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근대 19세기 제국주의 일본의 우리민족 말살정책으로 인한 한국역사 위조의 효과로 유구한 역사의 상반(上半)과 넓은 영토의 대부분이 무참히 절단당했다. 이제 수천 년의 연대사와 반도의 일부로 축소된 민족 활동의 강역을 실제 상태로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일이 급하다.
우리 민족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의해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무능한 종족으로 가르쳐 졌다. 이런 역사왜곡은 자신들의 침략과 폭력을 합리화하고 마땅히 다시 강탈·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2세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치졸하기 그지없는 행위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그것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 교과서는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중국 본토에 먼저 거주한 민족이며 선진문화민족으로서 대륙에서 활동했었던 사실과 민족 특유의 문화를 가졌다는 사실이 사라졌다. 또한 일본의 문화전반 및 국가 사회구성에 지대한 공적을 이루게 한 것도 우리 선조들이지만 그 조차 뭉개져 버렸다.
우리는 19세기말 일시 폐쇄주의로 물질문명의 발전에서 뒤쳐졌으나 일찍이 우리 민족은 거만한 중국인들로부터 예찬을 받아왔다. 공자의 경서와 중국의 역사서에 “예의를 지키며, 겸손하고 굳세고, 부지런히 생산하며 무용과 노래를 즐기는 죽지 않은 군자의 나라”라는 예찬을 받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좋아하는 침략주의가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드넓은 지역을 그 활동무대로 했다는 사실이다. 이웃나라에게는 은혜와 덕으로 대해주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대국의 기질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반도의 역사 속에서도 혹독한 고통을 겪었지만 자유, 자주, 독립을 위한 끈질긴 항쟁의 과정은 우리 핏줄에 강인하고 진취적 기상이 배어 왔음을 잘 웅변해 준다. 이는 우리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역사회복의 사명을 절실하게 일깨워 주는 장구한 역사의 도도한 맥이다. 이번 칼럼은 한민족이 중국과 일본에 문명을 가져다주고 그들을 깨우친 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외국 학자에 의해 속속 증거되는 한민족 제국의 역사적 사실들
앞서 전술 한바 있는 러시아 역사학자인 앰, 붸, 워롭비에프 등은 “중국이 말하는 기자조선, 위만조선, 창해군(蒼海郡), 한사군(漢四郡)설치 설은 그 모두가 한(漢)나라시대에 꾸며져 사실과는 전혀 다른 위작(僞作)이다. 고조선은 군사민주주의 형, 고대국가(軍事民主主義型 古代國家)다”고 못박고 있다.
또한 조선 역사를 심층적으로 깊이 연구해온 러시아학자 유엠 부틴 박사 역시 그의 저서 ‘고조선’에서 “동북아시아 전 지역에 걸쳐 동방문화권을 형성해 독자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창조·발전시켜 온 것이 조선이다. 이 조선 역사는 1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환국과 배달국을 거쳐 조선으로부터 시작됐음을 고증(考證)한다”고 했다. 이러한 외국학자들에 의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반도식민사관의 주구들은 이에 대한 추가 연구나 고증도 하지 않고 중국과 일제의 변조되고 왜곡된 역사만 하염없이 맹목적으로 부여잡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국가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고고학자인 죤, D, 클라크박사는 “1981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全谷里)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한 방사선탄소 측정 결과 그 상한선을 구석기초인 270만 년~70만 년 전 문화로 인증(認證)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한국에 이토록 일찍부터 구석기문화가 꽃피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강조했다.
전곡리(全谷里)의 유적지 유물 중에는 돌을 굵게 또는 작게 돌맹이를 깨트리고 남은 석핵(石核)이 많은 것이 특색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양면핵석기(兩面核石器)의 전기라 할 수 있는 돌도끼 등 동아시아의 구석기 연구에 결정적 자료가 되는 귀중한 유물이라고 클라크 박사는 언급했다. 이처럼 숨겨진 역사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반도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선진 문명의 우리 선조들은 무지한 일본을 일깨웠다
우리 한민족의 유민들은 구석기시대를 살던 일본에 건너가 대거 앞선 문물을 전해 농사며 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한민족이 주축인 야마토(大和) 정부도 한국과 같은 국가의 전통적 정치형태가 요구됨을 인식하고 우리 선조들의 입법행정 표본을 채용, 국가로서의 정치조직을 강화하기에 이른다.
5세기말~6세기 초에 야마토(大和)를 중심으로 부족연합이 형성되고 6세기 말~7세기 초에 호족(豪族)이 분립해 자기세력을 부식했다. 호족 중 대표는 한국계인 소가씨(蘇我氏)다. 소가씨(蘇我氏)가 스슝천황(崇峻天皇)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오랜 동안 한국계인 소가씨(蘇我氏)가 일본의 정치중심에 섰던 것이다. 아울러 이 때에 와서야 일본의 국민의식이 계발되며 국가의 면모를 갖춘다.
이를 주도한 것은 한국에서 건너간 유민들이었다. 이때까지 일본의 천황이라는 왕은 그 권위가 서지 못하고 유명무실의 왕이었다. 천황의 권위가 선 것은 7세기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확립됐다. 7세기 이전은 왕이라 칭했다. 이 같이 국가 원리의 확립에 따라 수도는 나라(奈良)가 건설되어 일본서기(日本書紀)도 완성됐다.
