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중국정사(正史)와 중국경전(經傳)에 따르면 한민족(韓民族)의 특징은 어질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인(仁)을 발견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중국문화의 개척자 순(舜)과 중국문화의 대종사(大宗師) 공자(孔子)도 한민족으로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다. 또한 흑룡강지고(黑龍江志稿)에는 한민족인 숙신씨(肅愼氏)가 4000년 전에 대국을 건설했다. 예맥(銳麥=濊貊)은 3000년 전에 건설한 구국(舊國)으로 1000년간 중국을 정벌한 것 역시 기록돼 있다. 중국병가의 대종사 강태공(大宗師姜太公)은 이들 국가를 한민족(韓民族)이라고 기록하며, 한국을 대국(大國) 그리고 구국(舊國)이라고 찬양했다. 예맥은 중국 산해경 대황동경(山海經 大荒東經)에 기록한 유위국(有蔿國)이다. 본래의 이름은 위국(蔿國)이요, 어조사로(語助辭)로서 유(有)자를 더하여 유위국(有蔿國)이라고 칭했다. 이 예맥은 극히 강대해 중국을 정벌, 중국인이 증오심으로 예맥(濊貊= 穢貊)이라는 악명을 붙였다. 관자전서(管子全書)에 ‘예맥은 흉악하다’ 하고 해동역사(海東繹史, 第三 貊)에 ‘공씨(孔氏)가 예맥에 맥(貉)이라는 짐승의 이름을 붙인 것은 악(惡)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720년 일본서기(日本書紀)에 킨메이덴노(欽明天皇) 15년12월조(條)에 예맥을 박(狛)이라고 칭했다. 박(狛)은 예맥(銳麥)이다. 예(銳)는 예병(銳兵)으로서 천하를 정복하는 강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맥(麥)은 내한(耐寒)의 곡물로서 한랭寒冷)한 지대에서 성장한다. 예맥은 북방 한랭(北方寒冷)한 지방에서 보리(麥)를 상식(常食)으로 했다. 즉, 예맥(銳麥)이라는 명칭은 보리를 먹으면서 예병(銳兵)을 거느리고 천하에 횡행하던 본래의 기상의 모습을 표시한 것이다. 예맥에 관한 해설로서 손자는 군쟁(軍爭)에 ‘예졸물공(銳卒勿攻)’이라고 했다. 즉 ‘강병을 공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예(銳)는 강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孟子(告子章句下-註)에도 맥(麥)을 내한(耐寒)의 곡(穀)으로 북방 예맥의 땅에 생산된다고 했다. 단(但), 한족(漢族))이 립식(粒食)을 곡(穀)이라 칭하고 분식(粉食)을 곡이라 칭하지 않았는데, 맥(麥)을 분식함으로 예맥이 맥(麥)을 상식(常食)하는 것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요컨대 예맥은 맥(麥)을 상식(常食)하면서 강병을 거느리고 천하에 횡행한 것이다.
예맥이라는 명칭은 예맥(銳麥)의 본모(本貌)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 사학혁명(史學革命)은 명칭부터 고쳐야 한다. 최인(崔仁) 선생은 예맥(‘濊貊)을 예맥(銳麥)으로 개명(改名)한다’고 했다. 필자도 이미 예맥(濊貊)을 예맥(銳麥)으로 개명(改名)해 쓰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에서 궁시(弓矢)만을 수입할 것이 아니라 문화까지 수입해야 한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자민족만이 사람이요 타민족은 짐승이라고 하시(下視)하는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를 선전하는 중국의 전사(傳史) 경전(經傳)에 이상과 같이 명기(明記), 찬양(讚揚), 결론까지 내린 사실을 위조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칼럼은 한민족이 유일하게 제도를 갖추면서 우수성이 분명히 드러난 천자(天子), 천제(天帝), 천황(天皇), 황제제도(皇帝制度)를 중국이 모방한 다양한 증거들에게 대한 것을 다뤄보고자 한다.
중국 고서에 등장하는 천신(天神)의 피를 받고 양육 받은 한민족
삼국유사에 ‘한민족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고서 산해경(山海經)에는 ‘한민족(韓民族)은 천신(天神)의 양육(養育)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다. 중국고서 ‘독단(獨斷)’에도 ‘한민족은 천신지신(天神地神)의 피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한국에 천신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한민족은 일찍부터 ‘인간사상’, ‘천민사상’, ‘중물사상’ 등 삼대사상(三大思想)을 고유한 문화사상으로 간직해 왔다. 이 문화사상이 경탄할 역사를 창조한 원동력이다. 즉, 인간사상(人間思想)은 인화단결을 이룩하고, 천민사상(天民思想)은 자존독립(自尊獨立)의 정신을 북돋우며, 중물사상(重物思想)은 경이적인 기술을 발견케 했다.
