族)을 높이고 동이족을 배척하는 정책이다.
중국이 역사를 변조하며 날조·왜곡하기 위해 명나라 때 만리장성의 출발지점에 산해관을 세워 산해관 서쪽을 관내, 동쪽을 관외로 구분하고 관외의 동이를 배척한 것 등은 바로 ‘존화양이(尊華攘夷)’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 다음 중국이 시행한 소수민족정책은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동이족의 견제에 참여하지 않고 동이족 자신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사이를 벌린 다음 둘이 다투다가 하나는 망하고 하나는 지치면 그때 중국이 취한다는 정책이었다. 수(隨), 당(唐) 이후 중국은 이런 정책을 즐겨 썼다. 예컨대, 같은 동이민족인 거란과 발해가 서로 싸우도록 부추기고 발해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거란국력이 쇠진하자 중국이 그때 나서 거란을 멸망시켰다.
‘존화양이(尊華攘夷)’, ‘이이제이(以夷制夷)’에서 ‘화이동근(華夷同根)’
그런데 화하족(華夏族)이 아닌 동북지역의 동이족이었던 청나라가 중원에 들어가 한족을 지배하면서 부터 한족(漢族)이 종래에 추진해 오던 ‘존화양이(尊華攘夷)’, ‘이이제이(以夷制夷)’와 같은 소수민족정책은 폐기된다. 중국은 이후 다민족(多民族) 통일국가를 지향한다. 지금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은 청나라의 민족정책을 계승해 중원과 동북관내·외의 구별이 없는 다민족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중국과 청나라가 다 같이 다민족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지만 청나라는 한족(漢族)을 소수민족의 하나로 포함시킨 만주족중심의 다민족통일국가를 지향했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한족(漢族) 중심의 대중화주의 입장에서 다민족통일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은 청나라와 완연히 다르다.
현 중국은 새로운 ‘화이동근(華夷同根)’ 정책을 취하며 기존의 ‘존화양이’, ‘이이제이’와 같이 동이족을 이민족시하여 배척하거나 견제하는 것이 아니다. 화이동근은 아예 소수 민족들을 화하족(華夏族)의 뿌리에서 갈려나간 것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동이족이 세운 고대 한족(韓族)의 국가들을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간주해 화하족(華夏族)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겠다는 심산이다.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중국은 1995년 배달국 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智天皇)인 치우(蚩尤)의 본거지인 북경시 탁록에 귀근원(歸根苑)을 세우고 그 안에 중화문화 삼조당(三祖堂)을 지어 화하족의 시조 황제와 함께 치우를 묘족의 시조, 염제를 동이족의 시조라 하여 좌상을 모셨다. ‘귀근원(歸根苑)’은 화하족만이 아니라 동이족, 묘족도 한족과 뿌리가 같다는 즉, ‘화이동근(華夷同根)’이라는 소수 민족정책의 대전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 이들은 이런 거짓 행보를 하는 것일까.
소수민족 멸망 아닌 중국 화하족에서 갈라진 민족정책 전환
동북의 동이족(東夷族)은 상고시대부터 중원에 진출해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한 중심이었다. 중국 역사는 상고사가 없는 4300년 역사 밖에 되지 않는데, 한족인 화하족(華夏族)의 역사는 고작 100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국이 서방의 화하족(華夏族)이 중원(中原)에 진출해 정권을 잡으면서 동북의 동이민족은 수난의 소수민족으로 지위가 뒤바뀌었다.
수(隨), 당(唐)시대에 오늘의 티베트인 돌궐을 침략해 중국의 지배하에 두고, 고구려를 멸망시켜 중국 영토에 잠시나마 편입시켰으나 얼마 후 그 유민들은 다시 일어나 당나라에 대항해 발해국을 세웠다. 이러한 경험을 한 중국은 동이족의 국가나 정권을 탈취하고 멸망시키는 방법으로는 동이족은 물론 소수민족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후 중국의 공산당 정권은 결국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에 통합·귀속시킨다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소수민족 국가를 멸망시키는 종래의 방법을 바꿔 역사를 날조하는 식의 근본을 없애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었다. 소수민족정책을 보면 ‘중국경내의 모든 민족은 한족(漢族)과 뿌리를 같이하는 중국 민족으로 간주한다’, ‘현재의 중국영토 안에서 일어난 역사상의 모든 소수민족국가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본래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역대 소수민족 정권은 중국의 지방정권이므로 현재 그 후예들이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아시아대륙 안에 있는 모든 영토는 궁극적으로 중국영토이다’ 등의 내용들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불성설의 말도 안 되는 해괴한 논리다. 그럼에도 이미 중국은 ‘서남공정’과 ‘서북공정’을 마치고 지금은 ‘동북공정’도 거의 끝내고 있는 상황이다.