동시에 이 시대의 가요를 모은 만요집(萬葉集)도 나오게 된다. 이 만요집(萬葉集)은 우리나라 고어(古語)를 아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말이고 어느 나라 가요인가를 금방 알 수 있다. 필자는 일본 유학시절 이를 일본인보다 더 잘 이해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한민족의 말과 가요를 모아서 출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본서기’와 ‘만요집’에는 당시 권력의 이동역사 사실이 적시돼 있다. 또 노래는 일본 와가(和歌)로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속 일본(續 日本)’, ‘일본후기(日本後記)’, ‘속 일본후기(續日本後記)’, ‘문덕실록(文德實錄)’, ‘삼대실록(三代實錄)’ 등 5개의 역사서 편집에 의해서 원래부터 그 왕들도 우리 한민족이요 섭정(攝政)도 한국유민인 것을 엿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 선조들 유민에 의해 주도된 역사를 모두 숨기고 조작·변조시켰다.
이 시대에 수도도 나라(奈良)에서 지금의 교토(京都)로 옮겼다. 또 천왕의 정치를 익찬(翼贊)하는 것으로서 설치된 섭정관백(攝政關白)의 지위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후지하라씨(藤原氏)가 섭정관백(攝政關白)의 지위를 계속한 것을 자식부(紫式部)의 겐지모노가다리(源氏物語)와 우치(宇治)의 평등원(平等院)에는 잘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후지하라씨(藤原氏)의 조선(祖先)은 후지하라 겐소크(藤原鎌足)다. 그의 식자인 후비도(不比等)는 천황의 명을 받아 일본서기(日本書紀) 편찬에도 노력한 자다. 이 후지하라 겐소크(藤原鎌足)의 자손들은 명치유신 직전까지 섭정관백(攝政關白)의 지위를 오래 계속해서 왕의 섭정하는 익찬(翼贊)에 봉해졌다는 것이다. 이후 가마쿠라(鎌倉)에 새로운 정권, 소위 막부(幕府)라는 무사정권(武士政權)이 들어서게 된 것은 식자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 대륙 속에 속속 숨어 있는 한민족 선조들의 강역 흔적
학자에 따라 그 연대를 달리하고 있으나 서기전 6000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대륙에 정착해 원주민의 일부와 융합하면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하여 환국, 신시배달국을 거쳐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지금의 중국 본토에 먼저 선주(先住)해서 인류문명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은 이미 기술한대로다. 중국인들은 한민족을 동이(東夷), 또는 숙신국(肅愼國), 혹은 예(濊)·맥(貊)족이라 일컬었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구이(九夷)는 조선족을 말하는 것으로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조선이나 만주, 몽골, 터어키 등은 여러 천 년 전에는 같은 혈족”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은 지나(支那)의 한족을 조선족과 동족으로 보는 것은 어림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몽골족은 조선족 보다 아주 늦게 그곳에 침입한 사실(연대의 선 후)로 보아 조선족이 몽골족에 속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말이다”고 하고 있다.
최태영 선생은 단군조선 연구를 통해 단군조선은 서기전 10세기경부터 그 후 5~6백 년 동안 단군의 전성시대여서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연평부)도 조선족의 하나였다고 했다. 고대 중국 양자강(揚子江) 회하역(淮河域)에 조선인이 많은 소왕국(제후국)을 건설했는데, 지금 까지 밝혀온 대로 그 중에는 서언(徐堰)이 서(徐)나라를 세우고 1000여년을 누리면서 지나(支那)의 36국~50여국에서 조공을 받았다는 나라가 있었다.
또 불이지국(弗離支國)같은 정복국가도 있었다. 불이지국(弗離支國)은 주서(周書)의 ‘불이영지’(弗離令支)와 사기의 ‘이지’(離支)로 지금의 직예(直隸), 산동(山東), 산서(山西) 등 여러 성을 정복하고 발해(渤海)란 이름을 주기도 한 나라이다. 또한 옛 이름이 부여인 하르빈(哈爾濱)은 조선족이 최초로 개척한 평야(불)다.
신채호(申采浩), 최동(崔棟) 선생에 의하면 옛 조선 (진·번·막)이 있었는데, 강성한 때 왕후(王侯)의 삼경(三京)중 상경(上京)은 북부여의 옛 지역인 아사달(阿斯達 구월산)이었다. 지금의 하르빈(哈爾濱)인 중경(中京)은 현 개평현 동북 안시성(安市城)의 터이고, 남경(南京)은 평양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평양은 옛날 중국 땅에 있다가 후에 한반도 안의 대동강유역으로 지명이 옮겨졌다.
고구려가 서기 668년에 나당연합군의 공격과 남생·남곤형제의 싸움으로 패망하자 신라가 당나라에 추종하기 위해 국사를 개편할 때 당나라가 뜯어 고친 지리를 기초로 해 중국의 북경 가까이 있는 낙랑군 등 한사군을 모두 한반도 내에 두었다고 잘못 기술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그와 같이 기술했는데, 번조선의 국도는 요하 동안(東岸)의 해성(海城)이다. 이 같이 우리 역사와 지도를 마구 고쳐 쓴 중국 역사서나 지도와 일본의 왜곡된 역사는 믿을 수 없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상고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인간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존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한창건 ‘한국고대사 발굴’,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三省堂 編修所編·永原慶二 監修 ‘中學社會歷史’ ‘各國別:世界史の整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井上 淸 ‘日本の歷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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