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현재 한국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만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국가원리의 일관된 1만년이 넘는 역사와 현실과의 연관에 있어서 규명해야 할 과제가 요청되고 있다. 우리가 국경일로 국가의 개국을 기념하는 ‘개천절’도 예외가 아니다. ‘개천절’은 우리나라가 개국한 환국부터 고증해 시작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합당한 일이다. 독립기념관이 상고사 우리 고대사를 말살한 식민사기념관이 되고 있듯이 우리나라 개국을 단군 기점으로 하는 것은 일제가 왜곡한 식민사관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모름지기 민족사관에 입각해 상고시대로 올라가 고증을 하고 개천절을 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아니면 우리의 상고사를 염두에 두고 천제(天帝), 황제국가(皇帝國家)를 건설한 것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옳다. 이번 칼럼은 개천절이 단군을 기점으로 할 것이 아니라 역사고증을 제대로 해서 정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며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기술해 보고자 한다. 개천절은 단군의 생일을 기념한 날이 아니다. 더욱이 단군의 명칭도 통치자 여러명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다. 이와 관련해 고대 관등(觀燈) 실상에 대해서도 더불어 살펴보고자 한다.
천왕(天王), 황제제도(皇帝制度)와 단군에 관한 통칭(通稱)
한민족 역사의 연대가 1만년이 넘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건국기념일인 개천절은 역사적 근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개천절을 단군이 탄생한 날자 10월3일로 해서 정했다고 하지만 잘못이다. 단군탄생일이 10월3일라고 하는 것은 조선조시대 한학도(漢學徒)가 주장한 억측이요, 근거가 없다. 단군은 4월8일에 탄생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개천절은 4월8일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고대 단군의 명칭은 한사람의 명칭이 아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王歷 第一)에 보면 단군은 고대 부족사회에서 모든 족장(族長)을 부르는 통칭(通稱)이었다. 이는 문서역사(文書歷史)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고시라(故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예맥(銳麥)이 단군의 수(壽)라고 했다. 이는 모든 족속의 족장을 단군이라고 칭한다고 한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단군신화에 단군이 4300년 전에 탄생했다 하고 또한 동서(同書)에 동명제(東明帝)가 단군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는 4300년 전으로부터 2000여년 고구려 동명제(東明帝) 시대까지의 모든 부족의 족장을 단군이라 칭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단군신화에도 이 사실이 표현돼 있다. 환웅(桓雄)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하강해 웅여(熊女)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 함은 산(山), 수(樹), 웅(熊)을 상대로 한 유목생활의 단군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 주곡(主穀), 주형(主刑) 등 인간 300여사(餘事)를 주(主)했다 함은 들에 정착해 농경생활을 하는 단군을 의미한다. 즉, 수렵시대(狩獵時代)로부터 농경시대(農耕時代)까지 많은 족장을 단군이라고 칭했다. 동명성왕이 단군의 아들이라는 것과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것은 이미 기술했다. 또한 북부여조(北夫餘條) 임술(壬戌) 4월8일에 천제(天帝)인 해모수(解慕漱)가 하늘에서 하강했다고 했다. 단군은 고대 부족사회에서 모든 족장을 부르는 통칭(通稱)이기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천제(天帝), 황제국가(皇帝國家)를 건설한 자가 누구인가를 고증해 개천절을 정함이 옳다. 천왕(天王), 황제제도(皇帝制度)는 우리가 창안한 제도로 중국과 일본도 우리의 제도를 본받아 이제도를 그대로 쓴 것이다.
기록에서 보는 관등(觀燈)…고대천제(天帝) 하강(下降)한 날 관등제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는 고대천제(天帝)가 하강(下降)한 날에 관등(觀燈)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 고려사지(高麗史志, 卷 二十三, 上元觀燈會議)에 보면 고려사 국속(國俗)에 정월15일 밤에 관등(觀燈)의 행사를 거행한다고 했다. 국속(國俗)은 고유한 풍속이요 외래풍속이 아니다. 상고, 고대부터 우리 민족은 축제를 열며 관등을 켰다. 관등에서 본 우리역사를 고찰해 보면 관등(觀燈)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옛날부터 조상의 제사를 새벽 밤에 거행하는 전통이 있다. 지금도 조상에 제사를 드리는 습관은 밤 12시, 정확히 자정 0시에 지내는 전통이 있다. 이는 조상께 하루의 가장 이른 시간에 따듯한 음식을 드린다는 공경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중국 역시 우리를 본받아 제사를 새벽 밤에 거행한다. 중국은 7월15일 밤에 등화(燈火)의 행사를 거행하고 이를 중원관등(中元觀燈)이라고 칭하는데, 사문류취(事文類聚, 卷之十, 中元)에 보면 이 날은 노자(老子)가 성도(成道)한 날이다. 그러면 중원관등(中元觀燈)은 노자를 위한 것이다.