동북공정은 2002년 2월 ‘동북변경의 역사와 현상을 연구하는 ‘공정(工程)’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 산하 변강사지연구 중심에서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화이동근(華夷同根)’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 특히, 한국사의 역사주권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과정에 수백명의 학자가 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고조선, 예맥(銳麥),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민족사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는 이론작업이 진행돼 왔다. 이제 그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그들은 여차하면 북한 붕괴 시 연고권 주장 및 통일 후 영토분쟁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사학자들은 중국이 만주에 한족을 이주시키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족이 만주에 진출한 것은 100년 밖에 되지 않음에도 고대부터 터전을 두고 산 것 같이 포장을 하려 하고 있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이런 중국의 야망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이 한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이론 작업을 완료하면 한반도 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최종 목표는 북한의 영토주권을 확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중국 발언권이 더 강해지고 한국의 위상이 위축될 경우 남한의 영토주권을 중국에 귀속시키려는 야욕을 들어 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비록 기우일 수 있지만 반드시 대처를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남쪽에션 해양주권까지 노리는 중국, 우리의 땅 ‘이어도’ 넘본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목적에 대해 “국가통일, 민족단결, 변강안정의 목표에서 출발한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동북공정의 제1목표인 ‘국가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영토의 중국 귀속이 동북공정의 최종목표라는 논리는 결코 비약이 아니다. 그런데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확한 좌표설정 자체가 전무하다. 한마디로 무대책,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형세다.
우리 정부는 동북공정에 대처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켰으나 이 재단은 동북공정을 도와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엄연히 우리 민족의 무대이고 선조들의 땅이었던 간도까지도 “우리 땅이 된 적이 없다”고 하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동북공정을 넘어 ‘백두산공정’에 이어 국제해양법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제주도 남단의 ‘이어도’까지 문제를 삼고 나오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현황을 보면 정부는 강온양면 전략을 구사해 적절히 대처해야 함에도 중국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제대로 된 반박성명 조차 너무 미온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참으로 참담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중국은 역사주권도 문제이지만 해양주권까지 힘을 내세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전후 국제연합은 경제적 배타수역(Exclusive Economic Zone)에 대해 ‘어업자원의 보존에 관한 연안국의 권리’를 주장한 1945년의 투르만 선언에 단(端)을 발한, 새로운 해양질서(海洋秩序)의 안정을 위해 1957~8년 제1차 UN해양법회의에서 이에 관한 4조약을 성립시켰다. 이 조약 중 ‘대륙붕에 관한 조약’과 ‘어업 및 공해의 생물자원의 보존에 관한 조약’은 모두 연안국(沿岸國)에 대해서 영해 밖의 해양(海洋)에 관해서 자원의 개발, 보존에 관해서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다.
‘자원보존에 관한 조약’ 제6조에서는 ‘연안국은 자국의 영해에 인접하는 수역에 있어서 생물자원의 생산성 유지에 특별히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했다. 또 제7조에서는 ‘자국의 인해에 인접하는 공해의 어족기타 해양자원에 적합한 보존조치를 일방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이를 무시하며 ‘이어도’를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에 대처를 해야 한다. 중국의 논리는 국제해양법조약에 비추어도 억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리는 힘을 앞세운 논리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자원 보존에 관한조약’ 6~7조의 그 범위에 관해서는 단지 막연하게 한계를 하지 않았으나 국제해양법상 ‘이어도’는 우리의 수역임에도 중국의 억지는 동북공정과 같은 논리로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예맥, 고구려, 발해 등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역사로 변질 시키려고 지방정권이라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거니와 ‘이어도’에 관한 논리도 언어도단이다. 분명한 것은 고구려 하나만 보더라도 고구려가 726년 동안 국가경영을 하는 동안 중국은 35개 나라가 멸망했다.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공정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존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한창건 ‘한국고대사 발굴’,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우창수 ‘아사달 상· 하’,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各國別:世界史の整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井上 淸 ‘日本の歷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太平善梧編 ‘現代の國際法’, ‘田畑茂二郞·石本泰雄 編 ‘國際法’ 외 다수서책을 참조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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