이에 우리는 황제제도를 마련해 최초의 황제국가를 이룩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 등은 우리의 천자(天子), 천제(天帝), 천황(天皇), 황제제도를 수입해 마치 고대부터 이 제도를 자기들만의 것으로 변조·왜곡했다. 흔히들 중국문화를 창설한 자는 요(堯)와 순(舜)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중국문화를 창설한 자는 요(堯)가 아니고 순(舜)이다. 이는 중국 사학계의 제1인자인 사마온공(司馬溫公)과 중국문화의 대종사(大宗師)인 공자(孔子)의 견해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사마온공은 계고록(稽古錄)에서 요(堯)에 대해 도당씨(陶唐氏)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순(舜)에 대해여 유우씨(有虞氏 上, 有虞氏下) 양편으로 자세히 언급했다. 즉, 계고록(稽古錄卷四, 有虞氏下)에 순(舜)같은 대성인은 후세에도 다시 출생할 수 없다는 최고의 찬양을 했다. 이상의 두 견해는 실제로 중국문화를 개척한 자는 요(堯)가 아니고 순(舜)이라고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맹자이루장(孟子離婁章)에 순(舜)은 동이인(東夷人)이라 말하고, 사기(史記,卷一, 五帝本紀第一, 周處風土記)에도 순(舜)은 동이인이라고 기록했다. 또한 서전태서장(書傳泰誓章)에 수유억조이인(受有億兆夷人)이라고 했다. 즉, 은황 주(殷王 紂)가 동이인 억조(億兆)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은(殷)의 국인(國人)은 동이 인이다.
또 춘추좌전(春秋左傳, 三十七, 召公四)에 ‘주극동이 이운기신’(紂克東夷 而隕其身)이라고 했다. 즉, 은왕(殷王) 주(紂)가 동이와 상극(相克)이 되어 멸망했다고 한 것이다. 상극(相克)은 불화(不和)요, 불화(不和)는 선치(善治)치 못해 인화를 잃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은왕(殷王) 주(紂)가 그 국민인 동이를 잘 다스리지 못해 멸망하였다고 한 것이다. 또한 은(殷)의 신화가 난생설(卵生說)로 한민족의 신화와 동일하고 은인(殷人)이 백의(白衣)를 입는 것도 우리 한민족과 동일하다. 중국사가 임해상(林惠祥)과 중국문인 전사년(傳斯年)도 은인동이설(殷人東夷說)을 주장하고 있다. 또 예기단궁편(禮記檀弓篇)에 공자가 은인(殷人)이라 자청하고 사기에도 공자가 은인(殷人)이라 기록했다.(史記 四十七, 孔子世家, 第十七) 요컨대 중국문화를 개척한 자가 한민족인 순(舜)이요 중국문화의 총본산인 유교를 창설한 공자가 우리 한민족이다. 이는 유교가 한국사상을 계승한 것임을 드러낸다. 중국문화는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것이고, 공자의 유교사상도 한국사상을 계승해 창조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결국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도 한국에서 나왔다.
한국인 사상 계승한 유교문화…제왕(帝王) 옹호, 천자(天子) 존중 문화
유교는 한국인의 사상을 계승했다. 유교의 주지(主旨)는 인(仁)이요, 행동강령은 충효(忠孝)다. 그런데 효(孝)보다 충(忠)을 내세웠다. 충(忠)은 제왕(帝王)을 높이 받드는 것이다. 즉, 유교는 제왕(帝王)을 옹호하는 군주주의의 종교다. 따라서 유교문화는 천자(天子)를 존중하는 문물제도에 집약됐다. 그런데 천자(天子)라는 명칭과 그 제도는 한민족의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모방했다. 백호통(白虎通(爵)에 ‘천자자 작칭야 왕자 부천모지 위천지자야’(天子者 爵稱也 王子 父天母地 爲天之子也)라고 했다. 즉, 제왕은 천신지신(天神地神)을 부모로 하여 천신(天神)의 자(子)가 됨으로 천자(天子)라 칭한다고 했다. 천자는 천신의 피를 받은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천신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없다. 인류역사상 천신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을 제창한 것은 오직 우리 한민족이다.
한국사상을 계승한 유교는 또한 한국의 천민사상을 모방해 천자의 명칭과 제도를 제정했다. 이 사실은 중국문헌에 의해서 실증된다. 논어(論語, 卷之三, 八佾第三)에 ‘이적지유군 불여제하지무야’(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無也)라고 했다. 즉, 이적(夷狄)은 군주(君主)가 있고 중국은 군주가 없다. 그럼으로 이적의 풍습과 중국의 풍속은 같지 않다고 했다. 공자(孔子) 당시에 중국에 군주가 있었다. 그런데 군주가 없다고 말한 것은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음을 가리킨다. 즉, 이적(夷狄)은 군주(君主)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있으나 중국은 군주를 섬기는 문물제도가 없음을 개탄(慨歎)한 셈이다.