불교에서 석가의 탄생일인 4월초8일에 연등(燃燈)을 켜 놓는다. 이는 밤에 축하의 행사를 거행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크리스마스추리를 하고 부활절 새벽에 촛불예배를 드렸다. 이는 지금 동서양이 거의 일반화되었다. 한국과 동양에 천신(天神), 조상의 신, 위인(偉人)의 생일, 성도를 위하는 거창한 행사를 밤에 거행하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모수를 천신(天神)으로 숭배하는 부여, 고구려, 고려가 해모수의 생일인 4월8일에 관등의 행사를 했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 문헌, 시조에 근거를 둔 행사를 거행한 것은 상고, 중고시대, 많은 위인들 역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인의 생일을 기록한 것은 환국시대부터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관등에 관한 것은 해모수뿐이다. 다른 위인의 관등은 기록치 아니하고 해모수의 생일에 관등만을 기록한 것은 그 생일에 거창한 기념행사를 거행한데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사 원종12년 4월조(條)에 ‘본국지속이 4월8일 관등(觀燈)’이라고 했다. 즉, 본국(本國)의 풍속에 4월8일에 관등한다고 한 것이다. 본국은 외국이 아니고 한국이요, 본국의 풍속은 한국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한 풍속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이 풍속이 어디서 기원했는가. 고대 추수 후 12부족이 모여 잔치를 했을 때도 불을 켜고 했을 것이다. 관등(觀燈)은 부여시대 해모수를 단군이라 칭하고 천제(天帝)로 존중하며 황천(皇天)으로 받들었다. 그리고 해모수의 생일이 4월8일인데, 4월8일은 단군의 탄생이요 천제(天帝)가 하강한 날인 것이었다. 황천(皇天)이 이 땅에 광을 비쳐준 개천절이라 여기고 이날에 관등(觀燈)의 행사를 거행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했다. 지금 우리의 역사는 사대사가(事大史家)가 식민지사관으로 위조했기 때문에 한국역사를 발견시키는데는 문서역사보다 노래, 세년가(世年歌), 시조(時調)를 중시해야 한다.
최남선 선생은 ‘한국에는 옛날부터 다음과 같은 시조(時調)가 전래(傳來)했다고 했다.(崔南善 朝鮮常識問答69面) “하(夏)4월 첫 여드렛날에 관등하려 임고대(臨高臺)하니 원근고저(遠近高低)에 석양이 비쳤다. 어룡등(魚龍燈), 봉학등(鳳鶴燈), 두루미, 남생이며 종반등(鍾磐燈), 선등(仙燈), 북등(燈)이며 수박등(燈), 마늘등(燈)과 연(蓮)꽃 속의 선동(仙童)이며 난봉(鸞鳳)우희 천녀(天女)로다. 배등(舟燈), 집등(燈), 산듸등(燈)과 영등(影燈), 알등(燈), 벽장등(壁藏燈), 가마등(燈), 난간등(欄干燈)과 사자탄 체궐이며 호랑이 탄 오랑캐라 발로 툭차구을등(燈)에 칠성등(七星燈)이 버려있고 일월등(燈) 밝았는데 동령(東嶺)에 월상(月上)하고 곳곳이 불을 켠다. 어언(於焉) 홀언간(忽焉間)에 찬란도 하지이고” 이 시조에 읊은 관등(觀燈)은 석가의 생일을 말하고 있으나 이는 그릇된 해석이다.
4월8일 관등, 석가가 아닌 해모수의 생일을 의미한다
이 시조(時調)가 석가에 대한 관등(觀燈)이 아닌 것은 석가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라면 석가를 찬미하고 불교에 관한 문구가 있을 것인데 그런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교에 반대되는 여러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즉, 조수(鳥獸)와 고기(魚)와 각종 야채와 가옥, 가구, 배(舟) 등 속인생활(俗人生活)을 열거했다. 이는 속인생활을 외면하는 불교와는 이질적(異質的)이다. 또한 종반등(鍾磐燈)은 제왕의 종묘에 다는 등이요, 영등(影燈)은 주마등(走馬燈)으로서 제왕의 행사에 쓰는 등이고, 봉학(鳳鶴)과 난봉(鸞鳳)은 천자제왕(天子帝王)에 전용하는 문구이다. 즉, 천자의 승물(乘物)을 봉가(鳳駕), 봉개(鳳蓋), 봉차(鳳車), 봉련(鳳輦), 봉여(鳳輿)라 칭하고 천자의 자리를 봉의(鳳扆), 봉탑(鳳榻)이라 칭했다. 또 제왕의 궁전을 봉지(鳳墀)라 하고 황태자의 구거(舊居)를 봉저(鳳邸)라고 했다. 궁성을 봉궐(鳳闕)이라 칭하고 황도를 봉성(鳳城)이라 했으며, 천자(天子)의 궁성문(宮城門)을 봉문(鳳門)이라고 이름했다. 제기(帝紀)는 봉기(鳳紀)로 통했다.
사자와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서 제왕에 비하는 것이요, 칠성(七星)은 불교와 전혀 관계없고 오직 제왕(帝王)의 거소(居所)를 가리키는 것이다.(論語 卷之 二 爲政第二). 이 시조에 이상과 같이 제왕을 내세운 것은 제왕(帝王)을 찬양한 것이다. 그러면 제왕의 아들로서 제왕(帝王)의 자리를 헌신짝 같이 버리고 입산수도한 석가의 사상과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진서(晋書 卷十一, 天文志, 上)에 보면 ‘청구칠성 재진동남 만이지국야’(靑丘七星 在軫東南 蠻夷之國也)라고 했다. 즉, 청구칠성(靑丘七星)이 동방 남방만이(南方蠻夷)의 국에 있다고 한 것이다. 청구(靑丘)는 한국이요, 동방도 한국이며 이(夷)도 한민족을 가리킨 것이다. 즉, 한국을 찬양하고 존중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봉황(鳳凰)도 한국산이다. 석가를 위한 관등이라면 인도(印度)를 찬양하고 인도산(印度産)의 비조(飛鳥)를 내세울 것이다. 결코 한국을 찬양하고 한국산의 봉황(鳳凰)을 내세울 수 없다. 연꽃은 순수한 불교적이다. 그러나 한국사상인 선동(仙童)과 결부된 연꽃은 순수한 불교적이 아니다. 일월등(日月燈)도 불교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적 사상이 일월숭배(日月崇拜)이다. 천녀(天女)도 불교에 있다. 그런데 묘청(妙淸)의 팔성당(八聖堂)에 한국의 천녀(天女)를 추대하고 일본 지바씨(千葉氏)의 전설에 한국의 처녀를 천녀(天女)라고 칭하였다. 호랑이는 불교의 산신각(山神閣)에 그리는 것이요, 산신각(山神閣)은 한국의 산악사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선등(仙燈)은 한민족의 전통적 신선사상을 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시조의 관등은 순수한 한국적이요, 한국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상의 견해를 종합하면 이 시조의 관등은 속인적이요, 제왕적이요, 한국적이다. 요컨대 석가의 생일이 4월8일이요, 해모수의 생일이 또한 4월8일이다. 그런데 이 시조의 관등은 이처럼 속인적이고, 제왕적이며, 한국적으로 비속인(非俗人), 비제왕(非帝王), 석가의 사상과 반대된다. 이는 한국인인 해모수의 사상과 합치된다. 그렇다면 석가의 생일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해모수의 생일을 기념한 것이다. 김부식(金富軾)이 고자(高字)만 보면 중국의 고신씨(高辛氏)에 결부하여 고구려를 중국인의 후손으로 위조하고 김자(金字)만 보면 중국의 김천씨(金天氏)에 결부하여 김유신을 중국인의 계통으로 조작했다. 중국이 중국인이라는 고신씨(高辛氏)도 한민족인데, 중국은 자기들 조상이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일부 서생들이 김부식(金富軾)의 수법을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한심한 일이다. 12월 25일이면 예수와 결부시키고 4월8일이라면 석가에 결부시키고 있다. 이 같은 구태를 탈피해야 한다.
천왕(天王), 황제국가(皇帝國家) 제도 중국과 일본이 본받다
지금 중국과 일본의 문서역사는 거의 전부가 위조된 역사이다. 특히 자주독립의 사상을 북돋우는 제왕(帝王)의 기록은 제왕에 예속된 후왕(侯王)의 기록으로 위조했다. 그러나 옛날에 향간서민층(鄕間庶民層)에 전래하는 오랜 세년가(世年歌)와 고시조(古時調)에는 위조가 없다. 특히 이 시조는 자주독립의 사상을 북돋우는 제왕을 찬미한 것이다. 사대사상이 전성한 시대에 이와 같은 시조가 위조되어 오랫동안 유행될 수 없다. 그러면 이 시조는 정확하다. 다시 정리하면 시조에 읊은 관등(觀燈)이 석가의 생일과 무관한 것이 확정적이다. 그러면 그 관등(觀燈)은 한국의 영웅을 위한 것이 확정적이다. 한국의 영웅 중에 생일이 4월8일이요 천신(天神)같은 숭배를 받는 인물은 여기서는 해모수다. 그러면 그 관등은 해모수를 위한 것이 확정적이다.
한국 역사상 천제국가(天帝國家)를 건설한 상고시대이나 해모수를 기념하는 관등이 고대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것은 천제(天帝)를 숭배하는 사상이 계승되어 실제로 황제국가로 발전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인류사상 독특히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제창하고 인류사상 최초에 천제사상(天帝思想), 천왕사상(天王思想)을 창조했다. 특히 상고시대부터 고대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국, 발해, 고려시대까지 천왕(天王), 황제국가(皇帝國家)로 발전해 중국과 일본도 우리사상과 제도를 본받았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인간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존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한창건 ‘한국고대사 발굴’,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고병익 ‘일본의 현대화와 한일관계’, 우창수 ‘아사달 상·하’,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三省堂 編修所編·永原慶二 監修 ‘中學社會歷史’ ‘各國別:世界史の整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津田秀夫 ‘日本史’. せいいくど, ‘新. 漢民族から大和民族へ’ 외 다수 서책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