중국이 우리의 천자, 천제, 천황, 황제제도 모방한 역사적 증거들
춘추좌전(春秋左傳 卷之三十九昭公六)에 보면 소공(昭公) 17년 가을에 담자(郯子)가 내조(來朝)하니 소공(昭公)이 소호씨(小皥氏)가 관직(官職)에 조명(鳥名)을 부친 유래를 물었다. 이에 담자(郯子)가 “내 할아버지 소호씨(小皥氏)가 즉위하니 봉황(鳳凰)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관직에 조명을 붙였다”고 해설했다. 이에 공자(孔子)가 28세의 청년으로 담자(郯子)를 방견(訪見)해 천자의 관제를 배우고 옛날부터 天子가 관제를 잃으면 四夷에게서 배운다는 말이 있었는데, 과연 그러하다고 했다. 이것은 한민족이 천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이 창조한 그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봉황(鳳凰)은 천자에 전용(專用)하는 문구(文句)다. 즉, 천자의 좌석을 봉탑(鳳榻)이라 칭하고, 천자의 궁전을 봉지(鳳墀)라 칭하며, 천자의 글(書)을 봉조(鳳詔)라 칭한다. 그럼으로 소호씨(小皥氏)가 봉황(鳳凰)을 보고 관명(官名)을 지었다함은 천자의 문물제도를 설정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요, 또한 고대중국의 봉황(鳳凰)은 한국에서 출생했다고 했다. 이는 천자의 문물제도가 한국에서 창조된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가 범엽(范曄)이 ‘공자가 옛날부터 중국이 사이(四夷)에서 천자의 관제를 배웠다고 말한 것’을 후한서동이전에 기입하고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도 공자의 말을 조선조(朝鮮條)에 기입했다. 이는 공자를 가르친 담자(郯子)가 한민족이요, 공자가 말한 사이(四夷)가 한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것은 한민족이 천자(天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의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을 확정한 것이고 할 수 있다. 또한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獨斷, 卷上)에 천자(天子)라는 칭호는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요, 이적(夷狄)은 천신지신(天神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함으로 천자(天子)라는 칭호를 창조했다고 했다. 이 채옹(蔡邕)의 글은 한민족이 최초에 천자의 문물제도를 창조하고 중국은 한민족이 창조한 그 문물제도를 수입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또한 중국고서 산해경(海內經)에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하고, 석문(釋文)에 독(毒)은 육(育)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 천독(天毒)은 하늘이 양육한다는 뜻이다. 즉, 조선민족은 천신(天神)의 양육을 받는 자식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자라는 명칭이 한민족에 의하여 창조됐다고 가르쳤다. 포박자(抱朴子, 內篇, 卷之十八, 地眞)에는 중국민족의 시조라 칭하는 신화적 제왕인 황제(黃帝)가 동으로 청구(靑丘)에 와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얻었다고 했다. 즉, 황제가 동도(東到)하여 풍산(風山)을 지나서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보고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의 궁중에 비장(秘藏)한 내문(內文)을 받아서 많은 귀신을 핵소(劾召)했다고 했다. 여기서 청구(靑丘)는 한국이다. 삼황(三皇)은 천황, 지황, 인황을 가리킨다. 그러면 중국역사 첫머리에 천황, 지황, 인황이라고 기록한 것은 한국에서 수입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베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 卷三, 十過, 第十)에 황제가 태산(泰山)에서 많은 귀신을 접했다고 했다. 즉, 원시 다신시대(多神時代)에 황제가 많은 귀신을 접함으로 그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자부선생(紫府先生)을 찾아와서 궁중에 비장한 내문(內文)을 받아간 것이다. 여기 나오는 자부선생은 역대신선사(歷代神仙史 卷之一 古仙列傳) 첫머리에 동왕공(東王公) 원시천지(元始天地)가 개벽한 초두에 하늘에서 하강해 푸른 바다 위 창령(蒼靈)의 허(墟)에 왕국을 건설하고 동화방제산중(東華方諸山中)에 거처하면서 자부(紫府)라 칭하고 신선사상을 가르쳤다고 한 것이다. 동왕공(東王公)은 동방에 있다는 뜻으로 동도(東到)와 같고, 창령(蒼靈)의 허(墟)는 푸른 토양으로 청구(靑丘)를 가리킨 것이요(韓非子 卷三, 十過, 第十), 동화(東華)는 조선의 이명(異名)이다.(秉穗錄) 중국 신선사상의 시조라 칭하는 황제(黃帝)가 한국의 신선인 자부선생의 내문(內文)을 받았다는 신화는 중국 신선사상이 한국의 신선사상을 계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신화도 천자, 천황 등 황제의 문물제도를 최초에 창조한 자가 한민족이요, 중국은 한민족이 창조한 그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이라 가리킨다고 하겠다. 이처럼 오늘날 중국인의 모든 문헌은 천자의 문물제도를 창조한 자가 한민족이라는 주장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고조선학회 ‘고조선연구 제1호’,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을 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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